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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78화 (79/201)

제78화

사르르륵!

나는 즉시 마나로 모래들을 붙잡았다.

최은서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결박한 모래더미가 멈추었다.

그리고 내 옆에 모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휴.”

모부는 주선오에게 칼을 빼앗아 먹은 후 몇 달 동안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

본인 입으로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게 벌써 도루묵이 될 확률은 적었다.

그렇다면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을 터.

“설명해, 모부.”

모부가 모래 지팡이로 머리의 삿갓을 슥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가느다란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휴휴, 주인. 방금 위험했던 거 아시나요?

“네가 튀어나온 걸 보니 뭔가 스킬이라도 사용하려고 했나?”

내가 슬쩍 모래에 묶인 최은서를 보며 물었다.

“그, 그런…!”

내 말에 최은서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반면 모부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휴휴휴휴. 알고 계셨나요?”

“의심은 하고 있었는데 무슨 스킬인지는 잘 모르겠어서.”

나는 팔짱을 낀 채 옆의 낮은 책장에 걸터앉았다.

“얘기해 봐.”

내 손짓에 모부가 웃었다.

“휴휴휴휴. 저 사람이 가진 스킬은 흔치 않은 스킬이에요. 그래서 꽤 탐나긴 하지만 주인과 약속을 했으니 삼키지는 않았어요.”

“그래, 잘했어. 그래서 무슨 스킬인데?”

모부가 나를 따라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루밍이라는 스킬이에요.”

“그루밍?”

“휴휴, 맞아요. 자신의 구성원에게 스킨십을 했을 때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게 만드는 스킬이지요.”

모부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비틀었다.

“난 구성원이 아닌데?”

모부가 고개를 저었다.

“휴. 주인. 이미 주인은 저 사람의 구성원이에요.”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뭐라고?”

“저 사람의 스킬 중에 무리짓기라는 스킬이 있어요. 그 스킬의 발동 조건이 눈을 마주치는 거고요.”

나는 조금 불쾌해진 기분으로 최은서를 바라보았다.

모부의 말에 따르면 처음 인사를 했을 때 최은서는 내게 스킬을 사용했던 것이리라.

“그래서 나한테 그 그루밍이라는 스킬로 뭔가를 캐내려고 했다?”

모부의 가느다란 눈이 최은서를 향했다.

최은서는 안절부절 못하며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런 최은서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

“뭘 물어보려고 했을까, 은서 씨.”

최은서가 흠칫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 서늘한 눈빛에 금세 시선을 떨궜다.

“뭐 나한테 궁금한 거라도 있어요?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나?”

최은서는 입을 꾹 다문 채 계속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쉽게 대답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분명 가호자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가호자한테 어떻게 스킬이 있어요?”

내 놀랍다는 듯한 말에 모부가 옆에서 고개를 내저었다.

“휴, 주인. 알고는 있었지만 상당히 못된 사람이군요. 다 알면서 그렇게 떠보는 말이라니.”

나는 피식 웃었다.

“사람 먹는 슬라임이 주인한테 할 소리는 아니라고 본다, 모부야.”

그 말에 최은서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잘못하면 먹힐지도 모른다고 제대로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보아하니 이미 각성을 한 것 같은데 왜 가호자라고 하면서 기관에 등록한 건가요?”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대답 안 하면 내가 좋을 대로 생각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뭐든 좋은 의도로 해석되지는 않을 거고요. 각성자라고 해도 그냥 늦게 등록을 했다고 이야기하면 될 텐데 굳이 숨겼다는 건 각성자라는 걸 숨겨야 할 이유가 있다는 거겠죠.”

내 추측에 옆에서 모부가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다가 주인을 구성원으로까지 만들려고 했다니, 휴! 이정도면 제가 삼켜도 되지 않을까요?”

모부가 최은서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최은서를 협박하기 위한 말이라기보다는 모부의 진심 같았다.

그 표정을 본 최은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냐, 아냐. 뭔가 계획이 있었어도 날 구성원으로 만드는 건 어쨌든 계획에 없었던 일이겠지. 내가 이 게이트에 올 줄 어떻게 알았겠어. 그쵸?”

“모, 몰랐어요!”

그제야 최은서가 강하게 동의를 했다.

“그러니까 원래 최은서 씨의 목적은 내가 아니라 권재경이었을 거다, 라는 거지.”

최은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래서. 권 선생님한테 뭐 좀 캐냈어요?”

내가 씩 웃으며 물었다.

커다래진 눈으로 나를 보던 최은서가 입을 벙긋거렸다. 그러다가 흠칫하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최은서의 반응에 나는 피식 웃었다.

“아. 찍어봤는데. 권 선생님을 구성원으로 만들어서 정보를 뽑아낸 게 맞나보네요?”

최은서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럼 지금도 권 선생님이 최은서 씨 구성원인가요?”

내 질문에 최은서 대신 모부가 설명했다.

“휴휴. 아닐 겁니다. 구성원으로 만드는 것은 시간제한이 있어요. 아직 저 사람의 스킬 레벨이 낮아서 이미 풀렸을 거예요.”

“아하. 근데 그럼 아저씨도 그 정보를 말한 걸 기억하는 거 아냐?”

모부가 고개를 저었다.

“그루밍 스킬을 사용하면 그루밍에 걸렸을 때의 기억을 없애는 것도 가능해요.”

“기억 조작까지 가능해? 굉장하네.”

정말 스파이를 하기에 딱 알맞은 스킬이었다.

나는 최은서에게 물었다.

“최은서 씨, 당신. 미등록 각성자 무리죠?”

최은서가 흠칫 놀랐다.

그때 권재경과 이리나가 이쪽으로 오는 것이 탐지에 잡혔다.

“얘기는 조금 이따가 이어서 하기로 하죠.”

나는 모래의 심장을 들어 보였다.

“모부, 들어가 있어.”

모부는 최은서를 바라보며 다시 씨익 웃고는 모래의 심장으로 들어갔다.

모부와 함께 최은서를 붙잡고 있던 모래들 역시 모래의 심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르르륵.

그제야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최은서는 힘이 풀린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최은서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소란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까 티내지 마요. 그쪽에서도 최은서 씨가 실패했다는 걸 알면 그냥 두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렇죠?”

최은서가 덜덜 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뭐해요. 일어나지 않고.”

내가 다시 손을 쭉 펴보였다.

그러자 최은서가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마침 권재경과 이리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권재경의 품에 안겨있는 나라는 잠이 들어 있었고 이리나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왠지 권재경은 한층 더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 두 분 벌써 만나셨군요.”

권재경이 나와 최은서를 보며 말했다.

“네. 인사했어요. 그쵸, 은서 씨?”

내 말에 최은서가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네….”

“여긴 제 딸 권나라입니다. 어제 제가 집에 가지를 못하는 바람에 잠을 잘 못 잔 모양이에요.”

권재경이 최은서에게 안고 있는 나라를 소개했다.

“전 개의 이빨 무리 이리나예요. 반가워요.”

이리나가 빨간 눈으로 최은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최, 최은서예요.”

“어머, 혹시 어디 안 좋으세요? 손이 너무 찬데.”

최은서의 손을 맞잡은 이리나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최은서는 마구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뇨, 아뇨. 괜찮아요.”

그러더니 후다닥 손을 거두어 뒤로 감췄다.

아무래도 너무 티나게 행동하는 것이 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저씨도 조금 쉬시는 게 좋겠어요. 최초의 책은 저희가 찾아보고 있을게요.”

내 말에 권재경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 쉬세요. 나라까지 안고 어떻게 책들을 살펴보시려고요.”

잠시 나라를 토닥이던 권재경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리나를 바라보았다.

“리나는 여기 마저 살펴봐줘. 나랑 은서 씨는 안 본 서고 가 볼 테니까.”

이리나의 얼굴이 밝아졌다.

“네, 언니.”

그러다가 최은서를 보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은서 씨 괜찮겠어요? 은서 씨도 좀 쉬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자 최은서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네요. 저는 밤에 조금 자서…. 괜찮아요.”

“그럼 뭔가 찾으면 얘기해. 다른 쪽 보고 있을 테니까.”

나는 최은서의 등을 살짝 떠밀며 말했다.

최은서가 앞장서서 아치형의 통로로 향했다.

통로를 지나는 동안 우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서고지기가 있는 홀로 나온 나는 앞에 서 있는 최은서에게 물었다.

“안 본 데가 어디예요?”

잠시 서고지기를 중심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최은서가 왼쪽의 통로들을 가리켰다.

“여기서부터는…. 아직 다 못 봤어요….”

“그래요? 그럼 저쪽으로 가죠.”

나는 왼쪽의 가장 끝 통로를 가리키고는 다시 최은서의 등을 살짝 밀었다.

통로로 이동하는 동안 서고지기의 눈이 관찰하듯 우리를 따랐다.

우리는 서고지기의 시선을 받으며 왼쪽 끝의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 안의 서고는 조금 전 보았던 곳과 다를 바 없었다.

제멋대로 생긴 책장들이 두서없이 널브러져 있었고 바닥에도 역시 책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최은서가 자신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며 내 눈치를 살폈다.

“레부, 모부.”

나는 두 슬라임을 모두 불러냈다.

“쿄!”

“휴….”

내 양옆에 레부와 모부가 나타나자 최은서가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흐익!”

그러다가 뒤에 있던 커다란 책장에 몸을 부딪혔다.

덜컹!

책장이 크게 흔들리더니 그 안에 있던 책들이 최은서를 향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꺅!”

나는 빠르게 최은서의 위쪽으로 마나 방패를 만들어냈다.

“마나 방패.”

툭! 투두둑!

마나 방패 위로 책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던 최은서가 조심스럽게 눈을 뜨더니 자신의 위를 막고 있는 마나 방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나와 내 옆의 슬라임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쿄쿄쿄쿄쿄.”

“휴휴휴….”

두 슬라임의 웃음에 최은서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쿄쿄쿄. 재미있는 인간이군요. 감히 주인한테 스킬을 걸려고 하다니. 쿄쿄쿄쿄.”

“휴휴휴. 재미있는 게 아니라 멍청한 거죠. 감히 이 스킬 보부상 앞에서 스킬이라니, 휴!”

두 슬라임이 독특한 웃음을 뽐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으으….”

최은서가 금세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런 최은서의 앞에 쪼그려 앉으며 물었다.

“자, 그럼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해볼까요?”

최은서가 양손에 얼굴을 묻고는 말했다.

“…으아, 마, 마, 맞아요! 맞아요! 저 미등록이에요! 흐어엉!”

나는 씩 웃고는 두 슬라임을 뒤로 물렸다.

“자세히 얘기해 봐요.”

“기, 기관 동태를 살펴보라고 해서 왔어요….”

최은서가 얼굴을 감싼 손 사이로 나를 바라보았다.

“계속.”

“그, 그래서 권 선생님한테 정보를 좀….”

“어떤?”

“기, 기관 내 시스템이라던가….”

최은서가 말끝을 흐렸다.

“그런 건 기관 사이트에 접속만 해도 알 수 있을 텐데?”

잠시 머뭇거리던 최은서가 이어 말했다.

“…그 표적으로 삼을만한 사람이 있는지….”

“표적?”

“기관을 무너트리기 쉬운…. 표적이랄까요….”

회귀 전, 놈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정부를 갈아치우는 것.

하지만 그러자니 정부 측에는 정부 소속인 각성 기관이 있었다.

결국 놈들이 목적을 이루려면 기관부터 무너트려야 했다.

각성 기관을 무너트린다면 정부의 사람들이야 손쉽게 제압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당신이 알아낸 건?”

최은서가 또 머뭇거렸다.

슬슬 짜증이 나려했다.

“어차피 망설여도 내가 듣고 싶은 얘기는 다 들을 거니까 빨리빨리 얘기해요.”

내 말에 최은서가 흠칫 놀라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기관 이사를 목표로 삼으면 될 것 같았어요.”

“김지석 이사님?”

“네….”

역시 생각했던 대로였다.

김지석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기관은 손쉽게 무너질 터.

기관장인 안세인이 있기야 했지만 실질적으로 안세인은 기관의 업무에 대해서는 잘 관여하지 않았다.

기관의 실세는 김지석.

‘게다가 김지석은 각성한 지도 얼마 안 됐고.’

아주 좋은 표적이었다.

“그래서 미등록들이 지금 기관을 무너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 이거죠?”

내 말에 최은서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나는 일단 최은서를 일으킨 후 마나 방패를 없앴다.

투두둑!

마나 방패 위에 있던 책들이 최은서가 일어난 자리로 떨어져 내렸다.

“여길 나가서 미등록들한테 전달하려고 한 거고요?”

“네….”

최은서가 바닥에 떨어진 책더미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최은서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제가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어느새 다시 다가온 두 슬라임이 최은서를 둘러싼 채 웃고 있었다.

우리를 둘러본 최은서가 곧 울먹거리며 말했다.

“마, 말 안 할 테니까 제, 제발…. 죽이지는 말아주세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죽여요? 제가? 최은서 씨를? 그럴 리가요.”

최은서의 눈은 레부와 모부에게 향해있었다.

아무래도 슬라임을 이용해 자신을 처리할까봐 무서운 모양이었다.

“걱정 마요.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나한테 협조만 해 준다면요.”

“…협조…, 요?”

최은서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래요. 최은서 씨가 역으로 나한테 미등록들의 정보를 알려주면 돼요.”

“…네?”

최은서가 조금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렇게 해준다면 나도 최은서 씨한테 나쁘게 대할 생각은 없어요. 어때요?”

“그럼…. 저보고 이중 스파이 짓을 하라는…?”

최은서의 물음에 내가 씩 웃었다.

“정확해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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