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화
다음날 오후, 호텔 로비에 나타난 몰리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억지로 같이 들어가게 됐나 보네.’
1위 랭커의 운명일 터였다.
본국에서 닫지 못한 게이트가 대체 어떤 게이트인지 궁금하기도 할 거고.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오면 우리의 실력에 대해서도 물을 것이다.
우리를 발견한 몰리는 금세 활짝 웃어 보였다.
“푹 쉬셨어요?”
어째 번역된 말이 들린다 싶더니 근처에 루크가 있었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네요.”
“덕분에 잘 쉬었습니다.”
우리의 대답에 몰리가 밝게 말했다. 인위적인 밝음이었다.
“다행이네요! 참, 저도 그 게이트에 함께 가게 됐어요. 잘 부탁드릴게요. 밖에 차를 대기시켜뒀으니까 가시죠.”
우리는 스탠리 파크로 이동했다.
스탠리 파크 앞에는 2위 랭커 카터와 3위 랭커 타일러가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우리를 보자 카터와 타일러가 다가왔다.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카터는 한쪽 어깨에 큼직한 가방을 메고 있었고 왠지 어제보다 상체가 더 커 보였다.
탐지로 보니 가방에는 두 개의 건틀릿이 들어 있었다.
“혹시 두 분도 동행하시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
너무 많았다.
나와 주선오, 몰리와 카터, 타일러. 거기에 통역을 위한 루크까지.
6명이나 되는 인원이었다.
내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몰리가 물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뇨. 문제까지는 아닙니다만. 인원이 너무 많은 게 조금 걸리네요.”
“…많다는 말입니까?”
카터가 오히려 되물었다. 타일러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물어왔다.
“S급 게이트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닌가요? 이곳에서 죽어간 각성자만해도 수십 명입니다. 그런데 여섯이 많다고요? 게다가 루크는 비전투인원이고요.”
루크가 조금 겁먹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섯이 적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는 됐다.
지금 가려는 곳은 수십 명을 죽게 만든 게이트였다. 안에 대체 어떤 몬스터가 있을지 모르는.
그러니 일단 수라도 많아야 안심이 될 터.
‘본인들이야 그렇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사람 수가 늘어날수록 더 힘들었다.
“제가 모두를 보호할 수는 없어요.”
주선오야 알아서 본인 몸을 지키겠지만, 캐나다의 랭커들은 아니었다.
어제 캐나다 랭커들에 대한 정보를 살펴본 결과. 이곳의 랭커들은 S급을 닫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 수준의 각성자가 랭킹 1위를 찍었다는 것은, 이곳의 무덤이 진짜 랭커들을 삼켰다는 뜻이었다.
‘같이 들어가 봤자 방해만 된다.’
하지만 내 말에 두 랭커는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나도 각성자요. 내 몸은 내가 보호합니다. 그쪽한테 보호해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카터가 미간을 확 구기며 말했다. 타일러의 얼굴 역시 확연히 굳어 있었다.
반면 랭킹 1위 몰리의 표정은 침울했다. 차라리 둘 대신 본인이 빠지고 싶은 얼굴.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럼 알아두세요. 만약의 경우, 저는 최우선으로 루크를 살릴 거예요. 이런 통역 특성은 귀중하니까요.”
그래도 따라올 테면 따라오라는 뜻이 담긴 이야기였지만 두 각성자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십시오. 저희는 알아서 살아남을 테니!”
결국 여섯 명 모두 게이트에 입장하게 되었다.
우리는 경찰의 안내를 받아 게이트의 앞으로 이동했다.
카터와 타일러가 보란 듯이 먼저 게이트 안으로 입장했다.
“먼저 입장하시죠.”
내가 몰리에게 말했다.
몰리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칼 손잡이를 꽉 잡은 후, 게이트로 입장했다.
그 뒤를 따라 루크가 입장했고.
나는 먼저 들어가려는 주선오를 붙잡았다.
“들어가면.”
주선오가 나를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 살릴 생각 하지 말고 너부터 신경 써.”
주선오의 성격상 괜히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가 다치거나 할지도 몰랐다.
“아…. 알겠습니다.”
나는 주선오의 대답을 들은 후 게이트로 입장했다.
* * *
쏴아아아—.
파도 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려왔다.
밀려들어온 바닷물이 내 신발을 적셨다.
나는 찜찜한 표정으로 물러나는 물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드넓은 수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그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잔잔한 물결을 일으켜 이곳에 바닷물을 밀어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바다 중앙의 모래섬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바다에 솟아 있는 모래의 성이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모래성으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계단이었다.
계단은 물속에서부터 이어져 있었고, 계단을 따라 고개를 들어보니 위로 솟은 3단 케이크 같은 모양의 모래성이 보였다.
계단의 끝에는 성의 2층과 통하는 거대한 모래 문이 있었고, 각 층의 누벽에는 작은 창문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뚫려 있었다.
3층을 덮고 있는 뾰족한 모래 첨탑에는 비죽비죽 가시가 돋아 있었다.
먼저 게이트로 들어왔던 세 랭커와 루크가 멍한 얼굴로 모래성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뒤따라온 주선오 역시 모래성의 거대한 크기에 놀랐지만 금세 정신을 집중하고는 칼을 뽑아 들었다.
스릉.
역시 주선오가 다른 각성자들보다 한 수 위였다.
게이트에서 저렇게 넋을 놓고 있다는 것부터가 위험한 짓이었다.
그 소리에 다른 네 명의 각성자도 정신을 차렸다.
“여기가 공원 속 무덤이군요.”
몰리가 중얼거렸다.
“크게 위험해 보이는 건 없는데요.”
타일러가 일부러 조금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내가 그 이야기를 꼭 들었으면 한 모양이었다.
“게이트 안에서 보이는 걸 그대로 믿으세요?”
내 질문에 타일러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더니 외투를 벗어 계단 모서리에 툭 던져두었다.
타일러는 암살자가 맞는 것 같았다.
양팔의 팔뚝 아래에 암기가 숨겨져 있었고 허리 양쪽에도 작은 비수들을 여러 개 차고 있었다.
“긴장해. 여기서 수십 명이 죽었어.”
카터가 경솔한 발언을 한 타일러를 나무라며 어깨에 걸치고 있던 가방을 내려두었다.
주섬주섬 외투를 벗자, 안에 입고 있던 단단해 보이는 흉갑이 드러났다.
카터는 가방을 열어 두 개의 건틀릿을 꺼내 양손에 끼었다.
몰리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들며 계단 끝 성의 입구를 경계했다.
그에 반해 루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뒷짐을 진 채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먼저 갑니다.”
내가 앞장섰다.
모래성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모부는 지금 이곳에 없는 것 같았다.
이곳은 모부의 서식지, 모부의 집이었다.
자신이 만든 모래성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다른 게이트의 안내자 역할이 주어지면 잠시 출타해 유흥을 즐기다 오는 듯 보였다.
즉, 모부의 입장에서 우리는 가택 침입을 한 불청객.
‘있었다면 우리가 나타난 순간 바로 반응을 보였겠지.’
모래로 만들어진 계단은 꽤 단단했다.
아무래도 주변의 물을 이용해 최적의 강도로 집을 지어둔 모양이었다.
‘그래도 폭파는 가능하겠어.’
오히려 안심이었다.
한쪽 구석에서 폭발을 일으킨다고 해도 단시간에 성이 와르르 무너져내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계단을 모두 오르자 성의 벽을 따라 이어진 통로가 있었다.
나는 살짝 모래성의 입구를 밀어보았지만, 단단히 닫혀 열리지 않았다.
“돌아볼까요?”
주선오가 옆의 통로를 가리키며 물었다.
“내가 돌아보고 올게. 너는 네 분이랑 여기에 있어.”
“알겠습니다.”
나는 주선오에게 넷을 맡긴 후 성벽의 통로를 따라 걸어갔다.
탐지를 이용해 성벽 안쪽의 상황을 살펴보니, 텅 빈 공간 안에 무언가 잔뜩 서 있었다.
빈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히.
모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모부는 아니었다.
빈집을 지키기 위해 모부가 만들어둔 모래 인형들인 것 같았다.
‘그렇군.’
왜 여기에서 그렇게 많은 각성자가 죽어 나갔는지 알 것 같았다.
모부가 자신의 의지를 넣어 만든 모래 인형은 슬라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자신이 베일 것이라는 걸 아는 순간 레부와 똑같이 아이템을 삼킨다.
물론 레부의 경우는 아이템에 환장을 하는 놈이라 그렇게 빼앗은 아이템을 소중히 보관하지만.
모부는 스킬 보부상.
아이템에는 관심이 없다.
삼킨 아이템은 바로 소화시키고 공격할 무기를 잃은 사람까지 삼켜버린다.
모부의 모래 인형들도 똑같았다.
모래 인형들은 삼킨 각성자들의 스킬만 발라내 보관하고 있다가 모부가 돌아오면 그대로 모부에게 흡수된다.
그렇게 각성자가 가졌던 스킬은 모두 모부의 것이 된다.
‘모부에 대해서 모르는 각성자들은 당할 수밖에 없어.’
그저 갑자기 달려드는 모래 인형들을 막기 위해 무기를 휘두르고 방어해보지만 결국 먹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브라질의 각성자 팀이 클리어에 성공한 것은 흙의 마법사 덕분이었다.
다른 불의 마법사나 검사도 할 일이 있었겠지만 흙의 마법사의 공이 가장 컸을 것이다.
혼자서 모래 인형들을 다 해산시키고 모부까지 해체해버렸겠지.
‘쉽네.’
나도 비전 마법을 사용하면 그만. 모래알을 하나하나 발라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다만, 나는 모부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모부 역시 레부처럼 사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레부와 마찬가지로 모래 공급 및 게이트 안 심부름꾼으로 부리기 위해.
“레부야.”
나는 심연의 불꽃을 꺼내 레부를 불렀다.
평소라면 쿄, 하는 유쾌한 대답을 하며 튀어나올 녀석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저 젤리만 빼꼼 내밀 뿐이었다.
“나와 봐.”
“…쿄….”
레부가 망설였다.
레부는 이곳에 겁을 먹고 있었다.
레부는 불꽃 슬라임. 기본적으로 불로 이루어진 슬라임이었다.
이곳은 바다 위의 모래성.
사방이 모두 레부에게는 적인 공간이나 마찬가지였다.
괜히 이곳에서 잘못 설치고 다녔다가는 모래에 파묻혀 죽거나, 물에 빠져 죽을지도 몰랐다.
“괜찮으니까 나와. 주인이 널 죽게 두겠어?”
‘네가 얼마나 유용한데.’
내 타이름에 결국 레부가 철퍽 모래 통로 위에 내려섰다.
빠르게 사람의 형체를 만들어낸 레부는 여전히 위축된 모습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쿄…. 모부의 성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어. 그래도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는데.”
레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
“그럼, 그럼. 너밖에 못 하는 일이 있지.”
“…쿄?”
나는 레부와 함께 통로를 걸으며 대략적인 모래 인형의 수를 파악했다.
적어도 백이 넘는 수였다.
만약 성문을 열고 들어서게 되면 모래 인형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스킬을 빼앗는 것이 주 목적인 모래 인형은 빼앗을 스킬이 많은 사람에게 몰릴 것이다.
‘여기에 나만한 사냥감은 없다는 거지.’
은밀한 고양이와 악마의 고양이 스킬, 게다가 돌고래 신의 가호에 딸린 스킬까지.
아마 날 삼키게 되면 모부는 뛸 듯이 기뻐하리라.
그렇게 둘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백이나 되는 모래 인형이 내게 쏟아지는 건 상상만 해도 귀찮았다.
게다가 날 돕겠다고 달려들 네 각성자가 그대로 모래 인형들에 먹히면 그것도 문제였다.
‘그러니까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 모래 인형들을 처리해야겠어.’
나는 내 옆을 쭐레쭐레 따라오던 레부의 어깨를 텁 잡았다.
레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레부야, 주인 믿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