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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62화 (63/201)

제62화

브란에 도착하자 마을 입구를 통제하는 경찰들이 보였다.

경찰의 손짓에 차를 세운 후 창문을 내리자 경찰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라? 혹시 윤도아 씨 아닌가요?”

각성증을 내밀기도 전에 경찰이 나를 알아보았다.

나는 각성증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옆에 분은?”

루크가 허둥지둥 각성증을 꺼내 경찰에게 내밀어 보였다.

루크의 각성증을 꼼꼼히 확인한 경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차를 출발시키려는데 경찰이 한마디 덧붙였다.

“참, 한 시간 전쯤에 각성 기관장님이 들어가셨습니다.”

‘한 시간 전이라면.’

해가 진 시간과 비슷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뱀파이어들도 활동을 시작했을 터.

‘늦지 않았어야 할 텐데.’

마을로 들어선 나는 길가에 대충 차를 세운 후 차에서 내렸다.

루크는 잠시 머뭇거렸다.

“뭐해요? 가요.”

내가 창문을 톡톡 치며 말하자 루크가 금세 차 밖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방해가 될까 봐 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었던 것 같았다.

“좀 빨리 가죠.”

“네.”

우리는 빠르게 마을을 가로질렀다.

탐지로 주변을 살핀 결과, 루마니아 기관장은 브란 성 근처에 있는 것 같았다.

성으로 들어가는 매표소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이 정도 문을 뛰어넘는 건 쉬웠지만, 루크에게는 그렇지 않을 터였다.

“잠깐 있어요.”

나는 루크를 돌아보고 말했다.

루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나는 즉시 도약했다.

훅!

매표소의 지붕 위에 올라서자.

언덕길 끄트머리에 한 인영이 보였다.

커다란 부메랑을 든 인영은 언덕길을 달려 브란 성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바닥으로 뛰어내린 후, 매표소의 잠긴 철창문을 열었다.

철컹!

나는 열린 철창문을 밀어 루크를 안으로 들이며 심연의 불꽃을 꺼냈다.

“레부.”

“쿄!”

레부가 튀어나왔다.

루크가 살짝 흠칫했지만 지난번 모래성에서 본 적이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나는 레부를 보며 짧게 말했다.

“불.”

“쿄!”

레부가 바로 불을 뱉어냈다.

마나로 불을 붙잡은 후 루크에게 말했다.

“성으로 올라가는 사람을 봤어요. 먼저 쫓아갈 테니까 레부랑 같이 와요.”

“네.”

루크가 내 옆에 떠있는 레부의 불을 멍하니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형체를 갖춘 레부에게 명령했다.

“루크랑 같이 성으로 와.”

“쿄, 알겠습니다.”

레부의 대답을 뒤로 하고, 나는 즉시 도약했다.

훅!

후욱!

몇 번의 도약을 통해 정원을 가로지르고, 성의 지반이 된 바위를 밟고 성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탓.

가볍게 착지한 나는 성 안을 내려다보았다.

네모 모양으로 생긴 성 중앙에 우물이 있는 작은 마당이 있었다.

사사삭.

성안에서 무언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뱀파이어였지만, 평범한 뱀파이어의 모습이 아니었다.

‘감염자들.’

뱀파이어에게 물려 피를 모조리 빼앗긴 후, 보스 몬스터인 드라큘라에게 피를 주입당해 조종당하고 있는 사람들.

안타깝지만, 이미 죽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죽이는 것을 망설이는 순간, 나 역시 그들과 같은 꼴이 될 것이 분명했다.

사사사삭.

감염자들이 성을 기어올라 반대편의 지붕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나는 레부에게 얻어온 불을 여러개로 나누어 창을 만든 후, 놈들이 기어 넘어간 반대편의 지붕으로 도약했다.

훅!

가볍게 착지한 후 아래를 내려다보니.

감염자들이 아래의 사람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부메랑을 든 사람.

조금 전 언덕길을 달려가던 사람이었다.

‘저 사람이 기관장이겠지.’

그는 부메랑을 들어올려 감염자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까닥여 주변에 떠있던 불꽃창들을 감염자들에게 쏟아 부었다.

파바박!

불꽃창들은 정확히 감염자들의 몸을 꿰뚫었고, 그들은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툭.

투둑.

잠시 바닥에서 꿈틀거리던 감염자들은 곧 움직임을 멈추었다.

남자가 부메랑을 내리고 당황한 채 감염자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불꽃창들을 거둬들이자 남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다부진 남자였다.

‘루마니아의 각성 기관장.’

나는 그의 정보를 살폈다.

[도린]

[메뚜기쥐 신의 가호]

[독을 역이용하는 메뚜기쥐]

[전용 특성 : 매개체 lv.2]

[전용 스탯 : 민첩 31/치명 41]

[전용 스킬 : 독면역 lv.2/즉사 lv.3]

[특성 스킬 : 저장 lv.3/확산 lv.2]

‘…이 사람이 도린.’

회귀 전, 함께 시험을 치렀던 루마니아의 각성자가 자주 이야기하던 인물이었다.

루마니아 각성 기관의 초대 기관장이자, 원래대로라면 이곳에서 죽었을 각성자.

‘가호가 꽤 특이하네.’

독을 역이용하는 메뚜기쥐.

전용 스킬로 독면역을 갖고 있었다.

모든 신경독 면역.

즉, 도린이 신경독에 당해 죽을 일은 없었다.

오히려 매개체라는 전용 특성과 특성 스킬인 저장과 확산을 이용해 독을 역이용한다.

자신에게 들어온 독을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한 때에 확산시킬 수 있는 그런 스킬이었다.

신경독을 가진 몬스터를 상대하기에 아주 적합한 각성자였다.

‘전용 스킬도 좋고.’

전용 스킬 즉사는 치명 스탯과 연결된 스킬이었다.

이는 공격 시 확률적으로 몬스터를 즉사시킬 수 있는 것으로, 잡몹들을 처리할 때 매우 유용한 스킬이었다.

‘보스 급의 몬스터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게 아쉽군.’

“…윤도아…?”

도린이 겨우 입을 떼어 물어왔다.

대화를 나누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기에, 나는 일단 성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탓!

“헉!”

도린이 비명을 삼켰다.

촤악!

나는 성의 입구 계단 위쪽에 착지한 후 몸을 일으켰다.

도린이 커다란 푸른 눈으로 나를 보았다.

“…왜 이곳에…. 아니, 어떻게 벌써 왔습니까? 라리사에게는 내일 연락이 닿지 않으면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는데….”

도린은 조금 혼란스러워 보였다.

‘라리사.’

함께 시험을 치렀던 루마니아 각성자의 이름이었다.

“마침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왔었는데 이곳 기사를 봐서요.”

대충 둘러댔다.

“…그렇군요.”

도린의 눈이 내 앞의 계단에 놓여있는 마을 사람들의 시체로 향했다.

“…….”

도린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죽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죄책감 등이 섞여 있는 표정이었다.

“뱀파이어에게 물린 사람들은 이미 그 순간 죽은 거예요.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내 말에 도린이 눈을 질끈 감더니 고개를 돌렸다.

잠시 바닥을 내려다보던 도린이 문득 생각난 듯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아. 전 도린입니다. 루마니아 각성 기관장이고요.”

도린이 자신을 소개했다.

“윤도아입니다.”

그때 언덕길의 끝에 루크와 레부가 나타났다.

“!”

도린이 부메랑을 움켜쥐었다.

레부를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제 부하니까 괜찮아요. 저쪽은 저랑 같이 온 캐나다 각성자고요.”

“아…. 그렇군요.”

도린은 계단 아래까지 다가온 루크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루크의 특성을 들은 도린은 그제야 아무렇지 않게 나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근데 저건….”

루크가 계단에 쓰러져 있는 마을 주민들을 발견했다.

“뱀파이어한테 물려서 실종됐던 주민들이에요. 도린, 혹시 이 중에 각성자도 있나요?”

내 물음에 도린은 천천히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곧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지금까지 실종된 각성자가 몇 명인가요?”

“3명이요. 아, 조금 전에 각성자 한 명이 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실종됐던 각성자인가요?”

“아뇨. 어제 파견을 나온 각성자였습니다. 같이 온 둘은 죽었다고 들었고, 마을에 도착해서 만났는데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도린이 설명했다.

“상태가요?”

잠시 침묵하던 도린이 입을 열었다.

“이 마을 사람들처럼 막무가내로 저한테 덤벼들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피를 빨린 건 맞는 것 같습니다.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얼굴도 창백했어요. 그리고 제가 따라오는 걸 확인하면서 이곳으로 온 것 같고요.”

감염된 것이 확실했다.

드라큘라는 그 각성자를 이용해서 도린을 유인한 후 감염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도린이 죽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겠지.’

회귀 전, 도린은 그 감염자를 따라 성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브란 성 내부는 좁은 공간이 많았다.

도린의 무기로 보이는 손에 든 커다란 부메랑은 그런 곳에서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미로같이 복잡한 내부는 숨어 있다가 습격하는 데에 최적화 되어 있었다.

‘들어가 봐야겠군.’

나는 레부에게 빌렸던 불을 던지고는 심연의 불꽃을 내밀었다.

레부가 불덩어리를 삼키고는 알아서 단검 속으로 쏙 들어갔다.

“두 분은 여기 계세요.”

내 말에 도린과 루크가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은요?”

“전 안에서 그 각성자를 찾아봐야겠네요.”

“그럼 같이….”

앞으로 나서려던 도린이 멈칫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 모양이었다.

“루크 혼자 이곳에 둘 수는 없어요. 혹시 모르니까 여기서 루크를 보호해 주세요.”

내 말에 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나는 둘에게서 등을 돌린 채 성을 바라보았다.

내 탐지 스탯은 50을 찍은 상태였다.

이제 웬만한 형태의 구분은 물론 약간의 디테일까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 번 봐볼까.’

성에 집중하는 순간.

성의 내부가 한 번에 느껴졌다.

관광객들을 위한 온갖 전시 물품들이 놓여있는 여러 개의 방.

그 방을 잇는 좁은 복도와 길.

바깥을 볼 수 있는 테라스.

깊숙이 감추어 있는 비밀 통로들.

벽 사이를 기어다니는 쥐들과 작은 벌레들의 움직임.

그리고 그 안에 숨어있는 뱀파이어와 감염자들까지.

놈들은 성의 지하에 있었다.

‘생각보다 숫자가 적은데.’

어림잡아 서른 정도.

아마 도린이 한 차례 놈들을 정리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저 중에 드라큘라도 있으리라.

아직 인물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어떤 놈이 보스인지 알 수는 없었다.

‘저놈들은 나중에.’

나는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감염자를 바라보았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방에 조용히 숨어있는 한 인영이 있었다.

‘저놈이군.’

도린이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터.

나는 성안으로 들어갔다.

성안은 어두웠다.

내부의 불을 켜두지 않아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문제없었다.

탐지를 이용해 내부의 구조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곧장 감염자가 숨어있는 방으로 향했다.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감염자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삭.

작은 움직임이 들려왔다.

감염자가 방 입구의 사각지대로 이동했다.

도린이었다면 이 방을 지나는 순간 감염자에게 당했겠지만.

‘상대가 틀렸어.’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촥!

기다렸다는 듯 예리한 칼날이 내 목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카앙!

나는 심연의 불꽃으로 칼날을 막아냈다.

“!”

심연의 불꽃에서 나오는 은은한 빛이 감염자의 얼굴을 비추었다.

붉게 물든 창백한 피부 위의 퀭한 눈동자가 내게 머물렀다.

‘도린이 아니라서 실망했나.’

나는 왼손으로 그림자 단검을 뽑아 감염자에게 찔러 넣었다.

어둠 속이라 절삭력이 두 배로 뛴 그림자 단검이 감염자의 배 깊숙이 박혔다.

푹!

하지만 감염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곧바로 다른 손의 칼을 휘둘렀다.

생전에 나처럼 단검 두 자루를 사용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나한테 덤비기는 이르지.’

나는 그림자 단검을 뽑아냈다.

“마나 방패.”

촤륵!

내 앞에 생성된 마나 방패가 감염자의 단검을 막아냈다.

캉!

자신의 공격이 모두 막히자 감염자가 잽싸게 물러났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감염자는 빠르게 움직여 방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향했다.

다시 한 번 매복을 할 모양이었지만.

‘다 보인다.’

나는 느긋하게 감염자의 뒤를 따랐다.

좁다란 길을 지나 감염자가 숨은 방에 도착하자.

역시 또 한 번 칼날이 나를 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칼날이 여러 개의 잔상을 만들며 내게 쇄도했다.

‘스킬.’

감염자이기 이전에 각성자였던 사람이었다.

죽어서 드라큘라에게 조종당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가호는 남아 있었다.

이것이 회귀 전 각성자들의 피해가 컸던 이유 중 하나였다.

아직 이맘때쯤에는 사람을 닮아있는 몬스터가 많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갑자기 각성자가 감염자가 되어 공격을 해 온다면.

웬만한 사람들은 감염자를 공격하는 것을 망설일 것이다.

‘아까의 도린처럼.’

나는 다시 마나 방패를 이용해 감염자의 공격을 막아냈다.

카가가각!

칼날의 잔상들이 마나 방패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비명을 만들어냈다.

나는 마나 방패를 없애며 심연의 불꽃을 내질렀다.

감염자가 다른 단검으로 내 공격을 막으려했지만.

콰직!

내 힘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심연의 불꽃을 감염자의 가슴에 꽂아 넣었다.

푹!

가슴에 박힌 심연의 불꽃에서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뱀파이어의 약점은 불.’

불길에 심장이 꿰뚫리는 순간, 드라큘라는 더 이상 감염자를 조종할 수 없게 된다.

감염자가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의식이 조금 남아있는 것 같았다.

“미안해요.”

내말에 감염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생기가 도는 눈빛이었지만, 감염된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잠시 입을 뻐끔거리던 그녀는 손에 쥔 단검들을 떨어트렸다.

챙!

챙강!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뭐지?’

구깃한 쪽지였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자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실이 끊긴 인형처럼.

털썩.

바닥으로 쓰러졌다.

나는 그녀가 내게 건넨 쪽지를 펼쳐보았다.

‘…이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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