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제1전시실에서 열리는 아이템 마켓에는 자칫 일행을 잃어버릴 만큼 많은 수의 사람이 있었다.
그런 인원이 모인만큼 소란스럽기도 해서 정말 도떼기시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막상 이런 인파를 보고 있자니 들어가기가 망설여지는 와중에 누군가 내 옆에 멈춰섰다.
“누나?”
윤도빈이었다.
도빈이 역시 개막식에 참여했기에 깔끔한 수트 차림이었다.
이렇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진에서 봤던 아버지의 젊을 적 모습과 똑같았다.
“뭐야, 왜 그렇게 봐. 이상해?”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윤도빈이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피식 웃었다.
“아니, 그냥. 마켓 가려고?”
“응. 구경 좀 하려고. 쓸 만 한 거 있나 싶어서. 누나는 구경? 아니면 판매 현황 보러?”
“둘 다.”
사실 C급이나 B급 아이템이 내게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구경을 해보고 싶긴 했다.
나는 도빈이와 함께 마켓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 진짜 많네.”
도빈이가 아이템 마켓 안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가호자 각성자 수가 이렇게 많았구나.”
“그러게.”
전세계에서 모인 수이긴 했지만 그래도 외국 사람들 보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비율이 훨씬 많았다.
‘언제 이렇게 늘어났담.’
이제 시작의 날로부터 겨우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대부분의 신의 가호가 1년에서 2년 사이에 내려지는 걸 생각하면 이해가 가긴 했지만.
‘벌써 6개월이나 지났구나.’
새삼스러웠다.
나는 회귀 전 이맘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때는 뭘 하고 있었더라.’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려 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오. 저런 식으로 파는구나.”
도빈이가 한 매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켓의 내부는 몇 개의 작은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구역별로 매대가 4개씩 설치되어 있었고 매대에 있는 간이 탁자 위에 아이템을 올려두고 파는 형식이었다.
“근데 가격은 누가 정한 거야?”
도빈이가 물었다.
“판매자가.”
“응? 그럼 너무 편차가 심할 수도 있는 거 아냐?”
“상한선은 기관이 정해줬어. C급은 최대 200. B급은 최대 1000.”
내 대답에 도빈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게 차이가 나?”
“C급이랑 B급은 아무래도 다르니까.”
“그래?”
윤도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넌 처음부터 S급 게이트에 S급 무기 썼으니까 잘 모를 거야. 근데 그건 나 같은 누나를 둔 너니까 가능한 거고.”
내가 흘긋 윤도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눈총을 받은 윤도빈이 웃음을 터트렸다.
“맞아. 내가 누나 덕을 좀 많이 보긴 했지.”
“다른 각성자들 보면 C급에서 B급으로 못 올라가는 사람도 많아. 물론 심적인 부담도 있긴 하지만 실제로도 게이트의 난이도가 다르기도 하고.”
“아하.”
윤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대게 C급은 가호자들이 많이 찾으려나?”
“아무래도. 빈손으로 게이트에 들어가기 껄끄러운 사람들이 많이 구매하겠지.”
“흐음.”
아이템들을 훑어보던 윤도빈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S급이랑 비교하면 다 별로네. 구경할 것도 별로 없고.”
확실히 그닥 쓸모없는 아이템들이었다.
‘그만 가야겠다.’
더 이상 보고 있는 건 시간 낭비일 것 같아서 몸을 돌리려는데 한 아이템이 눈에 띄었다.
‘어?’
정말 별 볼 일 없는 아이템이었다.
어떻게 내 눈에 띄었는지도 모를 만큼 아주 작은 침 하나.
내 새끼손가락의 길이만큼도 되지 않을 크기였다.
“잠깐만.”
나는 도빈이를 멈춰 세우고는 작은 침이 놓여있는 매대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판매자가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나는 작은 침을 살짝 들어올리며 정보를 살폈다.
[B급 아이템 자침]
설명은 거기서 끝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자침을 어디에 쓸 수 있는지 단번에 알았다.
“이거 얼마예요?”
“…그거요?”
판매자가 의외라는 듯 나를 보며 물었다.
사실 이 자침만 두고 보면 절대 쓸만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그러니 판매자 본인도 이게 팔리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거. 음….”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판매자가 난처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사실 그거는 아직 가격을 못 정했어요. 사실 정보라고 뜨는 게 자침이라는 게 다여서요. 일단 B급이라 내놓긴 했는데….”
판매자가 말끝을 흐렸다.
나는 잠시 자침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B급 아이템의 최대 상한선은 1000만 원.
이 자침 하나만 보자면 사실 1000은 택도 없는 가격이었다.
게다가 아직 내 느낌일 뿐 이게 내 생각과 같은 아이템일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걸 지나치자니 찝찝함이 밀려왔다.
“그럼 100만원에 파는 거 어떠세요?”
나는 적당한 가격을 제시했다.
“100만원…, 이요?”
판매자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사실 100만원이라면 거저나 마찬가지였지만.
판매자 본인이 생각하기에 꽤 비싼 가격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네. 계좌 알려주세요. 보내드릴게요.”
나는 자침을 챙겨 넣으며 말했다.
판매자는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계좌 번호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나는 그 종이를 받아 그대로 뒤의 도빈이에게 넘겼다.
“…응?”
윤도빈이 당황하며 종이를 받아들었다.
나는 도빈이에게 몸을 돌린 채 작게 말했다.
“일단 대신 내줘. 내가 이체하면 이름 뜨잖아. 바로 보내줄게.”
“아. 알겠어.”
윤도빈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빠르게 이체를 완료했다.
그리고는 이체 완료 화면을 판매자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보냈어요.”
“감사합니다….”
윤도빈의 핸드폰 액정을 확인한 판매자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나는 계좌 번호가 적힌 종이를 매대에 올려둔 후 바로 그곳을 벗어났다.
윤도빈이 바로 내 뒤를 따르며 말했다.
“돈 안 줘도 돼. 나도 누나 덕 좀 봤으니까 누나도 내 덕 좀 봐야지.”
윤도빈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윤도빈, 돈 좀 벌었나 봐?”
“그럼. 나도 이제 랭커인데.”
윤도빈이 자신있게 말했다.
확실히 윤도빈은 이번 달에 드디어 한국 랭킹 3위에 도달했다.
그리고 세계 랭킹 11위까지 올라섰다.
그것 때문에 개막식에 초청받은 것이기도 했고.
‘벌써 이렇게나 성장했네.’
그런 윤도빈을 보자니 아주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근데 그게 뭔데? 지금껏 본 아이템 중에 제일 쓸데없어 보이는데….”
윤도빈이 말했다.
“쓸데가 있어.”
“음…. 뭐, 그렇구나.”
윤도빈은 금세 관심이 식은 듯 다시 주변의 매대를 돌아보았다.
나는 주머니 속의 자침을 만지작거렸다.
‘자침이라.’
B급 아이템에 아무런 부연설명도 없었지만.
나는 분명 이런 아이템을 한 번 본적이 있었다.
주선오와 신교진과 함께 갔던 하임건설 현장의 쌍둥이 게이트.
그곳에서 얻었던 C급의 아이템.
‘부서진 나침반.’
분명 그 나침반에는 자침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이템으로 자침이 따로 존재한다면.
두 아이템은 합칠 수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 교진 형이다.”
다시 마켓을 두리번거리던 도빈이가 신교진을 발견했다.
신교진은 마켓 중앙의 한 구역을 모두 차지한 채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었다.
“저거 다 누나 아이템이라며?”
윤도빈이 신교진이 있는 구역의 매대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응. 레부가 먹은 아이템들.”
“아~.”
레부의 아이템들은 갯수가 워낙 많았고 기관에서 나를 배려해준 덕에 마켓 중앙의 구역에 내 매대를 마련해 준 것이었다.
덕분에 탁자 위에 놓인 레부의 아이템들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시언이도 있네.”
신교진의 뒤쪽에 정시언도 함께였다.
혼자서 4개의 매대를 모두 관리할 수가 없어서 신교진이 고용한 인력인 것 같았다.
‘잘 하고 있네, 둘 다.’
판매하는 모습을 보니 안심하고 돌아가도 될 것 같았다.
“근데 어쩌다가 교진 형이 저걸 팔고 있는 거야?”
도빈이가 의아한 듯 물었다.
“신교진이 얘기 안 했어?”
“안하던데?”
“주사위 내기에서 졌거든.”
내 말에 도빈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 역시 피식 웃음을 흘렸다.
“또 졌어?”
“그렇더라고.”
“아니, 이쯤 되면 좀 눈치 채야 하는 거 아냐?”
신교진은 아직도 내가 염력으로 주사위를 굴렸다는 사실을 몰랐다.
초반에 개인 의뢰 사이트를 만들 때도 그렇고, 이번에 아이템 판매 알바를 맡길 때도 그렇고.
“뭐, 이번에는 본인이 먼저 주사위 게임 하자고 했으니까.”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다시 웃음을 터트린 윤도빈이 금세 안쓰러운 눈빛으로 신교진을 바라보았다.
“대체 언제 눈치챌까, 교진 형은. 근데 그런 거 보면 선오 형도 좀 짓궂단 말야. 끝까지 말 안 해주네.”
그때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엘의 목소리였다.
“잠깐만.”
나는 빠르게 모자를 눌러쓰며 윤도빈의 뒤로 숨었다.
니엘과 루이스가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니엘은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투덜거리고 있었고, 루이스의 다크서클은 지난번보다 더 짙어져 있었다.
주변에 루크가 없고 통역기를 따로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니엘이네?”
“응. 들키면 귀찮아지니까.”
곧 우리 앞을 지나친 니엘과 루이스가 신교진에게 향했다.
셋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니엘의 투덜거림이 이어졌다.
내 이름이 얼핏얼핏 들리는 걸 보아하니.
아마 개막식이 끝나자마자 내가 사라진 것 때문에 저렇게 골이 나있는 것 같았다.
“와. 그래요? 진짜 치사하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 좀 하지 완전 못됐네. 근데 사실 저 그 누나 아이템 판매 중이거든요. 근데 저한테 맡겨두고 코빼기도 안 비치는 게 말이 됩니까?”
신교진의 말은 아주 잘 들려왔다.
“교진 형이 누나 욕하는데.”
난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신교진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살짝 모자를 들어 올렸다.
마침 딱.
신교진이 나와 윤도빈을 발견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신교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당연히 안 오셔야죠. 얼굴 비췄다간 난리 날 텐데….”
신교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나는 다시 모자를 눌러 쓴 채 윤도빈을 데리고 그곳을 벗어났다.
“근데 저거 다 팔면 돈이 상당하겠는데. 그거로 뭐 하려고? 생각해둔 거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매에서 갖고 싶은 아이템이 있어서.”
“아, 누나도 경매 참여해?”
“너도?”
“응. 나도 갖고 싶은 게 있어서.”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누나가 경쟁 상대는 아니길 바라야겠는데.”
도빈이가 조금 자신이 없어진 듯 중얼거렸다.
나는 피식 웃고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우뚝 걸음을 멈춰 섰다.
늘씬한 여자 한 명이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조이였다.
윤도빈 역시 조이를 알아보았다.
“어? 4위…”
조이가 윤도빈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옆에 서 있던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활짝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뭐라 말을 하고는 내게 보였다.
핸드폰 화면에는 통역 어플이 켜져 있었고 조이가 방금 했던 말이 번역되어 있었다.
[어디 갔나 했더니 이런 깜찍한 변장을 하고 있었네요?]
조이가 나를 알아보았다.
나는 살짝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우리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조이의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알아보면 성가시니까요.”
내 말을 확인한 조이가 활짝 웃었다.
[내가 눈썰미가 좀 좋아서 알아본 거예요. 걱정 마요. 말하지는 않을 테니까.]
“고마워요.”
그리고는 다시 도빈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쪽 분은? 당신이랑 꽤 닮았는데. 가족?]
“동생이에요. 윤도빈입니다.”
“호오.”
순간적으로 조이의 푸른 눈이 빛나는 것 같았다.
[난 조이. 잘 부탁해요.]
조이가 도빈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나누는 둘을 보자니 조금 착잡해졌다.
개막식 전에 했던 말을 생각해보면 조이는 지금부터 도빈이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 분명했다.
도빈이가 앞으로 고생을 좀 하겠지만 조이가 도빈이에게 우호적이라면 나한테도 우호적일 가능성이 컸다.
[근데 무슨 이야기 중이었어요?]
“금요일에 열리는 경매요.”
[오, 경매? 두 분도 참여하나요?]
“네. 갖고 싶은 아이템이 있어서요.”
윤도빈이 대답했다.
나는 순간 살짝 불안함을 느꼈다.
‘쓸데없는 장난을 치지 말아야 할텐데.’
[저도 참여하는데. 혹시 괜찮으면 저도 같이 이야기 해도 될까요?]
조이는 이미 자연스럽게 윤도빈의 옆에 서서 우리와 함께 걷고 있었다.
도빈이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어쨌든 일단 나는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도 세계 랭킹 4위인 조이다. 분명 알아보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을 터.
괜히 이곳에 있다가 불똥을 맞고 싶지는 않았다.
“난 먼저 갈게.”
어차피 이곳에 온 목적은 모두 달성했고 곧 있으면 컨벤션이 폐장할 시간이었다.
나는 조이에게 살짝 눈인사를 건네고는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어? 누나, 잠깐….”
윤도빈이 뒤에서 나를 불렀지만 나는 살짝 손을 흔들어 보이고 오히려 걸음을 빨리 했다.
* * *
제1회 국제 각성자 컨벤션의 행사 첫 날이 끝났다.
“고생했어요. 앞으로 더 고생해야겠지만.”
안세인이 김지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생하셨어요.”
김지석은 피곤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개막식 전부터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개막식이 끝난 후에도 각국의 윗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일단 오늘은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얼굴이 말이 아니네.”
안세인이 혀를 차며 김지석의 등을 떠밀었다.
“아, 아뇨. 이것만 마저 확인하고 가겠습니다.”
김지석이 서류 한 더미를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아. 경매품들?”
“네. 다 안전하게 옮겨졌는지 체크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요, 그럼.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그럼 난 먼저 갈게요.”
안세인이 김지석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컨벤션홀을 나섰다.
“후.”
가볍게 한숨을 내쉰 김지석은 서류를 들고 컨벤션홀의 VIP룸으로 향했다.
경매에 나온 A급 이상의 아이템은 모두 13가지.
‘몇 개 안되니까 금방 확인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김지석의 생각은 빗나갔다.
잠겨있던 문을 열고 VIP룸으로 들어갔지만, 그 안에는 아이템은커녕 먼지 한 톨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