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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02화 (103/201)

제102화

회귀 전에도 간이 시험은 있었다.

형식은 지금까지 나타난 게이트와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게이트가 생성되는 위치뿐.

시험의 게이트는 친절하게도 어디에서든 입장이 가능하도록 하늘에 나타난다.

‘첫 번째 시험처럼.’

잠시 오만의 그리폰을 만났던 첫 번째 시험이 떠올라 살짝 미간을 구겼다.

‘조금 마음에 걸리는 건….’

나도 간이 시험의 내용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간이 시험 게이트에 들어갔다가 살아 돌아온 각성자가 없었으니까.

“근데 뭐 할 얘기가 있습니까?”

먼저 입을 연 건 이시결이었다.

까만 장갑을 낀 손으로 턱을 괸 그는 안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메시지에서는 날짜밖에 공지를 해주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 봤자 무슨 소용입니까? 알 수가 없군요. 이럴 시간에 차라리 게이트를 하나 더 도시는 걸 권합니다만.”

부정할 수는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 말투가 꽤나 신랄했다.

‘분명 누구 하나는 뭐라고 하겠는데.’

이곳에 모인 각성자들은 10위권 이내의 랭커이거나 무리를 이끄는 단장들.

그런 사람들이 저런 말을 그냥 넘어갈 리 없다.

역시나 한 각성자가 발끈하며 맞받아쳤다.

“그럼 본인이야말로 게이트나 돌지 여긴 뭐 하러 왔습니까?”

그 말에 이시결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윤도아 씨가 왔으니까요.”

이시결의 말에 회의실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

의아한 표정들.

이시결의 대답은 생략된 부분이 많아서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상당한 오해를 살 법했다.

놈의 목적은 나를 죽이는 것.

나를 죽이는 것이 본인이 아니게 될까봐 나를 쫓아다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저놈이 나를 죽이기 위해서 그런 거라고 구구절절 설명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럼 다들 저놈을 다시 지하에 가두라고 화를 낼 테지.’

나는 조용히 이시결을 쏘아보았다.

이시결은 그런 내게 방긋 웃어보였다.

주선오가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혹시라도 윤도아 씨가 다치면 안 되니까요.”

‘또 쓸데없는 소리를.’

내 눈빛이 한층 매서워지자 이시결이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안세인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어쨌든 겸사겸사 온 겁니다. 관장님께서 친히 저를 초대해주시기도 했고요.”

고개를 끄덕인 안세인이 이시결을 가리키며 그를 소개했다.

“맞아요. 일단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미등록 각성자였던 이시결 씨예요. 미등록이라 정확한 집계는 되지 않았지만 랭커급 실력을 가진 각성자이죠.”

“미등록…?”

“미등록이라면….”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던 탑 쌓는 개미 무리의 단장 이선재가 흠칫 놀라며 물었다.

“설마 기관 소속 각성자를 죽였던 그 살인자입니까?”

회의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짐과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이시결에게 쏠렸다.

하지만 이시결은 더 이상 그들에게 흥미가 없는 듯 그쪽은 바라보지도 않았다.

“저런 사람을 왜 풀어두는 겁니까?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10위 랭커 김지형이 물었다.

그 질문에는 내가 빠르게 대답했다.

“지금은 제가 제어하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서약이라는 아이템으로 더 이상 사람을 해치지 못하도록 맹세를 걸어놨습니다.”

내 이야기에 다른 각성자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눈빛에는 여전히 경계가 섞여 있었지만, 랭킹 1위가 직접 제어하고 있고 방지까지 해 뒀다는데 딱히 할 말이 없는 게 당연했다.

회의실의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정리되자, 안세인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시결 씨까지 부른 이유는 하나예요. 말했다시피 랭커와 맞먹는 실력을 가진 각성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시험을 앞두고 있죠? 비록 간이 시험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시험이에요. 그러니까 한 명이라도 더 실력이 있는 각성자가 필요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간이 시험을 위해 이시결을 빼온 건 아니었지만 비슷한 맥락이었다.

안세인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아까 이시결 씨가 얘기한 대로 시험에 관한 이야기는 그닥 할 게 없어요.”

몇몇 각성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안세인은 말을 이었다.

“지금 그 메시지 때문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흔들리고 있죠?”

“그렇죠, 뭐. 다들 각성자들만 바라보고 있고. 어쨌든 본인들은 시험을 칠 수 없는 입장이니.”

신교진이 팔짱을 끼며 투덜거렸다.

이선재 역시 안세인의 말에 동의했다.

“그게 꽤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물론 그럴 거예요. 여러분을 이곳에 부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고요. 여기 있는 분들은 우리나라 랭커이거나 각자의 무리를 이끌고 있는 단장들이죠.”

안세인이 몇몇을 둘러보았다.

7위 랭커인 차수린을 제외한 10위 안의 랭커들이 모두 모여 있었고 그들 중에는 단장을 겸하는 사람도 몇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랭킹은 10위권 밖이었지만 각자의 무리를 이끌고 있는 단장들.

그중에는 얼마 전 만났던 외계인 침략을 주장하는 땅의 지배자 무리 단장 심지원도 있었다.

그리고 안세인과 권재경, 김지석은 각성 기관의 주축.

사실상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국내 각성자들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중심을 잘 잡아 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여러분의 단원들과 다른 각성자들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요. 사람들의 기대에 부담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어요. 기대는 기대대로 두고,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해야죠. 어쨌든 시험은 다가올 거고 우리는 그 최전선에 설 사람들이니까요.”

안세인이 모두를 격려했다.

할 수 있는 것이 게이트를 도는 것밖에 없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각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이렇게 한 곳에 모아두고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은 달랐다.

‘직접 이렇게 모여서 동질감을 나누는 게 혼자보다 낫지.’

“여러분은 다들 다른 이유로 게이트를 닫고 있을 거예요. 돈이나 명예가 목적일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어요. 아니면 단순히 흥미 위주일 수도 있고요. 뭐가 이유가 됐든, 그것들을 유지하려면 일단 지금의 삶이 유지돼야 해요. 그걸 잘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안세인의 이야기는 금방 마무리되었다.

안세인과 김지석은 이제 세계 각성 협회와의 대화를 위해 회의실을 벗어났다.

몇몇 무리의 단장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려 다가왔지만 내 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이시결 때문에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곧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회의실 밖으로 나갔고 남은 사람은 주선오와 신교진, 윤도빈, 이시결뿐이었다.

주선오가 아직 자리에 앉아있던 이시결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야, 주선오!”

신교진이 불안한 듯 주선오를 불렀지만 주선오는 그대로 이시결에게 다가가 그 앞에 멈추어 섰다.

이시결은 무슨 볼 일 이냐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주선오는 한참 동안 말없이 이시결을 내려다보았다.

윤도빈 역시 조금 불안함을 느꼈는지 안절부절 못하며 상황을 살폈다.

이시결이 주선오의 눈빛을 그대로 받아치며 물었다.

“너무 뚫어져라 보는 거 아닙니까?”

그에 주선오가 한껏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꿍꿍이지?”

“꿍꿍이라뇨?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도아 누나를 따라다니는 속셈이 뭐냐고.”

“말씀드렸다시피, 전 정말 순수하게 윤도아 씨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시결의 뻔뻔한 대답에 기가 찬 듯 주선오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한층 더 싸늘해진 얼굴로 이시결에게 물었다.

“이미 각성자를 죽인 전적이 있는 네가? 그런 걱정을 한다고?”

“윤도아 씨는 그 각성자와는 다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차피 전 지금은 서약 때문에 윤도아 씨의 허락 없이는 사람을 공격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자꾸 그렇게 도발해 오시면 곤란합니다.”

이시결이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물론 거짓 섞인 가면이었지만.

주선오는 금방이라도 이시결의 멱살을 잡을 것 같았다.

‘그냥 두면 안 되겠는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둘에게 다가갔다.

이시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이어 말했다.

“제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오히려 윤도아 씨 입장에서는 편할 텐데요. 굳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않아도 감시하기가 쉬우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시결이 내게 동의를 구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날 위해서 그런 배려까지 해줄 필요는 없는데.”

내 말에 이시결이 피식 웃었다. 나는 내 뒤를 따라온 도빈이에게 눈짓했다.

“일단, 나가죠. 우린.”

윤도빈이 이시결에게 말했다.

어깨를 으쓱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이시결에게 주선오가 말했다.

“아직 얘기 안 끝났어.”

“주선오.”

내 부름에 주선오가 멈칫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도빈이가 그 틈에 이시결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신교진 역시 주선오의 눈치를 보더니 후다닥 둘을 따라 나가버렸다.

회의실 안에는 나와 주선오 뿐이었다.

괜히 주선오를 이 상태로 뒀다가는 언젠가 이시결과 대판 싸움을 벌일 것이 분명했다.

최악의 경우, 회귀 전처럼 주선오가 이시결을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안 되지.’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주선오를 달래둬야 했다.

나는 탁자에 걸터앉으며 주선오에게 말했다.

“사람을 공격하지는 못하니까 걱정 마.”

하지만 여전히 주선오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조금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던 주선오가 물었다.

“…누나는 괜찮으세요?”

“사실 이시결 말대로 감시하기는 더 편해.”

“…그게 아니라….”

잠시 머뭇거리던 주선오가 곧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듯 주선오의 표정은 영 어두웠다.

아무래도 내가 게이트를 닫아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무리해서 이시결을 컨트롤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선오야.”

내 부름에 주선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주선오의 눈빛에 걱정이 가득 묻어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뭔 줄 알아?”

“…네?”

내 갑작스러운 질문에 주선오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내 걱정이야.”

“…….”

주선오가 조금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이시결 잡아온 건 나야. 서약이 걸려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고. 그런데 지금은 서약까지 걸려있어.”

주선오는 살짝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떨궜다.

“…알겠습니다.”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나는 몸을 일으키고는 주선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걱정 말고. 성질 좀 죽이고.”

“…네.”

“가자, 그럼.”

나는 주선오를 지나쳐 회의실의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주선오가 내 손목을 덥썩 잡았다.

“누나.”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주선오를 돌아보았다.

“…혹시라도.”

주선오가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힘들면 말씀해주세요.”

“…뭐?”

그의 시선이 내 눈에 꽂혀 있었다.

“꼭이요.”

내 손목을 한 번 꽉 쥐었다 놓은 주선오는 내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먼저 회의실을 나섰다.

나는 열기가 남아있는 손목을 바라보았다.

‘힘들 리가.’

간이 시험이 공지된 이후로, 모두의 시선과 기대가 대부분 나에게 쏠려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들의 기대가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나는 첫 번째 시험을 한 번 치르고 온 입장이었다.

그때의 관심과 기대는 지금과는 달랐다.

그때는 랭킹 1, 2위를 다투던 주선오와 관심과 기대를 나눠받았음에도, 지금보다 훨씬 큰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결국 실패했지만.’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아.’

그러려면 일단 간이 시험을 무사히 넘겨야했다.

물론 첫 번째 시험의 시험관이었던 오만의 그리폰 급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지금껏 만났던 보스급보다는 위험한 몬스터일 것이다.

남은 시간은 한 달.

‘당분간 게이트에 집중해야겠어.’

나는 텅 빈 회의실을 나섰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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