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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53화 (54/201)

제53화

다람쥐가 긴장감이 넘쳐흐르는 주선오와 모부를 이리저리 돌아보았다.

주선오가 침착하게 말했다.

“칼 돌려줘.”

“휴휴휴휴….”

하지만 모부는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주선오는 비어있는 칼집을 벨트에서 풀어내 손에 쥐었다.

“이빨벼림.”

주선오가 스킬을 발동하자, 칼집의 좁은 단면 한쪽이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휴? 역시 굉장한 스킬이군요. 휴휴흇. 삼키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네요.”

“여기서 네 모래를 잃으면 회복하기 힘들 텐데. 그래도 덤비겠어?”

“휴휴휴휴…. 덤비다뇨? 전 당신을 공격할 생각은 없었어요.”

모부가 웃었다.

“먼저 칼을 휘두른 건 당신이지 않나요?”

그 말에 주선오가 멈칫했다.

확실히 모부가 공격을 감행한 적은 없었다. 스킬이 탐이 난다는 이야기만 했을 뿐.

하지만 이미 주선오의 칼은 빼앗긴 상태.

가만히 주선오를 바라보던 모부가 말했다.

“…하지만 삼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어차피 사람이 게이트 안에서 죽는 건 흔한 일. 그 정도는 주인도 알고 있겠죠.”

모부가 빼뚜름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형체를 망가트리며 주선오에게 덤벼들었다.

“흇!”

촤악!

주선오가 자신을 삼키려 날아오는 모부에게 날이 선 칼집을 휘둘렀다.

평소 사용하던 칼보다 가벼웠기에 칼을 휘두르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서걱!

모부가 반으로 잘렸지만 스슥 떨어지던 모래들이 다시 이어붙기 시작했다.

“휴휴휴. 제가 모래 인형과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지요. 휴휴휴휴.”

모부가 웃으며 다시 주선오를 삼키려 들었다.

주선오가 빠르게 뒤로 빠지며 말했다.

“더 공격하겠다면 나도 이 이상 봐주지는 않을 거야.”

“휴? 봐준다고요? 휴휴흇! 그건 그거대로 기분 나쁜데요?”

모부가 바닥 나무에 한 번 튕기더니 다시 촥 펼쳐지며 주선오에게 날아들었다.

주선오 역시 이번엔 물러서지 않고 칼집을 들어 올렸다.

“물어뜯기.”

“휴?”

순간 주선오가 든 칼집의 빛나는 날이 다섯 갈래로 나뉘는 듯하더니.

촤악!

달려든 모부의 몸의 일부를 그대로 찢어발겼다.

“흇!”

찢겨나간 모부의 모래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모부는 찢긴 채 주선오를 지나쳐 빠르게 찢어진 부분을 수습했다.

주선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몸을 돌려 다시 칼집을 휘둘렀다.

또 한 번 칼집의 다섯 갈래 날 끝이 모부의 등을 물어뜯었다.

촥!

다섯 갈래의 날에 한 뭉텅이 뜯겨 분리된 모부의 모래들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무슨 짓을…!”

모부의 옆구리가 텅 비어 있었다.

모부는 치켜뜬 눈으로 주선오를 돌아보았다.

그런 모부의 앞에 다시 주선오의 날 선 칼집이 날아들었다.

“물어뜯기. 검격증폭!”

주선오의 다섯 갈래의 검격이 길게 솟구치며 모부를 긁어낸 후 나무 바닥에 세게 부딪혔다.

촤아악!

쾅!

“흇!”

바닥에 부딪혔던 검격이 빠르게 줄어들며 모부를 통과했고 또다시 모부의 모래들을 찢었다.

너덜너덜해진 모부가 바르르 몸을 떨며 바닥으로 흩어져 내렸다.

짧게 숨을 내뱉은 주선오가 칼집을 한 번 촥 털어냈다.

“발동 해제.”

주선오의 손에 들린 칼집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바닥에 무너져내린 모부가 흩어진 모래들을 다시 끌어모으고 있었다.

주선오가 그런 모부의 앞에 선 채 칼집으로 모래들을 푹 내리찍었다.

주선오가 말했다.

“아직도 덤빌 생각이면, 나도 더 벨 수밖에 없어.”

* * *

앞장서서 나를 안내하던 다람쥐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가지의 앞에 나무 피부를 가진 사람 형태의 드라이어드들이 서 있었다.

입장 전 보았던 정보에 의하면 이곳은 다람쥐들의 서식지 나무였다.

하지만 현재는 드라이어드들에게 침략당한 상태.

즉, 이 나무의 드라이어드들을 처리하면 게이트가 클리어되는 것이었다.

“찍, 찍!”

나보다 덩치가 커 보이던 다람쥐가 내 뒤로 숨어들었다.

드라이어드들이 나를 보더니, 나무 위를 스르륵 미끄러지며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걸으며 드라이어드들의 너머를 살폈다.

드라이어드의 본체는 나무.

그리고 이런 형상을 가진 드라이어드의 분신은 본체와 일정 간격 이상 떨어질 수 없었다.

다가온 드라이어드들이 내게 나무껍질로 뒤덮인 손을 뻗어왔다.

사람의 손가락을 닮은 다섯 개의 줄기 끝이 점점 늘어나 내게 뻗어 나왔다.

나는 심연의 불꽃을 꺼내 내게 뻗쳐오는 줄기들을 잘라냈다.

서걱.

그와 동시에 잘린 나무의 단면에 불꽃이 번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불이 붙은 드라이어드가 비명을 내질렀다.

불이 붙은 손끝이 바사삭 바스러들었다.

그림자 단검까지 마저 꺼내든 나는 두 단검을 염력으로 제어했다.

굳이 본체가 아닌 것들에게 힘을 쏟을 이유는 없었다.

그저 드라이어드들이 내게 뻗쳐오는 나뭇가지들만 처리하면 된다.

분신들을 차근차근 베어내며 길을 걷자, 곧 앞쪽에 드라이어드들의 본체인 나무들이 길을 막고 나타났다.

“마나창.”

내 머리 위로 수십 개의 마나창이 생성되었다.

모부에게 테스트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마나창이었다.

그때는 마나의 소모가 없는 막과 같은 형태의 바늘 모양이었지만, 이번에는 주변의 마나를 뭉쳐서 만들어낸 마나창이었다.

마나가 뭉쳐진 만큼 나뿐 아니라 다른 눈이 달린 생물들에게도 보일 터.

드라이어드들의 시선이 내 머리 위의 마나창에 꽂혔다.

‘그래봤자 막아낼 방법은 없지.’

나는 수십 개의 마나창을 드라이어드들의 본체로 날렸다.

쇄액!

퍼버버벙!

드라이어드의 본체 나무들이 연쇄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에 의해 나무의 바닥이 흔들렸다.

“꺄아아악!”

나무들이 비명을 지르며 터져나갔다.

폭발에 끊어진 본체들이 말라비틀어지자, 아직 내 주변에 남아있던 드라이어드의 분신들 역시 모두 바스라져 사라져버렸다.

“찍찍! 찍찍찍!”

내 뒤를 쫓던 다람쥐가 양 앞발을 마구 부딪치며 찍찍거렸다.

길을 막고 있던 드라이어드의 본체들이 터져나간 것이 매우 기쁜 모양이었다.

드라이어드들의 본체가 사라지자 뻥 뚫린 길이 나타났다.

다람쥐가 신나게 앞으로 달려가며 다시 나를 안내했다.

바닥을 이루는 나뭇가지는 기둥 나무를 빙 돌아 위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두 번 정도 더 드라이어드들의 숲을 파괴하자 드디어 아래층의 천장을 뒤덮던 수풀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거대한 나무기둥의 움푹 파인 꼭대기였다.

여전히 하늘은 수풀로 덮여있었다.

다람쥐가 걸음을 천천히 멈추더니 자신의 안내는 끝났다는 듯 슬쩍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겁먹은 눈빛으로 수풀과 거대한 나무의 기둥 사이에 자라난 나무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나무의 기둥 위에 깊게 뿌리박은 드라이어드가 있었다.

‘드라이어드의 모체.’

지금까지 올라오면서 본 드라이어드들보다 훨씬 크고 견고한 나무였다.

머리 위를 가득 덮을 정도로 뻗친 모체의 굵은 나뭇가지들에는 나무껍질로 뒤덮인 커다란 열매들이 맺혀 있었다.

저 열매의 안에는 드라이어드들이 자라나고 있을 터.

열매를 매단 굵은 가지들을 버티고 선 기둥은 거대한 나무에 비하면 보잘것없었지만, 적어도 5미터 정도는 되어 보이는 굵기였다.

모체의 모든 것을 굳건하게 받치고 있는 뿌리들은 사방으로 구불구불 퍼져나가 거대한 나무의 틈새를 억지로 뚫고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거대한 나무라도 드라이어드의 모체가 뿌리를 박으면 금세 말라 죽을 수밖에 없다.

나는 모체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니엘과 주선오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그 둘이 오는 길의 드라이어드들을 모두 성공적으로 처리한다면, 저것이 마지막 남은 드라이어드가 된다.

‘주선오는 잘하겠지만 니엘 쪽이 걱정이네.’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한 탓에 무작정 눈에 보이는 드라이어드의 분신들만 죽어라 때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위층으로 올라오는 길이 두 개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올라오던 길에 합류 지점이 없었으니, 아마 둘의 길이 이어져 있을 것이다.

* * *

윤도아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으아아아악!”

니엘이 악에 받친 비명을 내질렀다.

수직의 나뭇가지에서 올라온 니엘은 겨우 십여 미터밖에 전진하지 못했다.

아무리 베어내고 태워도 나무껍질들은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아무리 세계 랭킹 3위, 독일 랭킹 1위의 니엘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수로 밀어붙이면 지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불부림을 사용하는데도 무언가 이상했다.

니엘이 부리는 대로 불들이 이동해야 하는데 일부 불꽃이 제멋대로 방향을 틀거나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튀어 나갔다.

결과적으로 나무껍질을 태우는 목표에서는 벗어나지 않았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뭐지? 스킬에 뭔가 문제가 생겼나?’

하지만 확인할 다른 방도가 없었고 지금은 그것보다 눈앞의 나무껍질들에 더 신경을 써야 할 때였다.

니엘이 조금만 놈들에게서 눈을 떼면 금세 뻗쳐 나온 나뭇가지들이 니엘에게 덤벼들었다.

니엘에게 더는 그리브를 휘두를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붙잡고 있던 이성조차 날아갈 지경이었다.

결국 니엘은 양손에 커다란 불을 내질렀다.

“불부림!”

니엘의 상체만큼 커다란 불덩이가 화르륵 타오르기 시작했다.

거대한 나무가 타든 말든 이제 니엘은 저 나무껍질들을 모조리 태워버려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니엘이 양손의 불덩이들을 밀려오는 나무껍질들을 향해 내던졌다.

화르르륵!

나무껍질들이 타오르며 빠르게 부서지기 시작했다.

니엘은 불덩이들을 계속해서 번지게 했고, 불덩이들은 결국 나무껍질들을 벗어나 바닥의 나무에까지 옮겨 붙었다.

니엘은 씩씩거리며 화염을 뚫고 걸었다.

“찍찍! 찍!”

뒤에서 다람쥐가 비명을 질러댔다.

불꽃 사이에 있던 니엘이 뒤를 돌아보니 너무 크게 번진 불 때문에 다람쥐가 니엘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어휴, 정말! 불잡이!”

니엘이 앞의 불길들을 보며 손을 휘둘렀다.

불잡이는 번지는 불꽃들을 잡아 사그라트리는 스킬.

하지만 이미 나무를 타고 번진 불들은 니엘이 잡을 수 있는 불의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으잉?”

당황한 니엘이 다시 불잡이를 사용했지만, 불길은 잡히지 않았다.

“뭐, 뭐야!”

불길은 나무를 타고 거세게 번지기 시작했다.

그 때문인지 나무껍질들은 더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잘못하면 나무 전체를 태워버릴 판이었다.

“으어, 안돼!”

니엘이 당황하며 다시 불잡이를 사용하려 하는 순간.

크게 번져나가던 불꽃들이 멈추었다.

영상을 정지시킨 것처럼 불씨 하나까지 멈춰버린 불꽃이, 순식간에 한 지점으로 모여들었다.

니엘이 동그래진 눈으로 모여드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분명 불잡이 스킬은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불잡이는 말 그대로 불을 꺼버리는 스킬이었지, 저런 식으로 불을 한곳에 모으는 것은 불부림의 스킬을 사용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당황한 니엘의 앞에 뭉쳐졌던 불꽃이 사람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니엘은 눈앞에 나타난 중절모와 지팡이를 짚은 불꽃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쿄!”

불꽃이 경쾌한 웃음을 뱉어냈다.

그러더니 중절모를 벗어들고 니엘에게 허리를 꾸벅 숙여 보였다.

니엘은 순간 자신의 전용 특성인 샐러맨더가 실체를 나타낸 것인가 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에 빠졌다.

“쿄쿄쿄쿄. 불꽃 슬라임 레부라고 합니다. 좋은 특성을 갖고 계시는군요. 쿄쿄쿄.”

“…불꽃 슬라임?”

“쿄쿄. 그렇습니다. 주인의 명으로 당신을 따라왔는데, 영 고전을 면치 못하고 계시는군요.”

레부의 눈과 입이 호선을 그렸다.

하지만 그 말에 니엘의 기분이 확 상했다.

“뭐라고?”

“쿄쿄쿄. 그깟 드라이어드한테 이렇게 밀리다니요. 그것도 본체도 아닌 분신들에게!”

“분신…?”

니엘의 고운 눈썹이 확 일그러졌다.

“쿄쿄쿄. 따라오시죠.”

레부가 터벅터벅 니엘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불길은 모두 잡혀서 거뭇하게 그을려 탄내를 풍기는 나무껍질들만이 남아있었다.

다람쥐가 찍찍거리며 그을린 나무들을 밟으며 다가왔다.

“내 불부림이 통하지 않았던 것도 네가 한 짓이야?”

니엘이 빠르게 레부를 쫓으며 물었다.

“쿄쿄쿄. 그럼요. 저는 상급 불꽃 슬라임. 불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건 아직 제가 한 수 위지요.”

레부의 말에 니엘의 표정이 뾰로통해졌다.

곧 둘의 앞에 빽빽하게 솟아오른 나무들이 나타났다.

“뭐야, 막혔….”

중얼거리던 니엘이 말끝을 흐렸다.

빽빽하게 있던 나무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거기에서 나무껍질들이 분리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쿄쿄쿄. 저게 드라이어드의 본체입니다. 분신은 아무리 부숴봤자 본체를 부수지 않으면 소용이 없지요. 쿄쿄쿄쿄.”

레부가 웃었다.

“…허어….”

니엘은 허탈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향해 걸어 나오는 나무껍질, 드라이어드의 분신들을 바라보았다.

“쿄쿄쿄. 잡지 않을 생각입니까? 본체를 부숴야 합니다.”

레부가 니엘을 부추겼다.

허탈한 한숨을 내쉬고 잠시 고개를 휘휘 내저은 니엘이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불부림.”

저 빽빽한 나무들을 그리브 칼날로 베어내는 건 무리였다.

불을 붙여서 태우는 것이 니엘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니엘이 양손에 타오르는 불꽃을 앞의 드라이어드의 본체를 향해 날렸다.

화르르르!

“꺄아아악!”

불이 붙은 드라이어드의 본체들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체는 분신들처럼 쉽사리 부서지지 않았고 오히려 본체의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닥에 박았던 뿌리들이 요동치며 나무 속에서 튀어나오더니 불이 붙은 채 니엘을 향해 움직였다.

“칫.”

니엘이 빠르게 자세를 낮춰 그리브를 휘두를 준비를 하려는 찰나.

“이빨벼림. 검격증폭!”

빽빽했던 나무숲의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콰드드득!

불붙은 나무들이 횡으로 썰려 나갔다.

니엘은 제 자리에 멈춘 채, 동그래진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쪼개진 드라이어드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드라이어드에게서 옮겨 붙은 불길이 나무 바닥으로 번져나가며 뜨거운 열기가 솟구쳤고.

그 너머에 주선오가 서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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