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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75화 (76/201)

제75화

무대 중앙에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했다.

“다음은 S급 아이템인 서리입니다.”

탁자 위에 투박한 얼음 덩어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무대의 조명을 반사시켜서 반짝이는 것이 예쁘기는 했지만 사실 별다른 쓸모가 없을 것 같은 모습.

“사실 이 아이템은 다른 아이템들처럼 용도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설명에 의하면 제작 재료라고 나와 있군요.”

경매사 역시 조금 애매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야기했다.

나는 서리의 아이템 정보를 살폈다.

[S급 아이템 서리]

[제작 재료]

경매사의 말대로 그게 끝이었다.

“일단 S급 아이템의 최소가인 2억부터, 호가 폭은 1천만 원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경매가 시작되었지만 이미 아까 같은 열기는 사그라든 상태였다.

사실 외형만 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얼음 덩어리인데다가 설명도 제작 재료라고 쓰인 것이 끝이었으니.

게다가 어떤 제작을 위한 재료인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게 S급에 최소가가 2억 원.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질 만 했다.

“응찰 없으십니까?”

경매사가 물었다.

나는 조용히 번호 팻말을 들어올렸다.

“아, 21번! 2억 원 응찰하셨습니다.”

니엘이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니엘 뿐만이 아니었다.

경매장 내 모든 각성자의 눈이 내게 향했다.

“저거 그냥 얼음 덩어리잖아요?”

니엘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런 얼음 덩어리를 가져다가 대체 어디에 쓰려는 건가 싶을 것이었다.

나는 대답 없이 씩 웃기만 했다.

저 얼음 덩어리야말로 내가 노리고 있던 S급 아이템이었다.

나는 경매의 카탈로그에서 서리를 보는 순간부터 이것을 낙찰받으리라 결심한 상태였다.

‘저게 바로 광휘의 서리.’

회귀 전 사용하던 단검인 광휘의 서리를 만드는 필수 제작 재료였다.

하지만 저것만 얻는다고 광휘의 서리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광휘의 서리를 만들 수 있는 건 손재주가 좋은 난쟁이 뿐이었다.

‘저걸 낙찰 받은 다음에 나중에 난쟁이를 만나게 됐을 때 제작을 부탁하면 돼.’

사실 회귀 전에 광휘의 서리를 제작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광휘의 서리는 주선오에게 받은 단검이었다.

그렇다고 제작을 한 것이 주선오였던 것도 아니었다.

제작자와 원래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몰랐다.

주선오는 광휘의 서리 전 주인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했다.

끈질긴 내 물음에 주선오는 결국 전 주인이 죽었다는 이야기만 전해줬을 뿐. 그 이외의 이야기는 절대 해주지 않았다.

주선오의 그런 반응을 보면 뭔가 사정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여기서 전 주인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회귀 전 이것을 낙찰 받았던 각성자는 분명 경매가 열렸던 시기부터 제작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경매가 열렸던 시기는 연말.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그 이후였다.

그렇다는 건 그 사람이 게이트와 아이템에 대한 이해도가 꽤나 높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좀 의아하단 말야.’

그 정도의 이해도가 있었다면 분명 주선오와 동급일 정도로 유명해졌어야 맞았다.

하지만 내가 각성했을 당시 그 사람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2억 1천 없으십니까?”

더 이상의 응찰이 없는 것을 보니 그 사람은 이곳에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시기가 좀 앞당겨지긴 했어.’

대략 반 년 정도 앞당겨져 열린 경매였다.

그 사람이 아직 각성을 하기 전일지도 몰랐다.

혹은 그 사람도 아직 제작 아이템에 대해 모르고 있을 수도 있었다.

“더 이상 다른 응찰이 없으면 세 번 호가하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2억.”

경매사가 낙찰 선언을 하려다 말을 멈췄다.

“아, 30번. 2억 1천 응찰 들어왔습니다.”

‘뭐?’

나는 경매사의 시선을 따라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 사람인가?’

“에엥?”

니엘 역시 마찬가지로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조용히 번호 팻말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30번이라고 쓰인 팻말을 든 한 남자.

‘저 사람은…?’

아까 니엘과 조이의 장난에 각성증을 떨어트렸던 사람이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오 씨였던 것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때 경매사가 내게 물었다.

“21번, 2억 2천 응찰하시겠습니까?”

나는 곧바로 팻말을 들어 보였다.

“에엥? 진짜요?”

니엘이 놀라며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남자의 시선 역시 내게 꽂혔다.

나는 남자의 시선을 그대로 받으며 남자를 살폈다.

각성증에서 봤던 그런 이름은 기억 속에 없었다.

‘정말 저 사람이 회귀 전에도 광휘의 서리를 만든 사람인가?’

내가 서리 아이템에 응찰을 했다는 것 때문에 호기심에 응찰을 진행한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그러기에는 액수가 조금 크긴 했지만.

그 각성자는 나를 바라보는 상태로 팻말을 들어 올렸다.

“30번, 2억 3천.”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나는 일단 번호 팻말을 들어 올렸다.

“21번, 2억 4천.”

30번 각성자가 다시 팻말을 들었다.

“30번, 2억 5천.”

나는 이번에는 팻말을 들며 금액을 올렸다.

“3억.”

옆에 있던 니엘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뒤쪽에 앉아있던 윤도빈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도 들렸다.

“21번, 3억 응찰하셨습니다. 30번, 응찰하시겠습니까?”

경매사가 30번을 보며 물었다.

이쯤에서 물러선다면 호기심에 따라붙은 각성자라고 판단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30번은 다시 팻말을 들어 올렸다.

“30번, 3억 천 응찰하셨습니다. 호가 폭을 2천 만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분명 알고 있다.’

저 사람은 서리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리고 회귀 전 광휘의 서리를 제작했던 사람이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팻말을 들어 올렸다.

“21번, 3억 3천.”

경매사의 말을 들으며 30번의 정보를 살펴보는데.

‘어?’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다.

‘분명 각성증에 적힌 성씨는 오 씨 였는데…?’

여우 구슬이 보여준 30번의 정보는 달랐다.

[이시결]

각성증에서 본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저런 이름은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이어진 옵션은 말도 안되는 수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거미 신의 가호]

[밤 거미]

[전용 특성 : 벌루닝 lv.3]

[전용 스탯 : 감각 40/민첩 54/촉각 47]

[전용 스킬 : 마비독 lv.3/진동감지 lv.5]

[특성 스킬 : 거미줄 lv.4/발도돔 lv.4/표류 lv.4]

‘…뭐야, 이 수치는.’

이 정도면 랭킹 2위인 주선오와 맞먹을 수치였다.

아니, 악마의 고양이 특성 옵션만 놓고 본다면.

‘나와 비슷한 정도다.’

그때 30번이 팻말을 들어올리더니 입을 열었다.

“4억.”

그의 나른한 목소리에 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30번, 4억.”

순식간에 달라진 숫자 앞자리에 경매사 역시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모두의 시선이 30번에게 꽂혔다.

하지만 30번은 빤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살짝 웃고 있는 입술.

어디 계속 할 테면 해보라는 얼굴.

나는 다시 팻말을 들어올렸다.

“21번, 4억 2천. 5천씩 호가하도록 하겠습니다.”

경매사가 다시 침착하게 호가폭을 올렸다.

하지만 30번 역시 끊임없이 응찰을 진행했다.

나는 아예 팻말을 계속 들어 올린 채 30번과 계속해서 시선을 맞추었다.

저 정도의 수치라면 분명 게이트를 닫은 경험이 굉장히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랭킹에 오르지 않았다?’

이상했다.

물론 기관의 파견 직원들이 게이트의 열고 닫힘을 모두 정확하게 체크할 수는 없었다.

교대로 지역을 지키며 게이트의 상황을 파악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실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오차가 생길 수가 있나?’

어느새 서리의 가격은 6억을 넘어섰다.

끝없는 나와 30번의 신경전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30번은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승부수를 띄웠다.

“10억.”

“허업.”

뒤에서 윤도빈이 숨을 들이켰다.

30번의 표정이 모호해졌다.

그러더니 기다란 손가락으로 팻말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21번, 10억. 30번, 응찰 하시겠습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30번이 입을 열었다.

“포기하겠습니다.”

윤도빈의 작은 한숨소리와 함께.

“네. 그럼 S급 아이템 서리. 현재 10억 원 최고 응찰. 다른 응찰 없으면 세 번 호가하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이제 와서 이 판에 끼어들 각성자는 없었다.

“10억. 10억. 10억.”

땅!

경매사가 낙찰봉을 두드렸다.

“S급 아이템 서리. 21번 분께 10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낙찰이 선언되었다.

30번은 내게 살짝 웃어보이고는 무대의 다음 경매품을 바라보았다.

나도 계속해서 30번을 주시하기에는 보는 눈이 많았기에 일단 고개를 돌려 무대의 경매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경매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대체 왜 각성증과 여우 구슬 정보의 이름이 다른 건지, 저 사람이 회귀 전 광휘의 서리를 만들었던 각성자가 맞는지, 정말 제작 아이템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건지.

궁금한 게 굉장히 많았다.

‘경매가 끝나면 붙잡아서 얘기를 좀 해봐야겠어.’

그 이후로 경매가 어떻게 진행이 됐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럼 이것으로 아이템 경매를 마치겠습니다. 아이템을 낙찰 받으신 분들께서는 자리에 남아주시기 바랍니다.”

‘끝났다!’

나는 경매사의 멘트가 끝나자마자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30번은 이미 자리를 뜬 상태였다.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벗어났다.

“어, 언니! 어디 가요!”

“누나!”

뒤에서 니엘과 윤도빈이 나를 불렀지만 나는 빠르게 컨벤션홀을 벗어났다.

하지만 복도에도 30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탐지로 컨벤션 센터 내부를 살폈다.

하지만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많이 분포 되어 있었다.

특히 오늘은 금요일.

일반 사람들에게도 컨벤션이 개방되기 시작한 날의 저녁이었다.

평소보다도 인파가 더욱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팔을 덥석 붙잡았다.

나는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윤도빈이었다.

“누나!”

걱정이 가득한 얼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뒤따라온 니엘 역시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괜찮아요?”

“괜찮아.”

내가 니엘을 토닥였다.

그때 컨벤션 홀 문틈으로 고개를 비죽 내민 조이가 말했다.

“도아 씨, 도빈 씨. 지금 안 들어오면 아이템 먹튀하는 것처럼 되게 생겼는데요?”

어쩔 수 없었다.

그를 쫓아가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시결….’

나는 찜찜한 기분으로 30번의 이름을 곱씹고는 컨벤션홀로 되돌아갔다.

* * *

컨벤션홀의 뒤쪽의 작은 천 앞.

어두워진 천변에 한 남자가 우두커니 선 채 컨벤션 홀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 아이템 경매에 참여했던 경매 번호 30번의 각성자였다.

‘서리는 꼭 얻고 싶었는데 말이지.’

남자가 아쉽다는 듯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그때 입술을 두드리던 손가락 끝에 무언가 끈적한 것이 묻어났다.

남자의 입술에서부터 이어진 가느다란 실이었다.

‘아.’

남자는 입술을 두드리던 손을 이마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커다란 손으로 이마를 덮고 천천히 얼굴을 쓸어 내렸다.

스슥.

남자의 손이 얼굴을 쓸고 지나가자.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

살짝 처진 눈 아래의 짙은 다크 서클. 날렵하게 뻗은 콧날과 붉은 입술까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얼굴을 쓸어낸 남자의 손에는 진득한 실들이 잔뜩 뭉쳐져 있었다.

남자는 손에 뭉친 실들을 바닥으로 털어낸 후, 자켓의 주머니에서 까만 장갑을 꺼내 양손에 끼었다.

그리고는 목에 걸려있던 각성증을 벗어 옆의 수풀 속으로 툭 떨어트렸다.

입고 있던 재킷도 벗어 역시 수풀의 위로 툭.

남자의 처진 눈이 살짝 가느다래졌고 남자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재미있네.’

넥타이를 풀어내던 남자의 입이 살짝 달싹였다.

“윤도아.”

그러더니 피식.

웃음을 흘린 남자는 넥타이를 무심하게 바닥에 떨구었다. 그리고는 유유히 그곳을 벗어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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