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남은 각성자는 나와 주선오, 권재경, 권나라, 신교진이었다.
나라는 랭커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권재경 때문에 남아있는 상태였다.
다른 각성자들이 모두 나가고 안세인과 김지석이 우리의 뒤쪽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안세인이 무릎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오늘 안에 다른 나라 각성자들의 랭킹도 다 공유 받을 예정이에요. 아마 우리나라 랭킹 역시 공유하게 되면 게이트 브레이크 위험성을 가진 게이트를 닫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올지도 모르고요.”
사실 랭킹 정보는 그 나라의 각성자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는 지표였다.
정부에서는 랭커가 실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다른 나라에게 콧대를 세울 수 있고, 더 나아가 타국보다 더 우위에 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때문에 회귀 전, 랭킹이 고지된 후 한국 정부 역시 랭커들을 키우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안세인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다른 나라에 윤도아 씨를 능가할 각성자는 없을 것 같은데.”
당연한 이야기였다.
세상에 내가 받은 고양이 신의 가호를 받은 사람이 또 있을 리가 없었다.
“선오 정도만 해도 아마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해. 사실 나 같은 경우에는 랭커에 들었다고 해도 기관 일 때문에 외국의 게이트까지 가는 건 무리일 것 같고. 권 선생님도….”
안세인의 시선이 권재경의 무릎 위에 앉은 나라에게 향했다.
권재경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죠, 역시. 그럼 교진이는?”
“저요?”
신교진이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본인이 이 자리에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근데 전 한참 게이트 안 닫았는데 왜 랭커예요?”
“게이트를 닫은 횟수로 치면 리나가 자기보다 많기는 해. 근데 리나는 치유 특성이잖아.”
“으음….”
신교진이 조금 불안한 듯 팔짱을 끼었다. 그 옆에서 주선오가 말했다.
“가게 되면 교진이는 저랑 같이 움직이는 걸로 하겠습니다. 외국에서 요청해올 정도의 게이트라면 A급 이상인 거 아닌가요?”
“그렇지. C, B급이야 그 나라 가호자, 각성자들이 알아서들 할 테니까. 그리고 어쩌면 생각보다 많이 요청이 없을 수도 있어요. 요청 금액이 상당하니까 최대한 자기들끼리 해결해보려고 노력하겠지.”
안세인의 말대로 타국의 랭커에게 지원을 요청하게 되면 그에 들어가는 비용이 굉장히 컸다.
랭커의 나라에도 게이트는 계속해서 나타난다.
그런데 본인의 나라 게이트를 놔두고 타국 게이트를 닫으러 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대가가 따라야 했다.
왕복 비행기값과 숙박비는 물론, 그곳에서 생활하는 모든 비용을 그 국가에서 대는 것은 기본. 거기에 의뢰 비용.
타국의 게이트를 닫았을 때 랭커가 받는 금액은 기본이 조 단위였다.
“요청이 온다면 아무래도 S급일 확률이 높겠죠.”
내가 노리는 캐나다의 게이트 역시 S급.
아마 이제 4개월째에 접어들었을 터였다.
게이트 브레이크에 관한 소식을 들은 이후로 불안에 떨고 있겠지.
‘바로 요청이 들어올 거야.’
안세인이 전할 말이 끝났는지 우리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외에 궁금한 거 있나요?”
“혹시 기관 사이트, 통합됐나요?”
“아, 이번 달 안에 통합할 예정이에요. 한국 각성 기관이 중심이 돼서 관리하게 됐습니다.”
김지석이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각성 기관의 사이트가 통합된다면, 이제는 각 나라의 게이트 정보까지 모두 볼 수 있게 된다.
거기에 국가별 각성자의 랭킹 정보까지 기관을 통해 공유될 것이다.
‘그 이후에는 아이템 시장도 활성화되겠고.’
슬슬 레부가 가진 쓸모없는 아이템들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게들 알고 있어요. 뭔가 연락이 오면 개별로 연락 돌릴 테니까.”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캐나다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 * *
이틀간 국내의 S급 이상 게이트를 몇 개 돌아보았지만, 모래 슬라임 모부는 만날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모부 찾기를 포기하고 두 단검과 레부만 데리고 캐나다로 향했다.
예상대로 캐나다 측에서 가장 먼저 지원 요청을 보내왔다.
지원 내역은 밴쿠버의 스탠리 파크에 있는 S급 종합 보상 게이트.
수많은 캐나다의 각성자들을 집어삼킨 공원 속 무덤이었다.
회귀 전, 그 게이트는 나타난 지 6개월 후에야 브라질의 각성자 팀이 클리어에 성공했다.
팀의 총원은 3명.
팀을 이끌던 각성자는 흙의 마법사 한 명과 불의 마법사, 그리고 검사 한 명이었다.
‘그 정도면 혼자서도 커버 가능하지.’
모든 속성 마법을 다룰 수 있고 근접 공격이 기본인 나였다.
하지만 캐나다는 영 불안했는지 나와 주선오, 둘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김지석이 비서 역할로 우리를 따라오고 싶어 했지만 기관의 이사로서 해야 할 일이 넘쳐났기에 그러지 못했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자 우리를 마중 나온 몇몇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갈하게 프린트한 나와 주선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는 외국인들.
갈색의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안경을 쓴 여자와 머리카락을 한 올 남김없이 밀어버린 덩치 큰 남자, 그에 비해 조금 왜소해 보이는 남자.
그리고 옆에 조금 어려 보이는 남자까지. 총 네 명의 일행이었다.
나는 대충 넷의 정보를 살폈다.
넷 모두 각성자였다.
그것도 셋은 꽤 여러 번 게이트를 닫은 것 같은 각성자들.
캐나다의 랭커들인 모양이었다.
한 명은 게이트 클리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특성을 가졌지만, 지금 나에게는 가장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특성을 확인한 나는 자신 있게 넷의 앞에 서서 말했다.
“각성자 윤도아입니다.”
“어서 오세요! 옆의 분은 주선오 각성자 맞으시죠?”
분명 나는 한국어를 내뱉었고 여자는 영어를 내뱉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주선오입니다.”
“전 몰리라고 해요. 캐나다 1위 랭커입니다.”
나는 여우 구슬을 발동한 채로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몰리]
[용 신의 가호]
[용의 여의주]
[전용 특성 : 용의 역린 lv.1]
[전용 스탯 : 근력 23/신력 17]
[전용 스킬 : 구름 lv.1/번개 lv.1/용오름 lv.2]
[특성 스킬 : 추적 lv.1]
몰리는 용 신의 가호를 받은 각성자였다.
스탯의 신력이라는 것이 다른 각성자와는 달랐다.
신력의 범위가 용 신의 가호인 여의주로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스킬들의 범위일 터.
꽤 흥미로운 가호였다.
회귀 전에는 만난 적이 없는 걸 보아 내가 각성하기 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잘 키우면 쓸 만 하겠는데.’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을 보아하니 칼이 주무기인 모양이었다.
옆에 있던 덩치 큰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카터. 2위 랭커요.”
[카터]
[범고래 신의 가호]
[바다의 무법자]
[전용 특성 : 해변돌진 lv.1]
[전용 스탯 : 마력 17/탐지 12]
[전용 스킬 : 반향정위 lv.1]
[특성 스킬 : 돌격 lv.1]
범고래 신의 가호.
전용 스탯의 마력이 독특했다. 마법에 관련된 힘이 아닌 일률의 단위였다.
마력 스탯의 범위 내에서 힘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독특한 특성.
그것을 이용한 격투술과 반향정위로 음파 탐지에 능한 각성자로 보였다.
왜소한 남자는 타일러였다.
“3위 랭커 타일러예요.”
[타일러]
[원숭이 신의 가호]
[나무 위의 원숭이]
[전용 특성 : 나무타기 lv.1]
[전용 스탯 : 근력 11/민첩 21/분석 11]
[전용 스킬 : 공간지각 lv.1]
[특성 스킬 : 기동력 lv.1]
민첩과 기동력을 보아하니 나와 같은 암살자일 확률이 높았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공간 지각 스킬.
분석의 범위 내에서 공간을 파악한 후 기동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사냥 준비를 하는 듯했다.
이어서 가장 어려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전 루크에요.”
루크.
이 녀석 덕분에 우리의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루크와 악수하며 다시 한 번 루크의 정보를 살폈다.
[루크]
[카피바라 신의 가호]
[초원의 지배자]
[전용 특성 : 만인의 친구 lv.1]
[전용 스탯 : 공감 15/매력 9/지배 13]
[전용 스킬 : 감정공유 lv.1]
이 녀석이 일정 범위 내에 있다면 어떤 나라의 언어라도 한국어로 통역되어 들려왔다.
카피바라 신의 가호 전용 특성인 만인의 친구 덕분에.
아직 어려서 한 번에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회귀 전 외국의 게이트에 가게 되면 종종 마주쳤던 녀석이었다.
외국의 게이트는 보통 그 나라의 각성자와 함께 입장하곤 했다.
각성자끼리의 소통은 중요하기에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면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루크의 특성이 알려지자, 각성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진 그였다.
전용 특성과 공감, 매력 스탯도 루크의 인기에 한 몫 했고.
지금은 아직 통역이 가능한 지배 스탯의 범위가 좁았지만, 녀석이 이곳에 있었기에 먼저 자신 있게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일단은 두 분이 묵을 호텔로 안내해 드릴게요.”
몰리가 앞장서 우리를 안내했다.
캐나다 측에서 마련해준 호텔은 공항과 그리 멀지 않았다.
넷은 우리를 호텔에 데려다 준 후, 내일 올 테니 푹 쉬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돌아갔다.
하루빨리 게이트를 닫아야 했지만, 그쪽도 우리에게 바로 게이트를 돌아 달라고 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퍼스트 클래스라고 해도 10시간 동안 비행기에 갇혀서 사육당한 후 곧바로 게이트를 도는 것은 무리였다.
본인들 입장에서도 거금을 들여 게이트를 닫아달라고 부른 각성자들이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제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다면 이만저만 손해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도착한 시점은 아직 낮이었기에 나는 호텔에 짐을 풀어둔 후 게이트를 보러 갔다.
미리 정보를 보고 파악해두기 위함이었다.
“조금 긴장되네요.”
주선오가 나를 따라오며 말했다.
“긴장?”
“외국까지 게이트를 닫으러 왔다는 게 조금….”
주선오가 말끝을 흐렸다. 나는 피식 웃었다.
“외국이라고 게이트가 다르게 생긴 것도 아니고.”
주말 낮이었지만 스탠리 파크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스탠리 파크의 입구들을 통제하고 있는 이유도 있었지만 통제를 하지 않더라도 아무도 얼씬하지 않을 듯했다.
공원 속 묘지 게이트는 언제 브레이크를 일으킬지 모르는 위험한 게이트니, 괜히 근처에서 서성이다가 죽기는 싫은 이유이리라.
우리는 스탠리 파크를 통제하던 경찰의 안내를 받아 게이트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게이트.
검은색의 연기를 내뿜고 있는 S급 종합 보상 게이트였다.
주선오가 조금 긴장했는지 침을 꿀꺽 삼키며 칼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게이트의 정보를 살폈다.
[S급 종합 보상 게이트]
뒤이어 게이트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상급 슬라임 모부가 서식하는 종합 보상 게이트입니다.]
‘모부!’
그렇게 찾아 헤매던 놈의 서식지였다!
게이트 클리어 조건은 모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
나는 이미 게이트를 클리어한 기분이었다.
주선오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근데 미리 봐두는 게 의미가 있나요? 누나 말처럼 한국에 있는 게이트랑 똑같아 보이는데요.”
“확인할 게 있었는데 이제 됐어. 가자.”
주선오가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돌아가는 나를 쫓아왔다.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와 장시간 이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었다.
* * *
한국에서 온 두 각성자를 호텔에 데려다 놓고 집에 돌아온 몰리는 불안함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젠장. 딱 봐도 애송이들인데. 쟤들이 게이트를 깰 수 있다고?’
둘 다 별로 신용이 가지 않는 외모였다.
차라리 랭킹 2위의 카터나 3위의 타일러가 더 믿음직스러웠다.
스탠리 파크에 있는 공원 속 무덤 게이트는 지난 4개월 동안 각성자 수십 명의 목숨을 집어삼켰다.
게이트와 각성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이후, 어느 정도 실력에 자신이 있다 싶은 각성자들이 거치는 필수 코스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 곳.
며칠 전만 해도 B급 게이트를 힘겹게 닫아온 몰리가 캐나다의 랭킹 1위가 된 이유였다.
몰리보다 더 많은 게이트를 돌았던 각성자들은 모두 무덤에 묻혔기 때문에.
몰리는 자신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무모하게 공원 속 무덤에 도전하지 않았다.
‘내가 깰 수 있는 게이트가 아냐.’
하지만 캐나다 정부는 현 랭킹 1위인 몰리에게 한국의 각성자들과 함께 게이트에 입장할 것을 부탁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온전히 한국 각성자들에게만 게이트를 맡겨둘 수 없었다.
그래도 자신들의 땅에서 나타난 게이트.
대체 어떤 게이트였길래 그 안이 무덤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확인을 해야 했다.
하지만 몰리는 정부가 자신에게 자살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랭킹 1위 하고 싶다고 한 적도 없는데!’
좋아서 랭킹 1위가 된 것도 아니었고 그곳에서 살아나올 자신도 없었다.
물론 정부와 같은 의문을 몰리도 품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겁이 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한국에서 오는 각성자들을 믿고 있었는데, 막상 보니 별로 시원찮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제 와서 그만두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하아….”
몰리는 한숨을 내쉬며 안경을 벗어 던졌다.
죽기 전 마지막 하루.
‘무엇을 해야 미련 없이 죽을 수 있을까.’
몰리는 우울한 생각에 잠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