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꺄아악! 피해요!”
“뭐하는 거야, 당장 내려와요!”
“위험해!”
사람들이 트랙 위의 조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테마파크의 관계자들 역시 조이를 내려오게 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조이는 지정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순간에도 열차는 빠른 속도로 조이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문제가 생겼나?’
나는 주변의 마나를 확인했다.
마나가 조이에게 빠르게 흡수되고 있었지만, 조이의 마력은 거의 바닥나 있었다.
‘지정 스킬을 쓸 만한 마력이 없어.’
스스로에게 지정 스킬을 쓰면 다른 것에 지정 스킬을 쓰는 것보다 마력의 소모가 심했다.
거기에 제물과 소환 스킬까지 연속으로 세 스킬을 계속 사용하니 마력이 당연히 바닥날 수밖에 없었다.
아래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고 몇몇 사람은 눈을 질끈 감았다.
조이가 자신에게 돌진해 오는 열차를 바라보았다.
열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곧 벌어질 처참한 광경을 보지 않기 위해서.
나는 즉시 성의 첨탑을 밟고 도약했다.
훅!
동시에 주머니에서 모래의 심장을 꺼냈다.
“모부, 아이템 잡아!”
“흇?”
모부의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나는 조이가 아이템을 던진 호수 쪽으로 모래의 심장을 던졌다.
그리고는 조이의 앞 트랙에 착지한 후, 조이의 허리를 낚아챈 채 다시 도약했다.
촤자자작!
뒤쪽으로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거센 바람이 일었다.
“우와!”
귓가에 조이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테마파크 안에서도 누군가의 함성을 시작으로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것들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도약을 하긴 했지만 조이의 무게까지 감당이 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대로 호수로 곤두박질쳤다.
마나 방패를 불러내봤자 충격만 더 크게 받을 것 같았다.
“숨!”
내가 외쳤지만 조이는 크게 웃느라 내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눈을 감았다.
풍덩!
꼬르르르.
우리는 호수 깊숙이 빠져들었다.
놀란 듯 조이가 마구 발버둥을 쳤다.
나는 조이를 꽉 붙잡고 조심스레 눈을 뜬 채 위를 바라보았다.
멀찍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의 표면이 떠 있었다.
4미터 정도 아래까지 떨어진 것 같았다. 곧 호수의 바닥에 발이 닿았다.
나는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가 도약했다.
하지만 물의 수압 때문에 큰 효과는 없었다.
그때 모래들이 내 밑으로 스르륵 모여들더니 나와 조이를 밀어 올렸다.
“!”
조이가 놀란 눈으로 바닥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순식간에 위로 밀어올려졌고 곧 표면의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푸하!”
조이가 급히 숨을 들이켰다.
나는 곧바로 조이를 붙든 채 나를 밀어올린 모래를 밟고 도약했다.
훅!
털썩!
간신히 산책로 위로 올라선 나는 조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조이는 바닥에 누운 채 콜록거리며 물을 뱉어냈다.
나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기를 털어낼 새도 없이 조이 주변의 마나를 모조리 끌어 모았다.
“콜록! 콜록!”
조이가 계속 숨을 헐떡이는 사이 호수에서 무언가 또 튀어나와 우리의 옆으로 떨어졌다.
철퍽!
커다란 모래 덩어리였다.
물에 젖은 모래 덩어리가 꿈틀거리더니 곧 사람의 형체를 취했다.
“휴.”
모부가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고는 내게 아이템을 내밀었다.
“여기, 잡아왔어요.”
조이가 호수로 던졌던 S급 아이템이었다.
모부는 내 명령대로 아이템을 잡은 후 물에 빠진 나와 조이를 위로 끌어올려 주었다.
나는 아이템을 받아들고는 모부의 삿갓을 토닥였다.
“잘했어.”
“휴. 그래도 그렇게 다짜고짜 집어 던지다니. 레부였으면 절대 못 했을 일이라고요.”
모부가 살짝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널 믿고 던졌지.”
내 말에 모부가 살짝 나를 보더니 곧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휴우.”
“레부.”
나는 레부를 불러내어 조이에게 빼앗은 경매 아이템들을 보관하도록 했다.
아이템을 받아드는 레부는 살짝 골이 난 것 같았다.
슬며시 모부를 쏘아보는 꼴이 아마 모부가 꽤 괜찮은 활약을 해냈기에 그런 것 이리라.
“하아. 아하하하. 재밌다! 죽을 뻔 했는데, 재밌네요!”
한참을 콜록대던 조이가 금세 웃으며 말했다.
“진짜 스릴 넘치지 않았어요? 정말 이렇게 재밌는 건 처음인데!”
조이가 눈을 빛내며 내게 말했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조이를 내려다보았다.
조이는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말했다.
“한 번 더 해보는 거 어때요?”
열차에 치일 뻔 하고 물에 빠졌음에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었다.
나는 조이를 보고는 강하게 혀를 찼다.
“쯧.”
그러자 조이가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 화났어요?”
대꾸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었다.
“당신, 지금 죽을 뻔한 거 몰라요?”
“에이, 겨우 이런 거 가지고? 하하하. 위험하긴 했지만 재미있었잖아요!”
조이가 철없는 소리를 했다.
“마력 관리 안 해요? 그러면서 각성자라고 말할 수 있어요?”
내 낮아진 목소리에 조이가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지금도 봐요. 당신 마력 안 채워지고 있는 거 몰라요?”
“어…?”
그제야 조이가 당황한 채 자신의 마력을 살폈다.
아직도 바닥이 난 상태에서 채워지지 않고 있었다.
“당신 스킬 못 쓰게 하는 건 쉬워요. 또 도망가 봐요, 어디. 이번엔 아까처럼 안 봐줍니다. 아이템 꺼낼 때처럼 공간 찢어서 끄집어 낼 거예요. 숨긴 아이템? 지금 여기서 다 강제적으로 꺼낼 수 있어요. 당신 마력? 그거 내가 못 빼낼 것 같아요? 어디 한번 각성하기 전처럼 살아볼래요?”
마력을 빼낸다는 건 거짓말이었지만 나는 일부러 강압적으로 이야기했다.
그 말에 조이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조금 심했나 싶기도 했지만 이정도로 정신을 차린다면 상관 없었다.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이딴 장난 쳐 봐요.”
나는 잠시 조이를 서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땐 절대 안 봐줘.”
조이가 살짝 내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하아.”
한숨을 푹 내쉰 나는 그제야 조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옆에 양손을 앞으로 다소곳이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레부와 모부가 보였다.
조이에게 경고한 것이었지만 둘 역시 눈치가 보인 모양이었다.
둘을 보며 웃음을 삼킨 나는 뒤로 이동시켰던 마나들을 되돌려 두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바닥에 앉아 있는 조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요. 뒷감당하러 가야죠.”
잠시 내 눈치를 보던 조이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났다.
* * *
레부의 불꽃으로 대충 옷을 말린 우리는 컨벤션 센터로 이동했다.
모자는 조이가 제물로 사용해버렸고 마스크는 물 속에서 잃어버린 상태였다.
덕분에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이곳까지 오는 길이 상당히 피곤했다.
게다가 그 전에 이미 테마파크 안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녔으니.
웬만한 게이트를 돈 것보다 더 피곤했다.
‘빨리 넘기고 가서 쉬어야겠어.’
하지만 컨벤션 센터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이대로 들어갔다간 또 사람들이 몰릴 것이 분명했다.
‘어쩐다.’
핸드폰이 먹통이 되는 바람에 누구한테 연락을 할 방도도 없었다.
잠시 주차장 근처를 서성이는데 주선오의 차가 보였다.
‘무리 홍보 때문에 온 건가?’
그리고 마침 모자를 푹 눌러쓴 키 큰 남자가 차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타이밍 좋게 주선오가 나타났다.
주선오는 자신의 차 앞에서 서성이는 우리를 보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나를 알아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그리고는 모자를 살짝 들어올리며 내게 다가왔다.
“누나. 여기서…. 뭐야, 무슨 일 있었어요? 상태가….”
주선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덜 마른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물에 빠졌다가 온 터라 분명 꼴이 말이 아니긴 할 터였다.
“아니, 잠깐 좀 일이 있어서.”
내 말에 주선오의 시선이 이번에는 뒤의 조이에게 꽂혔다.
“도아 씨랑만 놀아서 서운한 건 아니죠?”
조이가 깔깔 웃으며 주선오에게 농담을 던졌다.
그러다가 내 눈총을 받고는 금세 입을 다물었다.
주선오는 통역기를 끼고 있지는 않았지만 조이의 말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굳어진 표정으로 조이에게 물었다.
“무슨 짓을 한 겁니까?”
그대로 두었다가는 주선오와 조이의 2차전이 벌어질 것 같은 기분에 나는 주선오의 팔을 붙잡았다.
“선오야. 김 이사님 안에 있어?”
“네. 일이 좀 생긴 것 같던데…. 아, 혹시….”
주선오 역시 김지석에게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눈치 빠른 주선오가 다시 매서워진 눈으로 조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주선오의 팔을 잡아 당겼다.
“이사님한테 연락 좀 해줘. 핸드폰이 고장나서.”
“…네.”
주선오가 조이에게서 눈을 거두며 핸드폰을 꺼내 김지석에게 연락을 했다.
그 틈에 조이가 슬쩍 내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한국 랭커들은 다 이렇게 살벌해요?”
나와 주선오의 시선이 동시에 조이에게 꽂혔다.
조이는 입을 다물고는 다시 물러났다.
통화를 마친 주선오가 내게 말했다.
“지석 형 나올 거예요. 저는 사무실에 가야 해서 바로 가 봐야 할 것 같네요.”
“아. 알겠어. 고마워.”
내 말에 주선오가 살짝 웃었다.
그러더니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아직 덜 마른 내 머리 위에 씌웠다.
“쓰고 가요. 안에 사람 많아요.”
그러더니 곧바로 차에 올라타 차를 출발 시켰다.
피식 웃은 나는 주선오의 모자를 고쳐 썼다.
“도아 씨!”
그때 김지석이 우리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하루 새에 김지석의 얼굴은 안쓰러울 정도로 수척해져 있었다.
조이의 장난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었다.
“찾으셨다고…. 근데 두 분 상태가….”
김지석이 나와 조이를 보고는 조금 놀란 듯 물었다.
“괜찮아요. 경매 아이템 다 찾아왔어요. 안에 들어가서 꺼내는 게 좋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김지석이 빠르게 우리를 안내했다.
VIP룸에 들어선 나는 조이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조이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들고 있던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들었다.
물에 젖어 쪼글쪼글해진 수첩이었다.
조이는 수첩의 종이를 몇 장 찢어 중앙의 탁자 위에 조금씩 간격을 띄우며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그 종이들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종이들이 제물이 되어 암흑의 공간을 열었다.
동시에 조이 주변의 마나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뭉쳐있던 마나들이 암흑의 공간으로 하나 둘 씩 이동하더니.
고오오—
암흑의 공간이 뭉쳐 있던 마나를 집어 삼키며 그 안에 있던 아이템들을 뱉어냈다.
톡.
토독.
마나가 벗겨진 아이템들이 탁자 위로 살포시 착지했고 벗겨낸 마나를 삼킨 암흑은 제물이 된 종이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주변의 마나들이 조이에게 빠르게 흡수되었다.
가만히 조이의 행동을 지켜보던 김지석의 표정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제가 갖고 있는 건 다 꺼냈어요. 나머지는 도아 씨가 갖고 있고요.”
조이가 한 발 물러나며 말했다.
나는 레부에게 맡겨둔 아이템들을 받기 위해 레부를 불러냈다.
“레부.”
그러자 심연의 불꽃에서 레부가 톡 튀어 나왔다.
김지석이 갑자기 튀어나온 레부를 보고는 조금 놀란 듯 한 걸음 물러섰다.
“아이템.”
“쿄오오….”
레부가 침울한 얼굴로 몸속에서 경매 아이템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잠깐이나마 맛본 A급, S급 아이템을 꺼내놓기가 굉장히 아쉬운 모양이었다.
총 세 개의 경매품을 꺼낸 레부는 힘없이 심연의 불꽃으로 되돌아갔다.
“확인해보세요.”
내 말에 김지석이 탁자 위에 올려진 아이템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