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다음날 오전, 집 안에서 열심히 근력을 키우던 중 김지석에게 연락이 왔다.
‘토요일인데 일하나?’
문득 생각이 들었지만 각성 기관에 주말이 있겠나 싶었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김지석입니다.]
“네. 알고 있으니까 매번 자기소개 안 하셔도 돼요.”
내 말에 김지석이 작게 웃었다.
[여쭤볼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잠깐 통화 괜찮으신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세요.”
[오전에 각성자 신교진 씨가 다녀가셨습니다.]
‘신교진? 벌써?’
개인 의뢰 건으로 각성 기관에 들른 것이 분명했다.
“그런가요?”
[네. 게이트가 간혹 가다가 개인의 사유지나 집 안에 생기는 것 알고 계시죠?]
내가 했던 말이 신교진과 각성기관을 거쳐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상당히 웃기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일단 모른척했다.
“네. 어디에든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신교진 씨가 그런 경우를 겪는 일반 사람들이 게이트를 닫아달라는 의뢰를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아아. 그래서요?”
[기관장님이 윤도아 씨 생각을 궁금해 하셨습니다.]
신교진이 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떠보는 건가?’
내가 되물었다.
“제 생각이 왜요?”
[아무래도 그런 의뢰를 받게 되면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윤도아 씨나 주선오 씨 뿐이니까요. 혹여나 윤도아 씨한테 피해가 갈까 걱정이 돼서요.]
‘내가 제안한 건데 피해라니.’
나는 피식 웃었다.
“그냥 봉사활동은 아니잖아요?”
[네. 소정의 의뢰비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럼 괜찮아요. 타당한 대가를 주면 마다할 필요는 없죠.”
[아, 그럼 개인 의뢰 시스템 수락하는걸로 전하겠습니다.]
“그러세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으려는 무렵.
[참, 그리고.]
김지석이 말을 이었다.
[전에 말씀하신 단련장은 후보를 몇 군데 추려뒀습니다. 확실하게 정리되면 그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단련장에 대해 말한 지 아직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벌써 후보를 몇 군데나 추려뒀다니.
역시 일처리가 굉장히 빨랐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김지석과 통화를 끝내고 두어 시간 후 쯤, 이번에는 신교진에게 연락이 왔다.
“응.”
[누나! 각성기관에서 수락 받았어요.]
굉장히 빠른 보고였다. 나는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빠르네.”
[제가 원래 일 처리는 좀 빨라서요. 그럼 그대로 진행할게요.]
대답도 하기 전에 전화가 끊겼다. 전화를 끊는 것도 빠른 놈이었다.
“…쯧.”
그래도 일이 착착 진행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 정도 속도라면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을지도 몰랐다.
생각보다 신교진이 훨씬 흥미를 느꼈기에 그만큼 일의 진행이 빠른 것이리라.
‘일주일쯤이면 다 되려나.’
개인 의뢰도 그렇고 김지석이 구하고 있는 단련장도 그렇고. 일주일 정도면 모든 준비가 끝날 것 같았다.
‘이틀 후에 권재경을 만난 후 소개까지 시켜주면.’
일단 기관에 해줄 일은 모두 끝난다. 그 이후에는 개인 의뢰를 받으면서 차근차근 성장해나가면 된다.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근력운동을 마저 진행했다.
* * *
1월 10일.
나는 새벽부터 집을 나서 수원으로 향했다.
‘여기인가?’
핸드폰에 적어뒀던 주소를 보며 찾아간 곳은 한 아파트였다.
나는 주소지의 호수 라인 입구가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삼십 분쯤 후,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다.
멀끔한 양복을 차려입고 기다란 코트를 걸친 남자.
누가 보더라도 반듯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법한 사람이었다.
권재경.
회귀 전 몸담았던 공포의 늑대 무리의 단장.
첫 번째 시험의 게이트 앞에서 나에게 시험의 중심이라고 말했던. 그리고 오만의 칼날에 찔려 죽었던 사람.
괜스레 또 가슴 한켠이 시큰해졌다.
이렇게 젊어진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
까만 뿔테안경을 쓴 권재경의 얼굴은 회귀 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하긴 그때는 마흔이 넘었었지.’
나는 턱을 괸 채 피식 웃고는 권재경의 정보를 살폈다.
‘권재경 정보.’
[권재경]
[푸른늑대 신의 가호]
[공포를 모르는 푸른늑대]
[전용 스탯 : 공포면역 15/인내 8]
권재경의 가호는 그 자체가 무기였다.
공포를 모르는 것.
싸움에서 그것보다 유리한 것은 없었다. 공포를 모르니 질 싸움에서도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멍청해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희생을 기본으로 깔고 있는 푸른늑대에게 공포라는 감정은 없어야만 했다.
그렇게 겁 없이 덤벼드는 모습에 되려 몬스터들이 겁을 먹고 내빼는 것이 다반사였다.
나는 시선을 돌려 권재경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작은 아이를 바라봤다.
‘저 애가….’
권재경의 딸인 권나라였다.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회귀 전이라면 나라는….’
나라는 실수로 어린이집 앞마당에 나타난 게이트에 들어가게 된다.
그 소식을 들은 권재경이 서둘러 게이트로 들어가지만….
살아 돌아온 건 권재경 뿐이었다.
그 후로 1월 10일마다 권재경은 나라의 납골당을 찾았고 그 덕에 권재경의 각성 날짜를 유추할 수 있었다.
나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두 부녀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나라가 그렇게 됐기 때문인지, 원래라면 나라에게로 향했을 권재경의 강한 부성애는 공포의 늑대 무리의 단원들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건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공포의 늑대 무리에 들어갈 당시는 동생인 도빈이가 죽었을 때였다.
그런 시기에 중심을 잡아줬던 분.
나이 차이가 10살밖에 나지 않았지만 그 당시의 내게는 아버지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권재경의 딸을 꼭 살리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기에 나라가 죽을 일은 없겠지만.
대체 어쩌다가 아이가 게이트에 입장하게 된 건지 의아했다.
‘게이트에 들어갔다는 건 나라도 가호자라는 뜻인데.’
나는 나라를 보며 다시 한 번 여우 구슬을 발동시켰다.
‘권나라 정보.’
[권나라]
[하얀사슴 신의 가호]
[인도하는 하얀사슴]
[전용 스탯 : 감각 7/민첩 4/분석 11]
‘역시.’
나라도 가호를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회귀 전에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나라의 가호가 어떤 가호인지는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인도하는 하얀사슴이라.’
말 그대로라면 다른 각성자들을 이끈다는 뜻일 수도 있고, 혹은 안내를 뜻하는 인도일 수도 있었다.
아직 판단을 내리기에는 애매한 상황.
만약 게이트에 들어가서 전용 특성을 얻게 된다면 확실해지겠지만.
웬만하면 나라를 게이트 안에 들여보내고 싶지 않았다.
‘게이트는 6살짜리 아이에게는 너무 위험한 곳이니까.’
권재경은 근처의 어린이집에 나라를 데려다 놓은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린이집 앞마당에는 아직 게이트가 생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괜히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는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힐지도 몰랐기에 나는 멀리서 몸을 숨긴 채 조용히 어린이집을 지켜보았다.
잠시 살펴본 결과, 어린이집의 사람들 중 가호자는 나라뿐이었다.
게이트가 나타난 건 오후 1시를 조금 넘긴 시간.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마당 한구석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눈치채지 못할 일렁임.
하지만 내게는 확실하게 보였다. 아니, 확실하게 느껴졌다.
‘마나가 뒤틀린다…?’
비전 마법을 얻은 이후로 마나 스스로가 움직이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마나의 움직임에 간섭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내 제어가 통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 간섭을 튕겨냈다.
주변의 마나들이 뒤틀림에 반응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내가 마나를 뭉치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응축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모여들어 함께 뒤틀리고 있을 뿐.
하지만 그 뒤틀림이 만들어내는 일렁임은 점점 커졌고 곧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보일 정도가 되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염력으로 마나의 접촉을 시도했다. 하지만 역시나 내 힘은 너무 쉽게 튕겨나갔다.
‘특성 레벨이 더 오르게 되면 가능할까?’
혹시 그렇다면.
게이트가 열리는 것 자체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때 앞마당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던 선생님이 마나의 일렁임을 발견했다.
선생님의 눈이 커다래지더니 금세 공포에 질렸다.
“…!”
하지만 선생님은 놀란 기색을 감추더니 침착하게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잠깐 선생님 좀 볼까요?”
이어지는 선생님의 박수 소리에 아이들의 시선이 선생님에게 쏠렸다.
하지만 그 순간.
우우우웅——!
공허한 울림이 사방에 번지며 응집됐던 마나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찰나의 정적.
그리고.
훅——!
마나들이 사라지며 나타난 새카만 어둠 속에서 짧고 강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
멀리 떨어져 있던 나를 밀려나게 할 정도의 충격파였다.
빠르게 균형을 잡고 다시 앞을 바라보자 어린이집 앞마당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다행히 건물이 무너지거나 하는 큰 충격파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고 그 위로 흙먼지가 휘날렸다.
놀이기구들 역시 밀려나 중심을 잃고 넘어진 상태였다.
그 가운데 아이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감싼 선생님은 어린이집 건물에 부딪혀 기절한 것 같았다.
충격파를 뱉어낸 어둠의 물결은 곧 검은 연기를 피워내기 시작했다.
‘…종합 보상 게이트….’
나는 잠시 멍한 얼굴로 게이트를 바라봤다.
분명 이전에도 게이트가 생성되는 과정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마나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지금, 그때와는 기분이 사뭇 달랐다.
‘게이트가 열리는 게 마나와 관계가 있는 건가…?’
“으아아앙!”
갑작스러운 울음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어린이집을 바라봤다.
건물 안에서 나온 중년의 선생님이 쓰러진 선생님과 울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이 선생님! 좀 도와줘요!”
“어머, 대체 뭐가…. 워, 원장님. 저거 게이트 아네요?”
뒤이어 나타난 선생님이 마당 앞에 자리 잡은 검은 게이트를 보며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아이들부터!”
원장이 울고 있는 아이들을 달래며 건물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뒤따라 나온 선생님도 원장을 도와 얼른 아이들을 이동시켰다.
하지만 그 아이들 중 나라는 없었다.
“나라야!”
한 선생님이 외쳤다.
나라는 어느새 게이트의 앞에 서 있었다.
선생님이 당황하며 나라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나라야, 위험하니까 이쪽으로 올까요?”
하지만 나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보는 현상이 신기한 건지 빤히 게이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선생님. 여기 글자가 있어요.”
게이트의 중앙이 열려 있었고, 나라는 글을 읽을 줄 아는 모양이었다.
순간 좋지 않은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빠르게 어린이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네? 글자요? 일단 위험하니까 안으로 들어갈까요?”
어린이집 선생님은 가호자가 아니었는지 게이트의 글자를 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믿지 못하는 듯하자 나라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저기, 있어요! 거짓말 아녜요. 음….”
나라가 계속 게이트를 바라봤다.
“…급, 음…. 보상…, 입니다.”
완벽하게 글을 읽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더 읽었다가는….
“으음…. 시간은…, 시간과 동일…?”
나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다가온 나를 보며 선생님들이 흠칫 놀랐다.
“어, 윤도아 각성자…?”
한 명이 나를 알아봤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신경 쓸 새가 없었다.
내가 황급히 나라에게 손을 뻗으며 외쳤다.
“읽지 마!”
하지만 나라는 내 외침과 동시에 글을 읽었다.
“입장….”
그 순간.
까만 연기가 나라를 휘감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