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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27화 (28/201)

제27화

눈을 뜬 권재경은 곧바로 딸을 찾았다.

침대 옆의 간이 탁자에 놓인 깨진 안경을 쓰자 옆 침대에 누워있는 나라가 보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권재경은 몸을 일으켰다.

왼팔에는 부목이 대어져 있었고 오른손은 언제 다쳤냐는 듯 멀쩡했다.

‘병원인가?’

침대가 두 개 놓여있고 주변으로 커튼이 쳐있는 것이 꼭 병원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병원이라기에는 그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권재경은 침대에서 일어나 나라에게 다가갔다.

두 침대 사이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은 권재경이 나라를 살폈다.

아이는 새액새액 숨을 내뱉으며 잠들어 있었다. 생채기가 나거나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눈밭에 쓰러져 있던 것 때문에 혹시 감기에 걸리지 않았을까 싶어 아이의 이마를 만져 보았지만, 다행히 열은 나지 않았다.

나라가 몸을 뒤척였다. 권재경은 생각을 멈추고는 나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살풋 웃었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먼지투성이였던 아이의 머리카락이 평소처럼 까맣게 정리되어 있었다.

옷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입혀줬던 옷이 아닌 깔끔한 새 옷이었다.

자신의 옷도 마찬가지였다.

입고 있던 정장은 온데간데없고 편한 티셔츠와 바지 차림이었다.

‘누가….’

어제 게이트를 나와 나라를 원장님에게 맡긴 후 바로 기절했던 것까지는 확실히 기억이 났다.

그 후 얼핏 정신이 들었을 때.

‘…를 본 것 같았는데.’

그때 쳐져 있던 커튼이 살짝 열리며 갈색 머리의 한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의 손에는 고이 개킨 자신의 정장과 물이 들려 있었다.

“아, 일어나셨어요?”

여자는 조금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활짝 웃었다. 그러더니 들고 온 물을 권재경에게 건넸다.

“물 좀 드실래요?”

“아….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인 권재경이 물을 마셨다. 목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여자가 빈 침대에 정장을 내려두고는 말했다.

“전 네 번째 각성자 이리나예요. 여긴 제가 속한 개의 이빨 무리 사무실 옆 휴게실이고요. 어제 도아 언니 연락받고 음, 아저씨? 음, 그쪽? 여튼.”

이리나가 두 손으로 권재경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권재경이라고 합니다.”

딱 봐도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어려 보이는 모습에 권재경이 덧붙여 말했다.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세요.”

“아. 좀 정 없어 보이는데. 아무튼 그래요, 그럼. 도아 언니 부탁으로 아저씨 치료 중이었어요.”

“아…. 고맙습니다.”

‘도아 씨가 부탁을….’

권재경의 마음이 심란해졌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나라까지 살려준 윤도아에게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하나 싶었다.

“잠깐 팔 좀 봐도 될까요?”

이리나가 권재경의 왼팔을 가리켰다.

권재경이 팔을 내밀었다.

분명 부러졌었는데 그새 붓기와 통증이 많이 사라져있었다.

잠시 세심하게 권재경의 팔을 살핀 이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일단 생활은 가능하지만 절대 무리하시면 안 돼요. 며칠 계속 저한테 치료받으셔야 하고요.”

이리나가 당부했다.

“네. 알겠습니다. 도아 씨는 어디에 있습니까?”

“도아 언니는 어제 다른 볼일 때문에 돌아갔어요. 아저씨 일어났으니까 연락해야겠네요.”

이리나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뭔가를 빠르게 치기 시작했다. 권재경은 다시 나라를 바라보았다.

“나라는 괜찮았습니까?”

“괜찮아요. 어제 깼을 때 좀 놀라긴 했는데 제가 잘 달래면서 씻겼어요. 저 아기들 잘 보거든요. 나라가 아빠 걱정을 얼마나 하던지.”

이리나가 웃으며 말했다. 권재경 역시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고맙습니다.”

“아네요. 근데 나라 엄마는요? 저희가 연락을 따로 못했는데.”

권재경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말이었다.

“…어…. 죄송해요.”

이리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금세 시선을 떨궜다. 쓰게 웃은 권재경은 다시 나라를 바라보았다.

달칵.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색해진 분위기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던 이리나가 벌떡 일어나 커튼 너머를 바라보았다.

“어? 도아 언니!”

그 말에 권재경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금 문자했는데 날아왔네요?”

“아까 와서 선오랑 얘기 중이었어. 아저씨는?”

“여기, 일어나셨어요.”

권재경이 커튼을 열었다. 깔끔해진 모습의 윤도아가 있었다.

“아. 팔은 괜찮으세요?”

“리나 씨 덕분에 많이 나았습니다.”

옆에서 하품을 하던 이리나가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흡. 전 그럼 잠깐 쉬다 올게요. 얘기들 나누세요.”

이리나가 눈치껏 휴게실을 나섰다.

“나라도 괜찮지요?”

“네. 덕분에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권재경이 다시 나라가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보상은 확인하셨어요?”

“아뇨. 아직 못 했습니다. 조금 전에 깨어나서요.”

윤도아가 따라 들어와 나라가 누운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일단은 그거부터 하시는 게 좋아요. 그 특성을 잘 이용해야 게이트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윤도아는 권재경이 또다시 게이트에 들어갈 거라 확신하는 듯했다.

“각성자 등록은 하실 거죠?”

“그게 좋겠지요. 그때 안세인 기관장이 말한 지원들이 사실이라면.”

“나라까지 같이 등록하세요. 그리고 기관 소속 각성자가 되세요.”

권재경이 의아한 얼굴로 윤도아를 바라보았다.

“…네?”

윤도아가 친절하게 다시 설명했다.

“저한테 은혜 갚으신다면서요. 기관이랑 계약하셔서 기관 소속 각성자 되세요. 거기서 다른 가호자나 각성자들이랑 같이 커 가시면 돼요.”

권재경의 말문이 막혔다.

이 상태로는 이전처럼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기가 힘들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의 생활이 힘들어질 게 분명해서 걱정되던 찰나였는데. 윤도아가 권재경에게 길을 제시했다.

“물론 다른 가호자나 각성자들을 조금 케어해 주긴 해야 돼요. 원래 제가 해야 할 일인데 저는 다른 할 일이 많아서요. 물론 기관과 계약은 제대로 맺게 해드릴거에요. 제 추천이면 기관장님도 신경 써 주실 거고요.”

고마운 일이었다.

권재경은 잠시 목이 메어오는 바람에 고개를 숙이고 헛기침을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해야죠. 도아 씨한테 누를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권재경의 말에 윤도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지금 계약하러 갈까요?”

* * *

권재경은 내 제안에 쉽게 응했다. 오히려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그런 일이 있었으니 나라를 더 보호하려 할 테고, 그러려면 회사원의 입장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때에 내가 건넨 제안이라면 상당히 솔깃했겠지.

“아, 도아 씨.”

각성 기관에 들어서자 마침 이사실에서 나오던 김지석과 마주쳤다.

김지석이 나를 뒤따라온 권재경과 나라를 보고는 물었다.

“뒤에 분들은…?”

“그때 말씀드렸던 분입니다. 저 대신할. 각성자 등록부터 해야 해요.”

“아! 알겠습니다.”

김지석이 곧 직원 하나를 부르더니 권재경의 각성자 등록을 부탁했다.

“각성자 등록 먼저 하고 계시면 금방 찾아뵙겠습니다.”

직원이 권재경과 나라를 각성자 등록처로 안내했다. 나는 김지석을 따라 회의실로 들어섰다.

열 평 남짓 되어 보이는 작은 회의실이었다.

그 안에는 안세인 기관장과 처음 보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여우 구슬로는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비가호자였다.

“아, 왔어요?”

안세인이 가볍게 인사를 건넸고 옆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했다.

“연구팀장 박효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기관의 연구팀이라면 게이트와 이상 현상에 관해 연구하는 곳이었다.

‘연구팀에서 나랑 만날 일이 있나?’

의아했지만 일단 박효진과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근데 무슨 일인가요?”

“어제 수원 쪽에 게이트 닫으셨지요?”

박효진이 물었다.

“네.”

“그 현장에서 저희 파견 직원이 이런 걸 발견했어요.”

박효진이 탁자 위의 작은 상자를 내게 슥 밀었다. 갈색의 길고 투박한 모양의 상자였다.

“이게 뭔데요?”

나는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달칵.

그 안에는 길쭉한 유리 조각이 들어 있었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것이 꼭 다이아몬드를 보는 것 같았지만 그 안에 미묘하게 일렁이는 연기 같은 것이 보였다.

‘…어?’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 나는 그것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정확한 확인을 위해 여우 구슬을 발동했다.

‘정보 확인.’

[차원 균열의 파편]

‘…진짜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

차원 균열의 파편.

이것은 시작의 날에서 3년 이상 지난 후에야 발견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도 희박한 확률로, S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 체내에서.

파편은 아이템 시장에서 굉장한 고가에 거래가 되곤 했다.

이유? 간단하다.

이 파편의 용도 때문에.

[게이트 안에서 출구를 열 수 있습니다.]

보스 몬스터를 잡지 않더라도 게이트를 나올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이었다.

많은 각성자들이 원하는 아이템이었지만 공급이 너무나 부족했다.

결국 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

하지만 이후 게이트 밖에서도 파편이 발견된 적이 있었다.

전쟁이 한창일 무렵, 개의 이빨 주선오와 마나의 주인 박성현이 부딪혔을 때였다.

둘의 싸움으로 용산구가 초토화되었고 후에 그곳을 수습하다가 발견된 것이었다.

각성자들은 이 파편이 생성된 이유를 강력한 두 힘의 충돌로 추측했다.

‘그런데 이게 지금?’

보스 몬스터를 잡아서 나왔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회귀 전의 둘의 부딪힘처럼 강력한 힘의 충돌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이미 그 장소가 초토화됐을 테니까.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안세인과 박효진을 돌아보았다.

“…이건…. 어디서 나셨습니까?”

안세인이 내 얼굴을 살피더니 말했다.

“뭔가 아는 눈친데, 도아 씨. 그럼 이것도 한번 볼래요?”

안세인의 눈짓에 박효진이 노트북의 영상을 재생시켰다.

익숙한 장소가 나타났다.

‘…저기는?’

“…어린이집 마당이네요?”

내가 중얼거렸다.

게이트가 생성되던 순간이 영상에 담겨 있었다.

‘내가 보고 있었을 때인데.’

그때 박효진이 영상을 멈췄다. 그곳에 이 파편이 튕겨 나가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게이트가 생성되면서 나온 건가요?”

“네. 게이트에서 이런 단서가 나타난 건 처음이에요. 근데 도아 씨가 곧바로 아이를 구하러 나타났고요.”

나는 일단 이 파편의 정보를 그대로 알려주었다.

“차원 균열의 파편. 게이트 내부에서 보스를 잡지 않고도 문을 열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이에요.”

그 말에 안세인이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보스를 잡지 않고서요?”

“네.”

“맙소사. 게이트에서 그게 가능하다면…. 잘못 입장했다가 죽는 일은 없겠군요.”

안세인이 파편의 이점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러다가 내게 다시 물었다.

“도아 씨는 어떻게 그걸 알고 있습니까?”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때 보너스 게이트에서 얻은 아이템 덕분에 아이템의 정보를 볼 수 있게 됐어요.”

“아! 그때…. 그렇군요. 그럼 이게 왜 나타난 건지는 모르는 건가요?”

여우 구슬이 알려주는 정보는 저게 다였다.

내가 알고 있는 원인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두 경우 모두 해당하지 않는 듯했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안세인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박효진 역시 실망한 듯 힘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게이트가 생겨나는 이유랑은 관계가 없겠네요.”

“흠. 그래도 도아 씨 덕분에 용도를 알았니. 저건 일단 보관해두도록 해요.”

안세인이 박효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혹시 제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내가 불쑥 묻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안세인이 나를 봤다.

“도아 씨가?”

“네. 어차피 보관하실 용도면 제가 들고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요.”

조금 뻔뻔할지도 모르는 말이었다. 다행히 안세인은 쉽게 수락했다.

“그래요. 내가 사는 것보다 도아 씨가 사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긴 하니까.”

안세인이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에 김지석과 박효진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눈을 굴렸다. 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관장님은 저게 없어도 안 죽을 텐데요.”

아부성 발언 같았지만 진실이었다. 어쨌든 기분이 좋아졌는지 안세인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파편을 상자에 넣어 챙기며 이어 말했다.

“참. 그때 소개해주기로 한 분, 지금 각성자 등록하러 오셨어요.”

“오. 그래요?”

“제 소개이긴 하지만 관장님이 한 번 더 테스트하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지금은 팔이 부러져서 리나한테 치료받고 있으니까, 다 나은 후에요.”

“하하. 알겠습니다. 도아 씨 추천이니까 믿고 테스트해 보죠.”

안세인이 씩 웃어 보였다.

권재경이 테스트에서 떨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회귀 전 안세인과 권재경은 합이 꽤 잘 맞았으니까.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이걸로 기관에 얼굴도 비췄겠다, 당분간은 개인 일에 집중 할 수 있을 듯했다.

나는 사람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기관을 나섰다.

* * *

집에 도착할 때쯤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아까는 당혹스러움이 커서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마나에 간섭했던 순간에 파편이 생긴 건가?’

회귀 전, 게이트가 열리면서 차원 균열의 파편이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근데 하필 어제.

내가 게이트가 열리는 것을 보고 있을 때 파편이 생성됐다.

강력한 힘의 부딪힘은 아니었지만 가능성은 있었다.

게이트가 생성되던 마나의 힘과 내가 간섭하려 한 힘의 충돌 때문이라면.

그럴 듯했다.

하지만 다시 확인해 보기는 힘들었다. 게이트가 언제 어디서 생길 줄 알고 그것을 찾아다니겠는가.

옛집의 근처에 도착한 나는 주머니 안에서 만지작거리던 파편 상자를 놓았다.

‘일단 짐들이랑 같이 새 집에 옮겨둬야겠어.’

뭘 챙겨가야 하나 고민하며 집으로 올라가 문을 열려는데 뭔가 느낌이 쎄했다.

나는 탐지를 이용해 집 안을 살폈다.

작은 현관과 거실, 그 너머의 작은 방, 반대편의 내 방과 화장실까지. 순식간에 안의 형태가 느껴졌다.

그리고 군데군데에 집주인인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동이 없지만 분명 사람이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닌 무려 다섯.

“…….”

기가 막혔다.

집이라는 공간은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었다.

아무리 새로운 집이 생겼다고 해도 부모님과 함께 살던 곳이라 팔 생각이 전혀 없었던 내 공간.

그런 곳에 지금 벌레들이 꼬인 것이다.

‘어떤 겁 없는 새끼들이.’

순간적으로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누군지는 몰라도 봐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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