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컨벤션홀에 입장 전, 나와 윤도빈은 그 앞을 지키던 권재경에게 각성증을 확인받았다.
“이런 일도 하시네요.”
윤도빈이 권재경에게 확인받은 각성증을 돌려받으며 말했다.
권재경이 쓰게 웃었다.
“그러게요. 기관에서 개최한 큰 행사라서 어쩔 수 없군요.”
그런 권재경을 보고 있자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권재경을 기관 소속으로 밀어넣은 것은 나였다.
그쪽에서 기관 소속 각성자들과 함께 커나가기를 바란 것이었지만 이런 일까지 하게 될 줄이야.
컨벤션홀에서 열리는 아이템 경매에는 각성자만이 참석할 수 있었다.
그것도 정식으로 각성 기관에 등록한 각성자만이.
그것 때문에 컨벤션홀 앞에서 일일이 각성자들과 각성증을 대조해보는 것이었다.
‘물론 중요한 일이긴 하지.’
A급 이상의 아이템 경매에서 본인 확인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A급 아이템부터는 최고가 대신 최저가가 정해져 있었는데 그 최저가는 4천만 원 이었다.
액수가 큰 만큼 기관에서도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그것을 넘겨야했고 그러려면 그 사람의 신분 확인이 필수였다.
게다가 만약 신원을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템을 잘못 팔았다가 그것이 엄한 곳에 사용된 것이 밝혀진다면 그건 각성 기관이 오롯이 책임을 져야 했으니까.
기관의 입장에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모를 사건 사고에도 대비하긴 해야 하니까요.”
권재경은 컨벤션이 시작될 때부터 기관의 각성자들과 함께 컨벤션의 보안을 담당했다.
각성자들 사이에서 무언가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걸 막을 수 있는 것도 각성자뿐이었다.
그렇기에 기관도 어쩔 수 없이 기관 소속 각성자들을 이곳에 둘 수밖에 없었다.
“확인 됐습니다. 들어가세요.”
권재경이 형식적으로 확인한 내 각성증을 돌려주며 말했다.
“네. 고생하세요.”
나와 윤도빈은 권재경과 인사를 나누었다.
옆에 있던 다른 기관 소속 각성자가 우리에게 경매 카탈로그와 번호 팻말을 건넸다.
우리는 그것들을 받아들고 컨벤션홀로 들어갔다.
“도아 언니!”
컨벤션홀에 들어서자마자 니엘이 후다닥 달려왔다.
그 뒤를 조이가 따라왔다.
“안녕하세요.”
그러더니 슬쩍 도빈이에게 팔짱을 끼며 웃었다.
“오랜만이네요, 도빈 씨.”
“…우리 어제도 보지 않았나요?”
윤도빈이 곤란한 표정으로 조이에게 붙잡힌 팔을 슬쩍 빼내며 말했다.
“그래도 벌써 12시간이나 지났는데요?”
조이가 도빈이의 팔을 더욱 세게 붙잡았다.
“하하….”
윤도빈이 난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라고 편안한 상황은 아니었다.
내 옆에는 니엘이 찰떡같이 달라붙어 있었으니까.
윤도빈은 니엘을 보고는 동질감을 느꼈는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개서노는 경매 참여 안 하나 봐요?”
니엘이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개서노?”
조이가 이상한 이름에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2위님 말이에요, 2위님. 2위님 이름도 몰라요?”
니엘이 뾰루퉁한 목소리로 조이에게 말했다.
그러자 조이가 눈을 크게 뜨더니 곧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 주선오 씨 얘기하는 거예요? 니엘이야말로 이름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은데.”
놀릴 의사가 다분한 도발이었지만 니엘은 당당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친근감의 표시로 별명을 부르는 건데요? 친구들은 다들 그렇게 부른다고 했어요.”
“…누가 그래요?”
니엘의 말에 입을 벙긋거리던 윤도빈이 물었다.
니엘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교진이요.”
주선오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곧바로 신교진을 치러 갔을 만한 이야기였다.
윤도빈 역시 안타까운 눈으로 고개를 저은 후 말했다.
“선오 형은 오늘 참석 안 해요. 그닥 갖고 싶은 아이템이 없는 모양이에요.”
그때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앞으로 두 각성자가 걸어왔다.
몰리와 카터였다.
“도아 씨.”
“오랜만입니다.”
둘의 반가운 인사에 나 역시 고개를 까닥이며 대꾸했다.
“안녕하세요.”
정보를 살펴보니 둘은 지난번 루크의 말대로 상당히 많은 성장을 한 상태였다.
“타일러는 안 보이네요?”
“타일러는 지난 번 게이트에서 조금 부상을 입었어요. 컨벤션에 오고 싶어 했는데 안타깝게도.”
몰리가 웃으며 말했다.
지난 번 게이트에 들어가기 싫어서 죽을상을 하고 있던 것과는 너무 다른 얼굴이었다.
성장한 만큼 자신감도 붙었고. 이제야 캐나다의 랭킹 1위다운 모습이었다.
“아쉽네요.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안 그래도 당신께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카터가 이어 말했다.
카터는 전보다 근육이 더 붙어서 덩치가 더 커진 것 같았다.
옆에 찰싹 붙어있는 니엘의 세 배는 되어 보일 것 같았다.
니엘이 경계의 눈빛으로 몰리와 카터를 보며 물었다.
“누구세요?”
그제야 몰리와 카터의 시선이 니엘에게 향했다.
“아, 캐나다 각성자 몰리라고 해요.”
“카터입니다.”
니엘이 잠시 고개를 갸웃하며 도르륵 눈알을 굴렸다.
“캐나다? 아, 그 무덤 거기 게이트?”
공원 속 무덤이라 불렸던 캐나다의 게이트를 말하는 것 같았다.
몰리가 쓰게 웃었다.
“네. 거기에 갔다왔죠. 그때는 두 분께 정말 신세를 많이 졌어요.”
나는 잠시 캐나다의 공원 속 무덤, 모부의 성을 떠올렸다.
덕분에 모부도 얻고 원하던 아이템도 얻었으니 신세랄 것까지는 없었지만.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그때에 비하면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카터가 말했다.
“좋네요.”
“근데 옆에 분은?”
몰리가 내 옆에 선 도빈이를 보며 물었다.
“아. 윤도빈입니다. 도아 누나 동생이에요.”
“세계 랭킹 11위고요.”
옆에서 조이가 덧붙였다.
“아, 네. 세계 랭킹 11위에요.”
“아. 역시 동생분도 굉장하네요.”
몰리가 감탄하며 말했다.
“누나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죠.”
윤도빈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세계 랭킹 11위라면 저희보다도 훨씬 높으신데요.”
몰리와 카터는 많이 성장하긴 했지만 아직 세계 랭킹 20위권에 들어오지는 못했다.
몰리와 윤도빈의 대화가 조금 길어지는 듯하자 조이의 표정이 조금 불만에 찼다.
그러더니 갑자기 손가락을 딱 튕기자.
“우왓!”
윤도빈이 메고 있던 넥타이가 암흑의 공간으로 빨려들었다.
대신 붉은 와인이 담긴 와인잔이 퐁 튀어나왔다.
“어, 어…!”
윤도빈이 당황한 채 떨어지던 와인잔을 간신히 붙잡았다.
“아하하. 목이 좀 말라서요. 넥타이는 더 예쁜 걸로 하나 사줄게요.”
조이가 윤도빈의 손에서 와인잔을 들어올리더니 그 안의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윤도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그런 조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받은 조이가 슬쩍 와인잔에 다시 지정 스킬을 걸고는 한 걸음 물러섰다.
조이는 그때 이후로 내 눈치를 보기는 하지만 내 눈을 피해서 계속 자잘한 장난들을 치고 있었다.
지금처럼 윤도빈이 다른 여자와 말을 오래 섞는다 싶으면 저런식으로 방해를 한다거나.
그래놓고 내 시선을 받으면 아무것도 안 했다는 듯 시침을 떼었다.
‘레부나 모부랑 비슷한 수준인 것 같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살짝 놀란 몰리와 카터에게 물었다.
“루크는요?”
“아. 루크는 중앙에 꼼짝없이 앉아 있어요. 아무래도 통역의 범위가 루크를 중심으로 정해져 있다 보니.”
몰리가 컨벤션홀 객석의 중앙을 가리켰다.
그곳에 앉아있던 루크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마주 손을 흔들어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고생이네요.”
그러고 보니 컨벤션에서 도린과 라리사는 볼 수 없었다.
아마 루마니아의 게이트들을 닫느라 컨벤션에 참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경매에 참여하는 각성자는 생각보다 적군요.”
카터가 객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를 제외하고 객석에 앉아 있는 각성자는 많아봤자 서른 명 안팎이었다.
“아무래도 A급 이상은 가격도 꽤 나갈 테고. 필요한 사람도 적을 테니까요.”
“목록을 보니까 사실 뭔지 모르겠는 아이템들도 많더라고요.”
몰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컨벤션 경매에 나오는 아이템들은 무기처럼 명확한 형태의 아이템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내가 노리고 있는 아이템 역시 명확하지 않은 아이템이었다.
“앗!”
그때 무언가가 내 앞으로 툭 떨어졌다.
‘각성증?’
누군가의 각성증이었다.
옆을 돌아보니 어느새 투닥거리고 있던 니엘과 조이가 내 눈치를 보며 슬쩍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한 남자가 내앞에 떨어진 각성증을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한데 그것 좀 주시겠어요?”
남자의 나지막한 말에 나는 각성증을 주워들며 그것을 살폇다.
[각성자 등록증]
[오진서]
평범한 남자의 사진이 함께 붙어 있는 각성증이었다.
나는 각성증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사진과 같은 얼굴로 웃으며 내가 내민 각성증을 받아들었다.
“일행 분들께서 좀 짖궂으시네요.”
나는 니엘과 조이에게 슥 시선을 돌렸다.
니엘이 곧바로 조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조이가 한 거예요, 언니.”
“내가? 내가 뭘?”
조이는 모른척 시침을 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남자는 목에 걸려있던 줄에 각성증을 매달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우리를 지나쳐 앞의 좌석으로 향했다.
나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 니엘과 조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 매서운 눈빛에 조이가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그때 컨벤션홀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아이템 경매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응찰자 여러분께서는 모두 착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는 금세 흩어져 자리에 앉았고 곧 경매가 시작되었다.
무대에 경매를 진행할 경매사가 올라섰고 경매사가 경매의 순서를 설명했다.
“아이템 경매는 카탈로그에 적힌 순서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 말에 사람들이 손에 든 카탈로그를 살폈다.
다들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이 언제 나올지 예측하고 있었다.
나 역시 카탈로그를 살폈다.
‘A급부터네.’
내가 응찰하려는 아이템은 S급 아이템.
다른 아이템에는 관심이 없었다.
“경매 시작가는 경매사인 제가 처음 호가하는 금액입니다. 호가 폭 역시 제가 제시를 할 거고요. 만약 경합이 많을 경우에는 역세 제 재량으로 호가 폭을 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경매사가 이어서 경매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응찰을 원하시는 분은 사전에 나누어드린 번호 팻말을 들어올려 응찰을 하시면 됩니다. 만약 호가 폭보다 더 높은 금액을 원하신다면 그 자리에서 금액을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대강 설명을 마친 경매사가 객석의 사람들을 쭉 훑어보더니 말했다.
“그럼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대에 첫 번째 경매품이 등장했다.
자그마한 갈색의 가방이었다.
경매사가 아이템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첫 번째 경매품은 A급 아이템인 주머니 가방입니다. 이 가방에는 오십여 개 정도의 물품을 넣을 수 있습니다만 그 크기나 무게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꽤 좋은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만능 보관함인 레부가 있으니 필요 없었고.
“그럼 4천만 원부터, 호가 폭은 100만 원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경매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템의 가격이 빠르게 올라갔다.
옆에 앉아있던 니엘 역시 번호 팻말을 계속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확실히 저 작은 가방 안에 50여 개의 물품을 넣을 수 있다면 탐이 날 법 했다.
더구나 무게와 부피까지 무시한다니.
나나 윤도빈은 레부의 젤리를 이용하고 있었고 조이의 경우에는 지정 스킬로 물건을 보관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니엘이나 다른 각성자들은 그렇게 물건을 보관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눈에 불을 켜고 가방에 응찰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1억!”
니엘이 팻말을 들며 외쳤다.
순간 각성자들의 시선이 니엘에게 꽂혔다.
순식간에 니엘이 3천만 원을 올려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포기하지 않는 각성자들이 있었다.
경합은 조금 더 이어졌다.
결국 주머니 가방은 니엘이 낙찰을 받아냈다.
“A급 아이템 주머니 가방. 1억 7천만 원에 14번 분께 낙찰 되었습니다.”
“이예!”
경매사의 말에 니엘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나는 기뻐하는 니엘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레부 가방을 좀 팔 걸 그랬나.’
경매는 계속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그 가방을 보고 온 건지 그 뒤로 큰 경합은 없었다.
그리고 금세 A급의 아이템들의 경매가 모두 끝났고 S급의 아이템들의 경매가 시작되었다.
‘슬슬 나올 때네.’
나는 번호 팻말을 만지작거리며 앞을 주시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