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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95화 (96/201)

제95화

나는 우부에게 위쪽에 떠 있는 주선오를 가리켰다.

“우부, 저쪽으로.”

“푸푸!”

우부가 유유히 물살을 가르며 주선오에게로 다가갔다.

그때 주선오의 뒤쪽에서 의외의 인물이 고개를 내밀었다.

“어라? 진짜 도아 언니네?”

정시언이었다.

사이비들을 정리할 때 교주의 방에서 만났던 아직 어린 고등학생.

그 이후 기관이나 다른 곳에서는 몇 번 마주쳤지만 이렇게 게이트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시언은 우부를 보더니 확 얼굴을 구기며 화를 냈다.

“앗! 뭐야, 너! 기껏 도와준다고 했더니 혼자 도망이나 치고!”

“푸푸푸, 우부도 살아야지.”

우부가 웃으며 우리의 주변을 맴돌았다.

정시언은 그런 우부에게 계속해서 잔소리를 퍼부었다.

주선오 역시 우부를 보며 작게 혀를 찼다.

나는 피식 웃고는 주선오에게 말했다.

“누가 먼저 들어와 있나 했더니 너희였구나.”

“저희도 들어온 지 얼마 되지는 않았어요.”

주선오가 정신없이 주변을 빙빙 도는 우부를 한숨을 내쉬었다.

“누나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셨어요?”

“S급 찾아서 왔지, 뭐. 근데 어째 신선한 조합인데.”

내가 주선오에게서 시선을 떼어 정시언을 바라보았다.

우부를 잡으려 똑같이 주변을 빙글빙글 헤엄치던 정시언이 우뚝 멈추어서더니 웃었다.

“아, 제가 선오 오빠한테 게이트 가자고 졸랐어요.”

주선오가 살짝 고개를 돌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소속이 없으니까 같이 다닐 각성자도 별로 없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혼자 S급을 닫기는 아직 무리니까요.”

정시언이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아마 그 점 때문에 주선오도 정시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S급의 게이트를 닫게 되면 본인에게도 손해는 아니었으니.

“너 굉장하더라.”

내가 다시 주선오를 보며 말했다.

“네?”

주선오가 조금 당황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저거.”

내가 아직도 흙먼지가 가라앉지 않은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선오가 내 손을 따라 레비아탄의 사체 쪽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아직 멀었습니다.”

그때 정시언이 불쑥 끼어들며 외쳤다.

“저도 보고 완전 놀랐어요! 아니 무슨 하늘만한 놈을 저렇게 갈라버려요? 진짜 최고!”

정시언이 양손의 엄지를 들어올리며 주선오에게 내밀었다.

“역시 이 정도는 돼야 랭킹 2위 하나 보네요! 완전 멋있어!”

조금 놀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들 정도로 격한 칭찬이었다.

주선오도 조금 거슬리기 시작했는지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정시언에게 말했다.

“그만해.”

정시언이 웃었다.

“흐흐. 방금 건 좀 장난이 섞이긴 했지만 진심이에요. 아직 저는 저 정도는 못 하니까.”

“그래. 멋있었어.”

내가 정시언의 말을 거들자 주선오가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귀가 살짝 붉어진 것이 칭찬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우부!”

그때 우리 셋의 사이로 돌고래가 불쑥 파고들었다.

“아, 놀래라!”

가슴을 부여잡은 정시언이 매섭게 우부를 쏘아보았다.

“푸푸푸, 다들 우부 도와주는 거야? 우부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줄 거야?”

“안전한 곳?”

내가 되묻자 주선오와 정시언이 나를 바라보았다.

“응? 언니 혹시 게이트 클리어 목표 못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아직 우부가 뭘 도와달라고 했는지 듣지 못한 상태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이 나서 온몸을 파닥대며 푸푸거리는 우부를 대신해 정시언이 말했다.

“얘 말대로예요. 이 사고뭉치 물 슬라임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면 돼요. 물 속 생물들의 위협이 없는 곳으로요.”

“그런데 근처에서 위험 요소를 정리하고 있을 때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더군요.”

주선오가 춤추는 우부를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푸우?”

우부는 주선오의 시선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선오는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우부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고 있었어?”

정시언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으음. 일단은 물을 벗어나는 게 어떨까 싶었어요.”

“물속에 있는 생물들은 대부분 물 슬라임을 잡아먹으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뭍으로 향하는 중이었습니다.”

주선오가 설명을 덧붙였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우부가 안전하다고 느끼면 이 게이트는 클리어 될 터.

다만 클리어의 개념이 우부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 조금 애매한 것도 없지는 않았다.

사실 우부를 데리고 이 게이트를 벗어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것이었지만, 우부가 안전한 곳에 도착하지 않는 이상 게이트의 출구는 열리지 않는다.

‘모순이군.’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일단 절벽의 위로 올라가면 뭍이 나올 것 같긴 한데….”

정시언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나는 정시언의 시선을 따라 옆을 돌아보았다.

무너진 동굴이 있는 곳. 그 위로는 가파른 절벽이 높게 솟아 있었다.

“그럼 올라가야지.”

내가 절벽을 가리켰지만 주선오와 정시언의 표정은 그닥 좋지 않았다.

그때 절벽 위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났고, 절벽에도 서서히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원인을 찾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아파트 한 단지를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게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넓적한 몸통에 길쭉한 8개의 다리를 가진 거대한 크라켄이었다.

크라켄의 그림자가 우리에게 드리워졌다.

“…저놈 때문에 못가고 있었어요.”

정시언이 우리의 위로 유유히 떠가는 크라켄을 보며 말했다.

“푸푸푸, 크라켄!”

우부는 또 좋다고 웃고 있다.

낙천적인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슬라임이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일단. 그래도 저쪽으로 올라가는 게 맞는 것 같아.”

주선오와 정시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야할 것 같습니다.”

“언니도 왔으니까 가능할 것 같네요!”

정시언이 양손을 불끈 쥐며 말했다.

나는 옆의 우부를 톡톡 쳤다.

“우부, 더 큰 걸로 변해봐.”

“더 큰 거?”

우부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다 탈 수 있게.”

“푸!”

이해를 한 건지 우부의 돌고래 형체가 순식간에 뭉개졌다.

동그랗게 뭉쳐져 잠시 꿀렁거리던 물 슬라임의 크기가 점점 커지더니 곧 두 배 정도 크기의 범고래로 변했다.

나는 우부의 등지느러미를 붙잡고는 주선오와 정시언에게 손짓했다.

더 커진 등지느러미는 세 명이 붙잡고 있기에 문제가 없었다.

“와! 범고래랑 헤엄치는 게 꿈이었는데!”

정시언이 기뻐하며 우부의 등지느러미를 붙잡고 발을 동동 굴렀다.

“으하하하! 신난다!”

덩달아 신난 우부도 푸푸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피식 웃고는 우부의 등지느러미 앞으로 마나막 두 개를 만들어냈다.

‘마나막.’

나는 생성된 두 마나막의 모서리를 붙여 뾰족한 첨탑이 누워있는 것 같은 모양새를 만들어냈다.

“가자.”

내가 우부의 등을 툭툭 두드리자.

“우부, 간다!”

우부가 튀어나갔다.

촤아아아—

아까보다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다행히 앞쪽에 만들어둔 마나막이 잘 버텨주어 우리에게 큰 수압이 밀려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잘못했다간 우부의 지느러미를 놓칠 것 같았다.

“으하하학! 신난다!”

정시언이 우부의 지느러미를 꼭 붙든채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트렸다.

주선오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손끝이 하얘질 정도로 우부의 지느러미를 꽉 붙들고 있었다.

우부는 순식간에 절벽 근처에 도달했고 곧 그 절벽을 따라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나는 살짝 옆을 돌아보았다.

드넓은 바닷속이 펼쳐져 있었다.

먼 위쪽의 표면을 통과해 떨어지는 빛이 어두운 바닷속을 밝혔다.

조금 전 우리에게 그림자를 드리웠던 크라켄과 온갖 크기와 종류의 물고기 떼가 자유롭게 유영하는 곳이었다.

흙바닥 위에 솟아난 울퉁불퉁한 바위섬들에는 크고 작은 산호들이 잔뜩 뒤덮여 있었다.

‘저건….’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먼 곳을 내다보았다.

뿌연 부유물들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크라켄과 비슷한 덩치의 덩어리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성체 레비아탄의 무리 같았다.

‘저놈들이 근처에 없는 게 다행이네.’

그때 한 무리의 물고기 떼가 절벽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를 노리는 건가?’

“우와, 저게 뭐야?”

그때 정시언이 아래를 보며 중얼거렸다.

시선을 내려 보니 길쭉한 물뱀 같은 것이 절벽을 따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이름 모를 거대한 갑각류 하나가 절벽을 타고 오르는 중이었다.

“푸푸푸푸, 우부 노린다! 다들 우부 먹으려고 해!”

또 좋다고 웃고 있는 우부였다.

절벽을 오르는 생물들은 점점 늘어났다.

“…와, 지, 징그러….”

정시언이 금세 창백해진 안색으로 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반대편에서 보면 아마 거꾸로 솟구치는 폭포처럼 보일 것 같기도 했다.

‘레비아탄이나 크라켄이 지나가니까 그제야 덤빌 마음이 들었나 보군.’

한숨을 내쉰 나는 아래쪽을 바라보며 마나구를 만들어냈다.

“마나구.”

빠르게 백 여 개의 마나구가 생성되었다.

높은 압축률의 마나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렇게 빽빽하게 모여 있는 마나구들에 부딪힌다면 놈들은 절벽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나구들을 그곳에 고정시켜두었다.

우리와 마나구의 사이는 빠르게 멀어졌고, 놈들과 마나구의 사이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리고 놈들이 물속에 떠있던 마나구들과 부딪혔을 때.

쿵!

쿠웅!

밑에서 작은 폭발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폭발은 우리를 향해 돌진하던 생물들을 절벽 밑으로 다시 밀어냄과 동시에 우리를 더욱 빠르게 위로 올려주었다.

“우와!”

정시언이 아래에서 일어난 폭발을 보고 감탄했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절벽 쪽으로 다가오던 한 무리의 물고기는 상어 떼였다.

게다가 역시나 우리를 노리고 있었다.

내가 다시 마나구를 만들려는 찰나, 앞에서 주선오가 말했다.

“발동.”

그러자 주선오의 오른쪽 손목에 있던 은색의 팔찌가 번쩍 빛났다.

‘아, 저거.’

나는 저 아이템을 알고 있었다.

손을 휘감고 살짝 쥔 주먹 안으로 이동한 은색의 액체는 곧 칼의 손잡이와 날렵한 칼날을 만들어냈다.

주선오가 칼의 손잡이를 단단히 쥔 채 손을 움직였다.

수평을 그린 칼등이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검격증폭. 물어뜯기.”

순식간에 칼날이 길게 늘어나며 여섯 갈래로 나뉘었다.

가장 앞선 상어 한 마리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우리에게 달려드는 순간, 주선오가 크게 칼을 휘둘렀다.

역시 물속이라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촤아악—

물을 가르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날카로운 칼날은 물과 함께 상어 떼 전부를 부드럽게 베어냈다.

주선오의 여섯 갈래의 칼날에 베인 상어들이 힘없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칼을 거둬들인 주선오가 다시 중얼거렸다.

“해제.”

그러자 은빛의 칼은 다시 평범한 팔찌로 돌아가 얌전히 주선오의 팔에 채워졌다.

회귀 전에 주선오가 사용하던 칼 중 하나였다.

지금은 단순히 보관이 편리한 용도의 S급 칼이었지만, 나중에는 칼 자체에 속성을 입힐 수도 있는 굉장한 놈이었다.

정작 본인은 아직 모르겠지만.

추락한 상어들의 피에 반응해 주변 몬스터들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 덕에 우리는 드디어 절벽의 끝에 다다랐다.

“와, 다 왔네요!”

정시언이 다시 신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우부, 다 올라왔다!”

그에 반응한 우부가 자랑스럽게 외치며 절벽의 위로 솟구쳤다.

하지만 절벽의 위에는 또 다른 검붉은 절벽이 있었다.

정시언이 미간을 찌푸리며 어느 정도 떨어져있는 절벽을 보며 투덜거렸다.

“에엥? 또 절벽인데요?”

하지만 그것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냐, 저건….”

나와 같은 의문을 품고 검붉은 벽을 보던 주선오가 다급하게 나를 돌아보았다.

“레비아탄!”

주선오의 외침에 정시언이 기겁했다.

“흐이익?”

나는 레비아탄의 크기를 가늠해 보기 위해 곧바로 탐지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 레비아탄은 내 탐지의 범위조차 넘어서는 몸집을 가진 놈이었다.

‘성체구나!’

놈의 절벽 같은 머리에 박힌 수십 개의 눈동자가 우리를 발견했다.

잠시 번갈아가며 수십 개의 눈을 깜빡이던 레비아탄의 머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눈이 위아래로 벌어졌고 그 안의 날카로운 붉은 이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이 목구멍 깊은 곳의 심연을 열고 우리에게 돌진했다.

“우부! 위로!”

내 다급한 외침에 우부가 더욱 속도를 냈다.

“푸푸푸푸!”

우부의 꼬리지느러미가 거세게 요동쳤다.

우부가 레비아탄을 피해 위로 솟아나기는 것은 꽤 아슬아슬해보였다.

주선오가 다시 칼을 발동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나구.’

나는 레비아탄의 심연이 덮칠 곳에 최대 범위의 마나를 응축한 마나구를 만들어냈다.

물론 저 마나구와 우리가 함께 레비아탄에게 삼켜진다면 우리 또한 피해를 입겠지만, 레비아탄의 심연 속 이빨에 짓씹히는 것보다는 나을 터.

“푸우우우우우!”

우부가 전속력을 다해 꼬리를 휘둘렀고 레비아탄이 우리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정시언이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악! 먹힌다!”

촤아아아악!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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