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91화 (92/201)

제91화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송민구는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여, 여긴…!”

그러다가 문기훈과 그 뒤의 휠체어에 앉은 한지희를 보더니 인상을 쓰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 내가 누군 줄 알고 가, 감히 이딴 짓을…!”

하지만 송민구를 바라보는 한지희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문기훈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 나를 상대할 때와 전혀 다르게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송민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송민구가 주저앉은 채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다가 나를 발견했다.

“자, 자네는…! 유, 윤도아!”

나를 알아본 송민구가 다급하게 내게 기어오려 했다.

하지만 문기훈이 빠르게 창을 들어 송민구의 목을 겨누었다.

“흐이익!”

움직임을 멈춘 송민구가 곁눈질로 문기훈을 살폈다.

그러면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 이, 이봐. 이, 이놈들 좀 빠, 빨리 처리해! 지, 지금 내가 주, 주, 죽게 생겼다고!”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문기훈이 송민구를 납치한 것도 몰랐고 이곳에서 송민구를 만나게 될지도 몰랐다.

“윤도아!”

송민구가 움직이지 않는 나를 다급하게 불렀다.

다짜고짜 이름을 불리니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나는 살짝 인상을 쓰며 송민구를 바라보았다.

“알아서 판단합니다. 명령하지 마세요.”

“뭐, 뭐, 뭐라고…?”

송민구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에 한지희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여당 당대표 의원을 죽게 내버려둬도 되겠어요? 그럼 기관이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텐데?”

한지희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거야 기관이 알아서 처리해주겠지. 그리고 그 사람을 인질로 삼아서 내 손을 묶을 생각이라면 잘못 짚었어. 난 미등록을 정리하러 온 거지 누굴 구하려고 온 게 아냐.”

“…가, 감, 히…! 내, 내가 누군 줄 알고…!”

송민구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목에 창의 날이 닿아 있음에도 자존심을 버리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후후후. 그래요. 이런 인질극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군요. 우리가 너무 윤도아 씨를 얕봤네요. 부단장은 당신을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지희가 말끝을 흐렸다.

아마 그렇게 생각했기에 이정도의 인원만 두고 나를 유인한 것이리라.

“계획이 다 틀어져버렸어…. 이제 다 틀렸네요.”

한지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 기회를 얻었다는 눈빛으로, 한지희가 송민구를 불렀다.

“의원님.”

송민구가 벌벌 떨며 한지희를 바라보았다.

“무, 뭐?”

한지희가 차분히 말을 꺼냈다.

“몇 달 전에. 가호자였던 문지후 학생이 게이트에 들어가서 죽은 사건. 기억하시나요?”

‘문지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보니 크게 기사가 났던 사건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의 세상은 게이트 안에서 사람이 죽는 것이 크게 이슈가 되지 않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송민구의 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은.

한지희와 문기훈, 그리고 송민구가 그 일과 연관이 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설마….’

한지희와 문기훈이 송민구를 납치한 것은 단순히 정부에 혼란을 주기 위함만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송민구의 반응을 살폈다.

잔뜩 미간을 찡그리고 있던 송민구의 얼굴이 금세 사색이 되었다.

‘뭔가 있구나, 역시.’

그것도 송민구가 떳떳하지 못한 무언가가.

“아는 사람입니까?”

내 질문에 송민구가 흠칫 놀라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마구 고개를 내저었다.

“모, 모, 모, 몰라! 모, 모르는 사람들이야! 내가 저, 저런 사람들을 어떻게 알겠어!”

말과 반응이 달랐다.

송민구는 땀을 잔뜩 흘리며 곁눈질로 한지희와 문기훈을 살피며 말했다.

“빠, 빨리! 저, 저놈들을 좀 붙잡아! 자, 잡아서 겨, 경찰에 신고를…!”

“그러면 당신은 이 자리에서 죽어요. 부단장, 하나 더 꺼내요.”

한지희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기훈이 곧바로 공간 하나를 더 열었다.

우웅!

문기훈의 앞쪽 공간이 일렁이더니 이번에는 송민구와 꼭 닮은 남학생 하나가 나타났다.

“헉!”

송민구 이전에 납치되었던 그의 아들이었다.

주머니에 갇혀 있다가 빠져나온 아들은 잔뜩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들었다.

앞에 서있던 문기훈을 보자 아들의 눈이 커졌다.

“…무, 무, 문지후 아, 아빠…?”

그때 송민구가 버럭 소리쳤다.

“닥쳐, 이 멍청한 놈!”

그 외침에 흠칫 놀란 아들이 송민구를 돌아보았다.

문기훈이 창끝을 송민구의 목에 살짝 대었다.

“헉!”

송민구가 덜덜 떨며 입을 다물었다.

그것을 본 아들 역시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비틀며 송민구를 바라보았다.

“당신 아들은 아는 사람 같은데.”

“모, 몰라! 모르는 놈들이라고!”

송민구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송민구와 아들의 반응에서 이미 대략적인 전말은 눈치챌 수 있었다.

송민구의 아들의 말로는 문기훈은 문지후의 아빠.

한지희는 송민구에게 게이트에서 죽은 문지후의 이야기를 꺼냈다.

한지희와 문기훈은 부부일 확률이 컸다.

그리고 둘의 아들인 문지후를 죽게 만든 원인은 아마도.

‘송민구의 아들.’

당연히 송민구는 아들의 잘못을 묻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미등록 각성자들의 무리를 꾸리게 된 원인이리라.

‘괜히 송민구와 아들을 납치한 게 아니었군.’

“…아무리 당신이 부정을 해도…. 우리는 잊을 수 없어….”

송민구의 목에 닿아있는 문기훈의 창끝이 덜덜 떨렸다.

송민구의 목에 가느다란 상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를 보는 문기훈의 눈빛에는 온갖 감정이 뒤섞여있었다.

슬픔과 억울함, 원망. 그리고 분노.

“…당신이…. 당신의 아들이…. 제대로 된 사과만 했어도….”

문기훈이 이를 악물고는 말했다.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거야.”

순간 문기훈의 눈빛이 돌변했다.

문기훈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나는 그의 앞으로 이동했다.

‘블링크!’

갑자기 시야에 나타난 나 때문에 문기훈의 손이 흔들렸다.

나는 빠르게 문기훈의 창을 쳐냈다.

카앙!

“크윽!”

문기훈이 입술을 잘근 깨물며 빠르게 다리를 차올렸다.

훅!

근력이 나보다 약했지만 강화된 다리였다.

맞으면 나라도 성하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다시 블링크를 사용했다.

‘블링크!’

문기훈의 뒤로 이동한 나는 그의 무릎을 내리쳤다.

툭.

백어택의 효과가 적용되었기에 가볍게 내리쳤음에도 문기훈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여보!”

한지희가 비명 섞인 외침을 내질렀다.

“다, 당장 주, 죽여!”

어느새 아들을 품에 안은 송민구가 소리질렀다.

나는 염력으로 바닥에 떨어진 문기훈의 창을 들어올려 내 손으로 끌어당겼다.

“그, 그래! 빨리 저 년도 죽여버리라고! 가, 감히 나를! 내 아들을 건드려?”

송민구가 잔뜩 기가 살아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손에 쥐인 문기훈의 창을 휘둘러 송민구 부자를 겨누었다.

후웅!

“허억!”

송민구가 한껏 숨을 들이켰다.

나는 얼굴을 구기며 송민구에게 말했다.

“시끄러워.”

그때 한지희가 등 뒤에 숨겨두었던 단검을 꺼내들고 자리에서 튀어나왔다.

“나라도…!”

‘!’

휠체어에 앉아있어서 걷지 못할 줄 알았던 내 실수였다.

한지희가 절뚝거리며 송민구를 향해 뛰었다.

나는 송민구에게 겨누었던 창을 끌어당겨 한지희를 가로막았다.

“윽!”

창대에 부딪힌 한지희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하지만 곧바로 몸을 일으키더니 나를 보며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왜! 대체 왜! 너만 아니었어도 우리 계획은 완벽했어!”

한지희가 내게 단검을 휘둘렀다.

나는 살짝 몸을 뒤로 빼며 한지희의 칼을 피하려했다.

하지만.

푹!

한지희의 단검은 내 앞을 가로막은 문기훈의 어깨에 꽂혔다.

“…!”

순간 한지희의 모든 것이 멈추었다.

“…….”

가까스로 내 앞을 막아선 문기훈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만…. 안 돼요. 모든 건 내가 짊어져야 해….”

한지희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단검을 놓았다.

“…여…, 여보…. …내, 내가…. 무슨….”

단검은 문기훈의 어깨에 그대로 꽂혀 있었다.

한지희는 자신이 저지른 짓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단검을 바라보았다.

사사삭.

모래가 바닥을 타고 나를 스쳐지나갔다.

모부는 순식간에 한지희와 문기훈, 그리고 송민구 부자까지 모두를 묶어버렸다.

‘제압됐다.’

그제야 가볍게 한숨을 내쉰 나는 문기훈의 창을 거두었다.

내 옆에 형체를 갖춘 모부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휴휴휴. 기관 사람들이 왔어요.”

모부의 말과 동시에 안세인과 권재경, 김지석이 집안으로 들어섰다.

한지희는 눈물범벅이 된 채로 오열하며 문기훈에게 다가가려 애썼다.

문기훈은 한숨을 내쉰 후 작게 이야기했다.

“…다 끝났어요, 이제….”

* * *

미등록 각성자 무리의 단장 한지희와 부단장 문기훈은 기관에 의해서 정리되었다.

단장이었던 한지희는 일반인이었지만 각성자들을 이용한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점 때문에 기관의 지하에 머무르게 되었다.

부단장이었던 문기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질적으로 미등록들을 지휘한 각성자였지만 그 역시 누군가를 죽이지는 않았기에 비교적 가벼운 형량이 주어졌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꽤 남아있었다.

나는 문기훈을 만나기 위해 기관의 지하로 향했다.

지하에는 더 늘어난 각성 수감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인력이 한 명 충원되어 있었다.

처음 유지은을 만났을 때 함께 있던 남자 경찰이었다.

“김현우입니다. 경찰이었지만 저도 각성을 해서 이쪽으로 발령을 받았네요.”

나는 김현우의 안내를 받아 문기훈과 한지희를 만날 수 있었다.

문기훈은 한지희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내가 방에 들어서자 문기훈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나는 둘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

“저한테 죄송할 건 없어요. 두 분의 사정에 휘말린 다른 각성자들에게 미안해해야죠.”

“죄송합니다….”

문기훈은 그 말만을 반복했다.

옆에 있던 한지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하게 탁자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살짝 한숨을 내쉰 나는 문기훈을 보며 말했다.

“미등록 몇몇이 잠적했어요. 알고 있죠?”

문기훈과 한지희가 기관에 잡혀온 날, 문기훈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등록들에게 투항을 권했다.

몇몇 미등록들은 문기훈의 말을 듣고 기관으로 찾아왔고, 기관은 그들에게 최대한의 선처를 베풀었다.

그들이 왜 미등록의 무리에 들게 됐는지 개개인의 사정을 듣고 그것을 해결해주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모든 미등록이 쉽게 수긍할 리 없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도 각자 저희와 같은 원한을 품은 사람들이니까요. 쉽게 포기하지 못하겠지요.”

다른 무리를 공격해오던 미등록들은 모두 잡아서 이곳에 가둬둔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위험한 각성자들이 아니었다.

위험한 놈들은 잠적한 놈들.

본인들의 실력을 믿고 혼자서라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단은 숨어서 조용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터.

문기훈이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허락해주신다면. 제가 그 사람들을 데려오겠습니다.”

내가 문기훈을 찾아온 목적이었다.

문기훈을 이용해 잠적한 미등록들을 찾아내는 것.

하지만 나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문기훈 씨가요?”

문기훈이 옆의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와 아내가 저지른 일입니다. 이미 돌이킬 수는 없는 일…. 허락해주신다면 꼭 모두를 데려오겠습니다.”

다시 나를 돌아보는 눈빛은 나에게 창을 내찌를 때와는 다르게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그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문기훈 씨 정도면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아내인 한지희가 기관의 보호 하에 있는 한 문기훈은 섣부른 짓을 벌이지는 못할 터였다.

물론 정부 쪽에서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만 그 정부를 설득하는 건 기관의 몫이었다.

“…감사합니다.”

문기훈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젠 안센인과 김지석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러 갈 차례였다.

의자에서 일어나 나가려는 나를 문기훈이 붙잡았다.

“…혹시.”

내가 동작을 중단하고 문기훈을 바라보자 잠시 머뭇거리던 문기훈이 물었다.

“…송민구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와 아내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일수도 있었다.

가호자였던 둘의 아들 문지후가 게이트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송민구의 아들 때문이었다.

평소 학교에서 송민구의 아들과 그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문지후는 그날도 송민구 아들의 협박에 못 이겨 게이트에 입장하게 되었고,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송민구가 그 모든 사실을 묻어버렸다.

송민구는 풀려난 직후, 화를 내며 문기훈과 한지희를 당장 감옥에 넣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세 내막이 밝혀졌고 송민구는 더 이상 주장을 내세울 수가 없었다.

“이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됐어요. 송민구와 아들 모두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고요.”

내 말에 문기훈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너무 늦은 처분이었지만.

문기훈과 한지희가 바라고 바라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문기훈은 양손으로 한지희의 손을 꼭 붙잡았다.

겹쳐진 손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조용히 그곳을 벗어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