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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82화 (83/201)

제82화

“언제?”

<음….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저도.>

역시 김지석이 게이트에 들어갔던 시기와 비슷했다.

‘설마….’

그때 밖에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신교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빠르게 말했다.

“알겠어요. 나중에 다시 연락하죠. 일단 몸 사리고 있어요.”

<…네? 몸을….>

나는 곧바로 레부의 연결을 끊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신교진이 나타났다.

“그러니까 내가 가지 말라고…. 어? 누나.”

신교진이 사무실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뒤따라 들어오던 주선오 역시 놀란 눈치였다.

“오신다고 미리 연락 주시지 그러셨어요.”

“아냐. 방금 왔어, 나도.”

주선오가 사무실로 들어선 후 문을 닫고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내려두었다.

주선오의 왼팔에는 붕대가 둘둘 감겨있었다.

“다쳤어?”

“살짝요.”

주선오가 책상 앞의 1인용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그 말에 신교진이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살짝? 살~짝? 베여서 뼈가 보일 정도가 살짝이라고?”

“리나가 치료해줬잖아.”

주선오의 별 것 아니라는 대답에 신교진이 가슴을 퍽퍽 치더니 내게 말했다.

“누나가 한 소리 좀 해요. 저 새끼는 제 말은 죽어도 안 들어서.”

하지만 게이트 안에서 다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나야 그렇다 치고.’

신교진 역시 워낙 운이 좋아서 다치는 일이 극히 손에 꼽을 정도라고는 하지만.

오로지 실력만으로만 승부해야 하는 주선오에게 부상은 흔한 일이었다.

회귀 전 주선오의 몸에는 흉터가 한 둘이 아니었다.

다행히 사지는 멀쩡했지만 조금만 더 빗나갔으면 크게 위험할 법한 큰 상처도 많았다.

“내가 느낌 별로라고 그렇게 가지 말라던 게이트 가더니 저렇게 다쳐왔다니까요?”

신교진이 선생님에게 친구의 잘못을 일러바치듯 내게 말했다.

“그래 놓고 좋은 아이템도 못 얻어오고.”

그 말에 주선오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아직 S급의 아이템을 얻지 못한 주선오가 듣기에 화가 날 법도 한 말이었다.

“적당히 해.”

신교진이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뚱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그것을 살피기 시작했다.

살짝 한숨을 내쉰 주선오가 나를 보며 물었다.

“뭔가 볼 일이 있으셔서 오신 건가요?”

“응. 혹시 김 이사님이랑 연락 해봤어?”

주선오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딱히…. 무슨 일 있습니까?”

“김 이사님이 휴가를 냈다고 하더라고.”

“…휴가요? 그 형이?”

놀라는 걸 보니 주선오와 일을 할 때에도 한 번도 쉰 적이 없던 모양이었다.

핸드폰을 보며 듣고 있던 신교진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 형 완전 워커홀릭인데 쉰다고요?”

“관장님 말로는 며칠 전에 게이트를 다녀온 후로 조금 이상했대. 사실 지금 기관이 조금 어수선한데 그럴때 김 이사님이 자리를 비운 게 조금 이상해서.”

“어수선하다뇨?”

“지난주에 혹시 공원에서 사체 발견됐다는 기사 봤어?”

“어! 저 그거 봤어요.”

소파에 파묻히다시피 기대있던 신교진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근데 왜요?”

“부검 결과가 나왔는데 그 사체가 기관 소속 각성자라고 하더라고.”

“엥?”

신교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주선오를 바라보았다.

주선오가 심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각성자였다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지금 조사 중이야. 사인은 독. 그것 때문에 조금 어수선한 상황이거든.”

내 설명을 들은 주선오 역시 의아한 것 같았다.

“그런 시기에 휴가라니…. 확실히 이상하네요.”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네가 좀 알아봐 줬으면 좋겠어.”

주선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해 봐야겠네요.”

주선오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드는데 갑자기 신교진이 소리를 질렀다.

“어!”

갑작스런 비명에 주선오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신교진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신교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선오의 옆으로 이동하며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야, 야, 야. 이것 봐.”

주선오가 신교진이 들이민 핸드폰의 화면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하지만 화면을 보던 주선오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그러더니 이내 신교진의 핸드폰을 빼앗아 든 채 그것을 확인했다.

“누나, 누나도 커뮤니티 좀 확인해보세요. 지금 난리났는데.”

신교진이 나를 부추겼다.

‘커뮤니티?’

나는 핸드폰을 꺼내어 신교진의 말대로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그리고 신교진의 말대로 커뮤니티는 난리가 난 상태였다.

-그 얘기 진짜인가? 기관 이사 지금 잠적했다던데.

-모르긴 모르겠지만 뭔가 찔리는 게 있으니까 그런 것 같은데.

김지석에 관한 이야기가 커뮤니티에 돌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글들을 살폈다.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 안에 있던 사람만 알 수 있으니까 어떻게 된 건지 알려면 본인이 입을 열어야 할텐데.

-그래봤자 거짓말하면 끝 아닌가?

-ㅇㅇ….

-게이트 안에서 죽는 건 사실 흔한 거잖아. 그거가지고 이렇게 마녀사냥 할 일인가;;

-근데 미등록 쪽에서 워낙 강하게 주장을 하니까 진짜 그런가 싶기도 한데….

미등록 각성자들이 무언가 커뮤니티를 들쑤셔놓은 것 같았다.

글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려보니.

미등록이 올린 것 같은 장문의 글이 하나 있었다.

[각성 기관 이사는 해명바랍니다.]

[저는 기관에 등록하지 않은 미등록 각성자입니다.

정부에서 등록을 권고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각자의 사정이라는 게 있기에 등록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꽤 있고 우리끼리 소소하게 게이트를 닫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본인들 스스로를 드러내며 쓴 글이었다.

‘무슨 꿍꿍이지?’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글을 이어서 읽어나갔다.

[며칠 전 어쩌다가 미등록 각성자 동료 한 명이 기관의 김지석 이사와 같은 게이트에 입장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건 김지석 이사 뿐, 함께 입장했던 동료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게이트는 닫혔고요.

안에 사람이 있으면 클리어가 되더라도 닫히지 않는 것이 게이트입니다.

그렇다면 제 동료는 그 안에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어쩐 일인지 김지석 이사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잠적까지 해버렸더군요.

그런 행동 때문에 저는 김지석 이사가 제 동료를 죽였다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바로 해명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아하….’

이건 정말 김지석을 저격한 글이었다.

사람들의 기관에 대한 인식을 무너트리려고 수작을 부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람들 역시 그 수작에 말려들고 있었다.

-진짜 죽인 거 아냐?

-해명해라, 기관.

-기관 이사가 살인이라니 말이 되냐. 그럴 거면 기관 문 닫아야지.

-살인자가 이사로 있는 기관 믿을 수 없음. 청원 넣읍시다, 여러분.

상황 자체가 미등록들에게 유리했다.

이건 본인이 나서지 않는 이상 절대 정리되지 않을 상황.

아니, 본인이 나서도 한동안은 구설수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주선오가 살펴보던 핸드폰을 신교진에게 넘겼다.

“…바로 가 봐야겠네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행동이 이상한 게 마음에 걸립니다.”

주선오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신교진이 주선오의 팔을 보며 물었다.

“너 운전 못 할 것 같은데. 내가 해줘?”

잠시 팔을 내려다보던 주선오가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며 말했다.

“누나도 같이 가시겠어요?”

주선오가 신교진에게 꺼내든 차키를 넘겼다.

따라가 보는 게 좋을까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레부가 튀어나왔다.

“쿄!”

“으악, 깜짝이야!”

신교진이 화들짝 놀라며 주선오의 차키를 놓쳤다.

“주인. 연락이.”

최은서에게 다시 연락이 온 모양이었다.

“아. 먼저 가 있어. 난 나중에 따로 가든가 할게.”

“알겠습니다.”

“참, 선오야.”

신교진을 먼저 내보내던 주선오가 나를 돌아보았다.

“이사님한테 내가 부탁한 건은 이제 됐다고 전해줘.”

“네.”

주선오는 별다른 질문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둘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후 레부에게 말했다.

“연결해.”

“쿄.”

그러자 최은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부? 들리세요?>

“들려요. 무슨 일이에요?”

<아! 저, 저기! 조금 전에 간부 하나가 혼자 게이트에 간다고 나갔어요.>

최은서가 빠르게 말했다.

“…간부가? 혼자요?”

<네, 네. 가평 쪽 게이트라고 들었어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김지석에게 찾아가서 게이트 안의 상황을 들어봐야 할지, 아니면 미등록의 간부를 쫓아가야 할지.

하지만 답은 나와 있었다.

‘차라리 잘됐어.’

미등록의 간부를 쫓아가서 커뮤니티의 선동을 일단 멈추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알겠어요. 정확한 위치 찍어서 보내줘요.”

<네, 네.>

나는 연결을 끊고 레부를 들여보낸 후 곧바로 사무실을 나섰다.

* * *

다행히 김지석은 주선오와 만나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선오를 반기는 것도 아니었다.

“…웬 일이야?”

김지석이 수척해진 얼굴로 주선오를 집안으로 들였다.

계속해서 내리는 비에 집안이 어두웠지만 김지석은 불을 켜지도 않은 상태였다.

문을 열어주고 물러나던 김지석이 얼굴을 문지르다가 주선오의 왼팔에 감긴 붕대를 발견했다.

“…다쳤어?”

“조금.”

성큼성큼 집안으로 들어간 주선오가 익숙하게 거실의 불을 켰다.

“윽.”

갑작스럽게 켜진 불에 김지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주선오가 잠시 밝아진 집안을 살폈다.

항상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던 집안이 난장판이었다.

김지석 본인 역시 깔끔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다.

휴가를 낸 이후 계속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건지 머리도 덥수룩했고 수염도 까슬하게 자라있었다.

작게 혀를 찬 주선오가 거실의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형, 휴가 냈다며.”

역시 소파에 걸터앉은 김지석이 쓰게 웃었다.

“그게 너한테까지 전해졌어?”

주선오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

김지석은 답없이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주선오는 가만히 김지석을 바라보기만 했다. 김지석이 입을 열기를 차분히 기다리며.

김지석은 한참 후에야 간신히 말을 꺼냈다.

“…게이트에 입장해서.”

하지만 여전히 입을 떼기 힘든지 중간중간 말을 멈추었다.

“잠깐…. 게이트를 파악하고 있는데. 누가 입장하더라고.”

“누구?”

주선오의 짧은 질문에 김지석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어.”

그러더니 곧 손가락을 불안한 듯 깨물며 말했다.

“근데 그 사람이 다짜고짜 나를 공격했어.”

“…공격했다고?”

주선오의 표정이 한껏 구겨졌다.

김지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쳤어?”

“아니. 다행히 방탄복이랑 방어구가 있어서 괜찮았어.”

주선오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뭔가 싶어서 누구냐고 물어봤는데 당연히 대답해주지는 않았고. 대신….”

김지석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별다른 감정은 없지만, 본인들의 목적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계속 공격을 했어.”

“본인들의 목적?”

김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커뮤니티의 말대로라면 그놈도 미등록.’

그럼 미등록들의 목적이라는 건데 그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근데 한 번 공격에 실패하니까 이제는 스킬까지 쓰더라고. 정말 그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김지석이 다시 말끝을 흐렸다가 억지로 말을 이었다.

“…일단은 피하려고 도망치는데….”

김지석의 특성은 도망에 특화되어 있었다.

도망치려고 마음을 먹으면 웬만한 각성자라면 쉽게 잡을 수 없을 터.

잠시 말을 멈추었던 김지석이 손가락을 다시 깨물며 말했다.

“…그 게이트가 함정이 많은 게이트였거든.”

“그럼 그 사람은 함정에 죽은 거야?”

김지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었어. 함정이 워낙 견고해서 시체를 수습해줄 상황도 아니었고…. 나도 너무 놀라는 바람에….”

김지석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래도 게이트 안에서 봤던 사체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휴가를 낸 거였군.’

만약 주선오가 김지석의 입장이었어도 적잖은 충격을 받긴 했을 것 같았다.

주선오도 아직 게이트 안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보지 못했다고 다른 곳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근데 놈들의 목적이라는 게 대체 뭐지?’

김지석은 사실 각성자로서는 그닥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다.

윤도아처럼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각성을 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저수지에서 발견된 각성자의 사체와 연관 지어 생각한다면.

‘기관을 상대로 싸움을 걸어오는 건가?’

김지석은 기관의 중심이나 마찬가지였고 발견된 사체는 기관 소속의 각성자였다.

이미 기관을 나온 지 오래됐지만 그래도 주선오는 기관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정부에게 휘둘리는 것이 싫어서 기관을 나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기관의 일을 못 본 척 할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면 상대해줄 수밖에.’

주선오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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