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20화 (21/201)

제20화

“꺄악! 나라야!”

“어머, 어떡해!”

선생님들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나라를 붙잡으려 내민 손을 거두며 허탈함을 느꼈다.

기가 찬 상황이었다.

나라는 ‘입장하시겠습니까’라는 글을 읽어보려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게이트가 그걸 입장하겠다고 인식한 것이었다.

깊은 탄식을 내뱉는 중 원장이 나를 붙들었다.

“윤도아, 각성자 맞죠?”

“…네, 맞아요.”

“도와주세요! 나라가, 아이가 게이트에 들어가 버렸어요!”

선생님이 울먹이며 검은 게이트를 가리켰다.

“봤어요, 저도. 일단 들어가세요. 보호자한테 연락하시고요.”

내 말에 원장이 마구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선생님과 남은 아이들을 어린이집 안으로 이동시켰다.

나라를 집어삼킨 게이트는 작고 까만 구형으로 변해있었다.

내가 게이트의 앞에 서자 게이트가 스멀스멀 번지더니 다시 처음의 형태를 띠웠다.

그리고 그 중앙에 게이트 안내문이 떠올랐다.

나는 안내문을 읽는 대신 여우 구슬을 발동시켰다.

[S급 종합 보상 게이트]

‘하필 등급도 최고등급.’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가고일들의 서식지가 있는 종합 보상 게이트입니다.]

[서식지의 대장 가고일을 잡으면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게이트 클리어 시 S급 이상의 아이템, 스킬, 스탯 혹은 그 외의 보상을 획득할 확률이 큽니다.]

‘게다가 가고일?’

이곳에서 권재경이 혼자라도 살아나왔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빠르게 정보를 살피고 서둘러 게이트 안으로 입장했다.

“입장.”

* * *

새하얀 눈이 잔뜩 쌓인 소나무 숲이었다.

바닥에 쌓인 눈 덕분에 나라를 추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라의 작은 발자국이 눈 위에 남아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서 새하얀 눈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와. 우와.”

나라가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만지작거리며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일단 무사한 걸 확인하니 한숨이 나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나라를 불렀다.

“나라야?”

조막한 손으로 눈을 뭉치던 나라가 나를 돌아봤다.

이렇게 보니 권재경과 꼭 닮은 얼굴이었다. 나라의 커다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일단 부르긴 했는데….’

어린아이들을 대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조금 난감했다.

나는 제자리에 쪼그려 앉아 나라와 눈높이를 맞추고 말했다.

“흠. 권나라 맞지?”

잠시 나를 살피던 나라가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응. 나라야. 언니는….”

말을 하려다 멈칫했다. 여섯 살 아이한테 스물다섯이 언니가 맞는 건가 싶었다.

그렇다고 아줌마라고 하기에는 아직 젊은 것 같았지만….

35살까지 살다가 회귀한 입장에서 언니라고 말하기에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35살이면 현재 권재경의 나이였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적절한 단어를 하나 찾아냈다.

“음. 이모는 나라가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 부탁으로 나라를 따라왔어.”

나라는 여전히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왠지 잘못하다간 애를 울릴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마나를 움직여 눈을 뭉치기 시작했다.

“이거 봐, 나라야.”

나라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뭉쳐지는 눈을 바라봤다.

곧 눈 뭉치는 나비의 모양을 띠었고 나는 그것을 나라에게 날려 보냈다.

“나비!”

나라가 벌떡 일어나며 눈 나비에게 손을 뻗었다.

나는 눈 나비를 하나 더 만들어 두 마리의 눈 나비로 나라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그사이 나는 조심스레 나라를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쭉 이어진 길의 끝에 돌계단이 하나 놓여있었다.

계단의 양쪽 난간에는 창을 든 작은 가고일 석상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 계단은 반 층 정도 위로 뻗어있었고 계단의 끝에는 반절이 갈라져 있는 타원형의 문이 있었다.

그 문은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성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오돌토돌한 돌의 표면이 남아있는 성의 외벽은 수십 미터 위로 뻗어있었고 그 끝에 두 개의 뾰족한 첨탑이 뿔처럼 솟아 있었다.

두 첨탑의 사이에는 자잘한 작은 뿔들이 가시처럼 돋쳐있었다.

기묘한 느낌의 성이었다.

‘왠지 기분 나쁜데.’

“아! 나비 죽었어!”

나라의 실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물을 관찰하느라 염력에 신경을 잘 못 쓴 탓이었다.

“이모, 나비!”

나라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말했다. 다행히 울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나비를 만들어냈고, 나라는 나비를 보며 까르르 웃으며 눈밭을 뛰어다녔다.

그런 나라를 보며 피식 웃은 나는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했다.

게이트에 입장한 지 10분 정도가 지났다.

‘일단은 단장님을 기다리자.’

* * *

올해 6살이 된 딸이 게이트에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은 권재경은 곧바로 회사에서 뛰쳐나왔다.

급하게 택시를 타고 어린이집에 도착하자 그 앞에서 어린이집 원장인 이은영이 서성이고 있었다.

“나라 아버님!”

택시에서 내린 권재경은 어린이집 앞마당에 떡하니 자리 잡은 검은 구형의 게이트를 보며 치를 떨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게이트로 뛰어 들어가려 했다.

“잠시만요! 지금 각성자 윤도아 씨가 안에 있어요.”

이은영이 권재경을 붙잡았다.

“…네?”

권재경이 멈칫하며 이은영을 바라봤다.

“윤도아 씨라면….”

“네, 그 각성자요. 이곳을 지나가길래 제가 부탁드렸어요.”

윤도아라면 권재경도 잘 알고 있었다.

S급 종합 보상 게이트를 40분만에 클리어했던 각성자.

‘나라를 구해주러 들어간 건가?’

“정말 죄송합니다. 설마 나라가 가호자였을 줄은 몰랐어요.”

이은영이 고개를 푹 숙이며 권재경에게 사과했다.

“아뇨, 아닙니다. 일단은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권재경이 이은영을 뒤로하고 게이트의 앞에 섰다. 게이트가 넓어지며 안내문이 떠올랐다.

[S급 종합 보상 게이트입니다.]

[게이트 안의 시간은 바깥의 시간과 동일하게 흐릅니다.]

[하지만 생체의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언젠가는 게이트에 들어갈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들어가게 될 줄이야.’

권재경은 안에서 울고 있을 어린 딸을 떠올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게이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 * *

“꺄르륵!”

입장하자마자 들려온 웃음소리에 권재경은 귀를 의심했다. 분명 나라의 웃음소리였다.

권재경의 앞에 눈밭이 펼쳐졌다.

그리고 어지러이 찍혀있는 작은 발자국과 큰 발자국을 따라 앞을 바라보자.

눈밭 위에서 뛰놀고 있는 나라가 보였다.

“…나라야?”

“어? 아빠다!”

나라가 권재경에게 달려왔다.

그러다가 털썩.

눈밭 위로 넘어졌다.

권재경이 흠칫 놀라며 나라에게 다가갔지만 나라는 다시 몸을 일으키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빠, 눈이 엄청 많아!”

그런 나라를 보며 권재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미소지었다.

“우리 나라, 눈 많이 쌓여서 신났어?”

“응! 좋아! 저기 저 이모가 나비도 만들어줬어.”

권재경의 품에 안긴 나라가 뒤를 가리켰다.

권재경이 다시 앞을 바라보자 그곳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한참 떠들썩한 화제의 주인공이었다.

“윤도아 씨.”

권재경이 윤도아에게 고개를 꾸벅여 보였다. 윤도아 역시 권재경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권재경은 딸의 손을 잡고 윤도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권재경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니요. 뭐 한 것도 없는걸요.”

윤도아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권재경에게는 더욱더 고맙게 느껴졌다.

나라는 윤도아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아이였다.

어쩌면 윤도아가 생각하기에 나라가 게이트에 들어온 것은 그냥 길 가던 아이가 넘어진 것과 같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윤도아는 나라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오히려 나라를 위해서 이 S급 종합 보상 게이트에 뛰어들었다.

만약 윤도아가 이 앞에서 나라를 붙잡아두지 않았더라면 나라는 저 앞에 있는 거대한 돌의 탑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곳으로.

권재경에게 윤도아는 딸을 살려준 은인이었다.

“울고 있을 줄 알았는데 덕분에 안심했습니다. 권재경이라고 합니다.”

“윤도아입니다.”

권재경이 두 손으로 윤도아의 손을 꽉 맞잡고 악수했다.

나라가 윤도아의 옆에서 펄럭이는 눈으로 만들어진 나비 두 마리를 보며 웃었다. 윤도아의 능력인 듯했다.

권재경이 그런 나라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게이트는 처음 들어오는데 신기하군요.”

“별거 없어요. 그냥 평소에 안 보이는 몬스터들이 좀 있을 뿐이에요.”

윤도아의 말에 권재경이 살짝 웃었다.

“그렇습니까.”

“어쨌든 게이트 들어온 이상 여기 클리어해야 나갈 수 있다는 건 아시죠?”

권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눈앞의 거대한 탑을 바라봤다.

마치 돌로 만들어진 요새 같았다.

“저 안에는 뭐가 있는 겁니까?”

“그건 저도 가봐야 알아요. 근데 나라 괜찮을까요?”

윤도아의 말에 권재경이 딸을 바라보았다.

저 돌의 요새 안에는 어떤 몬스터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라를 이 눈밭에 혼자 두고 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권재경이 나라와 함께 밖에 남을 수도 없었다.

윤도아는 나라 때문에 억지로 이 게이트에 들어온 걸지도 모른다.

윤도아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린 딸에게 끔찍한 모습을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혼자 두는 것보다는 함께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같이 가는 게 안심될 것 같군요.”

윤도아가 고개를 끄덕인 후 돌계단으로 걸어갔다.

“아, 나비 없어졌어.”

나라가 사라진 눈 나비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살짝 웃은 권재경이 나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라야. 아빠 손 잡고 갈까?”

권재경은 딸의 손을 잡고 윤도아의 뒤를 따랐다.

계단 앞에 멈춰선 윤도아가 둘을 돌아보며 말했다.

“잠깐 거기 계세요.”

“알겠습니다.”

권재경이 나라의 손을 잡고 멈춰 섰다.

윤도아가 잠시 난간 끝의 괴물 조각상을 살폈다.

‘저기에 무언가 있나?’

권재경 역시 조각상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1미터 정도 크기의 괴물이었다.

날카롭게 찢어진 커다란 눈과 매부리코, 비죽 솟아난 송곳니들이 괴물의 모습을 한층 더 흉측하게 만들고 있었다.

등에 작은 날개가 붙은 그 괴물은 난간 위에 쪼그려 앉은 형태로 조각되어 있었다.

한 손으로는 난간을 짚었고 다른 손에는 꽤 정교하게 조각된 창을 들고 있었다.

‘움직이기라도 할 것 같군.’

윤도아가 계단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권재경의 생각은 현실이 됐다.

카가가각!

괴물 석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권재경이 흠칫 놀랐다. 윤도아에게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윤도아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두 개의 창이 윤도아가 서 있던 자리에 교차되어 부딪혔다.

하지만 윤도아는 어느새 두어 개의 계단 위에 있었다.

‘역시 여러 번 게이트를 닫아본 사람은 다르구나!’

권재경이 윤도아의 빠른 몸놀림에 감탄했다.

윤도아가 한 발을 훅 들어 올리더니 두 창의 교차점을 가볍게 밟아 내리찍었다.

카강!

두 개의 창이 계단에 부딪혔다.

괴물들이 창을 놓치며 휘청거렸다. 그리고 뒤이어.

“마나구.”

작은 중얼거림이 들리더니 잠시 후.

콰앙!

괴물들이 양쪽에서 터져나갔다.

후두두둑.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순식간에 부서진 괴물들의 잔해가 눈밭 위로 쏟아져 내렸다.

다행히 돌덩이가 부서진 것뿐, 피가 터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권재경은 나라가 피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는 부서진 괴물 석상을 유심히 살폈다.

“가고일이네요.”

윤도아가 말했다.

“가고일…? 그렇군요.”

그제야 권재경은 어렸을 적 했던 게임에 나오던 가고일이 떠올랐다. 주로 성당의 벽면에 조각되어 성당을 지키는 괴물들이었다.

“이 게이트에서는 가고일만 나오는 겁니까?”

권재경이 물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특히 S급의 경우에는 이놈들보다 상위 몬스터가 나올 가능성도 있어요. 지금은 확신 못 합니다.”

윤도아의 설명에 권재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고일만이 등장한다고 생각하면.

‘저 돌덩이를 어떻게 깨부수지?’

이게 문제였다.

윤도아는 조금 전 영문 모를 힘으로 가고일들을 터트렸다.

권재경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손으로 내려친다면 괴물 대신 권재경의 손이 박살날 것이 분명했다.

“일단 가죠.”

윤도아가 옆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계단을 뒹굴던 창 하나가 슥 떠오르더니 윤도아의 손에 척 쥐어졌다.

‘초능력인가 보군.’

권재경은 윤도아가 틀림없이 초능력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눈으로 나비를 만들었던 것도 그렇고 조금 전의 석상 폭발, 그리고 저절로 떠오르는 창.

초능력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었으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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