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59화 (60/201)

제59화

나는 안세인이 어떤 말을 꺼내려는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역이용이요?”

주선오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래. 물론 그렇게 하려면 일단 실력 있는 각성자들이 충분히 많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깔리긴 하지만.”

안세인이 설명했다.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부러 일으켜서 몬스터 시체를 수급하시려는 건가요?”

“…네?”

내 물음에 주선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안세인은 방긋 웃었다.

“맞아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게이트가 브레이크를 일으키기까지 그대로 둔다고요?”

주선오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되물었다.

“당장 그렇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런 방법에 대해서 두 사람의 의견을 묻는 거예요.”

안세인이 차분히 대꾸했다.

“너무 위험한 것 아닙니까?”

되묻는 주선오의 목소리에 걱정이 한가득 묻어났다.

“그러니까 전제가 필요하다고 말했지요. 적어도 강릉 게이트 브레이크를 막았을 때의 나와 권 선생님 정도 실력이 되는 각성자들이 많아야죠.”

안세인이 설명했다. 김지석이 덧붙여 말했다.

“그러려면 게이트 선정도 중요할 겁니다. 일단 도심과 멀리 떨어진 넓은 부지에 나타난 게이트여야 할테고, 게이트도 B급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겠죠.”

회귀 전에도 기관에서 몇 번 일부러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것도 지금처럼 연구에 사용할 몬스터의 사체를 얻기 위함이었다.

그때는 시작의 날로부터 3년이 지난 이후였다.

각성자들의 수도 꽤 있었고 그들의 실력도 안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반발은 거셌다.

대전과 목포의 게이트 브레이크 때문에 사람들은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킨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같은 상황이었다면 당연히 반대를 했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

일단 기관은 현재 비각성자들에게 상당한 신임을 얻고 있었다.

그리고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긴 했지만 한 도시를 초토화시킬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

안세인이 다시 말했다.

“지금 이 결과를 보면 게이트 브레이크에서 얻어낸 사체들로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걸 처음 게이트에 들어가는 가호자들에게 제공한다면, 게이트를 도는 게 훨씬 수월해질거라고 생각하고요.”

주선오가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아마 주선오가 생각이 많은 이유는 게이트 브레이크를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안세인이나 권재경은 강릉에서 게이트 브레이크를 겪었다.

그렇기에 C급의 게이트가 자신들의 실력으로도 감당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것이고.

“하지만 그러려면 너무 시간 낭비를 하는 게 아닌가요?”

주선오가 이의를 제기했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나 역시 의문을 가졌던 부분.

게이트 브레이크는 언제 일어날지 정확히 예측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게이트 브레이크를 막으려면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각성자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몇 날 며칠 동안 게이트가 브레이크를 일으키기를 기다리며 그곳을 지킨다는 것은 정말로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회귀 전이야 그러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었지만.

지금 그런 식으로 시간 낭비를 하겠다면 이 계획을 막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권재경이 꺼낸 말은 뜻밖이었다.

“나라의 가호를 활용해볼 생각입니다.”

“…나라의 가호요?”

내 물음에 권재경과 안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나라의 가호는 인도하는 하얀사슴입니다.”

권재경이 나를 보며 말했다.

“네. 기억해요.”

“아…!”

주선오 역시 권재경의 말에 눈치를 챈 듯 탄성을 내뱉었다.

주선오도 나라의 특성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라의 스킬 중에 예지라는 스킬이 있고요. 그 스킬을 사용하면 나라에게 위험이 닥칠 상황을 미리 알 수가 있어요. 하루 내의 시간이라 하루 안에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그 스킬을 이용한다면 모든 인원이 그곳에 메여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권재경이 차분히 설명했다.

“…하지만 그러면 나라가….”

주선오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권재경이 쓰게 웃었다.

“무조건 보호하는 게 나라를 위한 길이 아니라서 내린 결정입니다.”

나라를 본 지가 꽤 되어서 나라의 특성이 어떤 상태인지는 모르겠지만, 권재경이 저렇게 이야기하는데 말리는 것도 이상했다.

“네. 조건들이 잘 지켜진다면 괜찮을 것 같네요.”

주선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랭킹 1, 2위의 동의도 얻었겠다. 각성자들이 준비되면 진행해봐야겠네요.”

용건이 끝난 건지 안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탁자 위의 박스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어쨌든 우선은 게이트 브레이크 보다는 이거에 대한 테스트가 먼저겠죠.”

“네. 완성되면 바로 연락 드릴게요.”

박효진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테스트 결과가 나오면 연락을 주겠다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연구소를 나섰다.

* * *

“…이게 모래 슬라임?”

윤도빈이 작은 아이 같은 크기의 모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휴…. 구경거리가 된 기분이 별로 좋은 건 아니군요.”

“아하하. 근데 귀여운걸?”

윤도빈이 웃으며 모부의 삿갓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모부가 휴흇거리며 화를 내더니 도빈이의 손이 모부의 삿갓 속으로 쑥 들어갔다.

“우왓!”

나는 작은 마나구를 만들어 모부의 머리로 날렸다.

펑!

작은 폭발이 일어났고 모부의 머리를 이루던 모래들이 바닥으로 흩어져 쏟아졌다.

“쿄쿄쿄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습니다, 주인.”

뒤에서 레부가 웃었다.

‘확실히 까다롭네.’

모부가 나를 주인으로 모시고는 있지만, 나 이외의 주변 사람들에게 대하는 태도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주선오의 칼을 빼앗아 먹고 어린 아이의 크기로 줄어든 지 두 달이 되어갔다.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모부는 아직도 반항적이었다.

“레부, 다시 삼켜.”

“쿄쿄쿄쿄.”

레부가 다시 모부를 꿀꺽 삼켰다.

윤도빈이 모부에게 잠깐 삼켜졌던 손을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훌훌 털었다.

그리고는 거실의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참. 그거 들었어?”

“뭘?”

“김 이사님 각성한 거.”

며칠 전, 테스트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연락을 받긴 했었다.

테스트를 했다는 것은 김지석이 놀의 사체로 만든 방어구들을 사용해 게이트를 클리어했다는 것이니, 김지석의 각성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충. 넌 어디서 들었어?”

사실 김지석이 각성을 했다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닐 사람은 아니었다.

몇몇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이야기를 했을 텐데 알기로는 윤도빈과 김지석의 접점은 크게 없었다.

“아. 교진 형 따라서 개의 이빨 사무실 놀러갔다가 만났었거든.”

각성 후 게이트를 신교진과 함께 돌더니 그 이후로 꽤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의 이빨 무리에 들어간 건 아니었다.

윤도빈은 어느 정도 각성자로써 자리를 잡아 국내 랭킹 7위에 올랐고, 곧 자신의 무리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처음으로 무리를 만든 주선오에게서 무리에 대한 조언들도 얻고 하는 모양이었다.

“근데 아직 무기를 얻지 못해서 좀 고민인 모양이야. 나야 뭐 누나 덕분에 레부한테서 얻은 걸 계속 쓰긴 하지만.”

윤도빈이 턱을 괸 채 거실 한쪽에 앉아 아이템들을 꺼냈다 넣었다 하는 레부를 보며 말했다.

윤도빈은 지난번 남원의 S급 게이트에서 레부에게 얻었던 낫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낫은 칼과는 다르게 보관하고 들고 다니기가 애매한 무기였다.

그래서 낫을 보관할 용도로 레부의 젤리 일부를 떼어주었다.

윤도빈은 그것을 아대처럼 왼쪽 팔목에 끼운 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오 형한테 조언을 구하려고 왔던 것 같더라고.”

‘김지석한테 무기라.’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지난 번 보았던 토끼 신의 가호는 전투보다는 회피에 특화되어 있는 것 같았다.

회귀 전에도 김지석이 어떤 무기를 사용한다든지 그런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선오가 뭐래?”

“일단 칼은 아닌 것 같다던데.”

하긴 김지석이 나나 주선오, 권재경처럼 칼을 휘두르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선오 형도 생각해 본댔어.”

어쨌든 무기는 본인에게 맞는 것을 잘 골라야했다.

남이 추천해준다고 해도 본인에게 맞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그래. 뭐, 알아서 잘 고르겠지. 그리고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응?”

“며칠 외국에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아.”

내 말에 윤도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언제? 왜?”

나는 거실 벽 한켠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았다.

지금이 4월 말.

“아마 다음 달 안에. 확실해지면 다시 얘기해줄게.”

내 말에 윤도빈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레부에게 시선을 돌렸다.

레부는 바닥에 늘어놓은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집어들어 꼼꼼히 갈고 닦으며 애지중지 하고 있었다.

“그래, 뭐.”

“선오한테도 따로 말은 하겠지만, 나 없을 때 뭔가 내 앞으로 일이 들어오거나 하면 대신 처리 좀 해달라고 해줘.”

윤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 * *

루마니아의 브란 성은 드라큘라 성이라고 알려진 곳이었다.

그 덕에 관광지로 유명해졌고 브란 마을 사람들 역시 그 성에 엮인 괴상한 이야기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브란 성은 드라큘라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성이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말이다.

루마니아의 각성 기관장 도린은 각성자 라리사가 들고 온 보고서를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엔 관광객들까지….”

“네. 파견했던 각성자 5명 중에 3명은 실종됐고 2명은 사망했어요.”

라리사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말했다.

몇 주 전, 브란 마을에 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밤사이에 한 여자가 죽은 채 발견 된 것이었다.

여자의 목 부근에는 두 개의 구멍이 남아 있었다.

“확실히, 게이트 브레이크 같은데.”

도린이 수염이 가득한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브란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짓을 벌인 게 드라큘라라고 믿고 있어요. 근처에서 게이트는 본 적이 없다면서.”

라리사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확실히 각성자를 파견해서 확인했을 때도, 브란 마을이나 브란 성 근처에서 게이트는 발견하지 못했다.

헌데 밤마다 뱀파이어의 습격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드라큘라의 괴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로 충분했다.

하지만 이러한 소문은 오히려 관광객들의 시선을 더욱 끌어모았고 브란 마을에는 여느 때보다도 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렸다.

그리고 결국, 관광객 역시 실종되거나 사망한 채 발견되고 만 것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루마니아 정부와 각성 기관은 이 사실을 쉬쉬할 수 없었다.

도린은 결심을 세운 듯 라리사를 보며 말했다.

“피해를 더 확산시킬 수는 없으니, 일단 브란 성과 마을 주변을 통제하지. 그리고 직접 가봐야겠어.”

“직접 가신다고요?”

라리사가 조금 겁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야지. 나도 나름 세계 랭커인데 손가락이나 빨면서 남들한테 도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끄트머리에 걸쳐있긴 했지만 그래도 도린은 세계 랭킹 10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랭커였다.

“그건 그렇지만….”

도린은 겁먹은 라리사를 보며 웃었다.

“넌 안 가도 돼. 혹시라도 내가 갔다가 잘못됐을 경우에 기관을 유지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만약에 내가 내일 연락이 없으면 세계 각성 협회에 지원 요청 부탁해.”

도린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라리사의 어깨를 살짝 짚었다.

라리사가 어두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외투와 차키를 챙겨든 도린이 바로 관장실을 나섰다.

라리사는 잠시 도린이 나간 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휙 내젓고는 브란 성과 마을 주변의 통제를 위한 연락을 취하기 위해 움직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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