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25화 (26/201)

제25화

주선오와 이리나는 30분쯤 후 도착했다.

상황을 설명한 후 부녀를 부탁한 나는 바로 김지석을 만나러 갔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김지석은 이미 나와 있었다.

회색 코트에 부드러워 보이는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지만, 코끝이 빨간 것이 꽤 일찍 나온 모양이었다.

“김 이사님.”

“아, 도아 씨. 오셨어요?”

“추운데 차는 안 가져오셨어요?”

“근처에 세워뒀습니다. 도아 씨는 게이트 다녀오신 거죠?”

“아, 네.”

각성 기관의 파견 직원이 보고한 모양이었다. 게이트가 생긴 것을 확인했을 테니.

“피곤하실 텐데 얼른 보러 가시죠.”

김지석이 앞을 가리켜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지석과 함께 걸었다.

김지석이 안내한 곳은 아파트였다.

“…? 집 보러 오셨어요?”

내 물음에 김지석이 웃음을 터트렸다.

“반은 맞습니다.”

“네?”

“잠시만요.”

먼저 아파트의 입구로 다가간 김지석은 그곳에 있는 보안 요원과 몇 마디를 나누더니 내게 손짓했다.

내가 김지석에게 다가가자 보안 요원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윤도아 각성자 맞으시죠?”

“네.”

“악수 한 번만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보안 요원이 기대감을 품은 얼굴로 물었다.

“네, 뭐….”

나는 보안 요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장갑을 벗은 보안 요원이 양손으로 내 내민 손을 덥석 잡더니 마구 흔들었다.

“영광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김지석을 바라보았다.

보안 요원은 곧 아파트의 입구를 열어주었고 김지석이 먼저 안으로 이동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보안 요원이 씩씩하게 외쳤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김지석을 따라 들어갔다.

“대체 뭡니까?”

“이곳 지하에 벙커가 있어요.”

“…벙커요?”

김지석이 복도의 구석에 있는 문으로 다가갔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시가 붙어있는 문이었다.

김지석이 문을 열려 했지만 상당히 무거운지 쉽게 열지 못했다.

“잠시.”

내 말에 김지석이 뒤로 물러났다.

기본적인 근력이야 내가 딸릴 수도 있었지만 나한테는 근력 스탯이 있었다. 일반 사람과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문을 벌컥 열자 김지석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꾸벅였다.

“고맙습니다. 들어갈까요?”

안은 캄캄했다.

김지석이 입구 주변을 더듬더니 곧 스위치를 찾아내 불을 켰다.

내부가 밝아지며 콘크리트 벽이 드러났다.

아래로 향하는 긴 계단이 있었다.

김지석이 먼저 계단을 내려갔고 나는 잡고 있던 문을 놓은 후 김지석을 따랐다.

“먼저 와서 확인해봤는데 크기는 굉장히 넓습니다. 방음도 확실하고요.”

김지석의 목소리가 울렸다.

계단은 두어 층 정도 아래로 이어졌고 또 하나의 문이 나타났다.

내가 문을 열자 김지석이 다시 벽을 더듬어 복도의 불을 켠 후 앞장서 걸었다.

잠시 후, 한 개의 문을 더 열자 드디어 드넓은 벙커의 모습이 나타났다.

“한 번 살펴보세요.”

김지석이 내게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회색의 콘크리트로 마감된 벽이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높이가 조금 아쉽긴 했지만, 확실히 체육관에 버금가는 크기였다.

‘어차피 이 안에서 도약할 일은 없을 테니.’

벙커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그런지 웬만한 시설들을 다 갖추고 있었다.

화장실과 샤워장, 기계실, 그리고 몇 개의 작은 방들도 붙어있었다.

공기 또한 환기 시설이 있어서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내구성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어차피 게이트가 아니라면 마나구는 터트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벽에다 대고 칼을 휘두를 것도 아니었고, 주먹질을 할 것도 아니었다.

물론 콘크리트에 주먹질을 하면 내 손이 부서질 것 같긴 했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반대편 벽에는 입구와 비슷한 철문이 하나 더 있었다.

“저기는 어디로 통합니까?”

“아파트 뒤쪽의 공원과 연결됩니다.”

김지석이 바로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한 번 내부를 살폈다. 그리고는 김지석을 보며 말했다.

“좋네요. 내일부터 당장 쓸 수 있는 겁니까?”

긴장하고 있던 김지석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네. 미리 계약을 해뒀습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그러더니 곧 주머니에서 카드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뭡니까?”

“이 벙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곳의 입주민이 돼야하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아파트 입주민을 위한 시설이니까요. 그래서 5층에 집을 함께 계약해 뒀습니다.”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살짝 고개를 비틀며 되물었다.

“…네?”

“이건 엘리베이터 카드키예요. 이 카드가 있어야만 그 층수에 출입이 가능하니까 챙겨두십시오.”

갑자기 집이 생겨버리는 바람에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분명 비싼 만큼 아파트 자체도 고급일 터. 내 표정을 살핀 김지석이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기관과 함께 해주시는 답례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혹시 여기서 지내시는 게 불편하시면 그냥 없는 셈 치셔도 되고요.”

아무래도 내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걱정된 모양이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당혹스럽긴 했지만 확실히 기분은 좋았다.

‘저렇게까지 말하면야.’

나는 김지석이 내민 카드키를 받아들었다.

“아뇨. 이왕 주시는 거면 잘 써야죠. 감사합니다.”

내 말에 김지석이 다시 안도의 미소를 띠었다.

“네. 이미 거래는 끝났으니까 안심하고 편하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가구들도 다 새로 배치를 해뒀고요.”

이미 모든 세팅이 끝나있는 상태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김지석이 내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차 어디에 두셨어요?”

“여기 주차장에 있습니다.”

미리 이곳에다가 세워 뒀던 모양이었다.

나는 김지석을 주차장까지 마중했다.

“감사합니다. 들어가서 쉬세요.”

“네. 조심히 가세요.”

김지석이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네고는 차에 올라탔다.

떠나는 김지석의 차를 보며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벙커로 돌아가서 아까의 보상을 확인할지, 아니면 일단 5층으로 올라가서 새 집을 구경할지.

‘…올라가 보자.’

보상도 보상이지만 사실 집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컸다.

안 그래도 신교진의 집을 본 이후로 집에 대한 생각이 가득한 상태였기에.

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후 아까 받은 카드키를 꺼내 키패드 아래쪽의 인식 장치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자동으로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5층에 도착한 후 문이 열렸다.

통로가 내 방보다 넓어 보였다. 게다가 5층에는 현관문이 한 개뿐이었다.

‘이 층 전체가 다 집 하나라고?’

벌써 웃음이 났다.

나는 현관문을 열었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조금은 무게가 있는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큼직한 현관을 지나자 왼쪽으로 꺾인 복도가 나타났다.

오른쪽 복도 끝에는 두 개의 방이 붙어 있었고 왼쪽 복도 끝에도 커다란 방이 하나 있었다.

복도를 따라 들어가자 드넓은 거실이 나타났다. 전면 유리를 통해 도시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내 방에서는 가로등만 보였는데.’

잠시 야경을 바라보던 나는 곧 거실의 불을 켰다.

밝아진 거실에는 푹신해 보이는 소파와 TV 등 가정집이 갖출 기본적인 물품들이 모두 놓여있었다.

모두 우리 집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거실 옆에는 미닫이문으로 나누어진 다이닝 존과 주방, 다용도실이 연결되어 있었고 거실 건너편에도 방이 하나 있었다.

얼핏 확인한 욕실은 내 방보다도 커 보였다.

대충 집을 둘러보고 나니 얼떨떨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집이었고 혼자 살기에는 너무나도 컸다.

회귀 전, 어스름 그림자로 명성을 날렸을 때도 집은 그저 평범한 정도였다.

아니, 오히려 원래 살던 집보다 더 작은 곳에 살았다.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손에 꼽혔는데 굳이 큰돈 내며 집을 유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돈도 없었고.

‘갑자기 이런 집에 살게 되다니….’

김지석이 왜 그렇게 부담을 덜어주려 애를 썼는지 알 것 같았다.

누구든 이런 집을 받게 되면 부담스러울 것이 당연했다.

‘…조만간 기관에 얼굴 좀 비춰야겠네.’

나는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거실을 둘러보며 소파에 앉았다.

소파는 굉장히 푹신해서 앉자마자 훅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긴장이 풀리는 바람에 쌓여있던 피로가 훅 밀려들어 왔다.

‘아…. 보상 확인해야 하는데.’

나는 순식간에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 * *

불 꺼진 어린이집 앞.

모자를 푹 눌러쓴 한 남자가 어린이집으로 다가갔다.

각성 기관의 파견 직원인 송지호였다.

송지호는 입에 막대 사탕을 문 채, 날카로운 눈매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 그런지 인적이 없었다.

송지호는 어린이집의 낮은 나무담장을 훌쩍 넘어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게이트가 나타났던 곳.’

가로등 불빛 덕분에 어린이집의 마당은 어둡지 않았다.

게이트가 나타나며 일으킨 충격파에 엉망이 된 앞마당이 훤히 드러났다.

부서진 놀이기구들이 마당 한구석에 쌓여 있었고, 떨어진 나뭇가지와 나뭇잎들, 놀이기구의 잔해들은 나무 담장의 아래에 한데 모여 있었다.

송지호는 천천히 그곳으로 걸어가며 바닥을 유심히 살폈다.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잔해들의 뭉치 앞에 도착한 송지호는 발로 나뭇잎과 나뭇가지들을 헤집기 시작했다.

‘귀찮네. 이런다고 뭐가 나오나.’

송지호가 뚱한 얼굴로 물고 있던 사탕을 까드득 깨물었다.

게이트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법.

따라서 파견 직원은 보통 한 구역을 3명이 번갈아 가며 순찰하곤 했다.

순찰하며 하는 일은 간단했다.

새로운 게이트가 나타났다면 그곳의 정보를 체크해서 기관으로 보낸다.

이전부터 있던 게이트라면 주변에 이상 현상이 없는지 체크한다.

게이트가 사라졌다면 그곳에 게이트의 정체를 추측할 만한 단서가 있는지 수색한다.

하지만 지금껏 이렇게 수색을 돌면서 무언가 단서를 얻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행히 이곳의 게이트는 나타나자마자 윤도아가 닫아버렸기에 매일 상태를 체크해야 하는 성가신 일은 없었다.

‘에휴. 후딱 하고 가야지.’

한숨을 내쉰 송지호가 본격적으로 잔해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달그락.

“응?”

송지호가 멈칫했다. 뭔가가 나뭇가지에 걸렸다.

‘놀이기구 잔해인가?’

송지호는 별 생각 없이 그것을 집어 들어 살폈다.

작고 길쭉한 유리 조각이었다.

아니, 유리 조각이라고 하기에는 보석 같은 반짝임이 뭔가 고급스러워 보였다.

잠시 고개를 갸웃한 송지호는 그것을 들고 어린이집의 창문들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유심히 살펴도 창문이 깨진 곳은 없었다.

놀이기구의 잔해도 아니었다. 아이들이 노는 놀이기구에 이런 위험한 유리 조각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뭔가 발견한 건가?’

송지호는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유리 조각을 바라보았다. 만약 진짜 단서를 발견한 것이라면….

‘인센티브!’

송지호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리고는 유리 조각을 들어 올려 가로등에 비추어 보였다.

안에서 무언가 일렁이고 있었다.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미묘한 연기의 움직임 같은 것이 보였다.

‘나이스!’

이건 분명 게이트에 대한 단서였다!

송지호는 인센티브에 대한 생각에 들떠 급히 핸드폰을 꺼냈다.

* * *

새벽.

게이트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은 김지석은 곧장 기관으로 향했다.

“아, 김 이사.”

역시 집에서 나온 건지 편한 옷차림의 안세인이 김지석을 맞았다.

“관장님! 단서라뇨?”

김지석이 당혹스러운 듯 물었다. 안세인이 회의실을 가리켰다.

“일단 보면서 얘기하죠.”

회의실에는 연구팀장 박효진과 파견 직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탁자 위에 길쭉한 유리 조각이 올려져 있었다.

“저건…?”

“이 친구가 찾은 거예요.”

연구팀장 박효진이 옆의 파견 직원 송지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디에서요?”

“수원에 S급 게이트에서요. 윤도아 각성자가 닫은 곳이었어요.”

‘윤도아 씨가 닫은 곳…!’

안세인과 김지석이 자리에 앉자 박효진이 탁자 위의 노트북을 둘에게 보였다.

“이건 게이트가 나타날 당시 영상이고요.”

어린이집 앞마당이 보이는 CCTV화면이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마당 한구석이 갑자기 일렁이기 시작했다.

박효진이 잠시 영상을 멈췄다.

“저거, 보이죠? 게이트가 열리려고 하는 거예요.”

영상을 다시 재생하자 그 일렁임은 점점 커지다가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갑자기 팽창되며 까만 게이트가 나타났고 그 주변은 짧은 충격파에 초토화가 되었다.

“!”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을 처음 본 김지석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영상은 계속되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으로 이동시키던 중 갑자기 한 아이가 게이트 앞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그 앞에서 잠시 서 있었다.

갑자기 화면 밖에서 뛰어든 윤도아가 아이를 잡으려 했지만, 까만 연기가 먼저 아이를 삼켰다.

“…맙소사.”

안세인이 혀를 내둘렀다.

“…저, 아이는 괜찮은가요?”

김지석이 살짝 떨리는 손을 움켜쥐고는 물었다. 파견 직원 송지호가 대답했다.

“네. 윤도아 각성자랑 아이, 아이 아버지랑 모두 무사히 돌아왔어요.”

김지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여기 보세요.”

박효진이 다시 영상을 되감았다.

“이 부분.”

영상이 멈춘 곳은 초반에 일렁임이 시작됐을 때였다.

“여기.”

박효진이 영상을 느리게 재생하며 모니터 한쪽을 가리켰다.

화질이 좋지 않아 정확히 구별해낼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날아가고 있었다.

“이게 바로 이거 같아요.”

박효진이 탁자 위의 유리 조각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게 뭐죠?”

“추측으로는 게이트가 열릴 때 다른 힘과 충돌하면서 생겨난 것 같아요. 자세히 보면 여기, 일렁이는 거 보이죠?”

김지석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유리 조각에 집중했다.

박효진의 말대로 유리 조각 안에 무언가 일렁이고 있었다.

“제 생각에는 아마 윤도아 각성자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박효진이 유리 조각을 내려놓았다. 그 말에 안세인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이를 구하러 바로 나타난 걸 보면 생성되는 것부터 보고 있었을 확률이 크네요.”

“그렇다면….”

김지석이 안세인을 바라봤다.

“윤도아 씨를 만나봐야겠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