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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87화 (88/201)

제87화

“선오.”

안세인이 주선오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주선오는 입을 다문 채 이시결을 뚫어져라 쏘아보았다.

안세인 역시 이시결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럼 얼굴은 어떻게 바꾼 거죠? 그쪽 스킬에 그런 게 있는 건가?”

이시결이 장갑을 낀 오른손을 들어보였다.

붕대가 잔뜩 감긴 손목에 시선이 갔다.

“보여드릴 수 없는 게 아쉽군요. 이분께서 제 팔을 모두 부러트리는 바람에.”

이시결의 시선이 앞의 윤도아에게 향했다.

윤도아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이시결을 보며 말했다.

“데려오기 위해서는 별 수 없었어요. 이 사람, 상당히 많은 게이트를 닫아본 사람이에요. 만만히 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제대로 기관에 등록을 해뒀다면 랭킹에 올랐을 정도로요.”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이시결에게 향했다.

랭킹에 올랐을 정도라면 이곳에 있는 각성자들과 실력이 비슷하다는 이야기였다.

만약 게이트 안에서 김지석이 미등록과 맞설 생각을 했다면.

‘분명 죽었을 거야, 난.’

김지석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다면 모든 미등록들이 그 정도의 수준이라는 건가요?”

안세인이 조금 심각해진 얼굴로 이시결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이시결이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고는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안세인을 마주했다.

“그런 놈들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실례입니다.”

그리고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 사람은 미등록 무리 소속이 아니에요.”

“그럼?”

안세인이 윤도아를 바라보았다.

“본인의 필요에 의해서 그냥 붙어있던 것뿐이에요.”

윤도아의 말에 가볍게 한숨을 내쉰 이시결이 다시 시선을 돌려 각성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래요. 당신들과 맞붙어볼 기회만 노리고 있었죠.”

이시결의 시선이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지석에게 꽂혔다.

“사실 이사님을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긴 했었습니다만.”

이시결의 한쪽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김지석은 오싹해진 기분으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거절했었죠.”

그 이야기에 다시 주선오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주선오의 반응에 이시결의 시선이 주선오에게로 옮겨갔다.

“당신은 재미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팔이 이래서 붙어볼 수가 없군요.”

이시결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주선오가 살벌한 눈빛으로 이시결을 쏘아보았다. 가까스로 화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미등록 쪽에서 김 이사를 노린 걸 보면 기관을 무너트리려는 것 같은데.”

안세인이 팔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기관을 무너트려서 놈들이 얻는 게 뭔지를 모르겠다는 말이죠.”

이시결은 피식 웃으며 커튼이 쳐진 발코니 문에 기대었다.

다 알고 있으면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관망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윤도아가 잠시 그런 이시결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건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죠. 일단은 이사님의 상황부터 해명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죠. 그게 우선이지.”

윤도아와 안세인이 김지석을 돌아보았다.

“이사님은 괜찮으신 건가요?”

윤도아가 김지석을 살피며 물었다. 김지석이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네. 괜찮습니다. 연구소에서 얻은 방탄복 덕분에요.”

“다행이네요.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윤도아의 질문에 김지석은 자신을 쫓아왔던 미등록 각성자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듣고 있던 이시결이 고개를 저으며 혀를 내둘렀다.

“멍청하군요. 그깟 함정에 걸려 죽다니. 뭐, 예상은 했습니다. 당신같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그 미등록을 죽였을 리는 없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김지석이 조금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옆에 있던 주선오가 매서운 눈으로 이시결을 보며 말했다.

“그럼 그쪽이 이사님 해명을 도와주면 되겠네.”

그 말에 이시결이 피식 웃었다.

“흠. 제가요? 그렇게 해서 제가 얻는 게 뭐죠?”

“잡혀 온 입장이라는 걸 잊은 것 같은데, 지금.”

“하하. 협박이라도 하시는 겁니까?”

이시결이 빈정거리며 웃었다.

윤도아는 그런 이시결을 무시하며 말했다.

“이 사람은 일단은 제가 감시하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팔이 부러져서 공격을 못 하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그에 주선오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여기에 두겠다고요?”

듣고만 있던 윤도빈 역시 깜짝 놀라며 윤도아를 바라보았다.

“레부랑 모부한테 감시를 시키는 게 제일 확실하니까.”

“음…. 그래요. 어차피 지금 당장 잡아간다고 하더라도 경찰 쪽도 애매하긴 마찬가지일 거예요. 일반 경찰들이 각성자를 감당하기는 힘드니까.”

안세인이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단 얘기는 해둘게요. 그리고 결정되는 대로 다시 연락하는 게 좋겠어요.”

윤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우리도 이제 각자 할 일 하러 흩어지죠. 김 이사는 회견 준비하시고.”

안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주선오는 영 찜찜한 표정으로 이시결을 바라보았지만 결국 안세인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다음날, 김지석은 예정대로 기자 회견을 진행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진행된 회견은 큰 문제 없이 끝이 났다.

김지석의 차분한 모습과 침착한 이야기에 어느 정도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놈들이 아니지.’

미등록들은 또다시 커뮤니티에 파문을 일으켰다.

-거짓말 아님?

-거짓말이라기엔 너무 앞뒤가 잘 맞는데.

-숨어있는 동안 그것만 생각했을 수도 있지.

-ㅇㅇ. 매장 안 당하려면 뭔들 못하겠어.

-아니 사람들 진짜 순수함이 없네 ㅋㅋㅋㅋ 이럴 거면 대체 왜 해명하라고 한 거임? 믿지도 않을 거면서. 무슨 말을 해도 그냥 물어뜯고 싶은 거잖아? ㅋㅋㅋ

-기관 끄나풀이냐.

-그럼 너야말로 미등록 아님? 여기서 선동하지 말고 제대로 얼굴 보이고 말해보든지.

-뭐가 어떻든 일단 기관 자체에 대한 믿음은 좀 사라졌다고 봄.

-저런 꼴 당할까 무서워서 게이트 갈 때 셀카봉 들고 다녀야겠네, 이제.

덕분에 다시 의견은 분분해졌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기에 기관에서는 곧바로 이시결의 증언을 이용했다.

하지만 이시결이 저지른 짓이 있었기 때문에 매스컴을 이용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미등록들과 똑같이 커뮤니티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퍼트렸다.

-미등록이 처음부터 김지석 이사 죽이려고 들어간 거라던데.

-누가 그럼?

-기관에 붙잡힌 미등록이 하나 있음. 근데 그 사람 말로는 그랬다 함.

-그냥 기관에서 거짓 정보 흘리는 거 아님?

-왜 그 저수지에서 발견된 죽은 각성자. 그 각성자 죽인 범인. 근데 그 사람한테 김지석 죽이라고 했었다고 함.

-와…. 그것도 미등록 짓이었나요? 하긴 일반인이 무서워서 어떻게 각성자를 건드리겠어.

-어쨌든 미등록 무리에 속해있던 사람 증언인거면 믿을만한 거 아닌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미등록은 이시결을 자신들과 상관없는 살인마로 몰아갔다.

[그 사람은 미등록 무리에 속해있지 않았습니다.

기관 각성자를 죽인 것도 그 사람 혼자서 벌인 짓일 뿐 저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의 증언이라면 자신의 죄를 우리에게 전가하려는 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가만히 커뮤니티의 글들을 살펴보던 이시결이 피식 웃었다.

“마지막 말만 빼고는 다 사실이라서 뭐라 할 말은 없습니다만. 제 위치가 위치였던지라 별 도움이 되지 않았군요.”

안타깝다는 말투였지만 표정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결국은 그놈들이 원하던 대로 됐네요. 기관은 충분히 흔들렸고 민심까지 잃었으니.”

나는 이시결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내 손을 바라보던 이시결은 곧 피식 웃고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 손 위에 올렸다.

“잘 보관해주시겠습니까? 연락이 오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정보들이 좀 들어 있어서요.”

“너 하는 거 봐서.”

나는 이시결의 핸드폰을 레부에게 툭 던졌다.

“쿄!

레부가 이시결의 핸드폰을 받아 삼켰다.

이시결은 레부를 빤히 바라보다가 곧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양 손을 움직여보았다.

이시결의 손에는 여전히 까만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손목 부분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는 것.

그리고 수갑처럼 양쪽 장갑을 잇고 있는 긴 끈이 있었다.

거미줄을 뽑지 못하도록 하고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아까 그 각성자 실력이 좋군요. 부러진 뼈를 금세 붙이다니.”

이시결이 신기하다는 듯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말했다.

이리나에게 부탁해 부러진 팔의 치료를 끝낸 상태였다.

“그렇지. 그러니까 맘 놓고 덤벼도 돼. 나도 맘 놓고 부러트리면 되니까.”

내 말에 이시결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간이침대 위에 앉아 있는 이시결을 바라보았다.

결과가 그닥 좋지는 않았지만 정리할 것들은 대충 정리가 됐다.

이제 개인적인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서리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어?”

내 물음에 이시결이 흘긋 나를 바라보았다.

“그건 왜 묻습니까?”

“아는 사람이 흔치 않으니까.”

사실 나밖에 없을 줄 알았다.

이시결은 피식 웃고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정보는 게이트 안에 널려 있습니다.”

맞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내가 원하던 대답은 아니었다.

“어떤 게이트에서 어떤 정보를 얻은 거지?”

“흠.”

이시결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잠깐 생각에 잠긴 듯했다.

“말해도 상관은 없으려나요.”

그러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보통 그렇지 않습니까. 게임을 해도 게임 내에 존재하는 아이템들을 볼 수 있는 도감이 있지요.”

“도감?”

이시결이 살짝 웃었다.

“그렇습니다. 그 도감에는 무기들의 이름과 제작 방법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더군요.”

회귀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였다.

‘제작 방법이 적혀 있기에 서리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거였군.’

이시결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뭐, 어차피 제게 귀속된 아이템이라 당신이 볼 수는 없습니다만.”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귀속된 아이템은 본인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회귀 전에는 아마 주선오가 이시결을 죽였을 때 아이템 도감 역시 사라졌을 것이다.

귀속 아이템은 그 주인이 죽게 되면 같이 사라져버렸으니까.

‘그래서 여우 구슬도 알고 있는 거였어.’

귀속 아이템만 아니었다면 도감도 빼앗아 올 수 있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빼앗을 수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시결도 순순히 이야기를 해준 것이었다.

‘서고지기.’

나는 혹시 몰라 지난번 얻은 귀속 아이템인 최초의 책을 불렀다.

<말씀하시지요.>

‘아이템 도감이라고 알아?’

<알고 있습니다. 몇 달 전까지 서고에 있던 책이었지요.>

몇 달 전이라면 분명 이시결이 그 아이템을 얻기 전일 것이다.

‘그럼 아이템 도감의 내용은?’

<제가 제공해드릴 수 있는 정보는 서고 내 책의 내용에 한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아이템 도감은 제 서고를 벗어나있지요.>

가볍게 한숨을 내쉰 나는 최초의 책과 대화를 끝냈다.

아이템 도감을 보려면 이시결을 통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용해야할 이유가 더 늘었네.’

“그나저나 여긴 햇볕이 들지 않는군요.”

이시결이 작은 회색의 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지하니까.”

“흠.”

이시결은 조금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당분간은 여기에 있어야 하니까 적응해 봐, 잘.”

“심심할 것 같으니까 가끔 놀러 오시면 좋겠네요.”

이시결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시결의 말을 무시한 채 회색의 방을 벗어나 철문을 닫았다.

끼이익.

쿵.

문이 닫히는 소리에 앞에 있던 유지은과 권재경이 나를 돌아보았다.

“얘기 끝나셨습니까?”

“네. 절대 장갑은 못 벗게 하세요. 위험하니까.”

내 말에 유지은이 손에 든 열쇠를 주머니에 잘 챙겨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권재경은 조금 못마땅한 표정으로 굳게 닫힌 철문을 보고 있었다.

“왜 기관에서 저 사람을 감시해야하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시결은 당분간 기관의 지하에 감금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에 유지은이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권재경이 고개를 저었다.

“경장님께 불평을 하는 게 아닙니다. 경장님이 내린 결정도 아니니까요.”

경찰 측에서는 각성자를 수감할 시설을 만들기까지 당분간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말뿐일 것이다.

“기관은 게이트를 닫기 위해 만들어진 건데 왜 이런 일에까지 신경을 써야하는지 잘 모르겠군요.”

“일반인들이 각성자를 감당하기는 힘드니까요. 그래도 제가 최대한 폐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유지은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권재경은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은 것 같았지만 유지은 때문에 애써 말을 삼켰다.

말이 당분간이지 사실 정부 측에서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에 기관에 떠넘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각성자이자 경찰인 유지은을 감시역으로 붙여놓고.

‘그래놓고 무슨 일이 생기면 기관 탓을 하겠지.’

권재경은 한숨을 내쉬고는 지하를 벗어났다.

“무슨 일 생기면 연락주세요. 절대 혼자 처리하려고 하지 마시고요. 감당 안 되니까.”

나는 유지은에게 당부한 후 권재경을 따라 기관의 지하를 벗어났다.

* * *

“흐음.”

커뮤니티를 살펴보던 여자가 핸드폰을 내려두며 중얼거렸다.

“밤 거미가 잡힐 줄은 몰랐네.”

여자의 말에 앞쪽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했다.

“예상이 조금 빗나갔군요.”

“흠….”

“그래도 너무 걱정 마세요. 어차피 그놈은 별로 아는 것도 없습니다. 미등록의 진짜 실력자들은 마주친 적도 없고요.”

“그건 다행이긴 한데….”

잠시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있던 여자가 곧 입을 열었다.

“계획을 조금 바꿔야겠어요.”

남자가 물끄러미 여자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지금, 우리 생각대로 사람들 마음이 기관에서 꽤 떴잖아요?”

“그렇지요.”

“그럼 전에 얘기했던 것들을 바로 실행하죠.”

여자의 말에 남자가 멈칫했다.

“…바로, 말입니까?”

“네. 계획이 더 어그러지기 전에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남자가 시선을 떨궜다. 그리고는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혼자 남은 여자는 무표정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제 곧….”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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