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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32화 (33/201)

제32화

김지석은 빠르게 차를 몰았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다.

하필 윤도아는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게이트라도 들어간 걸까 싶어 문자를 남겨뒀지만 영 불안했다.

김지석은 실제로 몬스터를 본 적은 없었다. 가호자가 아니라서 게이트를 들어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초반부터 각성 기관을 운영하면서 주변의 각성자들에게 게이트 내부의 이야기는 항상 들어왔다.

‘그 이야기대로라면….’

특공대가 출동했다고 해도 분명 몬스터의 상대가 되지 않을 터.

특공대가 그 괴물을 붙잡아두는 동안 주변의 사람들이 빨리 대피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 게이트….”

뒷좌석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던 박효진이 멈칫했다. 초조한 표정의 안세인이 박효진을 돌아보았다.

“여기, B급 스탯 보상 게이트인데 생긴 지 오래됐네요.”

“오래? 얼마나?”

“21년 9월 30일쯤으로 추정해요.”

안세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는 아직 기관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고 지금처럼 게이트를 조사하는 파견 직원들도 당연히 없었다.

게이트가 나타난 날짜는 동네 주민들의 제보에 의한 것이었다.

“작년 9월 30일? 완전 초반이네.”

“네. 대전, 충남 지역에 각성자가 없어서 계속 방치되고 있던 모양이에요.”

“그럼 다른 게이트들은?”

“그쪽에 C급 게이트들이 있긴 했는데, C급은 최근에 가호자들이 각성하러 많이들 갔는지 얼마 안 남았네요. B급은 한 열 개 정도 있는 것 같고, A급은 하나 있고, S급은 없어요.”

“그 게이트들은 언제 생긴 건가요?”

차를 몰던 김지석이 물었다.

“음…. 남아있는 것들은 대부분 올해에 열렸어요.”

박효진이 안경을 고쳐 쓰며 다시 게이트의 현황을 살폈다.

“작년 10월에 생긴 B급이 1개, 11월에 생긴 B급이 1개, 12월에 생긴 A급 빼고는 다 올해예요.”

“혹시 다른 지역은요? 다른 데에도 작년에 생긴 게이트들이 많습니까?”

김지석이 다시 물었다.

“잠시만요.”

박효진이 빠르게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렸다.

“음. 목포에…, 9월에 생긴 게 하나 더 있었는데…. 새벽에 닫혔네요?”

“새벽에?”

“네. 9월은 그게 끝이고 10월은 좀 남아있네요. 전국적으로.”

안세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작년 9월 30일에 나타난 게이트에서 괴물이 나타났다라….”

“혹시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게이트가 파괴라도 되는 걸까요? 그래서 그 안에 있던 것이….”

김지석이 물었다. 안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음…. 가능성이 있어요. 지금 대략 4달 정도 지난 건데. 그냥 방치해 두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지도…. 10월에 생긴 것 중에 가장 빨리 나타난 게 어디예요?”

“10월 2일에 강릉이요. C급 게이트예요.”

“강릉 어디?”

“저수지 쪽이네요.”

안세인이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안세인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안세인은 목에 걸쳐놓은 핸즈프리로 통화를 연결하며 말했다.

“좋아. 그러면 그 주변 통제하고 며칠 지켜봅시다. 네, 안세인입니다.”

김지석이 흘끔 백미러를 통해 안세인을 바라보았다. 전화를 받은 안세인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윤도아 씨가요?”

박효진 역시 윤도아의 이름에 반응해 안세인을 바라보았다.

“알겠어요. 일단 우리도 가고 있으니까. 네.”

“윤도아 각성자 왜요?”

박효진이 물었다. 안세인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의자에 푹 기대며 말했다.

“윤도아 씨가 현장에 나타났대요. 한숨 돌리겠어.”

잠시 눈을 끔뻑이던 박효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와…. 세상에. 대전에 있다고요, 지금?”

* * *

‘늦었다.’

목포에 있던 게이트를 닫는데 너무 시간을 쓴 모양이었다.

아침에는 대전에 도착하려 했는데 시간이 지체되어 버렸다.

‘목포 쪽 게이트가 A급이라 그쪽을 먼저 갔더니.’

회귀 전, 이맘때쯤.

목포와 대전에서 거의 동시에 게이트 브레이크가 발생했다.

사람들이 게이트에 적응해가는 것처럼, 생성된 게이트 역시 그 장소에 적응해나간다.

그러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게이트 안에도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이곳으로 넘어올 수 있는 게이트가.

결국 게이트 안의 몬스터들이 길 한복판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게이트 브레이크.

게이트 브레이크가 발생한 목포와 대전에서는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 피해가 발생했고, 그것을 복구하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다.

그전까지 게이트를 왜 닫아야 하냐며 각성자들을 곱게 보지 않던 사람들의 시선을 싹 바꿔버린 사건이었다.

‘게이트를 닫아야 하는 진짜 이유지.’

그리고 게이트를 닫을 수 있는 각성자들의 몸값이 오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게이트 브레이크가 발생하는 시점은 게이트가 열린 지 3개월 이후부터였다.

평균적으로 발생하는 시기는 4~5개월. 그리고 6개월이 지나면 무조건 브레이크가 나타났다.

브레이크가 발생하면 그 게이트는 그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을 모두 잡기 전까지 닫히지 않는다.

게다가 게이트 클리어 시 주어지는 기본 보상도 모두 증발해버린다.

‘몬스터가 가진 아이템 같은 건 빼앗을 수 있지만.’

그래서 놓칠 바엔 차라리 B급의 보상을 놓치는 게 낫다는 판단 아래, 목포의 게이트를 먼저 닫은 것이었다.

하지만 목포의 A급 게이트가 생각보다 오래 걸린 데다가, 대전의 게이트 브레이크는 회귀 전보다 더 빨랐다.

혹시나 싶어 그 먼 거리를 바로 달려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상황은 최악까지는 아니었다.

특공대들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기는 했지만 몬스터가 아직 도서관 지역을 벗어나지 못해 일반 시민들의 인명 피해는 없는 것 같았다.

특공대가 시간을 벌어준 덕에 인근의 시민들은 모두 피신한 상태였다.

‘빨리 처리하고 가서 자야겠다.’

“전부 후퇴해라!”

특공대장이 대원들을 향해 외쳤다. 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후다닥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전방에 있는 대원들은 쉽게 이동할 수가 없었다.

파란 털북숭이, 푸른 상급 놀이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대원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냥감을 그냥 놓아줄 놀이 아니었다.

놀이 양날 도끼를 들어 올리며 짧은 포효를 내질렀다.

“캬아아!”

나는 빠르게 앞으로 돌진하며 두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놀이 휘두르는 양날 도끼와 특공대원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코앞에서 양날 도끼의 날이 번뜩였다.

“마나 방패!”

콰앙!

카가각!

마나막 20장이 뭉쳐서 만들어진 커다란 대야 크기의 2레벨 마나 방패가 한 방에 부서져 버렸다.

그걸 예측하고 단검으로 대비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아까운 목숨을 하나 깎아 먹을 뻔했다.

공격을 막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나는 그 무게에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져 버렸다.

다행히 그 틈에 특공대원들은 모두 물러난 상태였다.

놀의 양날 도끼를 흘려보낸 후, 나는 빠르게 균형을 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놀이 자신이 휘두른 도끼의 관성에 잠시 주춤했다.

그사이 나는 여우 구슬로 놈을 살폈다.

[푸른 상급 놀]

[B급 스탯 보상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

‘보스?’

보통 게이트 브레이크가 발생하면 조무래기들이 먼저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었다.

이 푸른 상급 놀은 보스 몬스터.

게이트 브레이크 전에 게이트에 입장했던 각성자들이 있던 모양이었다.

비록 게이트를 클리어하지는 못했지만, 조무래기들은 모두 잡고 유명을 달리한 모양이었다.

‘고생했겠군.’

나는 짧게나마 조무래기들을 없앤 이름 모를 각성자들에게 묵례했다.

푸른 상급 놀이 양날 도끼를 고쳐 쥐며 쭉 찢어진 눈으로 나를 보았다.

새롭게 나타난 인간이 자신의 양날 도끼를 막았다는 것에 흥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캬캬캬캭.”

놈이 길쭉한 주둥이를 벌리며 웃었다.

비죽비죽한 기다란 이빨들 사이로 푸른색의 혓바닥이 날름거렸다.

나는 단검을 고쳐 쥐었다.

게이트 밖이라서 마나구를 사용하는 건 무리였다.

잘못 사용했다가는 도서관 건물을 무너트릴 수도 있으니.

‘최대한 깔끔하게.’

나는 여전히 나를 보며 웃고 있는 놀에게 훅 다가갔다.

금세 웃음을 거둔 놀이 기다렸다는 듯 포효를 내질렀다.

“캬아아아악!”

목덜미가 서늘해질 법한 포효였지만, 몬스터의 포효에 이골이 난 내게는 소용이 없었다.

놈이 달려드는 내게 도끼를 내리찍었다.

쿵!

나는 몸을 옆으로 빼며 도끼를 피해냈고 도끼는 바닥의 보도블록 사이에 깊숙이 박혔다.

내가 피할 것을 예상했는지, 내 머리 위로 놀의 반대쪽 주먹이 내리꽂혔다.

나는 허리를 숙이며 놈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그리고 발을 놈의 아래로 쭉 밀어 넣으며.

“그림자 밟기!”

순식간에 놈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눈앞에 은색 갑주를 입은 놈의 드넓은 등판이 보였다.

지금 백어택을 연계해서 사용한다면 저 갑주는 가볍게 파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사방으로 퍼져나간 놈의 사체를 수습하기가 힘들어진다.

나는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도약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2미터가 조금 넘는 놈의 어깨 위로 올라서기만 하면 됐으니까.

목마를 타듯 놈의 어깨 위로 가볍게 올라서자 내 무게를 느낀 놀이 몸을 훅 틀었다.

양손을 들어 올려 어깨 위의 나를 잡으려 했지만.

내가 놈의 두꺼운 목덜미에 단검 두 개를 꽂아 넣는 것이 더 빨랐다.

푹!

“캬아아악!”

놈이 비명을 내지르며 목덜미에 매달린 나를 떼어내려 버둥거렸다.

나는 놈이 휘두르는 팔을 이리저리 피하며, 더욱 힘을 주어 단검을 꽂아 넣었다.

찢어지는 살갗의 틈으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단검의 칼날을 뿌리까지 밀어 넣자.

푸른 상급 놀이 경기를 일으키며 앞으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두 단검을 뽑아내며 놀의 등을 박찼다.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넘어 바닥에 착지한 순간 놀 역시 바닥에 쓰러졌다.

쿠웅!

엎어진 놀의 목덜미에서 두 개의 핏줄기가 솟구쳤다.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몇 번 경련을 일으키던 놈이 곧 움직임을 멈췄다.

“후.”

가볍게 한숨을 내쉰 나는 몸을 일으켰다.

단검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쯧, 혀를 차고는 소매에 피를 닦아낸 후 허리 뒤의 칼집에 넣는데.

“…주, 죽었어! 괴물이 죽었다!”

“우와아!”

“윤도아!”

“최고다! 우와!”

갑작스럽게 특공대원들의 함성이 귀청을 울렸다.

그와 함께 멀찍이서 플래시들이 터져 나왔고 곧 도서관 앞으로 달려오는 기자들이 보였다.

곧 뒤에서 하얀빛이 번쩍였다.

보스 몬스터를 잡았기 때문에 게이트가 닫히는 것이었다.

완벽하게 게이트가 사라지자 사람들이 다시 한 번 환호성을 내질렀다.

근처까지 달려왔지만, 기자들은 곧 걸음을 멈추었다.

푸른 놀의 사체와 보도블록에 찍혀있는 커다란 양날 도끼.

그리고 그 주변에 널려있는 특공대원의 사체들과 피.

처참한 상황이었다.

“…으…. 사, 려….”

무거운 정적을 뚫고 누군가의 신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특공대원들이 바닥에 쓰러져있는 대원들을 빠르게 살피기 시작했다.

곧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구급대원과 경찰들이 달려와 아직 살아있는 대원들을 병원으로 옮겼고 주변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 * *

“…….”

게이트 브레이크가 마무리된 지 1시간 후.

안세인이 선혈이 남아있는 도서관 앞의 바닥을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김지석 역시 창백해진 얼굴로 입을 막고 있었고 박효진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보았다.

깊은 한숨을 내쉰 안세인이 옆의 특공대장에게 말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기관에서 게이트 관리를 잘 못 한 탓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특공대장은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사실 기관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이트가 나타난 것도, 게이트에서 끔찍한 괴물이 튀어나온 것도.

하지만 게이트에서 나타난 괴물 때문에 많은 수의 특공대원들이 순직했다.

“…그래도 윤도아 씨 덕분에 이 정도에서 끝났습니다.”

특공대장이 말했다.

안세인과 김지석, 박효진은 이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잠시 묵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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