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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89화 (90/201)

제89화

송민구의 실종은 나라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온갖 추측을 해대기에 바빴다.

-쉬는 거 아닌가? 몸 안 좋아서?

-혹시 모름. 원한을 많이 사서 납치된걸지도.

-뭔 ㅋㅋㅋ 대한민국에서 의원 납치라니 대체 어떤 정신나간 놈들이 그럼?

-단정지을 수는 없지.

-뭐 사건 터진거라도 있나? 그래서 잠적한 거 아님?

-자살이라던가?

-엄한 사람 고인 만들지 말자. 아무리 넷상이라지만 예의 좀….

이것은 미등록들이 정부를 장악하기 위한 첫 단계였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하지만 아직도 명분이 부족했다.

송민구를 납치한 것은 미등록들.

이것을 명분으로 내가 움직인다면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의원을 구하기 위해 미등록을 정리한 것으로 보일 것이었다.

‘그건 안 되지.’

회귀 전과 같은 흐름이라면 놈들은 곧 각성자들에 대한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각성자들이 정부에 신경을 쏟지 못하게 만듦과 동시에 정부를 장악했을 때 걸림돌을 없애기 위해서.

‘각성자들이 공격받는다면 미등록을 정리할 확실한 명분이 돼.’

하지만 그러자니 각성자들이 입을 피해가 걱정이었다.

최은서에게 미등록들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연락하라고 말을 해두긴 했지만.

조금의 피해는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최소한의 피해로 끝내야 해.’

혹시 모르니 다른 무리의 각성자들에게도 미등록들을 조심하라고 전달해두긴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최은서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조금 늦게 거점에 왔는데…. 어째 사람이 별로 없어요. 뭔가 이상해서 연락드렸어요….>

“미등록들이 없다고요?”

<…네…. 원래 이 시간쯤이면 보통 대부분 미등록들이 모여 있을 시간인데….>

미등록들이 평소와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시작이군.’

“은서 씨. 기관으로 가 있어요.”

<…네? 그럼….>

“이제 더 이상 거기에 안 있어도 되요.”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최은서도 더 이상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괜히 그곳에 남아있다가는 싸움에 휘말릴지도 몰랐다.

<아, 알겠어요.>

최은서와 연락을 끊은 나는 레부를 심연의 불꽃 속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기관에 가서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이리나였다.

내가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말을 하기도 전에 이리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언니!]

“무슨 일 있어?”

[죄, 죄송한데 혹시 여기 빨리 와주실 수 있으세요?]

이리나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다.

‘벌써 습격을 당한 건가?’

“천천히 말해봐. 무슨 일인데. 어디고.”

[여, 여기 개의 이빨 무리 단련장으로 쓰는 체육관인데요. 서, 선오 오빠 좀….]

“선오?”

주선오가 크게 다쳤을 리는 없었다.

아마 무리의 단원이 습격을 당해 일이 생긴 것 같았다.

[다, 단원이, 가, 갑자기 습격을 받아서, 그걸 선오 오빠가 알게 됐는데….]

이리나의 말은 너무 두서가 없어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에 빨리 그곳으로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갈게. 기다려.”

[네, 네.]

나는 곧바로 개의 이빨 무리가 단련장으로 사용하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며 서있었다.

개의 이빨 무리 소속 각성자들이었다.

‘주선오 때문에 들어가지를 못 하고 있는 건가?’

가까이 다가가자 단원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어떡해, 단장님도 많이 다치신 것 같던데.”

“근데 그놈 때문에 우리 단원도 크게 다쳤다며. 단장님이 화날 만하긴 했어.”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좀 심한 것 같은데. 말려야 하는 거 아냐?”

상황이 꽤 심각한 모양이었다.

“언니!”

그중에 이리나가 나를 발견하더니 빠르게 다가왔다.

이리나는 나를 붙잡고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아, 주선오! 제발 그만 좀 하라고! 그러다가 저 사람 죽기라도 하면 어떡할 건데!”

들어서자마자 신교진의 외침이 들렸다.

신교진은 주선오를 뜯어말리고 있었다.

주선오는 크게 다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멀리서 보기에도 잔뜩 화가 난 것 같았다.

‘전이랑 다를 게 없네.’

주선오는 한 번 눈이 돌면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던 놈이었다.

그 앞에는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이미 한 차례 남자를 두들겨 팬 모양이었다.

정보를 살펴보니 역시나 각성자였고 생각보다 옵션의 수치가 꽤 높았다.

‘이시결이 모르던 미등록인가 보군.’

나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돌린 후 주선오의 이름을 불렀다.

“주선오.”

내 목소리에 주선오가 흠칫 놀라더니 이내 나를 돌아보았다.

주선오에게 매달려 녀석을 말리고 있던 신교진 역시 나를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뒤에 있던 이리나가 후다닥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가 그를 살폈다.

나는 주선오에게 손짓했다.

잠시 싸늘한 눈으로 남자를 내려다보던 주선오가 내게 걸어왔다.

나는 주선오를 데리고 휴게실로 향했다.

주선오는 묵묵히 내 뒤를 따랐다.

휴게실 의자에 주선오를 앉히고 보니 볼에 난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주선오의 볼에 흐르는 피를 슥 닦아냈다.

주선오가 아픈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네가 사고치고 있다길래.”

내 말에 주선오가 다시 미간을 찡그렸다.

“…저쪽이 먼저 시작한 겁니다. 단원 한 명이 크게 다쳤어요. 죽일 생각으로 공격한 거라고요.”

“너도 죽일 생각이었어?”

주선오가 멈칫했다.

“…….”

“너네 단원들 겁먹은 거 안 보여? 교진이도 그렇고 리나도 그렇고. 단장이면 좀 더 냉정해져.”

내 말에 주선오가 시선을 떨궜다.

“어떻게 된 거야.”

주선오가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전에 단원 한 명이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놈들은 일찍부터 활동을 개시한 모양이었다.

“찾아가보니 팔 한쪽이 거의 잘린 상태였어요. 리나가 바로 조치를 취해줘서 연결은 할 수 있었습니다만. 근데 그 단원도 당하지만은 않았더군요. 칼에 놈의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피 냄새로 추적했구나.”

주선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찾아내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근처에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곧바로 잡지는 않았습니다. 미등록일 확률이 있어서 조용히 뒤를 밟았어요.”

역시 판단이 빨랐다.

“은신처 찾았어?”

“네. 방배동이었어요.”

방배라면 최은서가 내게 알려주었던 장소와는 다른 곳이었다.

‘거기도 거점 중 하나구나.’

“잠깐 밖에서 그곳을 살펴보니 미등록들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은신처를 엎은 모양이었다.

“저 사람은?”

나는 이리나가 치료를 진행 중인 남자를 보며 물었다.

“제가 은신처에 들어가자 저를 막아선 사람입니다. 그 사이에 다른 미등록들은 모두 도망쳤고요.”

“널 막았다고?”

“네. 스킬을 사용해서 저를 공격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스킬을 써서 제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까 확인한 옵션도 그렇고 주선오와 합을 나눌 정도라면 꽤 실력이 있는 각성자였다.

“잡아오긴 했습니다만 쉽게 입을 열기는커녕 오히려 도발을 해오더군요. 화가 나서 저도 모르게 그만….”

주선오가 다시 시선을 떨궜다.

“은신처는 어떻게 됐어?”

“일단 지석 형한테 전달했습니다. 관장님과 기관 각성자들이 조사를 하겠다고 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선오가 다시 매서워진 눈빛으로 옆의 탁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들어보니까 저희 무리만 습격을 당한 게 아니었습니다. 기관 쪽 각성자들도 꽤 다쳤고 다른 무리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미등록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정식 등록 각성자들을 공격한 것 같았다.

“혹시 모르니까 날개 돋친 범 무리도 확인해보십시오.”

안 그래도 연락을 해보려던 차였다.

미등록 때문에 불안한 감이 있어서 도빈이를 집으로 들어오게 했고, 오늘 아침에도 멀쩡한 모습을 보긴 했었지만 불안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도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빈이는 한참 후에야 전화를 받았다.

[어, 누나.]

“너희 쪽은 괜찮아?”

[…어….]

윤도빈이 잠시 뜸을 들였다.

아무래도 도빈이 쪽도 미등록의 습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게…. 단원들이 갑자기 공격을 받긴 했어.]

“넌? 혹시 다쳤어?”

내 물음에 윤도빈이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조금. 진짜 조금 베인 것뿐이야, 누나.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다치긴 했어.]

“…….”

순식간에 굳어진 표정에 주선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그냥 며칠 있으면 나을 정도야. 금방 도망쳐버려서 잡지는 못했어.]

“…일단 알겠어.”

나는 도빈이와 통화를 마친 후 핸드폰을 넣으며 생각했다.

‘도빈이까지 건드렸다 이거지.’

기관 소속 각성자와 다른 무리의 각성자들이 공격을 받았다.

이제 명분은 확실해졌다.

놈들이 먼저 움직였으니 이제 나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나는 주선오에게 말했다.

“일단 저 사람은 기관에 잡아둬. 어차피 말 하라고 해도 안 할 것 같으니까.”

“네.”

고개를 끄덕인 주선오가 잠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다 물었다.

“어쩌시려고요?”

조금 걱정스러운 듯한 얼굴이었다.

“그냥 둘 수는 없지, 이제.”

“그럼 저도….”

미등록을 뒤엎는 것을 돕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피식 웃고는 주선오의 등을 떠밀었다.

“너는 다른 무리들이랑 같이 덤벼오는 미등록들을 제압해 줘.”

잠시 머뭇거리던 주선오가 이내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주선오가 휴게실 밖으로 나갔다.

‘그럼 일단은….’

그때 레부가 튀어나왔다.

“쿄! 주인! 연락이 왔습니다.”

레부에게 올 연락이라면 최은서뿐이었다.

‘기관에 가라고 했는데 안 갔나?’

“연결해.”

“쿄.”

레부는 곧바로 최은서와 연결했다.

<…레, 레부…?>

“말해요.”

<아…. 저, 저기….>

최은서의 목소리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아까 연락했을 때보다 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저, 저…. 저, 성공했어요…!>

나는 멈칫하고는 레부를 보며 물었다.

“성공했다고요?”

<…네, 네…! …그, 그것도 다, 단장한테 직접…, 그루밍을 걸었어요….>

“미등록 단장?”

<네….>

뜻밖의 수확이었지만 최은서의 상태가 마음에 걸렸다.

말을 더듬는 빈도수도 더 늘어났다.

레부 역시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일이 생긴 것 같았다.

레부에게는 그쪽의 상황이 보이겠지만 지금 섣불리 상황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혹시 걸린 건가?’

어쩌면 주변에 누군가 있고 협박을 당하고 있는 상황일수도 있었다.

나는 일단 최은서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었다.

“지금 그루밍에 걸려있는 상태예요? 얼마나 유지 가능하죠?”

<…바, 반나절…! …정도는 유지할 수 있어요….>

최은서가 들쑥날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최은서를 안심시키기 위해 조금 크게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제가 그리로 가죠.”

<…네, 네…!>

그제야 최은서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위치가 어디죠?”

<주, 주소…. 보, 보내드릴게요.>

“알겠어요.”

나는 레부에게 손짓해 최은서와의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는 레부에게 물었다.

“거기 상황 어때?”

“쿄, 이상합니다. 그 여자,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럼?”

레부가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두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두 사람?”

“쿄.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였는데, 남자가 저와 연결한 여자 목에 칼을 대고 있었습니다.”

‘걸렸군.’

나는 혀를 내둘렀다.

역시 최은서는 협박을 받고 있었다.

빨리 기관으로 가라고 했더니 미적대고 있다가 미등록들에게 걸린 모양이었다.

‘차라리 잘 됐어.’

최은서를 빼내러 가는 김에 그 두 놈부터 정리를 시작하면 될 것 같았다.

아마 단장에게 스킬을 걸었다고 이야기한 걸로 보아 최은서를 협박하던 둘 중 하나가 단장인 것 같았다.

잠시 후 최은서에게서 주소가 적힌 메시지가 도착했다.

주소를 확인한 나는 곧바로 이동했다.

‘싹 정리해주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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