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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73화 (74/201)

제73화

아이템 확인 작업은 꽤 시간이 걸렸다.

김지석이 아이템 리스트와 아이템을 하나하나씩 꼼꼼히 비교했기 때문이었다.

조이는 지겨운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탁자 앞의 소파에 슬그머니 앉고 턱을 괸 채 김지석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길게 하품을 하고는 반쯤은 감긴 눈으로 아이템들을 바라보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졸고 있는 조이를 보고 있자니 나도 졸음이 쏟아졌다.

하기사 오전에 그 난리를 피웠으니 피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 분 후, 드디어 확인 작업을 끝낸 김지석이 말했다.

“확인했습니다.”

김지석의 얼굴은 환해져 있었다.

거기에 한층 기운을 차린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정확합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그런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나는 조이가 저지른 짓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아마 아이템 관리자의 모습을 훔쳐서 이곳에 들어왔을 거예요. 그리고는 스킬을 이용해서 아이템들을 숨긴 후 여길 나갔고요.”

계속 듣고 있었는지 눈을 번쩍 뜬 조이가 놀라며 물었다.

“와,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알아요?”

김지석 역시 조금 감탄하며 물었다.

“어떻게 조이가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걸 아셨습니까?”

“미국에서 트릭스터로 유명하잖아요. 게다가 개막식에서 물체를 소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고요.”

“헤에. 신기하네.”

조이가 기다란 머리카락을 베베 꼬며 말했다.

“덕분에 잠실 테마파크에서 잠깐 소란이 있긴 했어요.”

나는 조금 전 있었던 조이와의 추격전을 덧붙여 이야기했다.

“호수 공원이랑 테마파크에서 파손된 물품들은 따로 물어줘야 할 거예요.”

내가 조이를 빤히 보며 말하자 조이가 다시 헤실헤실 웃었다.

소환의 제물로 썼던 나무나 바위, 가로등 같은 것들이 통채로 사라져버렸으니 그 부분들을 메꿀 필요가 있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김지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 일에 대한 처우는 미국 측이랑 이야기를 해본 후에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지석이 조이를 보며 말했다.

당연한 절차였다.

하지만 미국 측에서는 이 상황에 대해 사과와 배상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미국의 1위 랭커인 조이에게 엄한 처벌을 내린다고 해도 조이가 그걸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도 않을테고.

역시나 조이는 크게 개의치 않아 보였다. 어깨를 으쓱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 그 전까지는 최대한 자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지석이 조이에게 말했다.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한층 낮아진 목소리였다.

“알겠어요. 그럼 일단 가 봐도 될까요?”

조이가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살짝 한숨을 내쉰 김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조이는 씩 웃더니 우리에게 고개를 까닥여보이고는 바로 VIP룸을 나가버렸다.

“그럼 저도….”

일이 마무리 되었기에 나도 돌아가려는데 김지석이 나를 불렀다.

“잠깐만요, 도아 씨.”

내가 김지석을 바라보자, 김지석이 내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뇨, 아니에요.”

내가 그런 김지석을 만류했지만 김지석은 정말 고마운 듯 이번에는 내 손을 꽉 붙잡았다.

“경매품들을 찾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정말….”

내 손을 잡은 김지석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래도 첫 국제 각성자 컨벤션이었다.

그것도 한국의 각성 기관이 중심이 되어 한국에서 개최한.

그런 곳에서 경매의 아이템 분실 사건이 일어나 경매가 파토났다면.

그 즉시 한국은 다시는 각성자 컨벤션 개최는 물론 각성 협회에서도 전혀 힘을 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걸 아는 김지석은 어젯밤 내내 잠을 설쳤을 것이다.

김지석이 꼭 잡은 두손에 열기가 느껴졌다.

덜 마른 옷을 입은 상태로 쎈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자니 몸이 으슬으슬 떨려 왔다.

“혹시 추우신가요?”

김지석이 내 팔에 돋아난 닭살을 보고는 내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내게 건넸다.

“아뇨. 괜찮아요. 바로 돌아갈 거라서.”

원래대로라면 경매 전까지 다시 컨벤션에 올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곧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 그럼 잠깐 기다리세요. 아직 게이트 정보 세미나 전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아뇨, 괜찮….”

내가 손을 내저었지만 김지석이 내 어깨에 재킷을 걸쳐주며 살짝 내리 눌렀다.

나는 그대로 소파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김지석이 살풋 웃으며 말했다.

“잠깐 계세요. 관장님께 말씀드리고 오겠습니다.”

혼자 남은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김지석의 재킷을 걸친 채 의자에 앉아있다보니 피곤이 급격하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눈이 감기는 것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 * *

“아, 죄송합니다. 도아 씨. 제가 좀 늦었….”

후다닥 VIP룸으로 되돌아온 김지석은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윤도아를 보고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숨을 죽인 채 조심스레 윤도아의 앞으로 다가가 그 앞에 살짝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많이 피곤했나 보네.’

김지석이 윤도아를 올려다보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잠시 윤도아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윤도아가 나타난지 벌써 6개월.

그 사이에 각성 기관은 굉장한 발전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윤도아가 있었다.

앞장서서 곤란한 문제들을 척척 해결해주다보니 어느새 곤란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윤도아를 찾게 되었다.

‘너무 의지하게 됐어.’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도 일단 윤도아를 찾아 자문을 구하곤 했다.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물질적인 것 이외에 윤도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김지석이 최근 각성을 했지만 게이트에서 윤도아를 도울 일은 절대 없을 터.

김지석의 시선이 윤도아가 쓰고 있는 모자에 머물렀다.

‘…….’

김지석은 잠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윤도아가 기관과 맺은 계약은 올해까지.

내년이 되면 더 이상 윤도아를 기관에 붙잡아 둘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마 윤도아는 기관을 나서서 자신의 무리를 만들거나 독자적으로 활동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때부터는 윤도아 없이 기관을 이끌어가야했다.

‘할 수 있을까?’

물론 기관을 나간다고 해서 자문을 구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기관의 소속인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컸다.

조금 전처럼 기관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기관 밖의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힘들었다.

지금이야 이렇게 끝없이 도움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윤도아가 없는 상황도 대비를 해야 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김지석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마음 같아서는 깨우고 싶지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가서 편하게 쉬는 것이 훨씬 나을 터.

김지석이 조심스럽게 윤도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도아 씨.”

“!”

윤도아가 졸고 있었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반응 속도로 움직였다.

몸을 젖히며 공중제비를 돌더니 뒤쪽에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탓!

김지석이 놀란 얼굴로 벽에 바싹 붙은 윤도아를 바라보았다.

푹 눌러 쓴 모자 아래로 서늘한 눈빛을 보이던 윤도아가 곧 김지석을 보고는 멈칫했다.

“…아. 죄송해요.”

윤도아가 몸을 바로 세우며 김지석에게 사과했다.

“혹시 다치신 데 없으신가요?”

윤도아의 눈이 김지석을 살폈다.

다행히 김지석은 멀쩡했다.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재킷을 주워든 김지석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뇨.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관장님과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이제 가시죠.”

김지석은 윤도아와 함께 VIP룸을 나섰다.

* * *

미국의 각성 기관은 최대한 조이가 벌인 짓을 조용히 넘어가기를 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이는 미국의 랭킹 1위, 미국의 대표 각성자였다.

그런 사람이 국제 각성자 컨벤션에 참가해서 그곳의 아이템 경매 물품을 빼돌렸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그 의도가 어떻든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다.

나와 조이가 테마파크에서 벌인 추격전 아닌 추격전은 이미 널리 퍼진 상태였지만 그것은 그냥 둘의 문제였던 것으로 해달라는 부탁까지 전해왔다.

‘어차피 인터뷰같은 건 안 할거니까 상관은 없지만.’

내 합의를 받은 기관은 테마파크에서 벌어진 추격전을 수습하느라 바빴다.

[1위 랭커 윤도아와 4위 랭커 조이의 숨막히던 추격전… 승자는?]

[트릭스터 조이, 도가 지나친 장난… 운행 중인 롤러코스터 트랙 위에 서 있어]

[조이가 윤도아에게 쫓긴 이유? 각성자 컨벤션의 퍼포먼스?]

딱히 어떠한 이유라고 밝히지는 않았기에 기사에서는 명확한 추측을 해내지 못했다.

기사보다는 커뮤니티 쪽이 비슷한 추측을 내놓았다.

-아이템 같은 거 던지던데, 트릭스터가?

-ㅇㅇ. 나도 봄. 윤도아는 열심히 그거 잡으러 다니고.

-그거 자체가 퍼포먼스라는 건가? 근데 미쳤다고 롤러코스터 트랙 위에 올라감?

-조이 유명함…. 미국에서 저거보다 더 심한 장난도 많이 침.

-그게 장난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도가 지나쳤는데?

나보다는 조이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것보다 이 사진 봄?

레부와 모부가 찍힌 사진이 있었다.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뭐야 저거. 젤리? 슬라임인가?

-뭔데 저게 저기에 찍혀있어? 게이트 브레이크라도 일어났나?

-ㄴㄴ. 저거 1위가 키우는 몬스터임.

-몬스터를 키움?

-역시 갓도아. 몬스터까지 훈련시키네.

-저런 몬스터가 훈련이 되겠습니까? 저건 위험한 짓입니다. 언제 돌변해서 사람들을 공격할지 몰라요. 당장 갖다 버려야합니다.

-본인이 컨트롤 되니까 키우겠지;; 네가 뭔데 참견;;

-훈련 잘 돼있던데. 아이템 물어오라니까 물어왔음.

-근데 보다보니 좀 귀여운데 나도 하나 키우고 싶다.

-ㅇㅇ. 님이 양분이 되서 키우면 됨.

댓글을 보던 나는 피식 웃으며 레부와 모부에게 말했다.

“도토리들, 사람들이 너네 귀엽다는데?”

그러자 레부와 모부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쿄?”

“휴?”

저런걸 보고 있으면 귀엽긴 한데.

몬스터는 몬스터.

놈들이 게이트 안에서 한 짓을 생각해 보면 절대 귀엽지 않았다.

게다가 모부는 계속해서 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말을 잘 들어서 다행이긴 했는데.’

조이가 벌인 사건으로 기관끼리 어떠한 거래가 오갔는지는 듣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듣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이 성가셨던 추격전에 대해서 그냥 입 다물고 있기만 하면 되니까.

거기에 대한 배상금도 꽤 큰 액수가 주어졌다.

어쩌면 미국 각성 기관은 내게 또 다른 의미로 감사를 표한 것일 수도 있다.

드디어 조이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사실 이 소식을 듣고 오히려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럽게 문을 따고 들어오는 것이 윤도빈인 것 같았다.

“누나!”

역시나 윤도빈의 외침이 들려왔다.

“들어와.”

터벅터벅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 윤도빈이 나타났다.

“뭐야. 아직 준비 안 하고 있었어? 레부, 모부, 안녕.”

“쿄!”

“휴….”

윤도빈은 개막식 때와 같은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오늘은 아이템 경매가 열리는 날이었다.

다행히 조이에게서 모든 아이템을 되찾았기에 경매는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었다.

“차려입고 가야돼?”

내가 조금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윤도빈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누나 공인이잖아. 경매에 얼굴 가리고 참여할 것도 아니고 다른 랭커들도 올 거고.”

윤도빈의 말에 나는 슬쩍 거울을 돌아보았다.

누가 봐도 당장 게이트로 떠나야할 것 같은 차림새였다.

윤도빈은 소파에서 나를 일으켜 세워 옷방으로 밀어넣었다.

“그냥 개막식 때 입었던 옷 입어.”

“아…. 재킷 참 선오한테 있는데.”

그때 주선오의 차에 놓고 내린 재킷을 아직 받지 못한 상태였다.

“완벽하게 격식 안 차려도 되니까.”

나는 마지못해 옷을 갈아입었다.

그 사이 레부와 모부를 모두 들여보낸 윤도빈이 내게 단검들과 모래의 심장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들을 레부의 젤리로 만든 가느다란 팔찌에 밀어 넣은 후.

도빈이와 함께 아이템 경매가 열리는 컨벤션 홀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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