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권재경은 20분 만에 게이트로 들어왔다. 다행히 회사가 근처였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라를 따라 들어와 준 내게 굉장히 고마워했다.
나조차도 나라가 무사한 것을 보니 안심이 되었는데 오죽할까 싶었다.
‘이 정도면 기관에 소속시키는 것도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각성 기관에서 다른 각성자들을 도와달라는 내 부탁을 기꺼이 들어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전에 나도 현재 권재경의 감각이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을 해야 했다.
회귀 전에야 수년 동안 게이트를 닫아온 경험 덕분에 내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이제 첫 게이트.
충분한 실력이 없으면 남을 가르치는 불가능하다.
만약 가능하다 하더라도 믿지 못할 스승이 될 수도 있었다.
실전 경험도 중요하긴 하지만 시작의 날 초반부의 각성자들은 주선오나 안세인을 빼면 거기서 거기다.
그리고 안세인의 판단에 권재경이라는 사람이 쓸 만하다 싶으면 함께 게이트에 가서 실전 경험을 쌓아줄 것이다.
‘최대한 이번 게이트에서 감각을 깨워준다.’
이번 게이트의 개인 목표였다. 그래야 앞으로의 내가 편했다.
나는 우선 가고일 석상이 이 게이트의 주 몬스터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가고일이네요.”
“가고일…?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거린 권재경이 물었다.
“이 게이트에서는 가고일만 나오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특히 S급의 경우에는 이놈들보다 상위 몬스터가 나올 가능성도 있어요. 지금은 확신 못 합니다.”
물론 이 게이트에서는 가고일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여우 구슬로 확인한 정보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나는 통상적인 게이트의 현상을 말해주었다.
권재경은 부서진 가고일 석상을 유심히 보았다. 나름대로 게이트에 대해 파악하려 노력 중인 것 같았다.
“일단 가죠.”
나는 염력을 이용해 계단 위에 놓인 창을 하나 집어 들었다.
권재경 역시 남은 창을 들고 나라와 함께 내 뒤를 따랐다.
계단 위의 거대한 문에는 알 수 없는 기하학의 무늬들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문을 열려다 말고 권재경을 돌아보았다.
“참.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제안 말입니까?”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상황 자체가 굉장히 운이 좋았다는 거, 알고 계시죠?”
물론 나는 내 계획 아래에 나라를 따라 게이트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걸 모르는 권재경으로서는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될 법한 상황이고.
권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만약 우연히 제가 여기를 지나가지 않는 상황이었다면 아마 단…. 음….”
잠깐 말을 멈췄다.
지금까지 불러온 대로 단장님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 망설임을 알아챘는지, 권재경이 먼저 말했다.
“그냥 아저씨라고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아. 네. 그럼, 어쨌든 제가 지나가지 않았다면 아저씨 혼자 이 게이트를 클리어했어야 해요.”
내 말에 권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래서 그런데 지금부터 아저씨가 클리어해보실래요?”
권재경이 혹시라도 오해를 할까 봐 바로 덧붙여 설명했다.
“오늘 같은 우연이 다른 게이트에서도 일어나길 기대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왔다고 생각하시고 해보시라고 권유하는 거예요. 어차피 제가 있으니까 죽을 일도 없고요. 위험할 것 같으면 제가 바로 도울 거니까요.”
뒤를 봐줄 테니 앞장서서 싸우라는 말이었다.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아마 지금의 권재경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다 좋게 생각할 것 같았다.
“좋습니다.”
권재경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빠른 수락에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그래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대신 나라 좀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네.”
역시 신의 가호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라도 망설이기 마련이지만 권재경은 문 안에서 펼쳐질 상황에 전혀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나라, 이모랑 손잡을까?”
내가 나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라가 아빠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권재경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나라가 권재경의 손을 놓고 내 손을 붙잡았다.
“그럼 열겠습니다.”
권재경이 문을 밀었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건물 내부에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안의 공간이 매우 넓은 모양이었다.
문을 통해 안으로 쏟아진 빛이 먼지가 잔뜩 쌓인 돌바닥을 비추었다.
빛을 따라 시선을 들자 빛의 끝자락에는.
“와! 인형이다!”
나라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나라의 말대로 작은 단상 위에는 작은 인형이 하나 있었다.
흉악스러운 가고일을 최대한 귀엽게 만들어둔 하얀 인형이었다.
머리 위의 작은 뿔 두 개, 등을 따라 솟아있는 비죽비죽한 돌기와 짤막한 꼬리. 짜리몽땅한 네 개의 발.
커다란 한쪽 눈 위에는 단안경까지 끼고 있었다.
“인형 보러 가요!”
나라가 내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난감했다. 게이트 안에 있는 한 저게 그냥 평범한 인형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인형이 하나 놓인 공간 치고 이곳은 너무 넓었다.
가고일 인형이 있는 단상을 중심으로 펼쳐진 거대한 홀은 수백 명의 사람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천장 또한 까마득하게 솟아있었다. 아마 외부에서 봤던 그 높이 그대로 위까지 뚫려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앞으로 가려는 나라를 붙잡았다.
“나라야, 잠깐….”
그때 인형이 몸을 일으켰다.
“으앗차! 아고고.”
그러더니 자신의 몸에 묻어있는 먼지를 툭툭 털어낸 후 우리를 바라보았다.
“역시 계단 지킴이들은 약하네. 뭐, 다행이지만. 아닌가? 저 인간들이 강한 건가?”
분명히 인형의 입이 달싹이고 있었다.
“와! 아빠! 저 인형 신기해!”
나라가 호기심이 동한 모양이었다. 권재경은 말하는 가고일 인형을 잔뜩 경계했다.
“근데 어쩌다가 조그마한 인간이 들어왔담? 저런 작은 인간이 있으면 마음이 별로 좋지가 않다고, 나도. 본모습으로 진지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군.”
‘뭐지? 생각을 내뱉는 건가?’
이상한 놈이었다.
놈의 말 덕분에 저놈의 본모습이 인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녕, 인형아!”
나라가 먼저 인형에게 말을 걸었다.
가고일 인형의 시선이 나라에게 향했다.
그러더니 날개를 펄럭이며 단상 위에서 뛰어내려 나라에게 다가오려 했다.
하지만 권재경이 그런 가고일 인형의 몸통을 확 낚아챘다.
“쿠엑!”
갑작스럽게 몸통을 죄어오는 손에 헛구역질을 내뱉은 가고일 인형이 권재경을 쏘아보았다.
“갈비뼈 부러질 뻔했네! 뭐 이딴 예의 없는 놈이 다 있어?”
“…부러질 갈비뼈가 있긴 한 겁니까? 푹신한데.”
권재경이 가고일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그에 가고일 인형이 흠칫 놀랐다.
“뭐야? 웬 대답? 이 인간 혹시 생각을 읽는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권재경이 피식 웃었다.
나 역시 피식.
본인이 말을 내뱉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좋을 대로 생각해. 그래서 넌 뭔데?”
내가 물었다.
“뭐야? 저 인간도 듣고 있잖아? 뭐지? 이상한데? 뭔가 잘못됐나?”
인형이 당황했다.
“됐고, 뭐냐고.”
내가 재차 묻자 인형이 화들짝 놀라며 앞발 혹은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헛기침을 했다.
“크흠, 흠. 아무래도 혼자 오래 있었더니 혼잣말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네. 물론 난 가고일이지.”
그제야 자신이 생각을 말로 내뱉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난 너희한테 해를 끼치지는 않으니까 일단 놓아주지 않겠어?”
권재경이 허락을 구하듯 나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저놈이 게이트의 안내자인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괜찮을 거예요.”
내 대답에 권재경이 인형을 놓았다. 그러자 인형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으악! 아니, 놓을 거면 말을 하고 놓아야지! 날개가 있다고 바로 날 수 있는 줄 알아? 인형이라 부서질 일은 없지만 본모습이었으면 깨진다고. 조심 좀 하란 말야!”
몸을 추스른 인형이 다시 날개를 퍼덕여 날아올랐다.
“뭐, 어쨌든 가고일 서식지에 온 걸 환영? 축하? 그럴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대충 그래. 난 너희의 조력자니까 좀 친절하게 대해줘.”
아무래도 시작의 날 초반 S급 종합 보상 게이트에는 이런 조력자들이 흔히 있었던 모양이었다.
‘난쟁이 왕도 나름 조력자였고.’
무엇을 하든 튜토리얼이 필요하긴 했다.
그래서 시작의 날 초반에 각성한 각성자들이 이후의 각성자들보다 더 많은 활약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고일 인형이 말을 이었다.
“이곳은 말했듯이 가고일 서식지야. 즉 아까 너희가 깨부순 가고일 같은 놈들이 이 안에 수두룩하다는 거지. 너희가 이곳을 나가려면 대장 가고일을 잡아야 해.”
“대장 가고일?”
권재경이 되물었다.
“그래. 근데 그 대장 가고일을 잡으려면 이 안에서 순한 가고일들을 먼저 찾아내야 하거든. 나같이 말야.”
가고일 인형이 홀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홀을 둘러싸고 있는 벽면에 여러 개의 입구가 보였다.
문으로 막혀 있지는 않았다. 입구 안쪽으로는 좁다란 길이 죽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근데 문제는 저 안이 미로라는 거야. 나도 저 안에만 들어가면 길을 잃어서 나처럼 순한 내 친구들을 만나지를 못하고 있어.”
“…미로 말입니까?”
권재경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래. 미로. 저 복잡한 미로 안에서 나처럼! 순한 가고일들을 찾아내면 돼.”
인형이 계속 강조했다.
“근데 순한 가고일은 나를 포함해서 3마리뿐이고 나머지는 다 나쁜 놈들이야.”
“그쪽이 순한 가고일이라는 걸 어떻게 믿습니까?”
권재경이 물었다. 그 말에 동의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 안에서 의심은 기본이다.
“순한 척하다가 나중에 뒤통수 칠지도 모르는 거고.”
내가 거들자 가고일이 기가 찬 듯 한숨을 내뱉었다.
“이봐들, 난 조력자라니까? 조력자를 안 믿으면 누굴 믿을 건데?”
그때 단상 앞으로 퀘스트가 떠올랐다.
[가고일 서식지 안의 순한 가고일들을 찾아내십시오. 1/3]
퀘스트를 보니 저놈의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저놈 말이 맞는 것 같네요.”
권재경 역시 퀘스트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자! 들어가자!”
가고일 인형이 자신 있게 앞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러더니 날개를 파닥이며 앞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아무도 놈을 따라가지 않자 놈이 주춤하며 뒤를 돌아봤다.
“자, 같이 가지 않을래? 친구들?”
어느새 예의 없는 놈이 친구까지 격상되었다.
‘미로라.’
나는 놈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상당히 귀찮은 게이트였다.
여우 구슬로 봤던 정보에는 이런 것까지 나오지는 않았다.
순한 가고일들을 찾아내는 건 별로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바깥에서 봤던 이 건물의 크기를 봤을 때, 막무가내로 다니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그렇게 되면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주 단위로 이곳에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입구도 여러 개.
찾아야 할 가고일이 2마리인 것에 비해 너무 많았다.
분명 대부분이 허탕일 것이다. 시간상 너무 손해였다.
‘그냥 다 부숴버려?’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냥 이 입구 안을 비전 마법으로 다 때려 부수면서 전진하는 것.
제일 편하고 빠른 방법이었다.
아무리 권재경의 감각을 깨워줘야 한다고는 하지만 이 게이트는 너무 시간 낭비일 것 같았다.
‘차라리 여길 후딱 깨버리고 다른 게이트를 가는 편이 나을지도.’
한참 고민에 빠져있는데 권재경이 나를 불렀다.
“도아 씨.”
“네?”
“일단 안쪽을 한 번 살펴볼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권재경이 물었다.
“아. 네. 그러시죠.”
권재경이 먼저 앞장서서 한 입구로 걸어갔다.
나라는 앞에 있는 하얀 가고일 인형을 붙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틈에 나는 슬쩍 뒤로 물러나 심연의 불꽃을 꺼냈다.
“레부야.”
내 조용한 부름에 심연의 불꽃 안에 있던 레부가 슥 고개를 내밀었다.
“쿄?”
“바깥 활동도 좀 해야지?”
내 말에 레부가 주변을 둘러봤다.
“게이트 안이군요, 쿄쿄.”
“그래. 가서 쓸 만한 아이템 있으면 물어오렴.”
레부가 심연의 불꽃에서 스르륵 빠져나오더니 빠르게 바닥을 기어 사라졌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아이템은 얻어가야지.’
게이트 안에 레부를 풀어놓은 나는 다시 심연의 불꽃을 집어넣고 몸을 돌렸다.
권재경은 여전히 입구 안쪽을 살피고 있었고 나라 역시 하얀 가고일 인형과 놀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어라?’
그런 나라를 보며 피식 웃는데 순간 뭔가 머릿속을 스쳤다.
‘어쩌면….’
나라가 이 게이트 클리어의 중요한 열쇠일지도 몰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