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게이트는 순식간에 클리어 되었다.
서른 마리의 거미를 빠르게 정리한 이시결에게는 지쳐 보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뭔가 상쾌해 보였다.
하늘을 뒤덮었던 거미줄의 위에서 내려온 이시결이 가볍게 손을 털었다.
그리고는 두 단검을 늘어트린 채 서 있는 나를 보며 웃었다.
“드디어 둘만 남았네요.”
이시결의 손에는 여덟 개의 비수와 시커가 매달려 있었다.
“혹시 마지막으로 남기실 말이라도?”
이시결이 부드럽게 물었다.
당연히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나온 질문이었다.
코웃음을 친 나는 들고 있던 단검을 휙 돌리며 물었다.
“그쪽이야말로. 나한테 지면 어쩔 셈이지?”
이시결이 피식 웃었다.
“결론적으로 제가 질 일은 없습니다. 당신을 죽일 때까지 계속할 거니까요.”
본인을 죽이지 않는 한, 계속해서 나를 공격하겠다는 예고였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이시결을 이용할 수 있는 구실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려면.
‘놈을 제압해야 해.’
마나를 이용해 이시결을 공격하는 건 불가능했다.
마나구나 마나막 같은 것들은 제압보다는 파괴가 목적이었다.
‘단검만 사용해야겠어.’
놈이 조금 다치는 정도는 상관없었다.
게이트를 나간 후 이리나에게 치료를 부탁하면 되니까.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몇 초간의 정적 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시결이 오른팔을 크게 휘둘러 내게 비수들을 날려 보냈다.
나는 일단 이시결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도약을 했다.
훅!
내 도약을 본 이시결이 팔을 거두며 손가락들을 뒤틀었다.
비수들이 급격히 방향을 틀어 앞으로 튀어나온 내게 쏟아졌다.
‘일단 저 비수들 먼저.’
곧장 이시결에게 다가가기에는 비수들이 내 뒤를 끈질기게 쫓을 것이 분명했다.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여덟 개의 비수에는 독이 발라져 있다.
조금이라도 스쳤다가는 이곳에서 목숨 한 개를 잃게 될 터.
나는 일단 비수들이 날아오는 옆쪽에 마나 방패를 생성했다.
“마나 방패.”
촤르륵!
곧 날아온 비수들이 마나 방패에 꽂혔다.
콱!
콰직!
마나 방패가 부서지며 속도가 느려진 비수들이 내게 쏟아졌다.
예상했던 부분이었기에 나는 빠르게 안개화했다.
‘안개화.’
스르륵.
눈앞이 흑백으로 변했다.
비수들이 안개로 변한 나를 스쳐 지나갔다.
이시결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목표를 잃은 비수들을 회수하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거미줄을 끊어야 해.’
이시결의 손과 연결된 거미줄을 끊는다면 이 비수들은 더이상 거미의 다리가 될 수 없다.
나는 곧바로 거미줄들의 위로 마나막을 만들어냈다.
“마나막.”
마나 방패에서 비수들을 뽑아내기 위해 거미줄들이 팽팽해졌을 때, 나는 마나막을 내리쳤다.
핑!
팽팽했던 거미줄이 잘려나갔다.
“!”
이시결이 갑자기 끊어져버린 거미줄을 보고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마나막은 나 이외의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았기에 영문을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거미줄이 끊어지자 네 개의 비수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비수들을 그대로 둔다면 분명 그것들에게 다시 거미줄을 연결할 것이 뻔했다.
‘그렇게는 안 두지.’
나는 안개화를 풀며 염력으로 네 개의 비수들을 움직여 내 주변에 띄웠다.
이시결이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무기를 빼앗다뇨.”
나는 다시 이시결에게 돌진했다.
이시결은 왼손에 연결된 비수들을 마저 휘두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이미 반절의 무기를 빼앗겼는데 또 같은 방식에 당하지 않으려는 당연한 판단이었다.
비수들을 회수한 이시결은 그것들을 모두 허벅지에 되돌려 놓았다.
왼손을 비워둔 이시결은 오른손에 시커를 쥐었다.
‘저기에도 독이 발라져 있겠지.’
저 시커 역시 이시결의 손에서 떨어트려야 했다.
나는 이시결이 내 단검을 막게 하기 위해 일부러 큰 동작으로 심연의 불꽃을 휘둘렀다.
이시결은 살짝 뒤로 물러나며 시커를 들어올렸다.
심연의 불꽃과 시커가 맞부딪혔다.
카앙!
‘!’
의외로 이시결은 내 힘을 버텨냈다.
이시결에게 근력 스탯이 따로 없었기에 맞부딪히면 시커를 놓칠 줄 알았지만.
이시결은 노련하게 손을 뒤틀어 심연의 불꽃을 흘려냈다.
나는 이번에는 왼손의 그림자 단검을 이용해 이시결의 오른팔을 노렸다.
덜걱!
하지만 그림자 단검은 이시결의 팔에 닿지 못하고 멈추어 버렸다.
‘뭐지?’
빠르게 곁눈질로 그림자 단검을 살폈다.
어느새 단검의 칼날에 하얀 거미줄이 잔뜩 붙어 있었다.
그 거미줄은 이시결의 왼손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시결이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왼손의 거미줄을 끌어 당겼다.
내가 비수를 빼앗았던 것처럼 이시결 역시 내 단검을 빼앗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심연의 불꽃으로 그림자 단검을 잡고 있는 거미줄들을 끊어냈다.
서걱!
이시결이 살짝 웃음을 흘리며 베인 거미줄들을 회수했다.
‘일부러 왼손을 비워둔 이유가 있었군.’
사실 왼손에 비수 하나쯤은 들고 있을 수 있었지만, 이시결은 그러지 않았다.
조금전처럼 손에서 거미줄을 뽑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아무리 얇은 거미줄이라고 해도 거미줄들을 뭉쳐 끌어당긴다면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었다.
‘역시 썩히기에는 아까워.’
이시결은 본인의 특성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건 스킬에 국한되지 않고 거미줄을 이용해 이것저것 해보았다는 뜻이었다.
회귀 전에는 주선오의 손에 죽었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였다.
‘이번에는 꼭 이용해야겠어.’
살짝 입꼬리를 올린 나는 심연의 불꽃으로 그림자 단검에 묻은 거미줄들을 태웠다.
그리고는 깨끗해진 그림자 단검을 집어 넣었다.
‘베는 것보다 부러트리는 게 낫겠어.’
손이나 팔을 부러트린다면 이시결도 더이상 공격을 감행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이시결이 의아한듯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나는 이시결이 말을 꺼낼 틈을 주지 않고 다시 놈에게 달려들었다.
이시결 역시 다시 시커를 내게 향하며 자세를 낮췄다.
내가 다시 시커를 내리치려는 순간, 이시결은 왼손을 들어올리더니 위쪽의 나무를 향해 거미줄을 뿜어냈다.
촥!
그러더니 그대로 땅을 박차올라 거미줄을 타고 내 뒤로 이동했다.
‘잘못하면 베인다!’
나는 곧바로 자세를 낮추며 앞으로 굴렀다.
훅!
시커가 간발의 차로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다.
나는 빠르게 몸을 일으키며 뒤를 돌아보았고 이시결은 바닥에 착지하며 시커를 거둬들였다.
나는 다시 그에게 돌진하며 시커를 향해 단검을 찔러 넣었다.
이시결이 시커의 옆면으로 심연의 불꽃을 막으며 물러났다.
카각!
“이상하네요.”
심연의 불꽃을 흘려낸 이시결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왜 자꾸 제 무기만을 노리십니까? 설마 저를 제압할 생각이신가요?”
이시결은 내 행동을 정확하게 읽어냈다.
나는 대답없이 다시 시커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이시결은 내 단검을 피해 뒤로 물러나며 사납게 웃었다.
“얕보인 것 같군요.”
그러더니 거미줄을 이용해 위쪽의 나무로 빠르게 이동했다.
나무 위에 가볍게 올라선 이시결이 내가 서있는 바닥으로 거미줄들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독성을 지닌 거미줄일 확률이 컸다.
‘역시 닿으면 안돼.’
이시결의 손에서 뻗어나온 굵은 거미줄들이 사방의 나무로 각기 뻗어나갔다.
촤악, 촤악!
굵은 거미줄이 연결된 나무 사이사이로 가느다란 거미줄들이 퍼져나가 공간을 촘촘히 메꿔가기 시작했다.
이곳을 벗어날 퇴로를 모두 차단한 거미줄들은 빠른 속도로 공간을 메꾸며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촤르륵.
이곳에 있다가는 금세 이시결의 거미줄에 포획되어 독에 당할 것이 뻔했다.
나는 위쪽에서 여유로운 손놀림으로 거미줄을 짜고 있는 이시결을 올려다보았다.
정확히는, 이시결의 뒤에 있는 빈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블링크.”
훅!
바라보았던 나뭇가지 위로 이동한 내 앞에 이시결의 등이 보였다.
그는 텅 빈 흙바닥을 내려다보며 거미줄을 짜던 손을 즉시 멈추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손에 쥔 시커를 뒤로 휘둘렀다.
나는 심연의 불꽃으로 이시결의 시커를 막아냈다.
카앙!
곧바로 왼손의 날을 세운 채 시커를 든 이시결의 오른쪽 손목을 내리쳤다.
우득!
이시결의 손목이 뒤틀리며 손에서 시커가 떨어졌다.
“!”
이시결이 빠르게 왼손에서 거미줄을 뽑아내 시커를 잡으려 했지만 내 염력이 더 빨랐다.
나는 염력으로 시커를 잡아채 내게 끌어당겼다.
이시결은 자신의 뒤틀린 오른 손목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별다른 말은 없었다.
대신 왼손을 들어 내게 향한 후 거미줄을 쏘아냈다.
촥!
나는 뒤쪽으로 몸을 젖히며 거미줄을 피해낸 후 가지를 박차고 뛰어올라 위쪽의 가지로 향했다.
바닥에는 이시결의 거미줄들이 촘촘히 엮여 있었기에 함부로 내려설 수가 없었다.
이시결이 내 움직임을 쫓으며 계속 거미줄 뭉치를 쏘아냈다.
나는 거미줄들을 피하며 손에 들고 있던 심연의 불꽃을 바닥으로 던졌다.
“레부!”
“쿄!”
허공에서 튀어나온 레부가 곧 이시결의 거미줄에 걸렸다.
하지만 레부는 곧바로 온몸에 불을 일으켜 촘촘하게 쳐진 거미줄들을 모조리 태우기 시작했다.
“불꽃 슬라임이라.”
이시결이 불에 타 사라지는 거미줄들을 바라보며 살짝 혀를 내둘렀다.
나는 레부가 거미줄을 태워 안전해진 바닥으로 내려섰다.
이시결의 거미줄 뭉치는 끈질기게 날아들었다.
“마나 방패.”
나는 앞쪽에 마나 방패를 생성했다.
촤르륵!
철퍽!
거미줄 뭉치가 마나 방패에 들러 붙었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거미줄 뭉치가 마나 방패 앞에 쌓이자, 앞쪽의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어 버렸다.
어느 순간 날아오던 거미줄 뭉치가 멈추었다.
이시결이 내 위쪽의 나뭇가지에 거미줄을 쏘는 것이 탐지에 잡혔다.
거미줄에 내 시야가 막힌 틈에 내 뒤를 잡으려는 것 같았다.
곧 놈이 자신의 몸을 허공으로 끌어올렸다.
나는 마나 방패를 없애며 위를 바라보았다.
이시결이 나뭇가지에서 뛰어 내리며 남아있던 비수들을 내게 던졌다.
‘안개화.’
스륵.
이시결이 안개가 된 나를 스쳐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이시결의 시선이 안개를 쫓았다.
‘블링크.’
안개화를 한 상태에서 나는 이시결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훅!
나는 이시결의 등 뒤에서 안개화를 풀고 즉시 그의 왼쪽 손목을 잡아챘다.
“!”
이시결이 붙잡힌 팔을 빼내려했다.
하지만 내 힘을 이기지는 못했다.
나는 이시결의 손목을 뒤로 비틀어 올리며 그를 바닥으로 내리 눌렀다.
털썩!
놈이 바닥에 부딪히자 주변에 흙먼지가 일었다.
흙에 그대로 얼굴을 박은 이시결이 잠시 기침을 해댔다.
나는 이시결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무릎으로 이시결의 등을 찍어 눌렀다.
한참을 콜록거리던 이시결이 이내 고개를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
“아…. 생각 이상이네요.”
그러더니 입가에 미소를 띠며 물었다.
“절 죽이실 겁니까?”
내게 제압을 당했음에도 이시결은 분해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아니.”
내 대답에 이시결이 재미있다는 듯 물었다.
“왜죠? 지금 절 죽이지 않으면 아까 말했다시피 전 끝까지 당신을 죽이려 들 텐데요.”
놈은 오히려 나를 부추기고 있었다.
“게이트 안에서 저를 죽이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어요? 물론 기관의 그 이사처럼 미등록들이 또 무슨 이야기를 떠들어댈지는 모르겠지만.”
이시결도 김지석에 대한 일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죽이지는 않아. 난 너를 오진서 각성자를 죽인 살인자로 기관에 넘길 생각이거든.”
이시결의 눈동자가 잠시 데구르르 굴렀다. 오진서가 누구인지 잊은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곧 생각이 났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제가 정보를 빌렸던 그 각성자 말이군요?”
“빌렸다고? 빼앗은 거겠지.”
내 말에 이시결이 웃었다.
“빌렸을 뿐입니다. 단지 상대방이 돌려받지 못할 상황이 되어 버린 거죠.”
“어쨌든 네 짓이라는 건 똑같지.”
“전 지금 조금이라도 당신이 힘을 푼다면 바로 다시 당신을 공격할 겁니다. 제가 죽거나 당신이 죽을 때 까지요.”
까만 눈동자가 내게 똑바로 향해 있었다.
이시결은 진심이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무력화시킨다.’
나는 망설임 없이 붙잡고 있던 이시결의 왼팔을 확 뒤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