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눈앞이 밝아진 기분에 눈을 뜨자 어느새 날이 밝아있었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순간 처음 보는 거실의 풍경에 여기가 어디인가 싶었지만, 곧 어젯밤의 일들이 떠올랐다.
나는 어느새 소파에 누워 있었다.
어제 소파에 앉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어서 이제서야 깨어난 것이었다.
소파에 누워 잔 것 치고는 꽤 상쾌했다.
나는 몸을 일으키다가 외투 주머니에서 부스럭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아, 맞다. 보상.’
확인을 아직 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 당장 확인을 하자니 정신이 조금 멍했기에 나는 일단 샤워를 했다.
커다란 욕실에서 씻고 있으니 값비싼 호텔에라도 놀러 온 기분이었다.
이런 경험은 회귀 전에도 해보지 못했다.
그때는 그냥 헛되게 보낸 시간을 무마하기에 급급해 이런 호사를 누릴 틈 따위가 없었다.
‘거절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기분 좋게 샤워를 마친 나는 맑아진 정신으로 보상이 담긴 편지 봉투를 들었다.
그 안의 편지를 꺼내 펼치자 비어있던 종이 위에 글자들이 나타났다.
[안녕, 친구!]
[우릴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내 마음이 담긴 보상이야.]
하얀 가고일이 남긴 메시지가 차례대로 떠올랐다. 나는 피식 웃었다.
[나름 최대의 보상을 준비했으니까 끝까지 잘 읽어줘.]
‘최대의 보상이라.’
한층 더 기대되었다.
하얀 가고일의 메시지가 끝나고 글자가 사라지더니 본격적인 보상이 나타났다.
[스탯 포인트 11]
“…….”
설마 이게 끝은 아닐 터였다.
종이가 작아서 가고일의 메시지처럼 하나씩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일단 스탯 포인트를 사용했다.
“마나 운용에 6포인트 사용.”
[마나 운용에 스탯 포인트 6을 분배합니다.]
[마나 운용 26]
[남은 스탯 포인트 5]
아직 다음 보상이 뭐가 나올지 몰랐기에 일단 조금은 남겨두었다.
가끔 새로운 스킬을 얻거나 특성 자체의 레벨이 올라가는 경우, 새로운 스탯이 생기기도 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때 가서 남은 스탯을 마나 운용에 몰아넣어도 늦지 않는다.
스탯 포인트를 사용하자 편지지 안의 글자가 사라졌다. 그리고 곧이어 다른 보상이 떠올랐다.
[랜덤 스킬 부여권 1장]
나는 곧바로 그 보상을 사용했다.
“랜덤 스킬 부여권 사용.”
[랜덤 스킬 부여권을 사용합니다.]
거실 바닥에 여러 스킬의 이름이 떠오르더니 곧 하나로 합쳐져 슬롯머신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건 할 때마다 뭔가 설렌단 말야.’
나는 편지지를 꽉 움켜쥐었다.
좋은 스킬이 뜨길 바라는 마음에 살짝 초조한 심정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글자들을 바라보던 중.
글자들이 서서히 멈춰 섰다.
그리고 얻게 된 스킬은.
[마나 방패 스킬을 얻었습니다.]
‘마나 방패…?’
이건 박성현에게 있던 스킬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스킬에 바로 스킬의 정보를 확인했다.
[마나 방패 lv.1]
[마나 운용의 범위 내에 마나가 남아있을 경우,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마나 방패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스킬의 레벨과 비례하는 크기와 강도를 가집니다.]
“호오….”
나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스킬의 정보를 파악했다. 즉, 마나를 이용해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역시 이런 건 곧장 시험해봐야지.’
“마나 방패.”
그러자 내 앞에 투명한 막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얼굴이 가려지는 프라이팬 정도의 크기였는데 내가 평소에 만들던 종잇장 같은 마나막과 비슷했다.
‘끝?’
이게 뭔가 싶었지만.
순식간에 열 개의 마나막이 촤르륵 생성되더니 곧 하나로 뭉쳐졌다.
투명한 막이 열 개가 겹쳐지니 뒷부분이 어리어리해 보였다.
슬쩍 고개를 틀어서 본 방패의 옆면은 열 장의 마나막이 단단히 뭉쳐 한 덩이가 되어 있었다.
‘제법 그럴 듯한데?’
크기가 조금 작은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쓰기 나름이다.
공격 방향을 잘 가늠한다면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크기와 강도는 스킬 레벨에 비례한다고 했으니 레벨을 올릴수록 방패도 크고 튼튼해질 것.
나는 손가락으로 살짝 마나 방패를 두드려보았다.
퉁!
마치 고급 철제 쟁반에서 날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이동도 가능한 건가?’
손으로 방패를 슥 밀어보자 방패가 살짝 밀려났다.
이번에는 염력으로 방패를 움직였다.
역시 내 뜻에 따라 앞, 옆, 뒤 상관없이 모두 이동이 가능했다.
범위는 나를 중심으로 최대 1미터까지였다. 그 이상으로는 밀어내지지 않았다.
‘흠. 그럼….’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나 방패 역시 나를 따라 움직였다.
따로 움직이지 않아도 내 움직임에는 반응하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외부의 공격이나 내부의 공격이나 방패의 강도는 똑같을 터.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고 마나 방패를 갈겼다.
퍽!
챙강!
마나 방패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부서져 내렸다.
“…….”
이게 뭔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내 힘으로 이걸 테스트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었다.
내 근력 스탯은 최고치인데 마나 방패 스킬은 겨우 1. 박살나는 게 당연했다.
피식 웃은 나는 주먹을 거두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건 조금 이따가 레부와 함께 시험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다시 편지지를 바라보자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다음 보상은 떠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뭐야, 이게 끝이야?’
너무 평범해서 조금 억울할 정도였다.
‘그 큰 가고일 대장을 부쉈는데 이거밖에 안 준다고?’
그럴 리 없었다.
자그마치 S급 종합 보상 게이트였다. 등급이 높은 만큼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을 터.
나는 기대감을 품고 진득하게 편지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내 생각대로 곧 또다른 보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곳에 적힌 문구를 본 순간.
‘역시!’
있었다.
S급에 어울리는 보상이.
[전용 특성 레벨업권]
무려 전용 특성 레벨업권이었다!
이건 S급 종합 보상 게이트에서만 얻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보상이었다.
그것도 무조건 주어지는 것이 아닌 랜덤!
‘그래, 그런 놈을 잡았으면 이 정도는 줘야지!’
나는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종이를 보며 말했다.
“전용 특성 레벨업권 사용. 악마의 고양이 레벨 2로.”
편지에서 특성 레벨업권의 글자가 슥 사라졌다.
[전용 특성 악마의 고양이의 레벨을 올립니다.]
[전용 특성 : 악마의 고양이 lv.2]
무언가 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기분 좋은 오싹함이었다.
그때 들고 있던 편지지가 사르륵 부서지더니 허공으로 증발해버렸다.
자신의 소임을 다 한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증발하는 편지지를 손에서 놓아주고는 곧바로 악마의 고양이 특성을 살폈다.
[악마의 고양이 lv.2]
[마나 운용의 속도가 10% 증가했습니다.]
[현재 마나 운용 속도 110%]
나는 곧바로 마나막을 시전했다.
거실에 설치된 65인치 TV 정도의 크기로, 종잇장같이 얇은 마나막이 생성되었다.
이전 데스웜을 잡을 때보다 비슷한 면적이었지만 그때보다 속도가 빨라진 느낌이었다.
아직 확연하게 체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게 쌓이다 보면 분명 생각함과 동시에 마나막이나 마나구를 만들어낼 수 있을 터였다.
마나막을 해제하는데 뒤이어 또 다른 알림이 떠올랐다.
[레벨이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스탯 ‘탐지’가 개방됩니다.]
[탐지 10]
‘탐지?’
나는 새로 열린 스탯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전용스탯 탐지]
[마나 운용의 범위 내에서 마나를 이용해 지형지물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파악?’
정확히 이해되지 않아 미간을 찌푸리는 중에.
순식간에 집 안의 구조가 느껴졌다.
내가 있는 거실의 소파와 티비, 거실의 벽, 뚫려있는 주방과 거실을 중심으로 배치된 방들까지.
‘…이건….’
아직 스탯의 수치가 낮아 어디에 무언가 있다, 라는 정도에서 그치는 수준이었다.
현관 반대편의 가장 큰 방에는 널따란 직사각형의 무언가가 있었다.
‘침대…?’
두루뭉술하게 느껴지는 바람에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의 물체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치 포커스가 잔뜩 나간 그림자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마나 운용의 범위 내였기 때문에 위층과 아래층의 집 구조까지 파악이 되어버렸다.
‘…이건 좀 범죄 같은데.’
직접 들여다보는 게 아니긴 했지만 찝찝함이 몰려들었다.
다행인 점은 내가 신경을 쓰지 않으면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직접 방 안의 모습들을 살폈다. 탐지 스탯을 이용해 느꼈던 것과 똑같은 구조였다.
‘게이트 안에서 아주 유용하겠어.’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범위의 지형을 파악할 수가 있다는 것.
탐지 스탯의 최대 강점이었다.
어제의 게이트처럼 미로 같은 것이 나타난다면 이 스탯으로 어느 정도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스탯을 남겨두길 잘했네.’
“탐지에 5포인트 분배.”
[탐지에 스탯 포인트 5를 분배합니다.]
[탐지 15]
마나 운용의 넓이가 6미터 더 늘어났고 탐지 스탯이 5 올랐지만 여전히 구조는 두루뭉술해 보였다.
역시 5포인트 정도로 큰 차이는 없었다.
모든 보상을 적용한 나는 악마의 고양이 전용 특성의 옵션들을 점검했다.
[전용 특성 : 악마의 고양이 lv.2]
[전용 스탯 : 마나 운용 26/탐지 15]
[특성 스킬 : 마나 방패 lv.1/염력 lv.2]
착실하게 결과물들이 쌓이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나는 당장 이것들을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지하의 벙커로 향했다.
벙커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심연의 불꽃을 꺼내 레부를 불렀다.
“레부야.”
내 부름에 심연의 불꽃 속에서 레부가 튀어나왔다.
“…쿄.”
“완전히 나와 봐.”
레부의 젤리가 바닥으로 철퍽 떨어져 내리더니 사람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중절모를 푹 눌러쓴 것이, 아직 어제 일 때문에 조금 주눅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주변의 마나에 집중했다.
‘역시…!’
레부의 움직임에 따라 마나들이 조금씩 밀려났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레부의 형체가 느껴졌다.
그렇다는 건 게이트 안에서도 잠복해있는 몬스터들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
나는 눈을 감은 채 레부에게 말했다.
“공격 좀 해볼래?”
“…쿄? …주인을 말입니까?”
레부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네가 가진 무기 하나 날려 봐. 조금 살살.”
레부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하지만 곧 레부의 몸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내게 날아왔다.
허공의 마나가 갈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크기는 크지 않았다.
나는 빠르게 단검을 뽑아 내게 당도한 그것을 쳐냈다.
캉!
눈을 떠보니 낡은 단검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좋아.’
“됐습니까?”
레부가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레부에게 바닥의 단검을 다시 돌려보냈다.
“한 번 더. 속도 높여서.”
레부가 다시 단검을 삼켰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두어 번 정도 레부의 공격을 더 막아냈다.
완벽했다. 탐지 스탯을 더 올린다면 아마 눈을 감고도 정확한 형태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
“쿄, 또 할까요?”
금방 기분이 풀린 것 같았다.
뭔가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 신이 난 모양이었다.
“해.”
“쿄!”
이제 레부도 나에게 공격을 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나를 공격하는 것에 재미가 들린 것 같았다.
나는 이번에는 내 얼굴을 향해 똑바로 날아오는 칼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나 방패.”
순식간에 얼굴 앞으로 마나 방패가 나타났다.
캉!
빠르게 날아오던 칼이 앞에 나타난 얇은 마나 방패에 꽂혔다.
칼날이 깊숙이 박혀 위협적으로 튀어나왔고 방패에 금이 가긴 했지만, 아까처럼 방패가 부서지지는 않았다.
“쿄?”
레부가 갑자기 나타난 마나 방패를 보며 신기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정도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부가 던진 칼을 버틸 정도면 고블린같은 웬만한 하급 몬스터의 공격은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우웅—.
우우웅—.
어디선가 진동이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간이 탁자에 올려둔 핸드폰이 울고 있었다.
나는 금이 간 마나 방패를 없앴다. 떨어지는 칼을 받아들어 다시 레부에게 던지자 레부가 덥썩 칼을 받아먹었다.
“그만. 좀 쉬고 있어. 이 안에서는 마음껏 돌아다녀도 괜찮아.”
“쿄! 알겠습니다, 주인. 쿄쿄쿄.”
레부가 신이 난 듯 뒤뚱거리며 벙커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염력으로 탁자 위의 핸드폰을 끌어당겼다.
김지석.
‘또 김 이사님?’
어젯밤에 봤는데 뭔가 잊은 게 있나 싶었다. 나는 염력으로 핸드폰을 허공에 띄워 둔 후 전화를 받았다.
“네. 말씀하세요.”
[아, 도아 씨. 어제는 잘 쉬셨나요?]
“네. 덕분에요. 집이 굉장히 좋네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혹시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시나요?]
“오늘요?”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직 오전 10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일단은 단장님이랑 나라를 좀 만나야겠고. 본가에서 물건들 좀 옮겨와야겠는데.’
나는 대답대신 되물었다.
“왜요?”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기관에 잠깐 들러주실 수 있으십니까? 관장님께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십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3시쯤에 들르도록 하죠.”
그정도 시간이면 될 것 같았다. 통화를 마친 나는 레부를 불렀다.
“레부야.”
벙커 안에 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 한쪽에서 레부가 비죽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와. 이동하게.”
“쿄.”
레부가 무너져 내리더니 빠르게 바닥을 기어 내게 다가왔다.
나는 심연의 불꽃을 내밀었고 레부가 모두 흡수되는 것을 확인한 후 칼을 넣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