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쿠구구구구——.
바다에서 알 수 없는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딱히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원인은 눈앞에 있었다.
윤도아.
이 자가 뭔가를 하고 있다.
몰리는 이제 윤도아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사람이니까.’
윤도아는 금세 모부의 특징을 파악한 후 자신들의 목숨을 구했다.
게다가 저 큰 성안에서 폭발을 일으켜 성을 반쯤 무너트렸고, 바다를 밟고 뛰어오르더니 성을 반으로 쪼개버렸다.
그리고 이제 모부를 확실하게 끝낼 마지막 결정타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모래성은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아.’
윤도아는 바닷물로 모래성을 쓸어버리려는 것이었다.
쿠구구—.
촤아아!
바다의 표면이 점점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깊은 곳에서 밀어 올리는 힘에 사방으로 흩어지는 표면의 바닷물들이 각성자들에게도 밀려들었다.
몰리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칼로 지반을 푹 내리찍었다.
촤아아아아!
그 표면을 뚫고서 나타난 것은 거대한 고래였다.
아니, 고래의 형태를 쏙 빼닮은 바닷물 덩어리가 표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
마치 눈앞에서 거대한 혹등고래의 점프를 마주한 것 같았다.
솟구친 고래는 정점을 찍으며 바다에 쏟아지던 햇빛을 가로막았다.
햇빛은 고래의 몸을 이루는 바닷물을 투명하게 비추었다.
고래의 몸을 통과하며 물에 굴절된 햇빛의 줄기들이 모래성과 각성자들의 위로 떨어지며 반짝이는 커스틱을 만들어냈다.
포물선의 정점에서 고래가 몸을 틀었다.
고래의 머리가 향한 곳은 모부의 모래성.
바닷물 고래는 모부를 향해 내리꽂혔다.
콰앙!
촤아아아—!
고래와 모부의 성이 부딪히며 바닷물이 터져나갔다.
그 거대하고 강력한 힘에, 모부의 모래성은 힘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머리부터 꼬리까지.
고래는 품고 있던 모든 바닷물을 모부에게 쏟아부었고, 모부의 모래를 휩쓸며 바닷속으로 돌아가 버렸다.
거대했던 모래성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물의 고래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그저 수북히 쌓인 모래 더미만이 남아있었다.
쏴아아아——.
고래가 물로 돌아가며 남긴 파동이 바다 표면을 타고 흩어졌다.
이어지는 긴 정적.
아무도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조금 전 목격한 광경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압도되어 버렸기 때문에.
“…휴….”
그 사이로 가느다란 모부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 * *
공원 속 무덤의 게이트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두 나라의 랭커들이 입장한 지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아서였다.
가장 먼저 게이트의 변화를 눈치챈 것은 게이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경찰들이었다.
“헉, 게이트가!”
“모두 대기해!”
경찰들이 빠르게 게이트의 앞을 통제했다.
짧은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클리어? 아니면 브레이크?’
‘젠장, 브레이크면 어쩌지?’
‘한국에서처럼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기라도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제발 클리어이길….’
경찰들이 긴장하며 각자의 총을 움켜쥐었다.
물론 그들도 몬스터에게 총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혹시 모를 불안감에,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총을 부여잡은 것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멀찍이서 대기하던 기자들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한 것은 한국에서부터 윤도아를 쫓아온 세운 일보 강그린 기자였다.
작아졌던 게이트가 커다랗게 확장되어 있었다.
강그린은 윤도아가 게이트를 클리어했음을 확신했다.
‘역시 윤도아 각성자!’
“주영 씨!”
강그린이 옆에서 졸고 있던 카메라맨 송주영을 부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요!”
강그린이 먼저 게이트를 향해 뛰었다.
“…네? 자, 잠깐…!”
당황한 송주영이 후다닥 세팅해뒀던 카메라를 챙겨 들고 먼저 뛰어간 강그린의 뒤를 쫓았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기자들이 강그린과 송주영을 바라보았다.
“뭐지? 게이트가….”
“변했어!”
“뭐야, 클리어인가?”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국의 기자들은 둘처럼 게이트를 향해 달려가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은 경찰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설마 브레이크는 아니겠지?’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나?’
캐나다 기자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보았다.
자신만만하게 공원 속 무덤을 클리어하겠다며 입장한 여러 각성자들을 보아왔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고 그들을 삼킨 게이트만이 다시 평소의 모습처럼 커지던 상황.
‘쯧. 또 안타깝게 전멸인가보네.’
‘한국 랭커들도 어쩔 수 없었나….’
‘다른 나라에 와서 죽게 되다니. 저 치들도 불쌍하군.’
반면 한국에서 온 기자들은 강그린을 따라 헐레벌떡 뛰어갔다.
‘클리어다!’
‘윤도아가 또 일냈네!’
‘이번엔 꼭 질문 기회를!’
윤도아에게 던질 질문은 이미 잔뜩 마련해뒀다.
다만 윤도아가 질문할 기회를 도통 주지 않아서 문제였을 뿐.
한국의 기자들이 자신들을 막아서는 경찰들의 앞에 모두 자리를 잡았을 때, 확장된 검은 게이트가 하얀빛을 번쩍 뿜어냈다.
멀찍이서 그 빛을 바라본 외국 기자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크, 클리어!”
한 명이 외쳤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기자들은 정신없이 자신들의 짐을 챙겨 게이트의 앞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이미 명당자리는 한국의 기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과연 몇 명이 살아 돌아올 것인가!’
가장 큰 기자들의 관심사였다.
입장했던 인원 그대로 여섯의 각성자가 나온다면 그야말로 굉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터.
아무리 가장 실력이 좋다는 한국 랭커 1, 2위가 함께 입장했더라도 모두가 무사히 돌아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모두의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루크였다.
“루크!”
한 기자가 외쳤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플래시들이 터져 나왔다.
쫄딱 젖은 모습으로 나타난 루크에게서 비릿한 바다 내음이 풍겨왔다.
“다른 각성자분들은…!”
한 기자의 질문이 끝나기 전에 하얀 게이트 안에서 또 한 명의 각성자가 나타났다.
캐나다의 2위 랭커 카터였다.
카터는 한 손에만 건틀릿을 낀 채였다. 다른 한쪽 건틀릿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것 외에, 역시 흠뻑 젖어있는 것 말고는 특별한 부상은 없어 보였다.
곧이어 나타난 캐나다 1위 랭커 몰리 역시 마찬가지로 외상은 없었다.
하지만 조금 이상한 것이, 나타난 세 각성자의 표정이 하나같이 멍했다.
꼭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눈앞에서 번쩍이는 플래시에도 반응하지 않고, 그저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세 분만 살아남으신 겁니까?”
“한국의 랭커 분들과 타일러는 어떻게 된 거죠?”
기자들이 셋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셋은 아무런 대답 없이 슥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그때 게이트에서 또 다른 각성자가 나타났다.
캐나다의 랭커 타일러.
하지만 타일러라고 이전의 세 각성자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멍한 얼굴.
그들에게 기자들이 아무리 질문을 던져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자들은 슬슬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진짜 홀리기라도 한 건가?’
‘대체 안에서 뭘 봤길래?’
게다가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온 모습치고, 모두들 너무나도 멀쩡했다.
보통 게이트를 다녀온 각성자들은 한두 군데는 기본으로 다친 상태로 나타났다.
심지어는 팔이나 다리 등 신체의 일부가 잘린 채로 나타나기도 했고, 심각한 상처를 입고 나와 쓰러져 곧바로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의 랭커가 게이트에서 나타났다.
랭킹 2위의 주선오였다.
주선오는 조금 지쳐 보였다. 다행히 캐나다의 각성자들과는 다르게 눈빛이 살아있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기자들이 주선오에게 질문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공원 속 무덤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어떤 몬스터들이 나타났습니까?”
“다행히 다들 무사해 보이는데, 이곳이 왜 공원 속 무덤이 된 거죠?”
“윤도아 각성자는 왜 나오지 않는 겁니까?”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질문에 주선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아직 하얀 연기를 내뿜는 게이트를 바라보았지만, 마지막 각성자 윤도아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살짝 한숨을 내쉰 주선오가 기자들을 보며 말했다.
“일단, 저희는 게이트를 무사히 클리어했습니다.”
주선오가 말을 시작하자 모든 기자의 질문이 멈추었다.
“공원 속 무덤이라고 불리던 이곳, 스탠리 파크의 게이트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모래성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빠르게 주선오의 말을 받아적으며 즉시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마 캐나다의 각성자들이 이곳을 클리어하지 못한 이유는 모래성 주인의 특성 때문일 겁니다. 모래성 주인은 모래 슬라임으로 몸에 닿는 모든 것을 집어삼켜 녹여버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럼 이전 각성자들이 모두 모래 슬라임에게 먹혔다는 겁니까?”
“네.”
“그럼 그 모래 슬라임을 대체 어떻게 이기신 거죠?”
“…….”
주선오는 대답 대신 아직도 닫히지 않은 하얀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게이트의 안에서 마지막 각성자이자 한국의 랭킹 1위 각성자, 윤도아가 나타났다.
드디어 모든 각성자를 내보낸 하얀 게이트는 점점 수축되더니 하얀 연기만을 남기고 훅 사라져버렸다.
윤도아는 다른 각성자들의 모습과 조금 달랐다.
유일하게 물에 빠지지 않은 듯한 모습.
하지만 머리와 옷에 모래가 잔뜩 묻어 있었다.
게다가, 뭔가 기분이 좋은 듯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윤도아 각성자가 모래 슬라임을 죽인 겁니까?”
“어떤 방법으로 사람을 삼키는 슬라임을 잡을 수 있었던 거죠?”
외국 기자들이 마구 질문을 던졌다.
반면 지금껏 열심히 질문을 던지던 한국 기자들은 모두 입을 다문 채 윤도아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외국 기자들은 그러한 한국 기자들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다.
윤도아가 방긋 웃는 입술 앞에 검지를 세워 보였다.
그런 윤도아의 행동을 본 기자들이 점점 질문을 멈췄다.
하지만.
“모래 슬라임을 어떻게 잡았는지 말씀 좀 해주십시오!”
끝까지 질문을 던지는 한 외국 기자가 있었다. 모든 기자의 눈이 그 기자에게 쏠렸다.
‘조용히 좀 하라잖아!’
‘아무도 말 안 할 때까지 저러고 있을 모양인데, 제발!’
수십 명의 눈총을 받게 된 그 기자는 금세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윤도아가 입에서 손가락을 떼며 말했다.
“아, 조용하니까 좋네요. 게이트의 상황은 대충 선오가 설명해 준 것 같으니까.”
윤도아의 말에 한국 기자들의 눈이 번쩍였다.
“지금부터 딱 한 개 질문만….”
“세운 일보 강그린입니다!”
강그린이 온 힘을 다해 외쳤다.
“뭐? 아니, 말도 안 끝났는데 그런 게 어딨어?”
“이봐, 강 기자!”
주변에서 한국 기자들의 불평이 쏟아졌지만, 강그린 기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발언의 기회만을 기다리며 윤도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윤도아가 피식 웃었다.
“강 기자님, 여기서도 뵙네요.”
“헉…!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강그린이 정말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윤도아가 각성한 시작의 날부터, 사생팬처럼 윤도아의 뒤만 쫓아다니던 강그린 기자였다.
‘그 결실을 보는구나!’
강그린이 벅찬 마음으로 윤도아를 바라보았다. 윤도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질문하세요.”
침을 꿀꺽 삼킨 강그린이 진지해진 얼굴로 윤도아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모두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겁니까?”
모두의 시선이 윤도아에게 집중되었다.
“음….”
윤도아가 잠시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기자들은 숨죽인 채 윤도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떤 식으로 게이트를 클리어해서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라든가, 혹은 어떤 특성을 이용해서 모래 슬라임을 잡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대답이 돌아오길 기대하면서.
어쩌면 잘 알려지지 않은 윤도아의 특성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올지도 몰랐다.
잠시 후 윤도아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상대를 잘 만났거든요.”
“…네? 상대라면…, 모래 슬라임 말씀이신가요?”
강그린이 되물었지만, 윤도아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 * *
호텔에 돌아와 몸에 묻은 먼지와 염분을 씻어낸 나는 윤도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클리어. 내일 출발.]
그리고는 핸드폰을 침대에 던져둔 채, 염력을 이용해 탁자에 올려두었던 작은 마나구를 끌어당겼다.
달걀만한 마나구의 안에는 모래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무너진 모래성에서 긁어온 모래였다.
그것을 보자 바닷물을 움직였던 때의 벅참이 다시금 피어올랐다.
‘그 정도로 성공적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바닷속의 물을 그냥 끌어 올리자니, 뭔가 잘 되지가 않았다.
그래서 물속의 고래가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장면을 떠올리며 마나를 조정해본 결과.
바닷물로 만들어진 고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것을 만들어낸 나까지 진짜 고래가 나타난 건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바닷물 고래는 내 생각대로 움직였고, 수면 위로 높이 뛰어올랐다가 모부의 모래성을 향해 추락했다.
‘마무리로 완벽했어.’
뿌듯함에 달걀 크기의 마나구를 굴리며 웃고 있는데, 누군가 호텔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나.”
주선오였다. 나는 염력으로 호텔 방의 문을 열어주었다.
“사 왔어?”
“네. 근데 이건 어디에 쓰십니까?”
주선오가 작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염력으로 그것을 받아들어 그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작은 유리병이었다.
“다 쓸 데가 있지.”
나는 유리병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달걀 크기의 마나구 안에 있던 모래를 쏟아 넣었다.
바닷가에서 파는 기념품 같은 모래가 담긴 유리병이 완성되었다.
그 속에 담긴 모래가 평범한 모래는 아니었지만.
나는 가볍게 유리병을 흔들며 씩 웃었다.
“모부야, 이제 우리 얘기 좀 해볼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