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땅거미가 주변에 내려앉을 무렵, 우리는 남원의 S급 게이트가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도착했다.
“딱 맞이해 주네.”
오랜 운전으로 지친 얼굴이 된 신교진이 주차장 한가운데에 위치한 붉은 연기를 품은 게이트를 보며 투덜댔다.
휴게소에 있는 몇 안 되는 차들은 모두 게이트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무섭겠지.’
게이트 브레이크의 영상이 퍼진 이후로 사람들은 다시 게이트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게이트 브레이크가 언제 일어나는지 아직 정확히 알려진 게 없기 때문에.
우리 뒤를 따라 휴게소로 들어왔던 차량도 게이트를 발견했는지 잠시 멈칫하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다시 차를 출발시켜 휴게소를 나가버렸다.
“윤도빈, 일어나.”
내 부름에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입을 벌리고 잠들어 있던 윤도빈이 흠칫 놀라며 깨어났다.
“…아.”
윤도빈이 손등으로 입가를 문지르더니 아직 제대로 뜨지 못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신교진이 게이트에서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게이트다.”
정신을 차렸는지 윤도빈이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먼저 차에서 내린 후 가볍게 뻐근한 몸을 풀었다.
휴게소에는 차가 없는 만큼 사람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언제 브레이크가 일어날지 모르는 게이트가 있는 휴게소에서는 편히 쉴 수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이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게이트를 흘끔거리며 경보 수준의 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가 한 차량의 보조석에 올라타자마자 차량은 바로 출발하였고 금세 휴게소를 벗어났다.
“어우, 죽겠다!”
차에서 내린 신교진이 허리를 뒤로 꺾고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었다.
마지막으로 내린 윤도빈도 길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했다. 찔끔 나온 눈물을 닦으며 윤도빈이 말했다.
“운전 고생하셨어요, 형. 이따는 제가 할게요.”
“아냐. 너희 누님께서 절대 그렇게 두지 않으실걸?”
신교진이 슬쩍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내심 내가 허락해 주기를 바라는 모양이었다.
“시간.”
“예, 예.”
퉁명스레 대답한 신교진이 다시 물었다.
“바로 들어갈 거예요?”
“바로 가야지.”
내 대답에 신교진의 얼굴이 급격히 구겨졌다.
“…저 2시간 동안 못 쉬었는데요?”
“차에서 자고 있든지?”
내가 차를 가리켰다.
신교진은 잔뜩 구겨진 얼굴로 붉은 게이트와 차를 번갈아 보았다.
어느 것이 더 이득인가 가늠해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이, 나는 눈앞의 붉은 게이트의 정보를 살폈다.
[S급 스킬 보상 게이트]
[무덤으로 통하는 아이템 보상 게이트입니다.]
[죽은 자에게 안식을 주면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게이트 클리어 시 최대 5개의 스킬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무덤이라면 언데드 쪽이려나.’
클리어의 조건이 조금 애매하긴 했지만, 언데드라면 윤도빈이 처음으로 잡아볼 몬스터로 나쁘지 않았다.
“가자.”
“누나, 잠깐 잊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아.”
윤도빈이 자신의 발을 가리켜 보였다.
삼선 슬리퍼.
나는 잠시 휴게소로 들어가 도빈이가 신을 만한 신발을 하나 구매했다.
노점상에서 파는 볼품없는 안전화였다.
추리닝에 안전화 차림이 꽤나 웃겼지만 윤도빈은 만족스러워 보였다.
“좋아. 가자.”
윤도빈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옆에서 윤도빈의 신발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신교진에게 물었다.
“넌?”
“…갑니다, 가요. 네, 가야죠. 가라네요.”
신교진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말했다. 신교진의 결정에 나는 조금의 기대를 품었다.
‘안에서 운이 좋으려나?’
신교진은 차 트렁크에 넣어 두었던 검은 활을 꺼냈다. 지난번 쌍둥이 게이트에서 얻은 S급 활이었다.
준비를 마친 우리는 동시에 게이트에 입장했다.
* * *
밤의 무덤.
기온이 낮은 것과는 다른 오싹한 서늘함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윤도빈이 몸을 한 번 부르르 떨고는 주변을 살폈다.
두 개의 횃불이 바닥에 꽂혀 있었다.
횃불의 크기가 크지 않아 이곳 전체를 모두 볼 수는 없었지만, 횃불의 빛이 닿는 면적만으로도 이 장소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흙 위에 잔디가 드문드문 솟아 있었다.
그리고 두 횃불의 사이에 정사각형의 뻥 뚫린 공간이 있었다.
슬쩍 바라본 공간의 안쪽에는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었다.
‘저기가 길 같은데.’
게이트에 처음 들어온 윤도빈도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길 안내가 정확했다.
하지만 섣불리 그 구멍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횃불의 범위를 벗어난 안쪽은 칠흑의 암흑이었다.
빨려들 것 같은 암흑에서, 윤도빈은 간신히 고개를 돌렸다.
땅과 하늘의 경계가 보이지 않았다.
도시에서는 불가능한 경험. 그 때문인지 공간 자체가 기묘한 느낌을 내뿜고 있었다.
무언가 꺼림칙한 위화감.
하늘을 지켜보던 윤도빈은 곧 그 원인을 깨달았다.
‘별이 하나도 없네.’
이렇게 불빛이 없는 곳에서는 구름이 하늘을 가리지 않는 이상, 별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가렸다고 생각하기에도 이상했다.
이 드넓은 공간을 구름이 빈틈없이 감싸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
게다가 너무 조용했다.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바람 소리도, 어떤 동물의 소리도. 자연적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내 귀가 먹은 건가?’
게이트에 들어오면 신체의 변화도 생기는 걸까 싶어, 윤도빈은 목을 울려 소리를 내보았다.
“아아—!”
“으악!”
윤도빈의 목소리에 놀란 신교진이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에 놀란 윤도빈이 흠칫하며 신교진을 바라보았다.
“뭐야, 왜! 무슨 일 있어요?”
앞에 서 있던 윤도아 역시 갑작스러운 비명에 둘을 돌아보았다.
“…뭐해?”
신교진이 슥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니, 얘가 갑자기 소리 내잖아요.”
윤도아의 시선이 신교진에게 박혔다.
역광이라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심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남매의 시선을 오롯이 받은 신교진이 창피했는지 오히려 화를 내며 외쳤다.
“아, 왜 그렇게 봐요? 사람이 놀라면 비명도 지르고 하는 거지! 하여간 이 남매는 인간미가 없네.”
윤도아가 다시 몸을 돌려 지하와 연결되는 계단으로 걸어갔다.
윤도빈은 신교진의 등을 떠밀며 웃었다.
“가요, 딱 봐도 저기가 입구네.”
“너, 내 옆에 서지 마. 키 큰 건 개선오로 족하거든?”
신교진이 윤도빈에게 투덜거리는 사이, 윤도아가 횃불 하나를 푹 뽑아 들었다.
“먼저 내려간다. 남은 거 들고 따라와.”
둘에게 말한 윤도아가 망설임 없이 구멍 안으로 걸어 내려갔다. 윤도아는 금세 땅속으로 사라졌다.
횃불 하나가 사라지자 주변의 어둠이 더욱더 짙어졌다.
윤도빈이 먼저 구멍 쪽으로 걸어갔다.
횃불을 뽑으려 나무 횃대를 잡자 왠지 모를 서늘함이 손을 타고 목 끝까지 타고 올랐다.
스산한 바람이 지하로 통하는 구멍 안에서 스스스 불어오고 있었다.
아래로 쭉 이어진 계단에서 불빛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누나는 겁도 없네.’
“줘, 내가 먼저 갈게.”
뒤쫓아온 신교진이 손을 내밀었다.
횃불을 들고 일어나던 윤도빈이 고개를 저었다.
“형은 활 들었잖아요. 이건 내가 들게요.”
윤도빈이 이제 거의 보이지 않는 윤도아의 뒤를 따라 지하로 입장했다.
‘이런 데서는 어떤 몬스터가 나오지?’
게이트에 처음 들어온 윤도빈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꼭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
그리고 왠지 모르게 어떤 몬스터가 나오든 해볼 만 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 윤도빈의 귀에 신교진이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딱 봐도 긴장한 듯한 모습.
그런 신교진의 반응에 윤도빈이 웃었다.
“형, 겁먹었어요?”
“…스산하잖아. 공포 영화도 안 보는 데다가 공포 게임도 무서워서 안 하는데, 이런 게이트라니….”
신교진이 창백해진 안색으로 구덩이 안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윤도빈이 웃으며 신교진을 다독였다.
“그래도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잡을 수 있잖아요?”
“…말은 쉽지.”
신교진이 투덜거리며 앞으로 가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피식 웃은 윤도빈은 먼저 내려간 윤도아의 뒤를 따라 구덩이 안으로 들어섰다.
* * *
쿠구구구—.
소용돌이 위의 심연에서 가느다란 하얀색의 팔 두 개가 튀어나왔다.
그 끝에는 사람과 똑같이 다섯 개의 손가락이 달려 있었다.
“…사, 사람?”
시위에 화살을 건 채 대기 중이던 한 각성자가 중얼거렸다.
“게이트에 사람이 있을 리가.”
안세인이 너클을 낀 주먹을 움켜쥐었다.
팔과 함께 새까만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려 얼굴을 가린 머리가 나타났다.
눈은 머리카락에 가려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똑하게 솟은 코와 선명한 붉은 입술은, 그것을 보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곧이어 유려한 곡선을 가진 여인의 나체와 등에 솟아난 하얀색의 커다란 날개까지.
어스름 속에서 빛을 밝혀줄 것 같은 완벽한 아름다움의 여신이었다.
“…처, 천사…. 천사 아냐?”
“오…, 맙소사.”
“저게 몬스터라고요…?”
각성자들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심연을 모두 빠져나온 여인의 허리 아래에는 새의 다리가 붙어 있었다.
그것은 하얀 날개와 날카롭게 빛나는 발톱을 가진 반인반조였다.
그 순간, 각성자들의 환상이 모조리 깨졌다.
“몬스터 맞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각성자들이 다시 각자의 무기를 고쳐 쥐었다.
잠시 날개를 펄럭이며 주변을 살피던 반인반조가 고개를 훅 쳐들며 눈을 덮고 있던 검은 머리카락을 넘겼다.
가로로 길게 찢어져 관자놀이에 닿을 것 같은 붉은 자위가 드러났다. 그 서늘한 눈빛에 각성자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반인반조가 작은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입은 입술의 양 끝을 넘어 계속 열리더니 곧 귀밑까지 찢어졌다.
그리고 덜컥!
반인반조의 열린 턱이 툭 빠지며 그 안의 비죽비죽한 이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혀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시커먼 목구멍만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커다랗게 입을 연 반인반조가 괴성을 내질렀다.
“꺄아아아아——!”
“윽!”
각성자 모두가 무기를 놓치며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 틈을 뚫고 들어오는 괴성에 각성자 중 한 명은 비틀거리며 쓰러져버렸다.
털썩!
“어, 어, 이봐!”
다른 각성자가 쓰러진 각성자를 살짝 흔들었지만 기절한 듯했다.
짧지만 강력했던 괴성이 지나간 후, 심연에서 3쌍의 손이 더 튀어나왔다.
유일하게 괴성에 타격을 입지 않은 안세인이 모두에게 전했다.
“3마리 더 있어요.”
비틀거리던 권재경이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얼른 떨어트린 양손검을 주워들었다.
“이빈 씨, 활 쏴요. 한 놈이라도 줄여줘.”
안세인의 명령에 활을 들고 있던 각성자 정이빈이 힘껏 시위를 당겼다.
하지만 정이빈이 시위를 놓기도 전에 네 마리의 반인반조가 각성자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히익!”
정이빈이 시위를 놓았다.
화살은 빠르게 날아갔지만 반인반조들은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화살을 피해냈다.
공기를 가르며 날아온 반인반조 하나가 정이빈을 향해 괴성을 내지르며 손을 뻗었다.
“으아악—!”
정이빈의 얼굴에 새하얀 손이 닿기 직전.
옆에서 튀어나온 안세인이 최대한 틀었던 허리를 바로잡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꺄아아아—!”
반으로 찢어진 반인반조의 허리에서 피와 내장들이 쏟아져 내렸다.
이리나가 황급히 나라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안세인이 피 묻은 주먹을 거두는 중. 어느새 다가온 권재경이 안세인의 뒤를 향해 양손검을 휘둘렀다.
서걱!
“꺄아아!”
바로 뒤에서 들려온 반인반조의 비명에 안세인이 팔꿈치를 들어 올리며 몸을 틀었다.
훅!
콰직!
안세인의 팔꿈치가 반인반조의 얼굴뼈를 부수었다.
양손이 잘린 반인반조가 피가 솟구치는 팔로 움푹 파인 얼굴을 더듬으며 쓰러졌다.
권재경이 양손검으로 반인반조의 목을 내려찍는 사이.
“꺅!”
이리나의 비명이 들렸다.
반인반조가 새의 발로 이리나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이리나의 어깨와 등에 파고들었다.
피잉—!
정이빈이 쏜 화살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이리나를 들어 올리려던 반인반조의 등에 꽂혔다.
“꺄아아!”
반인반조가 비명을 지르며 주춤하는 사이 달려간 권재경이 양손검을 크게 휘둘렀다.
서걱!
반인반조의 목이 뎅겅 잘려 나갔다. 목을 잃은 반인반조가 이리나의 위로 쓰러졌다.
하나 남은 반인반조가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던 각성자 하나를 낚아챘다.
“으, 으아악! 사, 살려줘!”
안세인이 빠르게 뛰어가 주먹을 휘둘렀지만, 한발 늦었다.
“젠장!”
각성자를 들고 날아간 반인반조가 소용돌이치는 저수지 위에서 각성자를 놓았다.
“으아악!”
각성자는 비명과 함께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정이빈이 재빨리 활을 쏘았다.
그의 화살은 반인반조의 날개를 꿰뚫었고, 놈은 균형을 잃고 떨어져 소용돌이에 휘말려 버렸다.
이빨을 까득거린 안세인은 빠르게 상황을 살폈다.
기절한 각성자는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었고, 정이빈은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였다.
이리나가 반인반조에게 잡혔던 어깨를 치료하는 사이, 권재경이 울고 있는 나라를 달래고 있었다.
다행히 나라는 다친 곳이 없는 모양이었다.
안세인은 눈 위로 떨어져 내리는 땀을 닦아내고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심연을 바라보았다.
여섯 쌍의 새하얀 팔들이 심연을 거스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