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23화 (24/201)

제23화

쿠구구구——!

첨탑이라고 생각했던 뾰족한 기둥이 옆으로 벌어지며 거대한 날개가 펼쳐졌다.

첨탑 사이의 뾰족한 돌기들은 머리의 뿔과 등에 솟은 가시들이었다.

우리가 들어갔던 문은 놈의 입이었다.

“저게….”

멍하게 거대한 성채의 움직임을 바라보던 권재경이 중얼거렸다.

“으아아아앙! 아빠아!”

권재경이 즉각 나라의 울음소리에 반응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울고 있는 나라에게 달려가 나라를 안아 올렸다.

“대장 가고일이야.”

나를 바깥으로 이동시킨 하얀 가고일 인형이 내 어깨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하얀 놈을 툭 쳐내고 성채를 바라봤다.

눈 위로 떨어져 반쯤 파묻힌 하얀 놈이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깨 좀 빌려주면 덧나니, 친구.”

“됐고. 너희들, 저놈 속에 갇혀 있던 거야?”

내 말에 회색 놈이 하얀 놈의 위로 내려앉으며 말했다.

“…뭐야, 뭐야. 몰랐던 거야?”

까만 놈이 회색 놈의 위로 마저 내려앉았다.

“맞아. 우리가 순한 게 잘못됐다고 우릴 가둬뒀어.”

하얀 놈은 완전히 눈 속에 파묻혔다.

“…친구들, 나 좀 살려줄래?”

우리를 바깥으로 옮긴 건 가고일 인형들의 능력이었다.

이런 능력이 있으면 개별적으로라도 대장 가고일의 몸속에서 이동할 수 있었을 텐데 이놈들은 지금껏 그러지 않았다.

모두가 한곳에 모였을 때 우리를 데리고 이동한 걸로 보아 셋이 모여있지 않으면 이동이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보스 몬스터인 대장 가고일이 나타났습니다.]

[대장 가고일을 제압하십시오. 0/1]

대장 가고일이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없던 산이 하나 불쑥 솟아난 것 같았다.

“저걸 잡아야 하는군요.”

권재경이 눈밭 위에 떠오른 퀘스트를 확인했다.

“맞아. 그런데 대장 가고일 몸 속에 있던 다른 가고일들도 곧 나타날 거야.”

눈 속에서 빠져나온 하얀 가고일 인형이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장 가고일의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가고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철새 떼의 이동을 보는 것 같았다.

권재경이 나라를 내려놓으며 옆의 가고일 인형들에게 물었다.

“혹시 아이를 지켜줄 수 있습니까?”

“…뭐야, 뭐야. 우리한테 부탁하는 거야?”

회색 가고일 인형의 눈이 또르륵 굴러갔다.

하얀 가고일 인형이 웃었다.

“물론.”

“작은 인간 정도야 얼마든지 보호할 수 있지.”

나는 잠시 상황을 파악했다. 입속에서 쏟아져나오는 작은 가고일들이 우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나는 권재경을 돌아보았다.

“아저씨, 저 작은 가고일들 좀 맡아주세요.”

권재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양손검을 움켜쥐었다.

울고 있는 나라를 토닥이던 하얀 가고일 인형이 물었다.

“친구는 뭐 하려고?”

“저거 잡아야지.”

내가 대장 가고일을 가리켜 보였다. 그러자 회색 놈이 중얼거렸다.

“…뭐야, 뭐야. 대장을 어떻게 잡아?”

“잡을 순 있지. 이렇게.”

까만 놈이 하얀 놈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끄악! 죽는다, 죽어!”

“조금만 버티세요. 금방 갔다 올게요.”

내 말에 권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조무래기 가고일들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가고일 인형들에게서 빛이 번쩍였다. 그러더니 셋 모두 원래의 가고일 모습으로 돌아갔다.

“…뭐야, 뭐야. 결국 싸우네.”

회색 가고일이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더니 몸을 웅크리며 나라를 감싸 안았다.

갇혀 있는 나라는 무섭겠지만 최선의 방어였다.

“친구들이 도와주는 데 우리도 도와야지.”

하얀 가고일이 단안경을 고쳐쓰고는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마지막으로 까만 가고일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가장 먼저 달려든 조무래기 가고일에게 돌진했다.

쿵!

돌들이 부딪혔다.

까만 가고일에 부딪힌 조무래기 가고일이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권재경이 빠르게 놈의 뒤통수를 내리밟았다.

곧 조무래기들과 두 가고일, 권재경이 한데 뒤엉키기 시작했다.

나는 내게 내리꽂히는 가고일의 칼을 피한 후 팔꿈치로 놈의 뒤통수를 내리찍었다. 그리고 잠시 자세를 낮추었다가.

‘도약!’

날고 있는 가고일들을 피해 위로 솟구쳤다.

후욱!

순식간에 십여 미터 위로 솟아오른 나는 날아오던 조무래기 가고일의 등 위에 안착했다.

그리고 놈의 뒤통수를 짓밟으며 다시 도약!

부웅!

그렇게 서너 번 정도 도약하자 나는 드디어 대장 가고일의 눈높이에 도달할 수 있었다.

‘굉장하네!’

감탄할 수밖에 없는 크기였다.

바닥이 까마득했다.

나한테 고소공포증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나는 조무래기 가고일의 등을 밟고 대장 가고일의 눈을 바라보았다.

회색의 움푹 파인 눈두덩이 아래에 붉은빛의 둥글넙적한 광석이 박혀있었다.

놈의 눈동자였다.

나와 비슷한 크기의 눈동자가 붉게 번뜩이며 내게 향했다.

대장 가고일이 닫혀 있던 입을 벌렸다.

두 개의 문짝이 열리며 안에 있던 돌바닥이 튀어나왔다.

하얀 가고일 인형이 있던 단상이 두 갈래로 부서지더니 아래로 축 늘어졌다.

놈의 혀가 튀어나옴과 동시에 놈의 목구멍 속에서 또 다시 조무래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덕에 나는 놈들을 밟으며 대장 가고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때 놈이 거대한 팔을 휘둘렀다.

카가가가각—!

‘손바닥에 치이기 직전 파리 시점?’

문득 떠오른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근처의 조무래기 가고일을 밟으며 다시 도약했다.

커다란 팔이 지나가며 바람을 일으켰다.

후욱!

퍼억—!

대장 가고일의 손에 치인 조무래기 가고일이 산산이 조각났다.

아래쪽에 대장 가고일이 휘두른 팔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도약의 정점을 찍은 후, 나는 그 팔 위로 착지했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 고양이처럼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가 한 번 더 놈의 팔을 박차며 도약했다.

후우욱—!

그리고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대장 가고일의 머리 위에 안착한 나는 놈의 머리를 살폈다.

‘어쨌든 같은 가고일. 약점도 같을 수밖에 없지만.’

놈이 나를 붙잡기 위해 손으로 머리를 훑어오기 시작했다.

“마나구.”

나는 반경 1미터의 마나를 끌어모아 응축한 후 내게 다가오는 커다란 손을 향해 날렸다.

콰앙!

대장 가고일의 손이 터져나갔다. 놈이 주춤하는 사이 나는 드넓은 정수리 위를 달렸다.

카가가각————.

대장 가고일의 몸이 울리며 돌이 부딪히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놈의 거대한 날개가 펼쳐지더니 고개가 천천히 숙여졌다.

그리고는 훅!

위로 뛰어올랐다.

“!”

주변에 잡을 거라곤 하나도 없었기에 나 역시 그대로 허공으로 붕 떠버렸다.

나를 털어내려고 제자리에서 뛰어오른 모양이었다.

쿵!

다시 바닥에 착지한 놈 때문에 숲이 울렸다.

잠시 허공에 머물게 된 나는 놈의 들판 같은 정수리를 노려보며 근처의 마나들을 끌어모았다.

약점인 뒤통수를 노릴 필요도 없었다.

‘최대 운용 범위 15미터.’

산처럼 거대한 가고일.

최대로 끌어모은 마나의 위력을 시험해보기 좋은 상대였다.

“마나구!”

나는 반경 15미터의 마나를 한껏 응축시켰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일렁거리는 작은 마나구가 생성됐다.

‘악마의 고양이, 네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 봐라!’

나는 놈의 뒤통수로 마나구를 내리찍었다.

* * *

카각!

“친구! 조심해야지.”

하얀 가고일의 말에 권재경이 옆을 바라보았다.

가고일 하나가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권재경이 앞의 가고일을 피해내느라 보지 못한 가고일이었다.

권재경은 곧바로 앞쪽 가고일의 뒷목을 잡아당겼다.

앞으로 고꾸라지는 놈의 뒤통수를 다시 쥔 양손검의 폼멜로 내리찍었다.

조무래기 가고일들은 끝이 없었다.

대장 가고일의 몸 안에서도 많은 가고일을 부쉈지만, 아직도 많은 놈이 남아있었다.

‘만약 윤도아 씨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었을까.’

권재경이 담담히 생각하며 안경을 고쳐 썼다.

깨진 안경 너머로 나라를 감싸고 있는 회색 가고일이 보였다.

그리고 그 회색 가고일을 노리는 조무래기 가고일이 보였다.

부웅!

권재경이 양손검을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조무래기 가고일이 들고 있던 칼이 양손검에 맞아 날아갔다.

그리고 그 뒤통수를 까만 가고일의 발이 내리찍었다.

“대장 뛴다. 조심해!”

까만 가고일이 충고했다.

쿵!

우웅—.

지면이 크게 진동했다.

권재경은 균형을 잃고 눈밭으로 넘어졌다.

‘도아 씨가 싸우고 있나?’

여진이 이어지는 와중에 권재경이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앞이 흐렸다. 넘어지는 바람에 안경이 날아간 모양이었다.

등 뒤에서 묵직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등 쪽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권재경이 빠르게 몸을 돌리며 양팔로 머리를 감쌌다.

빠각!

굉장히 단단한 무언가가 권재경의 왼팔을 박살 냈다.

“큽!”

고통스러움에 잠시 휘청였지만, 권재경은 곧바로 오른손을 뻗어 눈앞의 가고일을 붙잡아 넘어트린 후, 주먹으로 가고일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피가 터졌지만 가고일의 머리를 부수는 데 성공한 권재경은 빠르게 눈밭을 더듬었다.

다행히 안경이 손에 잡혔다.

권재경이 안경을 다시 쓰는 순간.

콰앙——!

쿠구구구——.

거대한 폭발음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다시 선명해진 권재경의 시야에 대장 가고일이 들어왔다.

대장 가고일의 머리에 금이 가고 있었다.

그 금은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이내 형태를 잃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모든 가고일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모두의 시선이 부서지는 대장 가고일에게 꽂혀 있었다.

“…뭐야….”

“오, 친구가 해냈어!”

“와우.”

세 가고일 역시 멍하게 대장 가고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쿠구구궁.

산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대장이 무너지자 싸움의 의지를 잃은 조무래기 가고일들이 눈밭 위에 내려앉아 다시 석상처럼 굳어졌다.

“…윤도아 씨….”

권재경이 중얼거렸다.

윤도아가 대장 가고일을 박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초능력이 저렇게 강력한 건가?’

미로 안에서 1미터 정도의 석상을 박살내는 것 정도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대장 가고일의 크기는 도심의 웬만한 아파트보다도 커 보였다.

그런 걸 한 방에 부수는 능력이라니.

오싹했다.

몬스터를 앞에 둔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했던 권재경이지만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권재경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잠깐만. 우리 이러고 있을 게 아닌 것 같은데, 친구들.”

하얀 가고일이 문득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그래. 대장 가고일을 잡은 건 좋은데 못 피하면 또 다 같이 황천길 가게 생겼는걸?”

까만 가고일이 덧붙였다.

대장 가고일의 부서진 파편들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권재경과 나라, 세 가고일이 있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권재경은 황급히 눈 위에 쓰러져 있는 나라를 안아 들었다.

“…뭐야, 뭐야. 어디로 피해야 돼?”

회색 가고일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피할 곳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모든 곳에 돌덩이들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때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권재경과 나라에게 직격으로 날아왔다.

“우와, 부딪힌다!”

까만 가고일이 웃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친구, 비명만 지르지 말고 우리 이동할까?”

흰 가고일이 까만 가고일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세 가고일이 나라를 안아든 권재경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쾅!

갑자기 날아오던 커다란 돌덩이가 산산조각났다.

“오우!”

작게 부서진 돌조각들 사이에서 무언가 나타났다.

돌조각들과 함께 눈 위로 떨어진 그것은 권재경과 가고일들의 앞으로 쭉 미끄러졌다.

뒤로 기다란 흔적을 남기며 미끄러져온 그것이 앞을 뒤덮은 눈덩이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윤도아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