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일단 주선오는 김지석을 다독였다.
“일단 형. 제대로 해명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손으로 눈가를 문지르던 김지석이 멈칫하더니 주선오를 바라보았다.
“…해명?”
김지석은 아직 커뮤니티의 글들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주선오는 핸드폰에 커뮤니티의 글들을 띄운 후 김지석에게 내밀었다.
깁지석은 의아한 얼굴로 주선오의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핸드폰의 화면을 살펴보던 김지석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러더니 이내 실소를 터트렸다.
“상당히 억울한 이야기인데, 이건.”
그러더니 우울한 표정으로 주선오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미등록이라…. 그랬구나. 미등록이 나를 죽이려고 한 거였어…. 근데 왜 나를?”
“형이 기관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라서가 아닐까.”
김지석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관장님이….”
주선오는 고개를 저었다.
“관장님은 기관의 일보다는 게이트를 닫는 것 자체에 더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시잖아. 나도 그랬었고. 기관을 처음 만들 때도 형이 없었으면 지금 같은 체계가 잡히지는 않았을 거야.”
김지석은 기관을 대표하는 인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초반부터 지금까지 계속 기관의 이사를 맡고 있었고 중대한 일들은 모두 김지석이 처리하고 있었다.
“그놈이 말했던 목적이라는 것도 형을 죽여서 기관 자체를 무너트리려고 한 걸지도 몰라.”
김지석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얼굴로 주선오를 바라보았다.
“미등록들이 기관을 무너트려서 좋을 게 있어?”
“…그건 아직 나도 잘 모르겠지만. 형도 일단은 기관이 무너지는 건 바라지 않잖아.”
김지석이 잠시 침묵했다.
그동안 김지석은 기관을 키우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 이 사태를 그대로 둔다면 그간 쌓아온 것이 와르르 무너진다.
그때 탁자 위에 놓아두었던 김지석의 핸드폰이 울렸다.
안세인이었다.
김지석이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주선오를 바라보았다.
받아보라는 주선오의 눈짓에 김지석은 잠시 목을 가다듬고는 전화를 받았다.
“네, 관장님.”
[김 이사. 휴가 중에 연락해서 미안해요. 좀 쉬고 있어요?]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안세인의 목소리가 주선오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네. 괜찮습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김지석은 처음 주선오를 맞이했을 때보다 훨씬 편안해진 목소리로 안세인과 통화했다.
[그, 혹시 커뮤니티 글 봤나요?]
“…아…. 안 그래도 지금 선오랑 이야기 중이었어요.”
[아. 선오가 갔나요? 그거 다행이네. 근데 지금 그걸 정부 측에서도 본 모양이야. 빨리 해명하라고 난리가 났어.]
안세인이 골치 아프다는 듯 말했다.
[휴가 중이라고 이야기는 했는데 어찌나 들들 볶던지. 가뜩이나 각성자 시체도 나와서 기관도 어수선하고 말야.]
안세인의 이어진 한탄에 김지석이 동그래진 눈으로 주선오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기관에 좀 와줘야 할 것 같아서.]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김지석이 주선오에게 물었다.
“각성자 시체는 무슨 소리야?”
주선오가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김지석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이야기를 마친 주선오가 조금 전 윤도아에게 부탁을 받았던 이야기까지 전달했다.
“참, 도아 누나가 부탁한 건 이제 됐다고 전해달라던데.”
“아…. 찾으셨나 보구나.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하네.”
김지석이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는 나중에 하고, 일단 준비부터 해.”
주선오가 김지석을 일으켰다. 딸려 일어나는 김지석의 표정에는 자신이 없었다.
“…이미 사람들은 내가 미등록을 죽였다고 믿고 있는데…. 내가 말을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믿어줄까?”
“어쨌든 게이트 안에서 있었던 일이야. 형밖에 모르는 일이라고.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사실대로 얘기하는 수밖에 없어.”
주선오의 단호한 말에 김지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래. 알겠어.”
“도와줄 테니까 일단 씻어. 면도도 좀 하고.”
억지로 김지석을 화장실로 밀어넣은 주선오는 다시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미등록은 김지석을 죽이는 것에 실패한 이후, 사회적으로 매장을 하려 시도하고 있었다.
김지석이 기관의 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면 당분간 기관은 자리를 잡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윤도아가 기관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관의 일을 맡아주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김지석 자체도 다시 위험에 빠지기 쉬울 터.
한 번 목표가 되었으니 두 번 세 번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미등록들의 일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김지석을 보호해야 할 것 같았다.
‘당분간은 게이트에 못 갈 것 같네.’
* * *
나는 다시 한 번 최은서가 보낸 게이트의 위치를 확인했다.
가평에 위치한 휴양림 근처에 나타난 B급 스탯 보상 게이트였다.
우거진 수풀 사이에 노란색의 연기가 보였다.
‘저거다.’
아직 아무도 입장하지 않은 듯 게이트는 큰 원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파견 직원의 눈을 피하기에 딱 좋은 게이트였다.
도심에 비해서 사람들의 왕래가 확실히 적고 접근하기에도 까다로운 구석진 곳.
‘미등록들은 이런 게이트만을 노렸던 거군.’
나는 쓰고 있던 우산을 접었다.
순식간에 빗줄기가 온몸을 적셨다.
찝찝하긴 했지만 우산을 쓴 채 이곳에서 미등록을 기다린다면 대놓고 도망가라는 뜻이 돼 버리니까 어쩔 수 없었다.
접은 우산은 풀숲 사이에 잘 숨겨둔 후, 가볍게 도약해 근처 나무의 위쪽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그 상태로 게이트를 감시한 지 삼십여 분이 지났을 무렵.
거센 빗줄기를 뚫고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저놈인가?’
까만 우산을 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여우 구슬로 우산을 쓴 사람의 정보를 확인해본 결과, 김서경이라는 각성자였다.
김서경은 숲 속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갑자기 경로를 틀었다.
그리고는 내가 숨어 있는 나무 아래를 지나쳐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의 앞에 선 김서경은 잠시 주변을 살핀 후, 게이트에 입장했다.
나는 바로 김서경을 뒤따르지는 않았다.
‘혹시 누가 또 올지도 몰라.’
십여 분 정도 숨죽인 채 주변을 살폈지만 더 이상 게이트로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나무 위에서 훅 뛰어내렸다.
촥!
흠뻑 젖은 풀숲 위에 착지하자 바닥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가 사방으로 튀었다.
덕분에 신발과 옷에 나뭇잎들이 잔뜩 달라붙었지만 어차피 이미 다 젖은 상태였다.
나는 대충 나뭇잎들을 털어낸 후 구형의 게이트 앞에 섰다.
게이트가 열리며 정보가 나타났다.
[B급 스탯 보상 게이트]
[거미의 둥지로 통하는 스탯 보상 게이트입니다.]
[둥지 안의 거미들을 소탕하면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게이트 클리어 시 5 이상의 스탯 포인트를 획득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시결의 가호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의 게이트였다.
어렵지는 않았지만 왠지 기분이 나빴다.
‘선동질을 멈추게 하고 이시결에 대해서도 물어봐야겠다.’
나는 게이트를 보며 말했다.
“입장.”
순식간에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노란색의 연기가 나를 휘감았다.
* * *
쏟아져 내리던 비가 한순간에 뚝 끊겼다.
게이트에 입장하기 전과 같은 숲이었지만 이곳의 숲은 이미 죽은 숲이었다.
푸른 잎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회색빛의 숲.
나무들은 말라 비틀어졌고 그 위에는 나뭇잎대신 거미줄들이 잔뜩 자리를 잡고 있었다.
‘거미가 꽤 클 것 같은데.’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연결한 거미줄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바닥에도 마른 흙만 가득할 뿐 풀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김서경의 위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비에 젖은 신발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마른 바닥을 적셔 선명한 발자국을 남겨두었다.
나는 기척을 죽인 채 발자국을 따라 이동했다.
동시에 탐지로 앞을 살펴보니 김서경은 그닥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탐지 반경 안에는 아직 거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빠르게 김서경과의 거리를 좁혔다.
훅!
짧은 몇 번의 도약 끝에 나는 김서경의 뒤를 잡을 수 있었다.
“!”
도약을 하며 일으킨 바람에 김서경이 놀라 뒤를 돌아보려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김서경의 뒷덜미를 잡아챈 후 그의 목에 그림자 단검을 가져다댔다.
“…누, 누구….”
김서경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나는 그림자 단검을 김서경의 목에 더욱 가까이 대며 말했다.
“질문은 내가 해요.”
김서경이 작게 신음을 흘렸다.
“그쪽, 이름?”
“…김서경.”
구슬로 본 정보와 일치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물었다.
“미등록 각성자인가요?”
김서경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당신들이 김지석 이사를 죽이려고 했나요?”
이번에는 답이 없었다.
나는 단검의 끝을 김서경의 목에 살짝 대었다.
“못 찌를 거라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네요.”
“…맞아.”
김서경이 결국 작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실패하자 일부러 커뮤니티에 선동글을 남긴 거고?”
끄덕.
“그쪽이 시킨 건가요?”
“뭐? 난 아냐.”
김서경이 강하게 부인했다.
‘뭐지? 간부가 아닌가?’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럼?”
김서경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건 윗사람들이 시키는 거지…. 나 같은 말단은 그냥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뿐이라고.”
그 이야기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말단?”
“그, 그래. 난 그냥 시키는 대로 커뮤니티에서 선동글이나 올리다가 방금 막 게이트에 들어온 것뿐이라고!”
김서경의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최은서가 잘못된 정보를?’
분명 최은서에게 듣기로는 미등록의 간부가 이곳으로 향한다고 했지만 정보가 달랐다.
‘최은서한테 속은 건가?’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그 성격에 나를 속이려고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은서조차 속은 걸지도 몰랐다.
그렇다는 건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최은서에게는 위험했다.
미등록들이 최은서가 이중 스파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될 계기니까.
‘빠르게 정리하고 나가야겠군.’
“그럼 혹시….”
하지만 내가 김서경에게 질문을 하기도 전에, 앞쪽에서 무언가 빠르게 날아왔다.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오는 그것은 김서경의 이마를 노리고 있었다.
‘!’
나는 김서경의 목덜미를 끌어내리며 그림자 단검을 휘둘렀다.
“허억!”
카앙!
콱!
내 단검에 튕겨나간 칼이 옆의 나무에 박혀 부르르 떨렸다.
그 충격에 나무 역시 흔들렸고 나무에 잔뜩 둘러진 거미줄이 사방으로 진동을 퍼트렸다.
나무에 깊숙이 박힌 단검은 휘어진 날을 가진 시커였다.
‘누구지?’
나는 탐지로 주변을 살폈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김서경이 목을 감싸며 뒤로 물러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의 앞쪽.
시커가 날아온 방향의 나무 뒤쪽에 한 인영이 서 있었다.
‘분명 게이트에 입장하기 전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그때 또 다시 무언가 날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닌 김서경에게로 향했다.
“헉!”
김서경의 입에 하얀색의 실들이 철퍽 번졌다.
순식간에 입이 막혀버린 김서경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웁, 우읍…!”
그리고는 코와 입을 막은 실들을 떼어내려 했지만.
금세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철퍽.
그때.
“아…. 이런.”
나무 뒤에 있던 사람의 나른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나는 잔뜩 경계를 하며 앞을 주시했다.
누군가 나무의 뒤에서 걸어 나왔다.
창백한 피부에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남자였다.
‘…처음 보는데.’
나처럼 잔뜩 비를 맞은 그 남자는 까만 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에 붙은 까만 머리카락들을 쓸어넘겼다.
“실수했네요.”
남자의 붉은 입술이 달싹이며 다시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목소리….’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였다.
남자의 처진 눈이 내게 향하더니 이내 가느다랗게 휘었다.
“윤도아 씨를 노리려고 했는데.”
‘거짓말.’
놈은 처음부터 김서경을 노렸다.
칼도 하얀 실뭉치도, 정확하게 김서경에게 향했었다.
김서경은 바닥에 쓰러져 미동이 없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것 같았다.
저놈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김서경을 죽였다.
‘…설마!’
나는 다시 눈앞의 남자를 보며 그의 정보를 살폈다.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시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