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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70화 (71/201)

제70화

집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심연의 불꽃에서 레부를 불러냈다.

“쿄오….”

레부는 여전히 시무룩했다.

레부를 불러내자 작은 방 안에 있던 모부도 모습을 드러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문틈 사이로 모래들이 스르륵 빠져나오더니 다시 모부의 형태를 갖추었다.

나는 내 앞의 레부에게 말했다.

“부서진 나침반 좀 꺼내봐.”

그러자 레부가 중절모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휘적휘적 머릿속을 헤집던 레부가 곧 손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레부의 손에 C급 아이템 부서진 나침반이 들려 있었다.

나는 염력으로 레부의 손 위의 부서진 나침반을 끌어 당겼다.

알 수 없는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뚜껑을 열자.

달칵.

살짝 금이 간 유리 아래로 시계를 닮은 나침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중앙의 비어있는 작은 홈.

나는 주머니를 뒤적여 아이템 마켓에서 구매한 자침을 꺼냈다.

“쿄?”

레부가 새 아이템에 관심을 보이며 내 손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애썼다.

나는 자침을 살폈다.

자침의 한쪽 면 중앙에 작은 돌기가 톡 튀어나와 있었다.

나침반의 중앙 홈과 딱 들어맞을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나침반을 손에 들고 중앙의 홈에 자침을 꽂아 넣었다.

달칵!

부품이 맞아 들어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됐다!’

“쿄?”

“휴?”

레부와 모부 역시 내 손에 들린 나침반에 관심을 보였다.

자침과 합쳐진 나침반은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녹슬고 낡은 나침반이었다.

하지만 분명 이것도 아이템인 이상 쓸모는 있을 터.

게다가 이런 식으로 조합을 해서 사용하는 아이템이라면, 상당히 쓸모 있는 아이템일 확률이 컸다.

‘대체 뭘까?’

나는 호기심과 기대감에 찬 마음으로 자침을 꽂은 나침반의 정보를 살폈다.

[A급 아이템 낡은 나침반]

‘A급!’

C급의 나침반에 B급 자침을 넣자 아이템의 등급이 상승했다.

나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이어서 나타나는 설명을 읽었다.

[원하는 것의 위치를 안내해주는 낡은 나침반입니다.]

‘원하는 것의 위치!’

이게 정말이라면 게이트에서 무언가를 찾거나 할 때에 굉장히 유용한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추가적인 글이 떠올랐다.

[북극성의 인도(1/2)]

아이템의 부가적인 설명은 아니었다.

‘세트 아이템이구나!’

저건 세트 아이템들을 통틀어서 부르는 또 다른 명칭이었다.

즉 두 개의 아이템이 모두 모여야 북극성의 인도라는 세트 아이템이 완성되는 것.

세트 아이템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가 세트 아이템을 같이 사용했을 경우 시너지가 발생하는 것.

회귀 전 내가 사용하던 심연의 불꽃과 광휘의 서리가 그랬다.

이 둘은 함께 사용한다면 굉장한 시너지가 발생하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개별적으로도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세트 아이템을 같이 사용해야만 본 능력을 발휘하는 것.

이 나침반은 아직 완벽하지 않았다.

설명대로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나침반만을 사용할 수 있긴 했지만 아마 두 개를 함께 사용하는 것에 비하면 미미할 터였다.

하지만 다른 세트 아이템이 무엇인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나침반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나침반과 하나로 묶일 수 있는 아이템이라면….’

낡은 나침반의 역할은 원하는 것의 위치를 안내해주는 것.

나침반만 있어도 나침반의 자침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무언가가 더 있어야 완벽해진다면….

순간 무언가 번뜩 떠올랐다.

‘지도.’

나침반은 방향을 알려줄 뿐 정확한 길의 안내는 할 수 없다.

지도는 정확한 길을 보여주지만 방향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나침반은 지도와 함께 있어야 완벽해진다.

‘지도구나.’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지도 같은 아이템은 회귀 전에도 본 기억이 없었다.

누가 그런 걸 갖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도 없었고.

나는 눈앞의 아이템 매니아에게 물었다.

“레부. 지도 같은 아이템이 있어?”

내 질문에 레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쿄. 근데 지도 자체가 워낙 귀한 아이템이라 저도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긴. 레부가 본 적이 있었다면 아마 곧바로 그것을 꿀꺽했을 것이다.

‘아쉽지만.’

지금 당장은 지도를 어디서 구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함께 쓴다면 좋긴 하지만 일단 나침반 하나만을 따로 사용할 수는 있었다.

‘이건 게이트 안에서 시험해 봐야겠다.’

나는 나침반을 다시 레부에게 건넸다.

레부는 나침반을 받아들더니 나침반에 슬어있는 녹을 벗겨내려 애쓰기 시작했다.

그때 거실 중앙의 탁자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이 울렸다.

김지석이었다.

개막식에 참여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려는 걸까 싶었지만 그런 것치고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나는 전화를 받았다.

“네.”

[도아 씨. 잠깐 통화 괜찮으실까요?]

김지석이 물었다.

목소리가 조금 다급한 것이 역시 뭔가 일이 생긴 것 같았다.

“말씀하세요.”

김지석이 평소와는 다르게 빠른 말로 이야기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금요일에 경매에 내놓을 아이템들이 모두 사라져버렸어요. 분명 안전하게 컨벤션센터에 옮겨놓았었는데…. 물론 도아 씨가 그런 것까지 아실 수는 없겠지만 도움을 요청할 곳이 도아 씨 밖에 없어서요.]

전체적으로 두서가 없는 것이 아무래도 꽤 당황한 모양이었다.

김지석의 이야기를 파악한 나 역시 조금 놀라긴 했지만 금세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김 이사님.”

내가 차분하게 김지석을 불렀다.

[네, 네. 도아 씨.]

“일단 진정하시고요.”

[…후우. 네. 죄송합니다.]

김지석이 깊은 한숨과 함께 사과를 건네 왔다.

“그러니까 금요일에 경매에 내놓을 아이템에 사라졌다는 거죠?”

내 차분한 질문에 김지석 역시 조금 냉정함을 되찾았는지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요.]

“알겠어요. 제가 따로 확인을 해 볼 테니까, 이사님은 일단 들어가서 쉬시는 게 좋겠어요.”

김지석의 대답이 없었다.

“이사님 내일도 일정 있으시잖아요. 그만 들어가서 쉬시고 내일 다시 이야기해요.”

잠시 후 핸드폰 너머로 작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김지석을 진정시킨 후 통화를 종료했다.

‘짐작 가는 곳이 있긴 한데.’

나는 일단 두 슬라임을 불렀다.

“도토리들.”

나침반을 반질반질하게 닦고 있던 레부가 나를 바라보았다.

“쿄?”

나침반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잠시 집안을 돌아다니던 모부 역시 내 부름에 다시 돌아왔다.

“휴?”

“둘 다 잠깐 앞에 앉아 볼래?”

고개를 갸웃한 도토리들이 내 앞에 자동적으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물론 주인이 둘을 의심하는 건 아냐. 그런데 일단 확인은 해둬야 할 것 같아서.”

두 슬라임의 고개가 동시에 한쪽으로 비틀어졌다.

“휴? 뭘요?”

“쿄오?”

“이번 주 금요일에 아이템 경매가 열리는 거 너희도 알고 있지?”

“쿄오…. 압니다. 당연히 알지요. 그때 경매에 나오는 아이템의 품목도 알려주시지 않았습니까.”

레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는 이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다 탐나는 아이템이었는데….”

“레부가 안 탐나는 아이템도 있나요? 휴휴휴휴.”

옆에서 중얼거린 모부가 웃었다. 그 이야기에 레부가 버럭 하며 말했다.

“쿄! 그래도 이번에 넘긴 C급이나 B급 아이템들보다 훨씬 좋은 것들 이었습니다! 그런 걸 얻게 된다면 이번에 잃은 아이템들 때문에 텅 빈 젤리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정도입니다.”

이야기하던 레부가 금세 시무룩해졌다.

“근데 말야. 그 아이템들이 다 사라졌다고 하더라고.”

내 말에 레부의 일직선 눈이 크게 벌어졌다.

“쿄오오? 그게 사라졌단 말입니까? 어디로요? 쿄, 대체 누가 그 아이템들을 다….”

옆에서 모부가 휴휴거리며 물었다.

“레부가 다 먹은 건 아닌가요? 휴휴휴휴. 방금 말 했던 것처럼 이번에 많은 아이템을 잃어서 젤리가 텅 비었으니까요. 휴휴휴휴.”

레부가 흥분했는지 살짝 불길을 일으켰다.

“쿄! 무슨 소리입니까! 말도 안 되는….”

그러다가 멈칫하더니 나를 돌아보더니 물었다.

“설마, 쿄, 설마 주인 지금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쿄?”

“아니.”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러자 레부의 불꽃이 가라앉았다.

“의심하지는 않지만 확인은 해야겠다 싶어서.”

“쿄오오오!”

내 대답에 레부의 불길이 거세졌다.

집이 그을릴까봐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다행히 열기가 센 불은 아니었다.

레부가 이글거리는 모습으로 마구 양손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말했다.

“쿄! 쿄오! 억울합니다! 주인, 전 절대 아닙니다! 너무합니다, 주인! 제가 왜 그 아이템들을 먹겠습니까!”

정말 억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왜긴 왜겠어요. 레부가 아이템 보부상이니까 그렇겠지요. 휴휴휴휴.”

모부가 옆에서 약 올리듯 말했다.

그러자 레부가 몸속의 아이템들을 모두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쿄! 주인이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쿄, 제가 설마 아이템에 눈이 멀어 주인 명령을 거역하고 그것들을 먹었겠습니까? 쿄, 정말 억울합니다! 쿄, 억울하다, 억울해! 쿄오오!”

신세한탄을 하며 레부가 꺼내놓은 아이템은 몇 개 없었다.

“쿄! 보십시오, 주인! 이게 제가 가진 아이템의 전부입니다!”

레부가 강하게 외쳤다.

웬만한 C급과 B급을 모두 마켓에 내놓았기 때문에 남아있는 아이템은 대부분이 A급이었고 S급도 한두 개 정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템들을 살폈다.

“알지, 그럼. 레부가 설마 주인을 배신하겠어?”

그러자 레부가 서러운 표정으로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쿄, 쿄! 당연합니다, 주인! 한 번 주인은 평생 주인입니다!”

나는 레부의 말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한 A급 아이템을 슥 들어올리며 물었다.

“근데 레부야. 이건 못 보던 아이템이네?”

내 말에 순식간에 레부가 입을 다물었다.

“…….”

그리고는 아이템을 보았다가 나를 보았다가 시선을 돌렸다가를 반복했다.

“…그건 말입니다, 주인.”

“마나구.”

나는 작은 마나구를 만들어 레부의 머리를 향해 날렸다.

퍼엉!

“휴휴휴휴흇!”

레부의 젤리가 터져나가는 것을 보던 모부가 웃기 시작했다.

“꼴좋네요, 레부. 휴휴휴휴. 슬라임 버릇 어디 남 주겠나요? 휴휴휴휴.”

딱히 모부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모부.”

내 말에 모부가 웃음을 멈추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먹은 건 아니겠지?”

그러자 모부가 금세 팔짱을 끼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휴! 제가 그깟 쓰레기들을 먹어서 뭐하나요? 전 스킬 보부상이에요, 스킬 보부상. 휴! 아이템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귀한 걸 모으는 보부상이라는 말이에요!”

“쿄오? 쓰레기라니 무슨 말입니까! 쓰레기라뇨! 그런 고급스러운 아이템들을 보고!”

금세 몸을 회복한 레부가 모부를 향해 외쳤다.

“고급이요? 휴! 아이템이 있어봤자 스킬이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요? 휴휴휴. 아이템은 부가적인 요소일 뿐이에요.”

아이템과 스킬에 대한 두 슬라임의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확인차 놈들을 불러내어 살펴보았지만 역시 이놈들이 범인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역시.’

이건 조이의 장난이 분명했다.

‘내일 좀 만나봐야겠네.’

* * *

“흠, 흐음~.”

조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붉은 머리카락을 묶어 올렸다.

신고 있던 슬리퍼대신 구두를 신고 방을 나서려다가 멈칫했다.

문 옆의 전신 거울에 이리 저리 자신을 비추어보며 자신의 모습을 점검했다.

어디에 가서 밀리지 않을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큰 키에 늘씬한 몸매.

커다란 눈과 오똑한 코. 머리카락처럼 붉은 입술까지.

살짝 삐져나온 립스틱을 닦아낸 조이는 마지막으로 왼쪽의 푸른 눈동자 밑에 있는 점을 톡톡 두드렸다.

자신의 얼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활짝 웃은 조이는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방을 나섰다.

‘역시 컨벤션에 오기를 잘했어.’

조이에게 미국은 재미없는 나라였다.

조이의 수준에 맞는 각성자도 몇 없었고, 다 고지식해서 함께 놀 만한 상대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장난을 쳐도 그것을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항상 화를 냈다.

‘재미없는 사람들.’

그렇게 일상이 재미가 없어질 무렵 마침 국제 각성자 컨벤션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 자신보다 높은 순위의 랭커들도 모습을 보인다는 이야기도.

조이는 바로 컨벤션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제 컨벤션이 열린 지 고작 이틀째이지만, 조이는 컨벤션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조이가 기대했던 것만큼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

‘딱 취향인 사람도 만났고.’

호텔 로비로 내려온 조이는 손에 든 작은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어제 만났던 윤도빈의 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윤도빈을 떠올린 조이는 양쪽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그때 누군가가 조이의 앞에 멈춰 섰다.

조이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멈춰선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여자.

하지만 그 사이로 보이는 눈빛 하나로 조이는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윤도빈의 누나이자 세계 랭킹 1위인 윤도아였다.

“당신이 여기에는 웬일이에요? 혹시 나 보러 온 건가?”

조이가 밝게 웃으며 물었다.

조이의 푸른 눈에는 미묘한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누군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윤도아가 올 줄이야.’

조이를 마주한 윤도아의 눈이 살짝 휘었다.

“맞아요. 잠깐 할 얘기가 좀 있는데. 시간 괜찮아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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