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게이트 안에 들어선 나는 혀를 내둘렀다.
하임건설 사장 최정식은 각성자들 자체에 반감을 품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도 많았지.’
그들은 대게 가호를 받지 못한 일반 사람들. 즉, 비가호자들이었다.
이유는 여러가지였다.
최정식처럼 그저 급격한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이 잘못된 방향으로 분출된 것이었다.
각성은 선택받은 사람만이 가능한 것. 자신은 선택받지 못했다는 이유에서 오는 무력감이었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비가호자들은 게이트가 생겨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당연했다.
그로 인해 생기는 무력감이란 끔찍할 것이다.
‘그래도 저렇게 대놓고 반응하는 건 처음이네.’
회귀 전에는 나에게 저렇게 대놓고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기분이 나쁘다고 거절할 수도 있었다. 그래봤자 주선오의 말처럼 그쪽 손해니까.
나는 일부러 게이트 닫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임건설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
지금도 한국 최고의 건설회사이지만 나중에는 건설 외에도 여러 분야에 손을 뻗치며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기업으로 자리 잡게 된다.
사장인 최정식은 각성자들을 싫어하지만 한 사건을 계기로 자신을 도와준 각성자에게 마음을 열고 그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게 마나의 주인 박성현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이번에는 그 지원을 내가 좀 받아야겠어.’
그러니 미리 안면을 터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나저나 더럽게 춥네.’
내뱉는 숨을 따라 하얀 입김이 공기 중으로 퍼졌다.
게이트 안은 하얀 얼음덩어리로 둘러싸인 얼음굴이었다.
높이는 3미터가 채 되지 않는 것 같았는데 천장에 고드름들이 매달려있어서 허리를 온전히 펴고 걷기 힘들었다.
굴의 폭도 굉장히 좁았다.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정도였다.
바닥까지 꽝꽝 얼어붙어서 잘못 발을 디뎠다가는 미끄러져 뒤통수 깨지기 딱 좋은 곳이었다.
나는 탐지를 이용해 주변을 살폈다.
뒤쪽은 막다른 길로, 앞으로 길게 이어진 통로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나는 외투 옷깃을 여미었다.
바깥 날씨도 추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오히려 여기보다는 따듯할 것 같았다.
“레부야.”
심연의 불꽃을 꺼내 들며 레부를 불렀다.
레부가 불꽃 안에서 흘러나와 사람의 형체를 갖추었다.
평소보다 절반은 작아진 크기였다.
어린아이의 키 정도였는데 거기에 중절모와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저건 트레이드 마크인가. 빼놓지를 않네.’
“쿄.”
레부의 발이 닿은 얼음 바닥이 수증기를 피워내며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레부가 나타나자 차가운 얼음굴 안에 따듯한 기운이 스멀스멀 번졌다.
“연결해 봐.”
내가 좁다란 길을 따라 조심히 걸으며 말했다. 레부가 내 뒤를 쫄레쫄레 따라오며 말했다.
“쿄, 그쪽 인간들. 들립니까?”
<우왁! 뭐야? 지금 뭐가 말 한 거야?>
레부의 몸을 통해 신교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불꽃 슬라임 레부의 또 다른 쓰임새였다.
레부의 몸 일부를 떼어내 다른 사람에게 주면 그걸 가진 사람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
“나야. 거기도 게이트 들어갔지?”
<아, 누나! 진짜 놀랐잖아요! 네. 들어왔어요.>
신교진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어때, 거긴.”
<개 더워요, 진짜. 와! 돌길 양옆이 완전 불구덩이! 이러다 타는 거 아냐?>
신교진이 투덜거렸다.
“길은?”
<그냥 하나로 쭉 나 있는데요? 옆으로 발 헛디디면 바로 불구덩이로 떨어져서 삶아질 것 같은데.>
<천장은 좀 낮아서 답답하네요.>
주선오의 목소리도 들렸다.
이곳의 상황과 다른 것은 주변이 불구덩이라는 것뿐인 모양이었다.
<야. 앞에 똑바로 봐. 헛소리하다가 떨어지지 말고.>
<너나 조심해. 난 헛디뎌도 운 좋아서 살아남을 놈이야.>
나는 둘의 헛소리를 들으며 계속 이동했다.
두 개의 게이트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
이런 현상은 회귀 전에도 종종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쌍둥이 게이트라고 불렀고 내가 주선오와 신교진을 데려온 결정적 이유였다.
[A급 스탯 보상 게이트]
[얼음굴로 통하는 스탯 보상 게이트입니다.]
[아이스 스켈레톤을 돌파해 방을 넘어가면 어딘가의 입구가 열립니다.]
[얼음굴 안의 아이스 골렘을 잡으면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게이트 클리어 시 10 이상의 스탯 포인트를 획득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것이 내가 들어온 게이트의 정보.
그리고.
[A급 아이템 보상 게이트]
[불구덩이로 통하는 아이템 보상 게이트입니다.]
[함정을 돌파해 방을 넘어가면 어딘가의 입구가 열립니다.]
[불구덩이 안의 파이어 골렘을 잡으면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게이트 클리어 시 A급 이상의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것이 주선오와 신교진이 향한 게이트의 정보였다.
이런 쌍둥이 게이트는 양쪽에서 정해진 구역을 클리어해 줘야만 보스 몬스터를 만날 수 있었다.
즉, 상대편 게이트가 이 게이트의 열쇠가 되어주는 것.
‘혼자서는 절대 클리어 할 수가 없는 구조야.’
곧 길의 끝이 나타났다.
그곳은 단단한 얼음벽으로 막혀있었는데 탐지로 확인을 해보니 그 너머에 원형의 방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톱니바퀴 형태의 방이었다.
원형방의 테두리에 내가 있는 길과 같은 폭의 작은 방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빙 둘러 자리 잡고 있었다.
작은 방들의 입구는 이곳과 똑같이 얼음벽으로 막혀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안에 한 곳에 하나씩, 대략 사십 마리의 뼈다귀가 대기 중이었다.
바닥 밑에도 마찬가지였다.
관이 놓인 것처럼 파인 공간 안에 한 마리씩 누운 스켈레톤들이 바닥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눈앞의 얼음벽에 집중했다.
‘벽이 아니라 문이네.’
겉보기에는 양옆의 얼음벽과 똑같이 생겨 막다른 길로 보였다.
하지만 탐지 결과 위쪽에 비어 있는 공간이 있었다. 얼음벽이 위쪽으로 열리게 되는 구조인 것 같았다.
그리고 얼음 천장에 동그란 버튼이 하나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눌러보고 싶은 버튼.
<어, 누나. 여기 문 있는데요.>
둘도 문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어? 저기 뭔가 버튼이…. 이런 씨….>
신교진이 욕을 내뱉더니 퉁명스레 말했다.
<개선오, 저거 좀 눌러 봐.>
<왜. 안 닿냐?>
<개새끼야.>
신교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더니.
덜컹.
[입구가 열렸습니다.]
알림글과 함께 얼음벽이 덜컹거리며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문이 올라가는 틈새에서 얼음 부스러기들이 쏟아져 내렸다.
<엥? 여기 아닌데. 어딘가가 어디야?>
“여기 열렸어. 기다려 봐.”
나는 천장의 얼음 버튼을 꾹 눌렀다.
달칵.
[어딘가의 입구가 열립니다.]
알림글이 떠오름과 함께.
<오, 오! 열려요! 우와, 뭐야. 신기해!>
놀란 신교진의 외침이 들렸다.
천천히 움직이던 얼음문이 드디어 모두 열렸다.
하지만 주선오가 누른 버튼이 내 앞의 문만 열어주는 버튼이 아니었다.
동시에 톱니바퀴의 모든 문이 열리고 아이스 스켈레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곧이어 바닥에 퀘스트가 떠올랐다.
[숨어 있던 아이스 스켈레톤들이 나타났습니다.]
[아이스 스켈레톤들을 제압하십시오. 0/70]
얼음으로 이루어진 하얀 뼈들이 삐걱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놈들의 뼈로 이루어진 손에는 얼음칼들이 들려있었다.
이놈들은 일반 스켈레톤에 비해 뼈의 강도가 약해서 쉽게 부러트릴 수 있었고, 일단 한 번 부서지면 다시 회복이 불가능했다.
가고일과 마찬가지로 칼보다는 둔기류가 더 상대하기 편했지만, 놈들은 가고일보다 움직임이 민첩했다.
게다가 기습을 하려고 놈의 뒤로 다가가면 자신의 뼈 사이로 칼을 밀어 넣어 뒤를 찌르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당할 나도 아니었고, 지금 이곳에는 얼음을 녹이는 불이 있었다.
“레부야.”
내가 슬쩍 벽으로 비켜서며 레부에게 앞을 가리켰다.
“쿄!”
레부가 신이 난 듯 얼음 바닥을 박차고 톱니바퀴 안으로 뛰어들었다.
레부의 움직임에 반응한 얼음 뼈다귀들이 허공을 튀어 다니는 레부에게 얼음칼들을 휘둘렀다.
레부는 그것들을 모조리 삼켜버렸다.
“쿄쿄쿄쿄!”
간만에 듣는 레부의 웃음소리였다.
레부는 상급 슬라임.
하급 얼음 뼈다귀들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레부가 천장에서 몸을 쫙 펼치더니 아래의 얼음 뼈다귀들을 덮쳤다.
그대로 아이스 스켈레톤을 집어삼키자, 레부의 몸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레부는 즐겁다는 듯 쿄쿄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레부야, 불.”
“쿄아!”
레부가 불꽃을 끌어모아 내게 뱉었다.
나는 염력으로 마나를 움직였다. 레부가 뱉어낸 농구공만한 불덩이가 마나에 스며들었다.
화르륵.
누가 봐도 완벽한 파이어볼이 타오르고 있었다.
레부의 불을 섞어서 사용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생각대로 아주 성공적이었다.
염력으로 파이어볼을 움직이자 동그란 불덩이가 기다란 불꼬리를 남기며 훅훅 이동했다.
‘역시 쓸모있는 놈.’
회귀 초반에 만난 것이 굉장한 행운이었다.
나는 씩 웃고는 한 가지 실험을 더 해보았다.
‘이것도 되려나?’
“마나구.”
나는 불길이 치솟는 파이어볼을 압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그마하게 압축된 마나구 안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불꽃이 이글거렸다.
‘화염구.’
나는 염력으로 화염구를 얼음 뼈다귀 한 놈에게 날렸다.
그러자.
콰앙!
화염구가 폭발하며 불길이 치솟았다. 그 불길은 순식간에 아이스 스켈레톤을 녹여버렸다.
“쿄?”
레부가 큰 소리에 반응해 나를 돌아보았다.
“불 좀 더 줘봐.”
“쿄아!”
레부가 두 개의 불을 더 뱉어냈다.
나는 마나로 불덩어리를 앞으로 끌어왔다.
그리고는 두 개를 합쳐 커다란 불을 만들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좀 쉴 테니까 열심히 잡아.”
내 명령에 레부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쿄, 알겠습니다. 주인!”
따뜻했다.
레부가 얼음들을 녹일 동안.
‘난 몸이나 좀 녹여야겠다.’
* * *
“아무것도 없는데.”
주선오가 열린 문 안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안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비슷했지만 양옆의 공간이 붉은빛의 벽돌로 막혀있었다.
“음….”
신교진은 그 안에서 무언가 찝찝함을 느꼈다. 그래서 손목에 차고 있던 붉은 팔찌에 대고 말했다.
“누나. 도아 누나. 들려요?”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뭐야. 고장났나?”
팔찌를 두드려보고 깨물어도 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인천으로 이동하던 중 윤도아가 건넨 팔찌였다.
아무런 무늬 없는 가느다란 팔찌. 뭔가 싶었지만 이게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치였다니.
“에이씨. 설마 이거 고장 났다고 물어내라고 하진 않겠지?”
신교진이 중얼거렸지만 주선오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들어가자.”
주선오가 열린 문 안을 가리켰다.
신교진은 무의식적으로 그 안으로 먼저 발을 내디뎠다.
그러다가 문득.
‘아니, 잠깐. 왜 내가 먼저 가?’
신교진이 다시 발을 빼며 뒤로 물러나 주선오를 쏘아봤다.
“야, 왜….”
사악!
땀이 흐를 정도로 더운 곳이었지만 순식간에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신교진이 커다래진 눈으로 다시 문 안을 돌아보았다.
신교진의 발이 닿았던 곳에 튀어나와 있던 칼날이 스르륵 들어가고 있었다.
“…와…. 야…. 나 방금 뭣 될 뻔한 것 같은데….”
그리고 그제야 퀘스트가 떠올랐다.
[함정을 돌파하십시오.]
간단한 한 줄짜리 퀘스트였다.
식은땀을 흘리던 신교진이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복도를 바라보았다.
복도의 길이는 대략 100미터.
그 끝에 붉은 버튼이 빛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걸 누르면 함정이 해제되거나 윤도아가 있는 게이트의 문이 열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저기까지 가는 동안 몇 번이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지는 모르는 법.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복도를 보던 주선오가 말했다.
“그래도 조금 딜레이가 있어. 발을 딛자마자 튀어나온 게 아니니까 발동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함정이네.”
주선오가 침착하게 분석했다.
하지만 신교진은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아, 몰라! 모르겠고! 난 여기서 병신 되고 싶지 않다고!”
‘젠장. 아니 이런 데를 내가 오고 싶어 했다고? 가호가 미쳤나!’
뭔가 윤도아를 만난 이후로 계속 가호가 오작동하는 기분이었다.
“난 못 가! 너 혼자 가든지!”
하지만 주선오가 고개를 저으며 신교진의 어깨를 붙잡았다.
“교진아. 달리기 빨랐지, 너?”
“…달리기?”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매 체육대회 때마다 항상 계주 선수에 발탁되어왔던 신교진이었다.
순간 그의 콧대가 높아졌다.
“그랬지. 내가 언제 1등 놓친 적 있냐?”
신교진의 말에 주선오가 활짝 웃었다.
“역시 신교진.”
순식간에 신교진은 불안함을 느꼈다.
“뛰어.”
툭.
주선오가 신교진의 등을 떠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