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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76화 (77/201)

제76화

6일간의 각성자 컨벤션이 마무리 되었다.

조이와 니엘은 한국에 계속 남아있고 싶어했다.

하지만 둘 다 한 국가의 랭킹 1위였기에 더 이상 자리를 비워둘 수가 없었다.

몰리와 카터는 경매가 끝난 이후 바로 캐나다로 돌아갔다. 반면 루크는 통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컨벤션의 폐막식이 끝난 이후에 돌아갔다.

경매에서 10억에 낙찰 받은 서리 역시 무사히 내 손에 들어왔다.

다만.

“쿄오…. 이건 제가 보관할 수 없습니다, 주인.”

불꽃 슬라임인 레부는 서리를 극도로 꺼려했다.

서리는 생긴 그대로 차가운 얼음 덩어리.

레부가 서리를 품게 되면 둘 다에게 좋지 못했다.

결국 서리는 일단 집에 보관해두기로 했다.

언제 난쟁이를 만날지 모르니 가지고 다녀야 맞긴 했지만, 서리의 보관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경매에서 만났던 정체모를 각성자. 그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야했다.

나는 김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도아 씨.]

김지석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이사님. 혹시 각성자 리스트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얼마든지요.]

“지금도 괜찮을까요?”

[아. 네. 기관 이사실로 오시면 바로 보실 수 있도록 준비해두겠습니다.]

“네. 잠시 뒤에 뵐게요.”

나는 곧바로 집을 나서 기관으로 향했다.

각성 기관을 찾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컨벤션 이후로 더욱 북적거리는 기관의 로비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친 나는 4층의 이사실로 향했다.

이사실의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김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던 김지석이 이사실로 들어선 나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아 씨. 오셨어요?”

나는 김지석에게 고개를 꾸벅여보이고는 그의 상태를 살폈다.

컨벤션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바쁘신가요?”

“컨벤션 쪽 마무리가 아직 덜 됐네요. 각성자 리스트 보고 싶다고 하셨죠? 잠깐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나는 김지석이 업무를 보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이사실은 물론 책상 위 또한 주인의 성격대로 굉장히 깔끔했다.

김지석은 내게 의자를 양보하고는 한 발 물러났다.

“열어뒀습니다.”

“전이랑은 좀 다르네요?”

내가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네. 새로 서버를 구축했거든요. 이제는 전세계 가호자, 각성자들을 모두 볼 수 있어요. 그럼 잠시.”

김지석은 내게 양해를 구하고는 이사실을 나섰다.

아무래도 내가 리스트를 살펴보는 동안 자리를 피해주려는 것 같았다.

나는 가호자와 각성자의 리스트를 살폈다.

리스트는 한글의 자음 순서에 따라 탭으로 구분되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다른 탭들은 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곧바로 이응 탭을 눌렀다.

각성자의 이름이 촤르륵 나열되었다.

나는 한 이름을 되뇌면서 마우스의 휠을 내렸다.

‘이시결.’

드륵. 드르륵.

이응 탭이 끝날 때까지 꼼꼼하게 리스트를 살폈지만.

이시결이라는 이름은 리스트에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한번 리스트를 살폈다.

그때 봤던 각성증에 적힌 이름을 찾기 위해서.

‘오 씨였는데.’

드르륵.

나는 빠르게 내리던 마우스 휠을 멈췄다.

‘찾았다.’

오진서.

분명 이 이름이었다.

등록되어 있는 사진도 그때 봤던 각성증의 사진과 같았다.

‘얼굴도 똑같았는데.’

분명 각성증을 건네며 확인을 했었다.

이럴 줄 알고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각성증에 사진이 있으니 자연스레 비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리스트에 적힌 오진서 각성자의 정보를 확인했다.

[오진서]

[닭 신의 가호]

‘역시 달라.’

주어진 신의 가호도 달랐다.

이름만 달랐다면 개명이라도 했으려나 싶었겠지만.

한 번 주어진 신의 가호는 죽어도 바뀌지 않는다.

내가 그랬으니까.

확실히 그 때 그 각성자는 여우 구슬로 확인한 대로 거미 신의 가호를 받은 이시결이라는 각성자였다.

하지만 아무리 꼼꼼히 리스트를 살펴보아도 이시결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시결은.

‘…미등록 각성자.’

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머릿속에서 모든 조각들이 이어 붙는 기분이었다.

왜 회귀 전 주선오가 광휘의 서리의 전 주인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미등록 각성자는 주선오에게 좋은 기억이 절대 될 수 없었다.

주선오는 미등록 각성자와의 싸움에서 첫 살인을 겪게 된다.

‘아마 그 상대가 이시결.’

그래서 그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했을 것이다.

이시결은 미등록 각성자였고 아이템 경매에 나온 서리 아이템을 원했다.

하지만 각성자 등록을 하지 않았기에 경매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다른 각성자의 정보를 빌리는 것.

‘그럼 얼굴은?’

사진과 완벽하게 같은 얼굴이 의아했다.

그때 확인한 정보로는 조이처럼 모방을 할 수 있는 스킬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둘 수는 없겠는데.’

미등록 각성자인 이시결이 나타났다면 조만간 다른 미등록 각성자들도 움직이기 시작할 확률이 컸다.

‘슬슬 미등록 각성자가 움직이기 시작하려나.’

나는 모니터를 쏘아보며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그때 김지석이 다시 돌아왔다.

손에는 작은 쟁반이 들려 있었고 그 위에는 커피잔이 두 개 놓여 있었다.

책상으로 다가온 김지석이 내게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아, 감사합니다.”

얼음이 띄워져있는 시원한 커피였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김지석에게 물었다.

“이사님. 혹시 각성자 한 명 찾을 수 있을까요?”

“각성자를요?”

“네. 이 분이요.”

내가 모니터에 띄워둔 오진서 각성자를 가리켰다.

김지석이 살짝 몸을 기울이며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 이 분은….”

모니터를 확인한 김지석이 뭔가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아는 각성자인가요?”

“네. 저랑 같이 각성하신 분입니다. 그때 권 선생님 도움으로요.”

김지석과 함께 각성을 했다면 각성을 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것이었다.

“각성자 등록할 때 받아둔 연락처와 주소가 있는데 연락을 해볼까요?”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 대답에 김지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리를 폈다.

“알겠습니다.”

“혹시 이야기도 많이 해보셨나요?”

“글쎄요. 이야기는….”

김지석이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기억을 떠올렸다.

“저보다는 권 선생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셨어요. 아마 권 선생님께서도 기억을 하고 계실 겁니다. 그때 저랑 오진서 각성자뿐이었거든요. 교육을 받은 건.”

김지석의 설명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권재경은 아이템 경매 때도 컨벤션홀의 앞에서 각성자들의 신분을 확인했었다.

‘아저씨랑도 얘기를 좀 해봐야겠네.’

“아저씨는 어디 계세요?”

“권 선생님이시라면 어제 기관 소속 가호자와 함께 게이트에 들어가셨습니다만….”

김지석이 말끝을 흐렸다.

일이 바빠 잊고 있던 것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연락이 없으시군요.”

“어제부터요?”

“네. 조금 이상하네요. 게이트가 하루 이상 걸리는 일은 없었는데.”

김지석이 조금 걱정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러더니 곧 마우스를 움직여 기관의 사이트에 접속했다.

나는 잠시 뒤로 물러나 모니터를 살폈다.

김지석은 기관 사이트에서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이쪽으로 가신다고 하셨는데…. 아, 여기네요.”

김지석이 지도를 확대해 그곳에 있는 게이트의 현황을 살폈다.

“A급 종합 보상 게이트네요.”

“네. 입장해있는 상태네요, 아직.”

모니터에는 게이트의 급수와 함께 현재 상태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게이트는 처음 생겨날 때는 2미터 정도 크기로 펼쳐지고 그 상태를 유지하며 입장할 사람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누군가 입장한다면 농구공만한 구의 형태로 변하고, 입장한 사람이 사망하게 되면 다시 원형으로 돌아온다.

기관의 파견 직원들이 게이트의 상태를 정리해두는 것도 그것을 보고 파악을 하는 것이리라.

나는 커피를 한 모금 삼키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권재경이 죽을 일은 없었기에 그닥 크게 걱정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이맘때쯤에는 김지석의 말대로 하루 이상 걸리는 게이트는 없었다.

후반에 가면 C급의 게이트조차도 기본 소요 시간이 하루 이상이었다지만.

이제 반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벌써 그런 게이트가 나타날 확률은 적었다.

‘위례라고 했던가.’

나는 모니터에서 게이트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오진서라는 각성자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봐야 했고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게이트가 뭔지 확인도 해보고 싶었다.

“그럼 아까 그 각성자 분, 확인 되시면 연락 좀 부탁드릴게요.”

내가 빈 커피잔을 내려두고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 알겠습니다. 확인하는 대로 바로 연락드릴게요.”

나는 김지석과 인사를 나누고는 기관을 나와 바로 위례로 향했다.

* * *

위례의 A급 종합 보상 게이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기관 사이트의 지도에 상세한 위치가 적혀있기도 했거니와.

아파트 단지 사이의 공원에 까만 구체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게이트의 앞에 서자 구형의 게이트가 스르륵 펼쳐지며 원형을 회복했다.

크게 벌어진 게이트의 중앙에 안내문이 떠올랐다.

나는 안내문은 보지 않고 여우 구슬로 게이트의 정보를 읽었다.

[A급 종합 보상 게이트]

[책들의 보금자리와 연결된 게이트입니다.]

[최초의 책을 찾으면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게이트 클리어 시 A급 이상의 아이템, 스킬, 스탯 혹은 그 외의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못 나오고 있었네.’

최초의 책을 찾는 것이 이 게이트의 클리어 목표.

게다가 게이트가 책들의 보금자리와 연결이 된 곳이라면 분명 거기엔 방대한 양의 책이 있을 것이다.

책을 찾기까지 오래 걸릴 수밖에.

‘잘됐다.’

마침 아이템 마켓에서 구매했던 자침으로 완성한 나침반을 시험해볼 곳이 필요했다.

세트가 갖추어지지 않아서 성능이 온전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인지 확인은 해보고 싶었다.

“어? 도아 언니!”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쓰고 있던 모자를 살짝 들며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나라와 함께 이리나가 서 있었다.

“이모!”

나라 역시 나를 알아보고는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나라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주고는 이리나에게 물었다.

“왜 여기에 있어?”

“아빠가 여기 들어갔어요.”

나라가 내 앞의 게이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리나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어제 들어가셨는데 아직 소식이 없어서요. 이렇게 오래 걸린 적은 없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걱정돼서 와봤는데 다행히 아직 안에 계시더라고요.”

설명하는 이리나의 얼굴에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확인하고 가려고 했는데 나라가 아빠랑 같이 가겠다고 계속 고집을 피워서….”

이리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나라를 바라보았다.

나라의 손에는 막대사탕이 들려 있었다. 나라를 달래느라 근처의 마트에라도 다녀온 모양이었다.

그때 나라가 이리나의 손을 놓고 내게 쪼르르 다가오더니 내 옷을 턱 붙잡았다.

“이모, 이모. 아빠 보러 갈래요?”

나라가 기대감을 품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때 나라한테 선생님 부탁으로 나라 확인하러 거기 왔다고 했잖아요.”

아무래도 일전에 게이트 안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내 말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응. 그랬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라가 똘망똘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나라가 부탁할 테니까 아빠가 잘 있나 확인해주면 안 돼요?”

나라의 명확한 논리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라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은 나는 이리나를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들어가 볼까 하고 있었는데. 나라랑 너도 같이 갈래?”

내 물음에 이리나의 눈이 커졌다.

“어머. 저랑 나라도요? 괜찮을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리나는 내심 기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이리나 역시 게이트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확실히 책을 찾는 게이트라면 만약 나침반이 잘 작동하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나라와 함께 가는 것이 좋았다.

나라의 가호는 인도하는 하얀사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도 인도에 속하긴 하지.’

“괜찮아. 혹시 안에서 아저씨나 다른 각성자가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르고. 아니어도 나라를 봐줄 사람이 필요하긴 하니까.”

내 말에 이리나는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들어갈게요.”

그러더니 나라의 손을 꼭 붙들고는 게이트의 앞에 섰다.

“나라야, 이모 먼저 들어갈 테니까 언니랑 따라와.”

내가 나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나라가 신이 난 듯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피식 웃은 나는 바로 게이트 안으로 입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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