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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3화 (14/201)

제13화

나는 잠시 헛기침을 한 후 전화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김지석입니다. 어제는 잘 쉬셨습니까?]

핸드폰 너머로 부드러운 중저음이 들려왔다.

“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어제 계약금이랑 각성자 지원금 모두 입금했습니다. 확인해보시라고 연락드렸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혹시 또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김지석이 물었다.

반사적으로 없다고 대답하려던 나는 순간 멈칫했다.

조금 전까지 고민하던 몸풀기 장소에 대한 고민이 떠올랐다.

“아, 혹시.”

[네.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개인적으로 단련할 수 있는 곳을 좀 찾아주실 수 있으신가요?”

갑작스러운 요청이었지만 김지석은 당황하지 않았다.

[생각해 두신 장소의 조건이 있으십니까?]

“음. 일단 체육관 이상 크기는 됐으면 좋겠고요. 튼튼하고 방음도 잘 돼야 하고요. 그리고 당연히 저 혼자 쓸 수 있는 곳으로요.”

[알겠습니다. 조건에 맞는 곳으로 구해보도록 할게요.]

김지석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김지석과 통화를 마쳤다.

왠지 김지석이라면 없던 장소를 만들어서라도 구해줄 것 같았다.

‘단련 장소는 조만간 구할 수 있겠네.’

피식 웃은 나는 일단 오늘의 몸풀기를 위해 가볍게 달리기를 시작했다.

* * *

한 시간 정도 몸을 푼 나는 숨을 돌릴 겸, 근처의 작은 공원 그네에 앉아 계좌를 확인했다.

[각성 기관 100,000,000원 입금]

[각성자 지원금 2,000,000원 입금]

[잔액 107,051,200원]

‘와….’

통장 잔고를 보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나이에 통장에서 이런 단위의 금액을 볼 줄이야.’

회귀 전 각성을 했을 때는 지원금이고 뭐고 그런 것들은 전혀 없었다.

그저 게이트를 하나 닫을 때마다 주어지는 보상금으로만 생활을 이어갔었는데 그 보상금 자체도 크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그런데 1년 동안 이 금액이 매달 들어온다는 거지….’

잠시 숨죽여 웃던 나는 곧 마음을 다잡고 다시 현실을 바라봤다.

큰 금액이었지만 이렇게 기관의 돈만 받아서는 나중에라도 기관의 개가 될 확률이 높았다.

‘기관 말고 또 다른 수입원이 있어야 안전한데.’

어차피 이름도 알려졌겠다, 개인적으로 게이트를 닫는 의뢰라도 받아볼까 싶기도 했다.

게이트가 생기는 위치는 랜덤이었다.

길거리나 공원에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가다 사유지나 집 앞마당, 혹은 집 안에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것들을 닫아주면서 보상도 챙기고 돈도 챙기고.’

그러다 보면 내게 필요 없는 아이템들도 많이 떨어질 것이다.

아직은 아이템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세계적으로 커다란 시장이 형성된다.

‘가호가 없는 사람도 사용할 수 있으니 시장이 커질 수밖에.’

게다가 나는 회귀를 한 몸.

비싸게 팔린 고급 아이템들이 나오는 게이트의 위치는 대부분 꿰고 있었다.

거래 사이트에서 아주 상세하게 기록을 남겨둔 덕분이었다.

그런 게이트들을 돌아서 아이템을 팔 생각을 하니 벌써 부자가 된 기분에 마음이 들떴다.

“저기요.”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앞을 바라보자 교복을 입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내 앞에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저요?”

잠시 나를 살피던 여학생이 물었다.

“윤도아 각성자 맞죠?”

“네.”

내 대답에 두 학생이 작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헐, 진짜네.”

“꺅, 거봐! 맞잖아!”

그러더니 핸드폰을 내밀며 물었다.

“혹시, 같이 사진 찍어도 돼요?”

아무래도 매스컴을 타다 보니 이런식의 요청을 꽤 받고 있었다.

귀찮긴 했지만 특별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요. 딱 한 장만.”

학생들이 다시 비명을 지르더니 곧 내가 앉은 그네의 양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여학생의 핸드폰 화면에 셋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하나, 둘, 셋!”

찰칵!

순식간에 표정을 바꿔 사진을 찍은 학생들이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다시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내게 손을 내민다.

“악수도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한 명씩 번갈아가며 악수를 나누자.

“감사합니다!”

두 학생은 다시 작은 비명을 내지르며 후다닥 멀어졌다.

‘사진도 찍어줬겠다, 그럼.’

피식 웃은 나는 둘을 보며 여우 구슬을 발동시켰다.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두 학생 모두 가호자가 아니었다. 가호자가 아닐 경우에는 항상 저런 정보창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공원을 지나갔다. 나는 턱을 괸 채 그 사람을 살폈지만 역시나 정보 확인 불가.

한 삼십 분 정도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본 결과 모두가 정보 확인이 불가능했다.

아직은 가호자가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EX급이지?’

가호자나 각성자의 정보 외에 특별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여우 구슬의 정보를 살폈다.

[원하는 대상의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원하는 대상….’

대상이라면 생명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럼 혹시 게이트의 정보도?’

회귀 전 이리나는 게이트의 정보까지는 볼 수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오만의 그리폰에 대한 정보도 미리 알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지금 내가 삼킨 여우 구슬은 S급이 아닌 EX급.

어쩌면 게이트의 정보까지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확인해봐야겠다.’

나는 핸드폰으로 각성 기관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근처의 게이트를 검색했다.

마침 가까운 곳에 난이도가 낮은 C급 게이트가 하나 있었다.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단검들을 챙겨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는 초등학교 운동장 한복판에 있었다.

다행히 방학 기간이라 아이들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인지 경찰들과 경비원이 게이트를 지키고 있었다.

그중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유지은.’

유지은 역시 나를 발견했는지 내게 걸어왔다.

“어? 윤도아 씨.”

나를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꾸벅여 인사했다.

“아직 각성증 안 나왔어요.”

내 말에 유지은이 웃었다.

“전에 주선오 씨가 확인해주셨으니 괜찮습니다. 근데 게이트 닫으러 오신 건가요?”

“네.”

유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해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닫아주신다면 다행이네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나는 유지은의 뒤를 따르며 여우 구슬을 발동시켰다.

그런데.

[유지은]

[뱀신의 가호]

[굴 안에 든 뱀]

[전용스탯 : 민첩 7/후각 11]

‘…!’

유지은은 가호자였다.

그리고 유지은의 가호를 확인한 순간, 왜 유지은이라는 이름이 익숙했는지를 깨달았다.

회귀 전, 박성현을 죽이려 했던 것은 나 혼자뿐이 아니었다.

각성자들끼리의 쓸데없는 전쟁을 막기 위해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다른 암살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되려 박성현에게 당하고 말았다.

나는 그 후에 각성했고 박성현을 죽이기 위해 정보를 모으던 중, 다른 암살자들이 모아두었던 정보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리고 죽기 전 가장 많은 정보를 취합했던 것이 바로 굴 안의 뱀 유지은이었다.

‘그러니 못 알아 봤을 수밖에….’

“저 혹시 괜찮으면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게이트로 다가가자 앞을 지키던 경찰이 슬쩍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찰의 정보를 살폈다. 역시나 정보 확인 불가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만족스럽게 핸드폰을 바라보며 경찰이 외쳤다.

‘일단은 게이트 확인부터.’

푸른 게이트의 앞에 서자 게이트의 안내문이 떠올랐다.

[C급 아이템 게이트]

그리고 뒤이어 게이트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역시!’

EX급의 여우 구슬은 게이트의 정보도 볼 수 있었다.

[상급 슬라임 레부가 관리하는 아이템 게이트입니다.]

[레부의 시험을 통과하면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게이트 클리어시 C급 이상의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레부…!’

익숙한 슬라임이었다.

이전의 데스웜 게이트에서 만났던 스킬 보부상 모부와 함께 악덕 보부상으로 손꼽히는 아이템 보부상.

그리고 회귀 전 내 심연의 불꽃 안에 사로잡았던 슬라임이었다.

‘잘 만났다.’

아이템 보부상인 레부.

지금 이 게이트에서 저놈을 죽인다면 놈이 현재 가진 아이템들이 모두 내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레부가 죽으면 슬라임의 특성을 이용할 수가 없다.

아이템들의 부피는 기본적으로 컸다.

사람들이 괜히 무기를 하나만 들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레부는 슬라임의 특성상 그것들을 축소해 자신의 몸 속에 보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보관할 수 있는 아이템의 수가 거의 무한대에 가까웠다.

고로 놈을 잡아두면 내가 아이템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필요할 때 필요한 아이템을 꺼내 쓸 수 있다.

그리고 가끔 게이트 안에 풀어놓으면 슬라임의 특성 때문에 주변의 아이템을 찾아 삼키곤 한다.

즉 내가 게이트에서 얻을 수 있는 정해진 보상 이외에도 레부가 주워 먹은 아이템이 내 것이 된다는 것.

‘그러면 팔 수 있는 아이템도 더욱 늘어나지.’

게다가 놈은 불의 슬라임.

스스로 불을 일으킬 수 있는 놈이다.

놈을 데리고 다닐 수 있다면 언제든지 불 계열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매우 좋은 장점이 있다.

‘다시 한 번 붙잡아주마.’

마음 같아서는 들어가자마자 놈을 족치고 싶었다.

하지만 게이트의 원칙상 클리어 과정을 거치고 조건을 만족해야만 클리어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아무리 관리자라고 해도 레부 마음대로 게이트의 원칙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일단 클리어는 해주고, 그다음에 잡는다.’

뒤이어 레부의 시험에 대한 정보도 떠올랐다.

[레부의 시험 : 단계별 상자 오픈. 옳은 상자 선택 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틀린 상자를 선택할 경우 레부의 몸속에 있던 무기가 튀어나와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상자 오픈이라.’

단계에 따른 상자 오픈이라면 단계가 높아질수록 상자의 개수도 많아질 것이다.

그걸 일일이 다 열어본다?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귀찮았다.

‘이런 건 신교진이 있으면 좋을 텐데.’

두 번째 각성자 신교진.

소 신의 가호를 받아 뭘 하든 행운이 따르는 그놈이라면 선택하는 족족 다음 단계의 상자일 것이었다.

‘상자를 쉽게 찾아낼 방법이….’

레부는 불을 다루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으면 아주 미묘한 불향이 풍기곤 했었다.

틀린 상자 안에서 나오는 것이 레부의 몸속에 있던 무기라면 분명 상자 안은 레부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 그 향이 안 날 수가 없지.’

하지만 내가 가진 평범한 후각으로는 구분할 수 없었다.

그때 유지은이 눈에 띄었다.

‘유지은의 전용 스탯에 있던 후각…!’

유지은에게 물었다.

“가호 받으셨죠?”

내 질문에 유지은이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옆에 있던 경찰도 조금 놀란 눈치였다.

“…어떻게 아셨어요?”

놀란 듯 물었지만 유지은이 곧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기관에서 보셨나보네요. 이틀 전에 받았어요.”

“각성은 왜 안 하셨어요?”

“일이 바쁘기도 하고….”

유지은이 말끝을 흐리더니 곧 난처한 웃음을 띠었다.

“사실 게이트 안이 어떤 곳인지 잘 몰라서 못 갔습니다. 지난번에 윤도아 씨도 그렇고 주선오 씨도 그렇고 게이트에서 나오면 항상 피투성이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니까 섣불리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확실히 게이트는 미지의 존재였다.

나도 회귀 전에는 항상 게이트에 입장하는 순간이 가장 떨렸었다.

어떤 몬스터와 어떤 함정들이 그곳에 있을지 모르니까.

살아남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이해 할 수 있었다.

“사실 지원금 때문에 혹하긴 했는데 그래도 돈 때문에 목숨을 거는 게 아직은 좀 무서워서요.”

유지은이 이어 말했다.

나는 곧바로 물었다.

“지금 가 보는 건 어때요?”

“네? 지금요?”

유지은이 놀라며 되물었다.

“어차피 지금 저 게이트 지키는 게 일이죠? 금방 게이트 닫고 복귀하시면 되겠네요.”

별것 아니라는 내 말에 유지은이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

“…윤도아 씨가 닫으러 오셨다면서요?”

“네. 같이 가자는 거예요.”

유지은의 표정은 여전했다. 아마 유지은도 내 활약에 대한 기사들을 봤을 것이다.

“이런 기회 흔치 않을 텐데 안 가실 거예요?”

사실 내가 편하자고 데려가려는 거지만. 어쨌든 유지은에게는 굉장히 좋은 기회일 것이다.

유지은이 결심이 선 듯 말했다.

“가보죠.”

나는 유지은과 함께 푸른 게이트 안으로 입장했다.

* * *

“…여긴….”

처음 게이트에 들어와 본 유지은이 의아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그냥 작은 방이었다.

성인 대여섯 명이 둘러앉으면 꽉 찰 것 같은 크기의 평범한 방.

나가는 문은 없었다.

벽지고 장판이고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하얀색의 상자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바닥을 툭툭 차보고 벽을 톡톡 두드려보았다.

‘벽에는 장치가 없다. 그럼 천장인가.’

나는 외투를 벗어 바닥에 툭 던져놓았다.

“불편하면 외투 벗으셔도 돼요. 밖에서 들어온 건 다 같이 내보내지거든요.”

유지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외투를 벗었다.

“근데 이제 뭘 합니까? 여긴 나가는 문도 없는 것 같은데….”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유지은이 물었다.

“조금 기다리면 나올 거예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장이 덜컥 열리더니 새빨간 무언가 쏟아져 내렸다.

철퍽!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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