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또 한 번.
전 세계에 혼란이 찾아왔다.
-뭐야? 간이 시험이라고?
-갑자기 시험? 저번에 메시지에서 말했던 그 시험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간이라잖아. 정식 시험이 아님, 이건.
-ㅇㅇ. 게다가 첫 번째라면 두 번째, 세 번째도 있는 거….
-맞음. 근데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님? 시작의 날 지난 지 1년도 안 됐는데.
-메시지 처음 왔을 때는 뭐 예고하고 왔냐?
-오히려 딱 당해서 말 안하고 한 달 준비기간 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듯;;
[세 번째 메시지, 12월 31일 간이 시험 예고]
[간이 시험은 게이트?…메시지 속 ‘간이 시험’에 대한 의견 분분]
[지금까지 나타난 게이트와 같은 방식일 것인가?]
커뮤니티와 온갖 인터넷 사이트에는 세 번째 메시지가 예고한 간이 시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거리라고 다를 바 없었다.
한 명 이상이 모인 장소에서는 너나할 것 없이 모두 간이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지금껏 나타난 게이트들이랑 다를 바 없는 거 아냐?”
“모르지. 우리가 뭐 게이트라고 가봤냐? 그냥 랭커나 각성자들이 그랬다, 하니까 그렇게 알고 있는 것뿐이고.”
“방식이야 비슷하겠지. 어쨌든 메시지 보낸 놈들이야 다 같은 놈들일 테니까.”
“일단 31일에 시작된다고 했으니까 간이 시험 게이트가 그때 나타나는 거 아닐까 추측은 하던데.”
“어디서 나타나는 거래요?”
“그런 예고는 없었으니까 모르죠.”
“지금까지는 뭐 게이트가 예고라도 하고 나타났습니까?”
대중매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상파 방송에서는 각성 기관의 연구소장 박효진과 함께 메시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험이 게이트의 형태라면 천만다행이지만, 만약 그것이 아닐 경우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다르다고요?]
[어쩌면 시험 자체가 게이트 브레이크 형식을 갖고 있을지도 몰라요.]
[…게이트 브레이크요?]
[물론 최악의 상황일 경우입니다.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해요. 어쩌면 게이트 브레이크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각국의 정부에서도 급하게 회의를 소집해 간이 시험에 대한 의논을 진행했다.
“하지만 대체 어떤 대비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시험의 내용도 모르고 심지어 위치조차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그렇다고 손가락이나 빨면서 시험 날만 기다리실 겁니까?”
“그럼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게 없는데요!”
“…….”
“…….”
“아무리 우리끼리 이런 이야기를 나눠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맞아요. 결국 시험을 직접 치르는 건 우리가 아니에요.”
“선택받은 각성자들이죠.”
“결국은 그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들을 최대한 지원해주는 것뿐입니다.”
* * *
전 세계가 간이 시험 때문에 떠들썩했지만 정작 시험의 중심이 되는 각성자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일반 사람들과 다르게 각성자들은 직접 그 시험을 치러야 하는 장본인들이었다.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너무 일러.’
시작의 날로부터 채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데 벌써 시험이라니.
‘아직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세간의 시선은 모두 각성자들에게 쏠려 있었다.
각성자들이 간이 시험을 돌파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각성한지 하루도 채 되지 않은 각성자에게조차 사람들은 믿음을 보였다.
‘부담스럽다.’
대부분의 각성자들의 생각이었다.
간이 시험이 어떤 식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간이라고 해도 시험은 시험.
지금까지 겪어왔던 게이트보다 수준이 높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황이 오자 각성자들은 하나 둘 책임을 미루기 시작했다.
‘…꼭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클리어하지 않을까?’
세계 각성 협회에 등록된 각성자의 수는 대략 1억 명.
게다가 세계 랭킹에 오른 각성자들도 있지 않은가.
아직 A급의 게이트조차 혼자 돌지 못하는 각성자가 많은 반면, 세계 랭킹 10위권의 랭커들은 S급을 혼자서 돌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랭커들이라면 충분히 그 시험을 통과할 거야.’
각성자들은 랭커들이 간이 시험을 클리어해줄 거라고 굳건히 믿었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세계 랭킹 1위인 윤도아가 있었다.
처음부터 S급의 게이트를 홀로 클리어해 냈고, 게이트 브레이크를 막아낸 전적도 있었다.
‘윤도아라면 간이 시험도 간단하게 해낼 거야.’
사람들이 각성자들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각성자들 역시 윤도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각성 기관은 국내 상위 랭커 10명과 각 무리의 단장들을 기관으로 불러 모았다.
기관의 연락을 받고 기관 회의실에 도착한 국내 6위 랭커 신교진은 그 안의 분위기에 멈칫했다.
‘아니, 뭐 이리 우중충해?’
회의실에는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끼리끼리 모여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다들 침울한 표정이었다.
신교진은 앞쪽에 앉아 있는 기관 이사 김지석과 랭킹 2위이자 개의 이빨 무리의 단장인 주선오에게로 다가갔다.
“뭐야, 여기. 분위기 왜 이래?”
신교진의 질문에 김지석이 쓰게 웃었다.
“메시지 때문에 그렇지.”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요? 간이 시험 내용도 모르고. 그런데 벌써부터 이런다고요?”
신교진의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조금 컸던 모양이었다.
뒤쪽에서 9위 랭커 정시언과 이야기를 나누던 세 명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중 랭킹 10위의 각성자 김지형이 신교진에게 말했다.
“뭔지 모른다는 게 더 불안하잖아요.”
신교진이 주선오의 옆에 앉으며 퉁명스레 대답했다.
“뭐 게이트는 알고 들어갑니까?”
그 대답에 김지형이 눈살을 찌푸렸다.
“신교진 씨야 운이 좋아서 무슨 게이트든 쉽게 깬다고 하더라도 저희는 아닙니다만.”
“그건 그래요. 오빠는 그럴 말 할 자격 좀 없는 것 같은데.”
정시언이 김지형의 말을 거들었다.
주선오 역시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과 비슷한 눈빛으로 신교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교진이 억울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내가 뭐 그렇다고 맨날 앉아서 꿀 빨고 있기라도 해? 왜 다 그렇게 쳐다보는데?”
안에 있던 각성자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김지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쨌든 간이 시험이 뭔지 모른다고 그렇게 맘 놓고 있을 일이 아닌 것 같아서 한 말입니다. 한 달은 짧은 시간이에요. 저희는 그 안에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고요. 다른 사람들이 우리한테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까?”
신교진이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기대고는 여전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기대하는 거야 뭐 기대하는 건데. 지금 어쨌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 게이트 도는 것 밖에 더 있어요? 지금 우리한테 주어진 시험 범위는 주변에 널린 게이트라고요. 그럼 그냥 범위 안에서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듣고 있던 정시언이 조금 놀랍다는 표정으로 신교진을 바라보았다.
“와. 오빠 생각보다 똑똑한 것 같은데요. 비유 찰떡이네.”
“뭐, 임마?”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탑 쌓는 개미 무리의 단장 이선재가 물어왔다.
“그 기대가 부담스럽지는 않으세요?”
“부담스러울 거 뭐 있습니까. 그냥 하면 하고 못하면 못하는 거지. 우리가 뭐 그 사람들 기대에 부응하려고 게이트 닫는 건 아니잖아요.”
맞는 말이었지만 이선재의 표정은 여전히 침울했다.
“하지만 만약의 경우라도 우리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어쩌죠? 시험이 정말 게이트의 형식이고 만약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못해서 브레이크라도 일어난다면….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거야 뭐….”
신교진이 말끝을 흐렸다.
사실 10위 랭커 김지형의 말처럼 신교진은 자신의 가호를 믿고 게이트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윤도아가 있는데 브레이크가 일어날 리가 있겠어?’
라는 것이 신교진의 생각이었다.
윤도아라면 시험 역시 가볍게 통과할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브레이크가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 안하는데요, 전.”
신교진의 말에 이선재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왜죠?”
“다들 생각하고 있으면서 뭘 모른 척이에요. 세계 랭킹 1위….”
그때 주선오가 신교진의 다리를 툭 찼다.
“아! 아퍼, 임마!”
신교진이 확 인상을 찡그리며 주선오를 돌아보았다.
주선오는 그런 신교진에게 살짝 고개를 저어보이고는 이선재에게 말했다.
“뭐가 어찌 됐든 이미 예고된 시험입니다. 그리고 1년 동안 헛시간을 보낸 게 아니잖습니까, 우린.”
주선오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회의실에 흐르는 침묵을 깨고 김지석이 말을 꺼냈다.
“다들 그 메시지 때문에 예민해진 것 같은데 일단 조금 가라앉히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희가 여러분을 모신 것도 차분히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는 거니까요.”
그때 회의실의 문이 열리더니 기관장 안세인과 권재경이 나타났다.
앉아있던 각성자들이 몸을 일으켜 둘에게 인사를 했다.
“아, 괜찮으니까 다들 앉아요. 다 모였나요?”
안세인이 씩씩한 목소리로 회의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아직 윤도아 씨와 범의 송곳니 단장 윤도빈 씨가 오지 않았습니다. 7위 랭커 차수린 씨는 일 때문에 오지 못한다고 연락이 왔고요.”
김지석이 대답했다.
안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실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뭐, 오겠지. 아직 시간 전이니까. 일단은 기다리죠. 그나저나 다들 표정이 별로네. 왜들 그러고 있어요. 당장 우리가 죽을 것도 아닌데.”
신교진이 입을 비죽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 상황이 부담스러운 분들이 꽤 있는 모양이던데요.”
몇몇 각성자들이 살짝 시선을 떨궜다.
그들의 반응에 안세인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럴 수 있지요. 아무래도 시험에 참가할 수 있는 건 각성자들 뿐일 테니까 당연히 부담스러울 거예요.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하지 않겠어요?”
안세인의 타이르는 듯한 말에 김지형과 이선재가 고개를 숙였다.
그때 회의실 안으로 윤도아와 윤도빈, 그리고 한 남자가 들어섰다.
“아, 다들 왔네요.”
안세인이 셋에게 밝게 인사를 건넸다.
신교진은 처음 보는 남자였다.
“누구야?”
신교진이 작게 주선오에게 물었다.
하지만 주선오는 대답 대신 험악해진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사람은 왜 온 겁니까?”
주선오의 시선은 마지막으로 들어온 남자에게 박혀 있었다.
“저도 이제 정식으로 등록한 각성자인데요. 문제라도?”
남자가 웃으며 물었다.
‘정식 등록?’
그럼 지금까지는 정식 등록자가 아니었다는 건가?
그때 신교진의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설마 각성자 죽인 미등록?’
주선오의 저런 반응을 보니 왠지 맞는 것 같았다.
주선오가 험악해진 얼굴로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안세인이 그를 제지했다.
“그만, 그만. 내가 불렀어요. 어쨌든 이시결 씨도 랭커급인 건 사실이니까.”
이름을 들은 신교진은 확신했다.
윤도아의 감시 하에 기관 지하에서 나왔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안세인의 말에 주선오가 못마땅한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시결은 가볍게 회의실 안에 모인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은 신교진에게도 머물렀다.
‘뭐야? 기분 나쁘게.’
신교진은 뚱한 표정으로 이시결의 시선을 맞받았다.
이시결은 피식 코웃음을 치더니 시선을 돌렸다.
울컥한 신교진이 뭐라 한마디 던지려는데 이시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조금 실망스럽군요. 한국 랭커와 무리 단장이라고 모인 사람들인데 제 상대가 될 만한 각성자는 몇 없는 것 같아서.”
몇몇을 제외한 모든 각성자가 이시결의 광역도발에 넘어갔다.
“뭐라고요?”
“갑자기 나타나서 왜 시비입니까?”
금세 회의실 내가 어수선해졌다.
“어이가 없네. 기분 나쁘게 사람 훑어보고는 한다는 소리가 그런 겁니까?”
“맞아요! 그냥 혼자 속으로 생각하던가요. 듣는 사람 기분 나쁘게.”
윤도아가 이시결을 돌아보며 말했다.
“괜한 소란 일으키지 마.”
“소란이라뇨. 전 그냥 있는 그대로의 감상을 말했을 뿐입니다.”
이시결이 뻔뻔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이시결을 보던 권재경이 딱딱한 얼굴로 그에게 권했다.
“자리에 앉으시죠.”
잠시 권재경을 살펴본 이시결은 피식 웃고는 앞쪽 끝의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윤도아와 윤도빈은 이시결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럼 문기훈 씨도 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시결의 행동을 지켜보던 권재경이 안세인에게 물었다.
문기훈이라면 미등록 각성자 무리의 부단장이었지만 지금은 기관 밑에서 자취를 감춘 미등록들을 찾고 있는 각성자였다.
“안 그래도 의사를 물어봤는데 이곳에는 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자, 그럼 일단 올 사람은 다 왔으니.”
회의실 앞의 단상에 기대어 선 안세인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도 이제 떠들썩한 그 메시지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해볼까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