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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96화 (97/201)

제96화

우리의 바로 아래로 레비아탄이 스쳐지나갔다.

“우와아!”

정시언이 비명 섞인 한숨을 뱉어냈다.

간발의 차로 우부가 레비아탄의 입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다.

“푸푸푸푸, 우부 살았다! 우부 살았어!”

우부가 신이 나 물속을 크게 헤엄쳤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었다.

아직 우리의 밑으로 레비아탄이 지나가고 있었고 뭍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앞쪽의 지면이 언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아 우리가 잡은 방향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때 뒤쪽에서 예상치 못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쿠구구구구——!

“으, 으악! 또 뭐야?”

정시언이 울상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레비아탄이 삼킨 마나구가 폭발을 일으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를 삼키려던 레비아탄과 몸을 돌린 크라켄이 충돌해 있었다.

본의 아니게 레비아탄은 크라켄을 물었고 크라켄은 아마도 바닥 쪽에서 일어난 먹이 쟁탈전에 참여를 하려고 몸을 돌리다가 서로 부딪힌 것 같았다.

‘차라리 잘 됐어.’

만약 레비아탄이 크라켄과 충돌하지 않았다면 놈은 다시 몸을 돌려 맛 좋은 간식거리인 물 슬라임을 삼키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레비아탄과 크라켄이 부딪힌 이상, 두 놈은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할 터.

끼이이이이이!

우우우우———!

두 신급 몬스터의 기괴한 괴성이 바닷속에 울려퍼졌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곳에 계속 있다가는 놈들의 싸움에 휘말릴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내가 회귀를 했고 특성의 옵션이 높다고 해도 놈들을 상대하기는 힘들었다.

특히 이곳은 물 속.

내 행동에 제약이 있는 반면 저놈들은 이곳의 신이었다.

저들의 영역인 물속에서 두 마리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까지 지키면서 살아남기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멍하게 뒤를 보고 있는 주선오와 정시언에게 말했다.

“튀자.”

내 말에 둘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는 우부의 등을 두드렸다.

“우부, 출발!”

“푸푸푸! 우부, 튄다!”

우부가 내 말을 따라하며 산호초가 가득한 언덕을 향해 출발했다.

뒤에서 두 몬스터의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물속임에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괴성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저런 건 처음 보네요.”

주선오가 꽤 충격적인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기에 휘말리면 아무리 나라도 너희 못 구해줘.”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정시언이 긴장하며 뒤를 흘끔거렸다.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내게까지 들려왔다.

“우왁!”

정시언이 흠칫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뒤를 돌아보니 크라켄의 두꺼운 다리들이 레비아탄의 몸을 휘감고 있었고, 레비아탄은 크라켄의 몸통을 물어뜯고 있었다.

두 몬스터의 싸움 때문에 밑에서 상어들의 사체 쟁탈전을 벌이던 몬스터들은 모두 흩어졌을 것이다.

‘놈들도 신급 둘이 부딪히면 어떤 아비규환이 펼쳐지는지 잘 알 테니.’

그때 갑자기 폭발음이 들려왔다.

콰앙!

쿠구구구구——!

레비아탄의 등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저게 지금 터져?’

레비아탄이 삼켰던 마나구가 이제서야 터진 것이었다.

몸 속 공간이 너무 넓어 내벽에 부딪히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 것 같았다.

그 크기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래도 온 마나를 끌어모아 압축한 마나구가 성체 레비아탄의 등을 뚫을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역시 악마의 고양이.’

회귀 전이었다면 꿈도 못 꿨을 일이었다.

그 덕에 기분은 좋았지만, 곧 폭발이 일으킨 거대한 파도가 이곳까지 밀려들 터였다.

“…저거, 누나가…?”

주선오가 넋이 나간 얼굴로 물어왔다.

내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주선오가 실소를 터트렸다.

정시언의 얼굴은 더욱 가관이었다.

정말 머리를 조금만 툭 건들면 튀어나올 것 같은 눈으로 나와 폭발을 번갈아보고 있었다.

“곧 파도 밀려올 거야. 꽉 잡아.”

내 말에 둘은 우부의 등지느러미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곧 거센 물살이 우리를 밀어냈다. 다행히도 뒤쪽에서 몰아친 파도였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푸푸! 우부, 빠르다!”

덕분에 우리는 금세 산호초가 뒤덮인 언덕에 도착했다.

이쯤까지 왔으면 두 몬스터가 일으킬 파장이 크게 와 닿지는 않을 거리였다.

우부도 그걸 아는지 속도를 조금 늦추고는 이상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언덕을 올라가자 드디어 탐지에 수면이 잡혔다.

“우부, 올라가자.”

내 말에 우부가 방향을 틀어 수면 쪽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우부가 수면 위로 헤엄쳐 오르자 주변에 있던 생물체들의 시선을 한 눈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수면으로 올라가는 게 나았다.

물 밖이라도 탐지로 무엇이 접근하는 지 알 수 있었고 밖으로 끄집어내서 싸우는 것이 우리에게는 훨씬 유리했다.

우부가 수면을 향해 올라가는 사이 근처에서 또 우부를 노리는 물고기와 상어 등 온갖 생물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들 우부 노려!”

우부가 힐끔힐끔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하지만 레비아탄이나 크라켄만큼 크게 위협적인 놈들은 없었다.

“괜찮아. 뛰어.”

내가 우부를 토닥이며 말했다.

우부의 뒤로 물 슬라임을 쫓는 온갖 물고기들이 기다란 길을 만들어냈다.

우부는 온 힘을 다해 헤엄을 쳤고 그에 수면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우부, 뛴다아아!”

나는 물을 벗어나며 가해질 충격에 우부의 지느러미를 꽉 붙잡았다.

그리고 곧 우부가 수면 위로 뛰어올랐다.

촤아아아아——!

우부의 몸과 함께 거대한 물줄기가 수면 위로 치솟았다.

간만에 마시는 맑은 공기의 기쁨을 누릴 새는 없었다.

우부를 따라 상어 한 마리가 수면 위로 솟구쳐서였다.

상어의 이빨은 정확하게 우부의 몸통을 향했다.

상어의 머리 위로 마나창을 만들려는 순간, 정시언이 먼저 움직였다.

정시언은 우부의 지느러미를 놓고 상어 쪽으로 미끄러졌다.

그리고는 어느새 왼손에 든 클로로 상어의 뾰족한 코를 내리찍었다.

푹!

손등에서부터 이어진 손가락 두 배 길이의 칼날 세 개가 상어의 코에 박혔다.

상어는 일순 움직임을 멈추었다.

정시언은 그대로 상어의 등으로 올라타 다른 손의 다섯 손가락에 낀 뾰족한 핑거 클로를 상어의 머리에 찔러 넣었다.

빠르고 간결한 동작이었다.

정시언의 전용 특성인 매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클로가 순식간에 상어의 숨통을 끊었다.

그 사이 허공에서 정점을 찍은 우부가 다시 바다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우부에게 외쳤다.

“우부, 작게!”

“푸!”

우부의 돌고래 형체가 순식간에 수축되었다.

그 바람에 우부의 지느러미를 잡고 있던 우리는 허공에 붕 뜨게 되었다.

나는 당황한 주선오의 팔을 붙잡은 후 발 아래에 마나 방패를 만들어냈다.

“마나 방패!”

촤르르륵!

2미터 정도 아래쪽에 레벨 4의 마나 방패가 생성되었다.

레벨이 오르며 크기 또한 3미터에 육박했기에 나와 주선오 모두 그 위에 내려설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내려서자 마나 방패가 덜컹였다.

그리고 허공에서 작은 덩어리 하나가 마나 방패 위로 가볍게 착지했다.

투명한 고양이의 형체를 취한 우부였다.

우부가 통통 튀어 내게 오더니 다리에 얼굴을 부볐다.

“우부 물 밖에 나왔어!”

곧 상어의 위에서 뛰어오른 정시언 역시 그 위로 올라섰다.

“흐으아아아….”

정시언이 마나 방패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와…. 올라오니까 온몸에 진이 다 빠지네요.”

나는 마나 방패를 수면 위로 천천히 내리며 말했다.

“아직 끝난 건 아냐.”

잠시 주변을 살피던 주선오가 옆을 가리켰다.

“저쪽에 모래사장이 있습니다.”

크게 멀지 않은 곳이었다.

“저기로 가면 될 것 같네.”

거리는 대략 500미터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나 혼자였다면 마나 방패를 이용한 도약을 통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거리였다.

사실 우부만 없다면 우리에게 달려들 물고기들은 몇 없을 것 같았다.

‘우부를 먼저 데려다놓고 올까?’

그러면 주선오와 정시언도 한결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선오야.”

내 부름에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던 주선오가 나를 바라보았다.

“잠깐 여기서 시언이랑 기다릴래? 우부 먼저 저쪽에 놓고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정시언이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주선오는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반면 정시언이 의아한 듯 물어왔다.

“어떻게 가시게요?”

“방법이 있지.”

주선오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곧바로 마나 방패 위에서 다시 물속으로 내려갔다.

어리둥절하게 주선오를 살피던 정시언이 클로를 벗어 다시 허리에 매달고는 주선오를 따라 마나 방패 위에서 내려섰다.

“저쪽으로 오고 있으면 다시 올게.”

“네.”

주선오의 대답을 들은 나는 바로 우부를 주워들었다.

“푸?”

그리고는 우부를 옆구리에 낀 후, 마나 방패를 박차고 앞으로 도약했다.

훅!

잔뜩 젖은 옷 때문에 몸이 무거워 평소만큼 도약이 되지는 않았다.

“푸우으어! 우부브븟, 난드아으아!”

우부의 젤리가 풍압에 파르르 흔들렸다.

그 출렁이는 느낌에 피식 웃은 나는 이번에는 옆쪽에 마나 방패를 만들어냈다.

몸을 돌려 그것을 밟고 도약하기를 예닐곱 번 반복하자 나는 우부와 함께 모래사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촤아아악!

모래 위를 미끄러지며 땅 위에 안착하자 우부가 신이 난 듯 웃어댔다.

“푸푸푸푸! 재밌어! 우부, 재밌어!”

나는 몸을 일으킨 후 옆구리에 끼고 있던 우부를 모래사장에 내려두었다.

젖은 옷에 모래가 잔뜩 들러붙어 굉장히 찝찝해졌다.

나는 걸리적거리는 외투를 벗어두고 심연의 불꽃과 모래의 심장을 꺼냈다.

“레부, 모부.”

레부와 모부가 힘없이 튀어나왔다.

“쿄오….”

“휴….”

장시간 물속에 있던 것이 두 슬라임에게도 영향을 끼친 모양이었다.

두 슬라임이 나타나자 통통 튀듯이 해변을 뛰어다니던 우부가 멈칫했다.

“푸우?”

두 슬라임을 보며 고개를 갸웃한 우부가 둘에게 뛰어왔다.

“이게 뭐야? 누구야?”

우부가 신기한 듯 레부와 모부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쿄, 쿄? 저, 저리 가십시오!”

레부의 불꽃이 확 피어올랐다. 물 슬라임에게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불꽃을 분 우부의 눈이 순간 확 커졌다.

“푸! 불꽃 슬라임?”

그러더니 이번에는 모부를 바라보았다.

“푸, 모래 슬라임?”

모부는 레부처럼 격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당히 경계의 눈빛으로 우부를 보는 것을 보아 영 불편한 것 같았다.

우부는 곧 신이 난 듯 팔짝팔짝 뛰며 웃었다.

“푸푸푸! 우부, 다른 슬라임 처음 봐! 우부, 신난다! 우부랑 놀자아!”

하지만 레부와 모부는 우부의 신남에 오히려 더 겁을 먹었다.

“쿄, 저, 저리 가십시오!”

“흇!”

두 슬라임의 반응에 우부는 천진난만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부가 무서운가아?”

레부의 불꽃이 파르르 떨렸다.

“레부, 모부. 우부 좀 보고 있어.”

“쿄오?”

“휴? 보고 있으라고요?”

레부와 모부가 놀라며 되물었다. 그리고는 후다닥 내게 달려왔다.

“주, 주인! 전 못 합니다!”

“저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푸?”

둘을 따라 우부가 도도도 달려왔다.

그러자 레부와 모부가 발밑의 우부를 보며 움찔거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두 슬라임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주, 주인…!”

레부가 구슬픈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하지만 나는 레부의 말에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먼 바다에서 무언가 치솟고 있었다.

검정색의 길쭉한 다리.

‘설마….’

“푸, 크라켄 또 나왔어!”

우부가 내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튀어나온 건 크라켄의 다리뿐이었다.

아마 레비아탄과의 싸움이 끝나고 화풀이 상대를 찾으려는 것 같았다.

주선오와 정시언이 있는 곳이 놈과 꽤 거리가 있긴 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다들 여기에 있어.”

나는 서둘러 마나 방패를 밟으며 도약해 둘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 사이 위로 솟아난 크라켄의 다리가 바다로 내리쳐졌다.

촤악!

멀리서도 생생히 들릴 정도의 파열음이 들려왔다.

곧이어 다시 두 개의 다리가 솟구쳐 올랐고 바다를 내리치기를 반복했다.

그곳에서 시작된 거센 파동이 내가 있는 곳까지 밀려들었다.

나는 탐지로 주선오와 정시언의 위치를 찾았다.

다행히 주선오가 정시언을 꼭 붙잡고 있어서 둘이 흩어져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크라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주선오와 정시언이 있는 곳에 마나 방패를 만들며 내려섰다.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주선오의 얼굴은 그렇지 못했다.

크라켄이 일으킨 파도 때문에 몸을 가누기가 힘든데다가 정시언까지 붙잡고 있어야 해서 상당히 지쳐 보였다.

“저거, 여기로 오고 있는 거 맞죠?”

정시언이 조금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다시 앞쪽의 크라켄을 살폈다.

아니라고는 대답하지 못했다.

확실히 놈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내가 둘을 동시에 옮기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한 명씩 데리고 옮기게 되면 남은 사람은 더 위험해질 터.

그럴 바엔 차라리 크라켄을 상대하는 편이 더 나았다.

“선오야. 시언이 데리고 가. 슬라임들 거기에 있으니까.”

내 말의 뜻을 눈치챘는지 주선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주선오의 말을 끊었다.

“먼저 가서 옷 말리고 있어. 금방 갈 테니까.”

“시언이 두고 다시 오겠습니다.”

주선오가 내 대답을 듣지 않고 정시언과 함께 해변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둘의 이동을 확인한 나는 다시 마나 방패를 밟고 뛰어 크라켄에게로 다가갔다.

어차피 크라켄은 해변까지 올라가지는 못한다.

‘저 둘이 해변에 도착할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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