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00화 (101/201)

제100화

심지원의 연설은 그 후로 한참 지속되었다.

어쨌든 연설의 결론은 이거였다.

외계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우리와 함께 게이트를 닫자는 것.

자신들의 교리를 퍼트림과 동시에 무리를 모집하기 위한 연설이었다.

‘이런 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연설이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흩어졌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동참한 땅의 지배자 무리의 단원들일 터.

나는 흩어지는 사람들을 따라 일단 근처의 벤치에 가 앉았다.

잠시 핸드폰을 꺼내들고 시간을 죽이고 있으니 금세 광장이 조용해졌다.

그때 누군가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검정색 여성용 로퍼를 신은 발이 보였다.

“잠깐 옆에 앉아도 될까요?”

심지원이었다.

내가 고개를 들자 심지원이 미소를 지으며 내게 고개를 꾸벅였다.

“윤도아 씨가 제 연설을 들어주셔서 정말 영광이네요.”

모자를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눈만 내놓은 상태였는데 용케 나를 알아보았다.

‘눈썰미가 꽤 좋네.’

나는 살짝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지나가던 길이었을 뿐이에요.”

심지원이 내게 명함을 내밀었다.

[땅의 지배자 무리 단장]

[심지원]

나는 명함을 챙겨 넣고는 심지원에게 옆의 의자를 가리켰다.

“상당히 재미난 얘기를 하시던데요.”

심지원은 다시 방긋 웃어 보이고는 내 옆에 앉았다.

“재미있다고 느끼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듣다보니 좀 궁금한 게 생기던데.”

확실히 심지원의 연설은 꽤 재미있는 가설이었다.

전세계에 동시에 도착한 메시지와 게이트의 출현.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상들이 일어났는데 외계인이 있을 리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상했다.

내가 그녀의 주장에 관심을 보이자 심지원은 그것이 기쁜 듯 확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나는 턱을 괸 채 옆의 심지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쪽 말대로라면 사실 외계인들이 굳이 이런 시험 없이 그냥 침략하는 게 낫지 않아요? 왜 굳이 귀찮게 이런 식으로 게이트를 열고 우리한테 힘을 주는 거죠?”

내 질문에 심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질문이에요.”

그러더니 다시 연설을 할때와같이 열정적인 얼굴로 설명을 시작했다.

“자, 지금 보시면 저와 윤도아 씨의 생각은 달라요. 하지만 저희는 같은 인간이죠. 인간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을 봐도 그렇죠. 같은 종의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각자의 생각은 다르다는 말이에요. 그렇다면? 외계인들이라고 모두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물론 아니겠죠.”

내 말에 심지원이 검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네. 바로 그거예요. 당연히 외계인들 역시 생각이 갈리겠죠. 침략을 찬성하는 외계인끼리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나뉜 거예요.”

“아하…?”

나는 조금 눈살을 찌푸렸지만 심지원은 계속 말했다.

“그냥 이 상태에서 침략을 진행해야한다는 강경파와 그래도 기회는 주어야 한다는 온건파. 두 집단의 충돌 끝에 이런 상황으로 타협을 본 거죠.”

나는 다시 질문했다.

“그럼 그냥 게이트로 적응만 하게 해도 됐던 것 아닌가요? 굳이 우리에게 가호를 줘서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게 만드는 이유는요?”

“그것도 역시 외계인들의 생각 차이에서 발생한 일이에요. 침략을 정당하지 않다고 보는 외계인들의 소행인거죠. 즉, 우리가 외계인들의 침략에 지지 않게 우리들을 도와주는 우리의 조력자들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들이 침략을 위해 연 게이트에 심은 바이러스 같은 거죠.”

나름 빈틈이 없는 논리였다.

나는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왜 하필 동물신의 가호죠?”

“윤도아 씨도 잘 알다시피 게이트 안의 괴물들에게는 우리의 무기가 통하지 않아요.”

그건 대전의 게이트 브레이크에서 확실히 증명되었다. 푸른 상급 놀에게는 총알이 무용지물이었다.

“그들에게는 게이트 내에서 얻은 무기만이 통하죠. 즉, 인간의 힘만으로는 어떻게 해볼 상대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지구에 존재하는 다른 생명체들의 힘을 빌리는 거죠. 동물들의 힘을 가진 뛰어난 인간들. 그 인간들이 우리를 침략하려는 외계인들을 막을 수 있을 거라 믿고요.”

나는 그 이외에도 몇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때마다 심지원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심지원의 주장들은 지금의 상황과 외계인을 굉장히 잘 끼워 맞춘 이야기들이었다.

꽤나 그럴듯했고 모든 것이 잘 들어맞는 이야기.

나조차도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잠시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다시 슬쩍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외계인 숭배 단체도 있지 않았던가요? 그쪽이랑 아무래도 많이 부딪힐 것 같은데.”

당연히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게이트를 닫아야 한다는 목적은 같아도 외계인에 대한 태도가 다르니까.

역시 심지원의 표정이 조금 불만스럽게 변했다.

“네. 항상 부딪히고 있지요. 그쪽도 단체를 만들었다는 거 알고 계시죠?”

“그런가요?”

내가 기관에 등록된 모든 무리를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사실 외계인 침공 단체가 무리를 만들었다는 것도 조금 전 이곳에 와서야 안 사실이었다.

“네. 그래서 항상 저희가 게이트를 가는 것을 반대하고 시비를 걸어오더군요. 저희는 그쪽의 주장을 존중해주는 입장이지만 그렇게 나오니 힘드네요.”

심지원이 그 생각을 하니 피곤하다는 듯 머리를 문질렀다.

확실히 자신들이 숭배하는 대상과 맞선다는 주장을 한다면 게이트를 돌지 못하게 막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건 내 목적과 반대되는 일이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실력이 있는 각성자들을 많이 배출하는 것이 목적인데 그걸 막아버린다는 건 내 계획을 방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살짝 한숨을 내쉰 심지원이 내게 물어왔다.

“윤도아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희의 생각에 대해서요.”

아직 나도 이런 현상들의 원인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에는 동조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글쎄요.”

하지만 심지원은 실망한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살짝 웃어 보일 뿐.

“제가 심지원 씨 단체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목적은 같잖아요?”

심지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것 말씀이신가요?”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그녀 역시 동의했다.

“네. 맞아요. 저희는 게이트를 클리어해서 그들과 맞설 힘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요. 저도 게이트를 닫기 위해 노력하는 각성자들은 좋아하거든요.”

나는 씩 웃으며 심지원을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숭배 단체에서 심지원 씨 단체가 게이트를 닫는 것을 방해한다면 말씀하세요. 도와드릴게요.”

심지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외계인 침략 단체는 모든 각성자를 외계인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다른 무리들과 우호적이었다.

외계인 숭배 단체도 지금은 큰 문제는 없었지만 내년쯤 박성현이 각성을 하며 크게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다.

외계인과 맞설 사람들이 게이트를 닫게 둘 수 없다며.

‘그러니 난 당연히 이쪽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감사합니다.”

심지원이 조금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들의 주장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내가 본인들에게 우호적인 마음을 내비친 것에 놀란 것 같았다.

나는 심지원과 연락처를 교환했다.

이로써 만약 나중에 박성현이 심지원의 무리를 무너트리려 할 때가 온다면.

분명 심지원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그러면 심지원이 박성현의 심복이 되는 일은 없지.’

물론 사전에 그럴 일을 차단해버릴 생각이긴 했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두기는 해야 했다.

나는 심지원에게 밝게 웃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봐야겠네요. 생각보다 얘기가 길어져서 조금 늦었네요.”

“아, 네.”

심지원이 나를 따라 일어섰다.

“얘기 잘 들었어요. 그럼 다음에 또 봐요.”

내가 악수를 청하자 심지원은 내 손을 붙잡고 공손히 인사했다.

“네. 고맙습니다. 다음에 봬요.”

나는 그렇게 심지원과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다시 본가로 향했다.

역에서 가까운 거리의 본가도 여전했다.

지난번 사이비 사건 이후 현재의 집으로 옮긴 몇몇의 짐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오랜만에 나는 내 방의 침대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익숙한, 오래되어 삐걱이는 침대의 느낌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새삼스럽게 지금 지내는 곳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느껴졌다.

나는 침대에 누워 멍하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회귀 전에는 뭘 했더라?’

너무 오랜만의 휴일이라 뭘 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각성 전에는 이런 시간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

잠시 눈을 깜빡이던 나는 몸을 일으켰다.

‘예전에 자주 갔던 데나 좀 가볼까.’

침대를 정돈해둔 후 본가를 나선 나는 일단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일주일에 두어 번은 들러 커피를 사 마셨던 곳이었다.

각성한 이후 바쁘게 게이트를 닫느라 한동안 가지 못했던 곳인데 어느 날 가 보니 사라졌던 곳.

지금은 회귀를 한 덕에 카페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따듯한 커피를 한 잔 사들고 카페를 나섰다.

굉장히 오랜만에 맡는 쌉싸름한 커피의 향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향은 내게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데 충분했다.

‘커피를 들고 산책을 했었는데.’

나는 옛 기억을 따라 거리를 걸었다.

머리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내 발은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평범한 풍경들이 내 주변을 스쳐지나갔다.

이리저리 뻗은 길과 그 옆으로 늘어선 가로수들. 차도를 달리는 차들과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그런 일상적인 풍경을 지나 도착한 곳은 작은 동네 공원이었다.

나는 공원의 벤치에 가 앉아 커피를 홀짝였다.

‘어머니가 좋아하던 공원.’

어머니는 이 벤치에 앉아 멍하게 공원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셨다.

하지만 이 공원도 이 모습을 계속 유지하지는 못했다.

‘게이트가 나타나면서 황폐해졌지.’

게다가 이곳에서 박성현의 무리와 전투를 벌이기도 했었다.

덕분에 공원은 복구하기 힘들 정도로 황폐해졌고 그 이후로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다.

잠시 공원을 둘러보던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걸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근처 강 위의 다리였다.

아래쪽에는 잔잔히 흐르는 물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강변을 거닐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게이트와 각성자들의 여파로 이 다리 또한 무너졌었다.

무너진 다리는 복구되지 않았고 강물은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휘감으며 흘렀다.

‘지금은 멀쩡하네.’

당연한 것이었지만 내게는 새삼스러웠다.

그 후로도 마찬가지였다.

각성 전 자주 찾던 곳들은 각성 후 모두 폐허가 되거나 사라져버렸고 지금의 멀쩡한 모습들이 오히려 내게는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는 해가 저물 때쯤, 회귀 후 처음 입장한 게이트가 있던 공원에 도착했다.

저수지 위로 노을이 떨어져내렸다.

노랗게 물든 물 위로 오리가 몇 마리 떠다니고 있었다.

근처의 벤치에 앉은 나는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았다.

문득 씁쓸한 기분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구나.’

아무런 걱정 없이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났던 그런 평범한 일상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가호를 받았던 그 순간부터 그것은 정해져 있던 것일지도 몰랐다.

게이트를 닫으며 항상 죽음을 옆에 두는 삶.

내게는 이제 이것이 평범한 일상이었다.

“…하하.”

코끝이 시큰해짐과 함께 씁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만약 내가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이 세상에서 게이트가 다시 자취를 감춘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게 불가능할 것이다.

* * *

“아, 누나. 잘 쉬다 왔어?”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윤도빈이 밝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쿄, 주인 어서 오십시오.”

“휴, 다녀오셨나요?”

레부와 모부가 윤도빈의 뒤에서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 사이를 비집고 우부가 도도도 달려왔다.

“푸! 주인 왔다!”

우부가 내 품으로 폴짝 뛰어올랐다.

나는 웃으며 우부를 품에 안고는 대답했다.

“응. 다녀왔어.”

내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자 윤도빈이 물었다.

“뭐 했어?”

“그냥 본가 쪽 동네 좀 돌아봤어.”

“본가?”

“응. 옛날 생각이 좀 나서.”

내 말에 윤도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우부를 소파 위에 내려놓고는 윤도빈에게 말했다.

“덕분에 잘 쉬었어.”

“그래. 사람이 좀 쉬면서 일해야지. 앞으로도 좀 쉴 땐 쉬면서 해.”

“오늘 쉬었으니까 내일 두 배로 일 해야지.”

내 말에 윤도빈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 말 제대로 들은 거지?”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제는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갈 때였다.

* * *

그렇게 일상은 반복되었다.

빠르게 시간은 흘렀고.

12월 1일.

다시 한 번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시작의 날, 시험을 준비하라며 전 세계를 혼란으로 몰고 갔던 메시지 이후로 처음 도착한 메시지였다.

[2022년 12월 31일.]

[첫번째 간이 시험이 시작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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