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
“박 소장!”
안세인과 권재경, 주선오, 김지석까지. 지켜보던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박효진이 총을 놓치고는 가슴팍을 부여잡았다.
잔뜩 구겨진 얼굴로 몇 걸음 뒷걸음질 치더니 곧 털썩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선오가 빠르게 박효진에게 다가갔다.
“…대체 이게 무슨 짓….”
안세인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박효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박효진은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순간 박효진을 부축하던 주선오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뭡니까?”
주선오가 물었다.
박효진은 가슴을 부여잡았던 손을 떼보였다.
하얀 가운에 피 같은 것은 전혀 번져있지 않았다.
“…총을 쏜 게 아닌가요?”
주선오가 놀란 눈빛으로 박효진을 바라보았다.
박효진은 자신을 부축한 주선오의 손을 밀어내며 웃었다.
“하하하. 놀라셨죠?”
그러더니 연구 가운의 단추를 풀었다.
가운 안에는 푸른빛이 감도는 검은 조끼를 입고 있었다.
아무 무늬도 없고 그저 대충 가죽을 재단해서 만든 것 같은 모양새의 조끼였다.
그리고 왼쪽 가슴 부근에 납작하게 눌러붙은 총알이 붙어 있었다.
“짠!”
박효진이 경쾌하게 말하며 조끼를 가리켰다.
“이걸 믿고 쏘긴 했는데 아프긴 아프네요. 하하하.”
“…하아.”
안세인이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돌렸다.
권재경 역시 조금 굳은 표정으로 박효진을 바라보았고, 김지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박 소장님. 의도는 알겠지만 너무 놀라서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선오 역시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 차례 박효진을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결과물인 겁니까?”
“하하하. 죄송해요. 하지만 다들 기대하고 계시는게 보여서 저도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해봤는데 좀 심했나요?”
“네.”
김지석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앞으로는 미리 말 하고 놀래키는게 좋을 것 같은데, 박 소장.”
안세인이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박효진에게 한 마디 던졌다.
둘의 연타에 금세 시무룩해진 박효진이 중얼거렸다.
“그럼 놀래키는 게 아니잖아요.”
살짝 한숨을 내쉰 주선오가 박효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박효진이 주선오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어쨌든, 그때 게이트 브레이크 영상을 보셨으면 다들 아실거예요. 그 놀이 특공대원들의 총알을 튕겨냈던거.”
“…아. 혹시 그게.”
권재경이 조금 커진 눈으로 안경을 고쳐썼다.
박효진이 자신의 조끼를 가리켜보였다.
“네. 놀의 가죽으로 만들어본 방어구에요.”
안세인과 김지석, 주선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것이 자신이 원하던 반응이었던 건지, 박효진은 모두를 둘러보며 씩 웃었다.
그에 김지석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려 하자, 박효진이 반듯하게 세운 손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물론 오늘 이 시연을 위해서 사전에 충분한 검토는 거쳤으니까 잔소리는 그만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잔소리라뇨. 다 안전을 위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김지석이 여전히 주름진 미간을 유지하며 말했다.
그런 김지석의 어깨를 두드린 안세인이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어쨌든 박 소장이 연구에 실패해서 비관한 자살이 아니라는게 다행이네.”
“하하하. 전 자살 같은 거 할 생각 전혀 없는데요?”
한껏 웃음을 터트린 박효진은 바닥에 떨어졌던 총을 주워들었다.
“근데 도아 씨는 전혀 놀라질 않네.”
안세인이 자리에 앉아있던 나를 보며 말했다. 박효진 역시 가볍게 투덜거렸다.
“그러게요. 윤도아 씨도 똑같이 놀랄 줄 알았는데.”
“예상했었어요.”
내 말에 오히려 박효진이 놀란 모습을 보였다.
“네? 아…. 하긴. 그때 현장에 있었던 분이라 눈치채셨나 보네요.”
박효진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추측한 이야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박효진이 스스로에게 총을 쐈을 때만 해도 놀랐지만, 곧바로 눈치채긴 했다.
회귀 전 놀의 가죽으로 방어구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방어구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기에 저런 시연을 하는구나 싶었다.
“이건 시연을 위해서 대충 만든 거라 완성품은 아니에요. 그리고 아시겠지만.”
박효진의 시선이 다시 내게 향했다.
“총알은 막지만 칼은 막지 못했잖아요?”
내가 놀의 뒷목을 찔렀던 것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내 힘과 가진 무기 덕분에 더 수월하게 뚫은 것도 있긴 했지만, 잘 벼려진 칼이라면 놀의 가죽을 베어내는 것은 꽤 쉬웠다.
“저랑 연구소 직원들이 테스트 해봤을 때는 웬만해서는 안 찢기더라고요. 그래서 꽤 쓸 만 할 것 같긴 한데, 각성자분들이랑은 또 다르니까. 사실 게이트 안에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가호자가 아니라서 그것까지는 직접 테스트를 해볼 수가 없어서.”
박효진이 아쉬운 듯 말하며 우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대신 테스트 해달라는 거네.’
안세인 역시 박효진의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권재경을 돌아보며 물었다.
“흠. 그렇네요. 그럼 우리 중에 한 명이 테스트를 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러더니 나와 주선오를 보며 중얼거렸다.
“도아 씨한테 이런 걸 테스트 해달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선오는 기관 사람이 아니라서 좀 그렇고.”
솔직히 이중에서 지금 시점에 저런 방어구가 필요한 사람은 없었다.
안세인이야 워낙 맷집이 세고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었고, 내게는 오히려 저런 방어구가 성가셨다.
주선오 역시 그렇게 느낄테고, 권재경의 경우에는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방어구를 양보할 터.
지금 상황에서 저 방어구를 착용하기에 가장 좋은 사람은.
나는 김지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김지석 역시, 살짝 앞으로 나서며 안세인에게 말했다.
“제가 테스트 해 봐도 될까요?”
이곳에서 아직 게이트에 가지 않은 유일한 가호자.
안세인의 눈이 다시 동그래졌다.
“김 이사가? 아! 얼마 전에 가호 받았다고 했었죠?”
안세인이 짝 손뼉을 치더니 말했다.
“네.”
“좋아요. 그럼 김 이사님이 테스트 해주는 걸로 하죠. 어차피 첫 게이트는 권 선생님이랑 갈 거니까 심하게 위험하지도 않을 거고.”
권재경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오, 이사님 가호 받으셨어요? 축하드려요.”
이야기를 처음 듣는 건지 박효진이 축하인사를 건넸다.
김지석이 조금 수줍은 듯 웃었다.
다시 턱을 만지작거리던 박효진의 눈이 김지석을 훑었다.
“그럼 이사님 사이즈에 맞게 제작해야겠네요. 그리고 가죽에 한계가 있어서 많이 만들지는 못하는데, 대충 살펴보니까 남는 가죽으로 작은 방탄복을 하나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박효진의 시선이 이번에는 권재경에게 향했다.
“그래서 제 생각인데 그건 나라한테 주는 건 어떨까요?”
“…나라한테요?”
권재경이 놀라며 물었다.
‘좋은 생각이야.’
나는 박효진의 말에 동의해 고개를 끄덕였다.
기관에서는 나라의 가호를 키울 생각으로 나라와 함께 보너스 게이트에 입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보너스 게이트라고 해도 6살 아이를 맨몸으로 들여보내는 것이 다들 불안했을 터.
“오. 좋은 생각인데, 박 소장.”
안세인이 손가락을 딱 튕기더니 역시 권재경을 바라보았다.
김지석 역시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좋은 생각이네요. 그렇게 하는 걸로 하시죠.”
권재경이 잠시 시선을 떨구며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곧 고개를 꾸벅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아뇨. 아무리 보너스 게이트라도 6살짜리 애기를 데리고 들어간다는 게 아빠 입장에서는 쉬운 결정이 아닐 테니까요. 이렇게라도 해드려야죠.”
안세인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박효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총을 다시 서류 가방 안으로 넣었다.
“그럼요, 그럼요. 일단은 테스트가 급하니까 김 이사님 것부터 제작해볼게요. 참, 그리고.”
박효진이 이번에는 탁자에 올려져있던 박스를 열었다.
“짠!”
그 안에서 꺼내든 건 하얀색의 길쭉한 보호대 두 개였다.
“이건 놀 뼈로 만든 팔 보호대 입니다.”
“보호대?”
“네. 놀 뼈가 강철 이상으로 단단하지만 무게가 무척 가볍더라고요.”
박효진이 팔 보호대 하나를 훅 던져 올렸다가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엄지와 검지만을 이용해서 보호대를 들어 보이더니 다른 손으로 보호대를 톡톡 두드렸다.
“그렇죠?”
박효진이 내게 보호대를 건네며 물었다.
나는 박효진이 건넨 보호대를 받아 들었다.
확실히, 무게가 다른 방어구들에 비해 훨씬 가벼웠고 꽤 단단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보호대를 옆의 주선오에게 넘겼다.
박효진이 보호대를 한 번씩 살펴보는 우리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급한 상황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만들어봤어요. 무기가 있는 다른 분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관장님 같은 경우는 칼을 맞받아치는 게 조금 불편하셨잖아요?”
안세인이 보호대를 살펴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긴 하죠. 나야 피하거나 너클로 막아내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이런게 유용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물론 이걸로 방어구를 만들면 더 튼튼하겠지만, 그러자니 활동성도 별로고 효율성이 떨어질 것 같아서요.”
박효진이 덧붙여 설명했다.
“사실 칼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도 했었거든요. 근데 칼은 게이트 안에서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서요.”
칼은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무기였다.
박효진의 말대로 게이트 안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칼이었고, 때문에 칼을 사용하는 각성자가 많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급 이상으로 올라가기 힘들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주선오처럼 본인의 스킬과 칼이 시너지를 일으키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자신의 특성이나 스킬과 무기가 맞지 않는다면 게이트 안에서 살아남기는 더욱 힘들었다.
‘꽤 탁월한 판단이야.’
게이트 안에서 살아남는 것에 무기보다 중요한 것은 방어구였다.
특히 김지석 같은 가호자, 게이트를 들어가기 전의 가호자들에게는 저런 방어구가 제공된다면 굉장히 유용할 터.
“물론 뼈가 무한정으로 있는 게 아니라서 수량이 얼마 나오지는 않을 것 같지만요.”
박효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김 이사님이 이것도 같이 테스트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박효진이 팔 보호대를 들고 있는 김지석에게 말했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김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아마 깨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편안하게 테스트 해주시면 돼요. 이것도 좀 더 가공하긴 해야하니까 방탄복 완성 될 때 같이 드릴게요.”
회귀 전 발표했던 테스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아마 그때도 김지석이 나서서 테스트를 진행했으리라.
“연구 성과 발표는 여기까지입니다.”
박효진이 자신이 입고 있던 가죽 조끼를 벗어 박스에 넣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탁자 위의 팔 보호대와 김지석에게 받아든 팔 보호대를 마저 넣은 후 박스를 닫았다.
“고생 많았어요. 앞으로도 수고해줘야겠지만.”
안세인이 웃으며 박효진에게 말했다.
“네, 그래야죠.”
박효진이 바닥에 떨어져있던 하얀 가운을 집어 들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회귀 전에 세간에 발표됐던 것도 이 두 가지가 전부였다.
아마 테스트가 끝나기 전까지는 이 사실을 공표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만약 그 전에 발표할 생각이었다면 아예 이 자리가 회견자리가 됐었겠지.
용건이 끝난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안세인이 나를 붙잡았다.
“아, 도아 씨. 잠깐만요. 한 가지 상의하고 싶은 게 있어요.”
‘상의?’
나는 멈칫하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안세인이 물었다.
“연구 결과가 꽤 괜찮은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좋네요.”
“선오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우리에게만 물어보는 것을 보니 아마 권재경이나 김지석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같았다.
안세인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꺼내는 이야기인데, 게이트 브레이크를 잘만 막는다면, 우리가 역이용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역이용이라면….’
나는 안세인을 바라보았다.
안세인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우리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