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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65화 (66/201)

제65화

거대한 핏빛 웅덩이는 브란 성 정원의 하늘을 가득 메웠다.

내리쬐던 달빛이 가려 정원이 어두워졌다.

형태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확한 놈의 동작을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탐지에 집중해야겠네.’

나는 두 단검을 꽉 쥐며 드라큘라를 바라보았다.

놈은 기품이 넘치는 동작으로 양팔을 벌린 채 위를 바라보았다.

그 동작에 반응하듯 하늘에 떠있는 핏빛 웅덩이가 크게 일렁였다.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에 나는 빠르게 마나 방패를 시전했다.

“마나 방패.”

촤르륵!

그리고 거의 동시에 핏빛 웅덩이에서 수많은 가시들이 돋아나 바닥을 내리찍었다.

촥! 촤악!

콱!

콰직!

다행히 마나 방패를 뚫을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다.

‘루크랑 도린은?’

나는 빠르게 둘이 서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레부가 둘의 위로 거대한 불덩이를 만들어내 드라큘라의 가시들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저쪽은 신경 쓸 필요 없겠어.’

나는 살짝 웃고는 다시 사방에 꽂힌 드라큘라의 가시들을 바라보았다.

가시들은 주변의 땅과 바닥을 내리찍은 채 꿈틀거렸다.

그러다가 우뚝 움직임을 멈추더니, 다시 피의 웅덩이로 흡수되었다.

촤르륵!

되돌아가는 몇몇 가시들의 끝에 무언가가 꿰여 있었다.

‘…쥐?’

근처에 숨어 있던 쥐나 새 같은 작은 동물들이었다.

가시들은 그것을 끌고 웅덩이로 빨려 들어갔다.

웅덩이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고오오—.

그러더니 곧 무언가를 땅으로 떨어트렸다.

툭. 투둑.

하얀 뼈였다.

조금 전 가시에 꿰어갔던 작은 동물들의 뼈.

핏빛 웅덩이에서 동물들을 뼈만 남긴 채 모조리 집어 삼킨 것 같았다.

‘위험하군.’

사람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터.

분명 저렇게 빨려 들어간다면 역시나 백골이 되어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물러설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이제 드라큘라를 다시 관속으로 되돌려 보낼 시간이었다.

‘힘이 꽤 소진된 모양이지?’

저런 작은 동물들로라도 기력을 회복해야 할 정도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드라큘라는 자신의 피를 이용해서 무기를 구현해왔다.

하지만 불꽃과 피가 부딪혀 상쇄되면서 피는 조금씩 닳아왔고 이제 그 한계가 가까워진 것이다.

‘아마 이 웅덩이가 놈의 피의 전부.’

이것을 끊어낸다면, 드라큘라 역시 더 이상은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그걸 증명해주는 것이, 아까부터 놈은 내게 절대로 등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다.

‘내가 놈의 뒤를 잡으면 돼.’

드라큘라는 다시 한 번 핏빛 웅덩이에서 가시들을 내보내려 하고 있었다.

나는 놈의 뒤쪽을 바라보며 스킬을 시전했다.

“블링크.”

훅!

눈앞에 드라큘라의 등이 나타났다.

그리고 등에서 솟아난 붉은 핏줄기가 보였다.

“캬!”

내 기척을 눈치챘는지 드라큘라가 다급히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내 팔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나는 심연의 불꽃을 휘둘러 드라큘라의 핏줄기를 잘라냈다.

서걱!

심연의 불꽃은 난쟁이들의 특별한 불꽃.

평범한 불로는 태울 수 없는 것도 심연의 불꽃이라면 충분히 태울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드라큘라의 피라든지.’

심연의 불꽃에서 일어난 불꽃이 드라큘라의 핏줄기를 타고 빠르게 위로 번지기 시작했다.

“캬아아….”

순식간에 모든 피를 잃은 드라큘라가 무릎을 꿇었다.

털썩!

동시에 드라큘라의 통제를 잃은 불붙은 핏덩이가 바닥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투두둑.

투둑.

“마나 방패.”

나는 내 머리 위로 마나 방패를 생성했다.

촤륵.

후두두둑.

거세게 내리는 폭우처럼 불타오르는 피가 마나 방패를 내리쳤다.

기묘한 현상이었다.

불타는 피의 비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크…, 크….”

드라큘라가 바닥을 더듬어 기며 떨어지는 피를 향해 손을 뻗었다.

드라큘라의 온몸이 뼈마디가 드러날 정도로 급속하게 쪼그라들었다.

놈이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이 가느다래진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덜덜 떨며 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기품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습.

“…캬….”

바닥에 쏟아진 자신의 피에 어떻게든 닿으려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미 놈의 피는 심연의 불꽃의 먹이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나는 놈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놈의 심장에 심연의 불꽃을 찔러 넣었다.

푹.

곧 심연의 불꽃의 날에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륵!

단검이 꽂힌 가슴부터 서서히 불이 번져갔다.

“캬아아악!”

드라큘라가 심연의 불꽃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쳤지만 나는 단검을 더욱 깊숙이 찔러넣었다.

사박.

불타오르던 가슴에서 까만 연기와 함께 회색의 재가 피어올랐다.

가슴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드라큘라를 뒤덮었고.

사라락—.

한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드라큘라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 * *

다음날 아침.

브란 성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경찰들은 마을 주민들의 사체를 수습하며 그새 몰려든 기자들과 구경꾼들을 통제하느라 바빴다.

라리사는 새벽에 드라큘라를 잡았다는 연락을 받고 한 달음에 브란 성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성의 입구 앞 작은 공터에 나란히 누워있는 각성자의 사체들을 발견했다.

“…맙소사.”

실종됐던 각성자들.

거기다가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연락이 닿았던 디나까지 죽어 있었다.

각성자들이 모두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이 조금 의아했지만.

라리사에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다들 고생 많았어요.’

라리사는 입술을 꾹 깨문 채 잠시 그들에게 묵념했다.

새어나오려는 눈물을 삼킨 라리사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기관장님은 어딨지?’

라리사는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브란 성 언덕길의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도린을 발견했다.

바위라도 되고 싶은 건지, 도린은 바위의 위에 앉아 꼼짝도 않고 있었다.

뭔가 넋이 나간 것 같은 얼굴.

“기관장님?”

라리사가 도린에게 걸어가며 그를 불렀다.

“…어.”

도린이 잔뜩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행히 진짜 바위가 되어 버린 건 아니었다.

“…괜찮으세요?”

밤을 새서 브란 성의 게이트 브레이크를 정리했으니 괜찮을 리는 없었다.

라리사는 질문을 바꿨다.

“어떻게 된 거예요?”

라리사의 질문에 도린이 중얼거렸다.

“윤도아 각성자가….”

“윤도아 각성자가?”

라리사가 도린의 말을 반복하며 재촉했다.

어제 도린이 이곳으로 출발한 후, 라리사는 곧바로 세계 각성 협회에 지원을 요청했었다.

도린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에.

그리고 이미 윤도아가 이곳에 와있다는 연락을 받았기에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윤도아 각성자가 왜요?”

라리사가 다시 물었다.

도린은 어젯밤의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윤도아와 드라큘라의 싸움뿐이었다.

세계 랭킹 10위이자 루마니아의 랭킹 1위인 도린이었지만, 그 싸움에 끼어들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브란 성 정원을 피와 불꽃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무기들이 휩쓸었고.

윤도아와 드라큘라는 눈으로 쫓기 벅찰 정도의 움직임으로 격돌했다.

‘진짜 사람이 맞는 건가?’

다시 생각해봐도 어처구니없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결국 도린은 이야기하기를 포기했다.

“…대단하더라고.”

도린의 대답에 라리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네?”

그때 도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언덕길 아래로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기관장님?”

라리사의 부름에도 도린은 걸음을 옮기기에 바빴다.

무언가가 있나 싶어 언덕길 아래를 내려다보니, 두 사람이 올라오고 있었다.

한 명은 굉장히 익숙한 얼굴이었다.

“저건…!”

세계 랭킹 1위 각성자 윤도아였다.

‘윤도아!’

라리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후다닥 도린을 쫓아 언덕길을 내려갔다.

* * *

나는 도린과 함께 다가오고 있는 여자를 알아보았다.

‘라리사!’

반가운 얼굴이었다.

회귀 전 나와 함께 시험을 치렀던 각성자였고 도린의 이야기를 내게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살짝 미소를 띠고는 라리사의 정보를 살폈다.

[라리사]

[멧돼지 신의 가호]

[성난 멧돼지 범보다 무섭다]

[전용 특성 : 역습의 엄니 lv.1]

[전용 스탯 : 근력 48/맷집 49]

[전용 스킬 : 피부강화 lv.4/저돌 lv.2]

[특성 스킬 : 역습 lv.2]

능력치가 꽤 준수한 편이었다.

아직 전용 특성 레벨업은 하지 못했지만 스탯과 스킬들이 어느 정도 커버하고 있는 수준.

회귀 전, 라리사는 이곳의 게이트 브레이크를 정리하는 데 한 몫 했다.

그녀가 가진 맷집과 피부강화 스킬 덕분에 뱀파이어에게 물리지 않을 수 있었다.

‘웬만한 공격으로는 흠집을 내기 힘들 정도였으니.’

오히려 라리사에게 이를 드러냈던 뱀파이어들의 이빨이 날아갔을 것이다.

그런 특성 때문에 라리사는 항상 앞에 서서 몸빵을 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 것치고는 겁이 너무 많아서 탈이었지만.’

어쨌든 라리사는 그때 당시 세계 1위로서 지원을 왔던 주선오와 함께 브란 성의 게이트 브레이크를 해결했다.

그 이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실력자가 되었다.

물론 지금도 그녀는 세계 랭킹 20위 안에 드는 각성자였다.

회귀 전에도 그렇고 루마니아의 각성자들은 다른 나라의 각성자들에 비해 수준이 높았다.

거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루마니아는 다른 나라에 비해 각성자의 수가 현저히 적었다.

하지만 게이트가 그 나라의 각성자의 수에 맞게 비례에서 나타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때문에 루마니아의 각성자들은 다른 나라의 각성자들보다 훨씬 바쁘게 게이트를 닫아야했다.

‘수준이 다를 수밖에.’

그래서 대게 루마니아의 각성자들은 세계 랭킹도 높았다.

“좀 쉬셨습니까?”

퀭한 얼굴의 도린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도린에게 고개를 꾸벅여보였다.

‘얼굴이 말이 아니군.’

새벽에 드라큘라를 죽인 후, 나와 루크는 근처 마을로 이동해 휴식을 취했지만 도린은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윤도아 씨. 각성자 라리사입니다.”

라리사가 내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가볍게 라리사의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윤도아입니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리사가 반짝이는 갈색 눈으로 나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루크를 바라보고는 물었다.

“옆에 분도 각성자이신가요?”

“네. 각성자 루크입니다. 통역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루크가 자신을 소개했다.

라리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 그래서 말이 통하는 거였구나. 반가워요.”

라리사가 루크와 악수를 나누고는 물었다.

“근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신 거죠?”

라리사의 질문에 나는 도린과 루크에게 말했던 것과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마침 근처에 볼일이 있었거든요.”

루크에게는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미리 연락을 했었다.

볼일이 있어서 루마니아에 왔는데 아무래도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난 것 같다고.

통역의 도움을 준다면 고마울 것 같다고 말이다.

다행히 루크는 한 달음에 루마니아로 날아와 줬고.

나는 이어서 바로 본론을 이야기했다.

“이따가 오후에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서 잠깐 들렀습니다. 게이트 브레이크가 마무리 됐으니까요.”

내 말에 라리사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벌써요? 사례도 제대로 못 해드렸는데….”

도린 역시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의뢰 비용은 기관을 통해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루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로 기관을 통해서 사례금을 전달하겠습니다.”

“네? 아뇨, 전 아무것도….”

도린의 말에 루크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뇨. 덕분에 의사소통이 원활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요. 루크가 없었다면 상당히 문제가 많았을 거예요.”

나 역시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루크가 조금 수줍은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도린과 라리사는 우리를 브란 성 밖으로 배웅했다.

“공항까지 함께 가고 싶지만 뒷수습 때문에 자리를 오래 비울 수가 없군요.”

도린이 아쉬운 듯 말했다.

“괜찮습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도린이 내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나는 살짝 웃으며 도린의 손을 맞잡았다.

이미 도린이 죽지 않은 것부터가 큰 전력이었다.

그와 더불어 회귀 전 이곳에서 죽었던 수많은 루마니아의 각성자들까지.

모두들 다가올 시험에 큰 도움이 되리라.

나와 루크는 루마니아의 각성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브란 성을 떠났다.

* * *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레부를 불러냈다.

“레부.”

레부가 심연의 불꽃에서 쏙 얼굴을 내밀었다.

“새벽에 주운 것 좀 꺼내 봐.”

“쿄.”

레부가 주섬주섬 아이템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몽둥이와 채찍, 단검 등 뭔가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새 또 감염자들의 무기를 챙겨온 모양이었다.

“아니, 그거 말고.”

“쿄…? 말고 말입니까?”

레부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드라큘라한테 얻은 거.”

“쿄! 알겠습니다.”

그제야 레부는 내가 내민 손 위로 레부가 작고 붉은 구슬을 뱉어냈다.

드라큘라가 재가 되어 사라지고 남긴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것의 정보를 살폈다.

‘정보 확인.’

[지정 스킬 부여권]

[사용자에게 드라큘라가 지니고 있던 스킬 중 한 개의 지정 스킬을 부여합니다.]

지정 스킬 부여권.

종종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이런 것을 떨굴 때가 있었다.

그 보스가 가진 스킬 중 하나를 받을 수 있는 것.

‘전용 특성 레벨업권만큼 확률이 낮긴 하지만.’

어쨌든 뜻하지 않게 놈이 이 스킬 부여권을 떨군 것은 굉장한 행운이었다.

어떤 스킬이 지정되어 있는지는 이것을 까봐야 알 수 있었다.

일단 스킬을 확인해 보고 내게 필요 없는 스킬이라면 나중에 아이템 시장에 내놓는 것도 방법이었다.

나는 드라큘라가 남긴 붉은 구슬을 보며 말했다.

“지정 스킬 확인.”

곧 붉은 구슬이 액체처럼 흐물흐물해지더니 그 위로 지정 스킬의 정보가 떠올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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