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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90화 (91/201)

제90화

최은서가 찍어준 주소에는 꽤 낡은 주택이 있었다.

작은 마당에는 관리하지 않은 풀들이 잔뜩 솟아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잦긴 했는지 대문에서 현관문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풀이 자라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가 최은서가 있던 거점.’

들어가기 전 탐지로 집 내부를 살폈다.

총 2층의 주택이었는데 각 층에는 3개의 방이 있었고 지하에도 커다란 공간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몇 보이지 않았다.

1층의 거실에서 나를 경계중인 세 명. 방안에 두 명.

2층은 비어 있었고 지하에는 쓰러져 있는 사람과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쓰러져 있는게 최은서 같군.’

나는 레부와 모부를 불러냈다.

“쿄!”

“휴.”

앞에 선 두 슬라임에게 지시를 내렸다.

“레부는 지하에서 최은서 데려와.”

“쿄, 알겠습니다.”

레부가 먼저 집의 지하로 향했다.

나는 모부와 함께 현관문으로 향했다.

문을 당겨보자 잠겨 있지 않은 듯 스르륵 열렸다.

현관 앞 양쪽 벽 뒤로 두 사람이 숨어들었다.

문을 활짝 열자 거실 안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그가 나를 향해 경계 태세를 취했다.

정보를 살펴보니 꽤 수준 있는 각성자였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내 힘을 뺄 생각은 없었다.

나는 모부에게 손짓했다.

“결박. 죽이지 말고.”

“휴휴휴.”

모부가 음흉하게 웃고는 바닥으로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스스스스.

“뭐냐!”

놀란 각성자가 무너지는 모부를 보고 소리쳤다.

동시에 양옆에 숨어있던 각성자들이 튀어나와 나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사륵!

바닥으로 퍼진 모부의 모래들이 빠르게 세 사람의 몸을 타고 올랐다.

“큭!”

“이건!”

발부터 몸통을 지나 팔까지 모래가 그들의 몸을 묶었다.

곧 그들은 모래더미 위로 코 윗부분만을 비죽 내민 상태가 되었다.

놈들이 당황한 눈알만을 간신히 굴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모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빠르게 인기척이 있는 방으로 뻗어나갔고 곧 닫힌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모부의 모래를 따라 천천히 집안으로 들어섰다.

“잠깐 그러고 있으면 곧 풀어줄게요.”

나는 닫힌 방안을 탐지로 살폈다.

의자에 앉아있는 여자의 앞을 남자가 가로막고 서 있었다.

‘저 사람들이 최은서를 잡은 사람들인가.’

그렇다면 둘 중 한 명이 단장일 가능성이 컸고 그 가능성은 앉아 있는 여자 쪽이 높았다.

잠시 지하를 살피자 레부는 이미 지하의 한 명을 제압하고 최은서를 빼낸 상태였다.

‘저쪽은 끝났고.’

모부의 모래가 방안의 두 사람을 속박하려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때 남자가 허공에서 창을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부웅!

콰드득!

남자가 휘두른 창에 모부의 모래와 함께 닫혀있던 문이 두 동강났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콰직!

투둑. 쿵!

반으로 갈린 문이 바닥으로 떨어져내렸고 그 뒤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

창을 휘두른 사람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얼굴에 살짝 주름이 진 40대 중후반의 남자.

모부의 공격을 막아낸 것부터가 거실의 세 각성자와는 달랐다.

“모부.”

내 부름에 바닥의 모래들이 다시 내 쪽으로 돌아왔다.

“휴휴. 저 사람 꽤 괜찮은 스킬을 가졌군요.”

내 뒤에서 빠르게 형태를 취한 모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창을 거두며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는 남자의 정보를 살폈다.

[문기훈]

[캥거루 신의 가호]

[에너지 축적]

[전용 특성 : 배주머니 lv.3]

[전용 스탯 : 각력 53/근력 49/지구력 44]

[전용 스킬 : 각력 강화 lv.5/발산 lv.4/축적 lv4/효율 증가 lv.3]

[특성 스킬 : 방출 lv.3/보관 lv.3]

이시결과 비슷한 수준의 각성자였다.

아마 이 사람도 이시결과 직접 마주친 적은 없는 모양이었다.

‘창은 허공의 주머니에서 꺼냈나보군.’

조이의 소환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다만 저 배주머니의 경우 실체가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 뿐.

가호의 내용 또한 독특했다.

“휴휴휴. 싸움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저 사람에게 유리해질 겁니다.”

뒤에서 모부가 설명했다.

싸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쌓이는 에너지가 커져 점점 전투의 효율이 증가하는 특성이었다.

‘빨리 정리하는 게 좋겠어.’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놀랍네요.”

남자의 뒤쪽에 있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최은서를 역이용한 게 윤도아 씨였다니.”

반면 문기훈은 별다른 말 없이 내게 창을 겨누었다.

나 역시 그를 따라 조용히 그림자 단검을 꺼내들었다.

문기훈이 바닥을 박찼다.

콰득, 탓!

강화된 각력과 축적된 에너지를 발산시킨 힘에 바닥이 움푹 파였다.

순식간에 문기훈과 나의 거리가 좁혀졌다.

동시에 문기훈이 들고 있던 창이 내 머리를 노리고 찔러들어왔다.

‘…어라?’

나는 조금 이상함을 느끼며 살짝 고개를 비틀었다.

촤악!

창끝이 공기를 가르는 서늘한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대비를 하고 있지 않았다면 당했을 지도 모를 정도의 속도였지만.

‘기분 탓인가?’

문기훈의 창끝이 살짝 흔들렸었다.

꼭 망설이는 것처럼.

찰나의 순간 문기훈과 눈이 마주쳤다.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까만 눈동자에는 뭔가 미묘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나는 문기훈의 뒤로 이동했다.

‘블링크.’

훅!

하지만 문기훈의 반응속도는 빨랐다.

내찔렀던 창을 잡아당기며 그대로 뒤에 나타난 나를 찔러왔다.

나를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양끝에 모두 날이 달린 창이었기에 꽤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나는 일단 바닥을 가볍게 차고 뒤로 물러나 창을 피했다.

탓!

문기훈은 창을 바닥에 내리꽂은 후 창을 지지대 삼아 양발로 바닥을 박찼다.

부웅!

허공에서 몸을 뒤튼 문기훈이 창을 놓으며 바닥에 막 착지한 내 머리를 향해 다리를 내리찍었다.

“마나 방패!”

촤르르르!

콰앙!

생성되다 만 마나 방패가 문기훈의 발에 내리찍혀 산산조각났다.

생성이 느리기도 했지만 각력이 강화된 문기훈의 발길질 자체의 위력이 굉장했다.

‘안개화!’

후욱!

문기훈의 발이 안개화한 나를 지나쳐 바닥을 내리찍었다.

쿵!

문기훈이 빠르게 몸을 바로 세우며 눈으로 나를 쫓았다.

바닥은 움푹 파여 있었다.

‘대단한데.’

이시결도 이시결이었지만 문기훈 역시 놓치기에는 아까운 실력의 각성자였다.

이시결이 문기훈과 마주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두 사람이 마주쳤다면 아마 둘 중 하나는 죽었을 테니까.

그리고 조금 전 느꼈던 의아함은 확신이 되었다.

조금 전의 내리찍기는 마나 방패가 깨질 정도의 위력이었지만 온힘을 다한 것은 아니었다.

‘공격을 주저하고 있다.’

왜,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어차피 나도 문기훈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나는 살짝만 옆으로 이동하여 안개화를 풀었다.

동시에 문기훈에게 파고들며 주먹으로 그의 명치를 강하게 올려쳤다.

퍽!

“!”

문기훈이 창을 놓친 채 무릎을 꿇었다.

털썩!

힘 조절을 하지 않았기에 그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염력으로 문기훈이 놓친 창을 들어올려 멀리 날려보냈다.

방안을 돌아보니.

여자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잔뜩 굳어진 얼굴로 무릎을 꿇은 문기훈을 바라보며.

‘남은 건 저 여자.’

미등록의 단장이라면, 어쩌면 문기훈보다도 더 실력이 있는 각성자일지도 몰랐다.

나는 여자를 경계하며 단검을 고쳐 쥐었다. 동시에 여우 구슬로 여자의 정보를 살폈다.

그리고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뭐?’

여자는 각성자가 아니었다.

아니, 가호자조차 아니었다.

‘…단장이 아닌가?’

회귀 전에는 미등록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저 미등록들이 정부를 장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단편적인 기사만이 있었을 뿐.

그래서 나도 정확한 정황이나 내막은 알지 못했다.

‘이건 의외인데.’

나는 천천히 방으로 다가가며 여자를 살폈다.

문기훈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여자는 이제 문기훈에게서 시선을 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단검을 넣었다.

그러자 여자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죠? 아직 내가 남았는데.”

“…당신, 각성자가 아닌데?”

내 말에 여자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러더니 곧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었다.

“당신한테는 그런 능력도 있나 보군요.”

여자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리고는 한 손을 가슴 위에 올리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요, 맞아요. 난 각성자는 아니에요. 하지만 미등록 각성자들의 무리를 이끄는 단장이죠.”

그러더니 곧 방긋 웃으며 살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반가워요, 윤도아 씨. 한지희라고 해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각성자도 아닌 사람이 미등록들을 이끌고 있었는지, 마찬가지로 왜 미등록 각성자들은 각성자도 아닌 사람을 따르고 있었는지.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지?”

“후후후. 어떤 짓을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한지희가 잠시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는 금세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윤도아 씨라면 모든 걸 알고 왔겠죠. 김지석 이사를 죽이려 한 짓? 아니면 송민구 의원 부자를 납치한 짓? 그것도 아니면 각성자들을 공격한 짓? 어느 걸 묻는 건가요?”

“전부 다.”

나는 성큼성큼 한지희의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어떤 짓이든 용납할 수 없는 짓이었어.”

“흠…. 용납. 용납이라.”

한지희가 턱을 괸 채 가까이 다가온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를 피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러지 못하는 건가?’

이제 보니 한지희가 앉아있는 것은 의자가 아니라 휠체어였다.

“대답해. 어떤 대답이냐에 따라 당신의 처우가 결정될 테니까.”

내말에 한지희의 입술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인자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법한 그런 미소였다.

그때 뒤쪽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으…, 윽….”

무릎을 꿇고 있던 문기훈이었다.

‘벌써 말을 하네.’

문기훈은 명치를 부여잡은 채 간신히 목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볼수록 감탄스러운 사람이었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그만 둬….”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문기훈의 말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내가 문기훈을 돌아보는 사이에 한지희가 등 뒤에 감춰두었던 칼을 꺼내 나를 공격해왔다.

각성자도 아닌 일반인의 공격이었다. 그것도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40대 후반의 여성.

나는 가볍게 칼을 든 한지희의 손목을 붙잡았다.

“윽!”

한지희가 까득 이를 갈며 나를 쏘아보았다.

나는 살짝 고개를 비틀며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답인가?”

“그래! 너 같은 정부의 개한테 해줄 말은 없어!”

한지희가 이를 갈며 외쳤다. 상당히 악에 받힌 목소리였다.

나는 한지희의 손목을 살짝 비틀었다.

“꺅!”

한지희가 손에 든 칼을 놓쳤다.

챙!

칼이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상당히 오해하고 있나본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기분은 나쁘거든.”

나는 한지희의 손목을 잡은 손에 가볍게 힘을 주었다.

“윽!”

한지희가 인상을 찡그리며 내게서 팔을 빼내려했지만 나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문기훈이 다급히 옆으로 손을 뻗었다.

동시에 내가 멀찍이 던져둔 창이 크게 일렁이며 사라지더니 문기훈의 손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배주머니 특성으로 멀리 있던 창을 보관한 후, 곧바로 손에 방출한 것이었다.

곧이어 문기훈이 바닥을 박차며 내게 돌진했다.

타닥!

각력의 강화 덕에 속도는 여전히 빨랐지만 아직 명치를 맞은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창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문기훈의 목적은 공격이 아니었다.

나와 한지희를 떨어트려놓는 것.

여전히 문기훈의 창끝에는 망설임이 가득했다.

‘뭔가 이상한데.’

나는 일단 문기훈이 원하는 대로 한지희의 손목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문기훈은 나와 한지희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그 앞에 쓰러지듯 착지했다.

털썩!

그리고는 창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하며 나를 막아섰다.

고통 때문에 상당히 구겨진 얼굴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뭔지 모를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때 문기훈의 뒤에서 한지희가 말했다.

“…계획이 모두 틀어졌네요.”

한층 더 차분해진 목소리였다.

“우리가 저 사람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으니 어쩔 수 없군요. 꺼내세요.”

그 말에 문기훈의 옆 공간이 일렁였다.

우우웅!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 한 명이 튀어나왔다.

납치되었던 송민구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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