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회의실 밖에는 윤도빈과 이시결만이 남아있었다.
“선오랑 교진이는?”
“갔어. 난 무리 단원들 소집해 둬서 가야 하는데. 누나는?”
도빈이가 내게 물었다.
“난 게이트 좀 가려고.”
나는 도빈이에게 대답을 한 후 이시결을 돌아보았다.
“너, 또 따라올 거야?”
이시결은 지난번 나를 감시하겠다고 말한 이후로 그 말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놈에게 붙여둔 표식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놈은 본인이 게이트에 가는 시간 외에는, 계속해서 내 뒤를 밟았다. 심지어 게이트 안까지 따라 들어오곤 했다.
물론 내가 입장한 게이트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할 뿐이라 보상은 온전히 내 몫이긴 했지만.
이시결이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한 말씀을.”
윤도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심해, 누나. 이따 집에서 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도빈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
‘어차피 따라온다면 역시 이용을 해 줘야지.’
나는 이시결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좋아. 그럼 가자.”
* * *
‘이시결이 이런 데에서 쓸모 있을 줄이야.’
이시결은 창틀에 팔꿈치를 댄 채 턱을 괴고 오른손으로만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이번에 가려는 게이트는 꽤 먼 곳에 있었다.
경남 창녕군의 우포늪.
그곳에 있는 S급의 쌍둥이 게이트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함께 갈 수도 없었다.
주선오나 도빈이와 함께 가고 싶었지만 둘 다 며칠간은 각자 무리의 단원들을 돌보느라 바쁠 터였다.
‘이시결이면 나쁘진 않지.’
이시결은 무리도 없었고 메시지에 대해서도 그닥 신경 쓰지 않았다.
실력 또한 믿을만하니 둘이서 하나씩 게이트를 맡는다면 썩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무릎 위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워있는 우부를 쓰다듬었다.
진짜 고양이는 아니었지만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것이 쓰다듬는 맛이 있었다.
가만히 운전을 하던 이시결이 말했다.
“제가 이런 일을 하려고 윤도아 씨를 감시하는 건 아닌데 말이죠.”
이시결의 목소리에 우부가 귀를 까닥였다.
나는 그런 우부의 머리를 살살 긁으며 이시결을 흘긋 바라보았다.
불평 섞인 말이었지만 이시결의 표정과 목소리는 변함없이 나른했다.
“친히 게이트에 같이 가주겠다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않겠어?”
“쌍둥이 게이트라면 같이 입장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윤도아 씨가 다쳐도 제가 어찌할 방도가 없고요.”
이시결의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네 걱정이나 해. 반대편에서 못 열어줘서 게이트 안에 갇히게 하지나 말고.”
“하하, 그럴 리가요.”
이시결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쌍둥이 게이트에 대해서 좀 아나 봐?”
“가 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컨벤션에서 발표했던 이야기를 들었죠.”
‘아. 컨벤션.’
게이트에 대한 정보들을 공유했던 세미나를 본 모양이었다.
세미나는 전국에 중계되었고, 그때의 영상은 기관 사이트에서 누구라도 언제든 볼 수 있었다.
이시결이 장갑을 낀 손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슥 입꼬리를 올렸다.
“사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난들 알았나.’
나 역시 그때까지만 해도 이시결의 존재 자체를 전혀 몰랐다.
그저 경매에서 서리의 전 주인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만 했었는데. 그게 이놈이었을 줄이야.
이시결의 시선이 내 무릎 위의 우부에게 향했다.
“광휘의 서리는 아직 만들지 못하신 모양이군요.”
우부의 투명한 몸속에 투박한 얼음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경매에서 이시결과의 경합 끝에 얻었던 서리였다.
“네가 신경 쓸 건 아니지.”
놈은 내 싸늘한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 말했다.
“아직 난쟁이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나보네요. 하긴 어느 게이트에서 언제 난쟁이를 만날지 모르니 그것도 꽤 곤욕이겠습니다.”
나는 딱히 대꾸를 하지 않았고 곧 차 안은 조용해졌다.
그렇게 3시간여 후.
우리는 우포늪에 도착했다.
“우부, 일어나.”
무릎 위에 벌러덩 드러누워 잠을 자던 우부의 배를 살살 긁자 우부가 천천히 눈을 떴다.
“푸?”
“내리자.”
그러자 우부가 몸을 바로 하더니 길게 기지개를 폈다.
투명한 고양이의 몸통이 길게 늘어났다.
“푸우우! 다 왔어?”
내가 차 문을 열자 우부가 바깥으로 통 튀어 나갔다.
우부를 따라 차에서 내린 나는 심연의 불꽃에서 레부를 불러냈다.
“레부.”
“쿄.”
불꽃이 아래로 스르륵 흘러내리더니 중절모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사람의 형체를 취했다.
“레부다!”
우부가 그런 레부에게 달려들었다.
그동안 우부가 꽤 익숙해졌는지, 이제 레부는 우부를 무서워하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다만 성가시다는 듯한 기운을 내뿜으며 얼굴에 들러붙은 우부를 떼어냈다.
“나눠 봐.”
“쿄, 알겠습니다.”
“레부, 나눠? 어떻게 나눠?”
레부의 손에 대롱대롱 들린 우부가 레부를 보며 물었다.
레부의 몸이 세로로 두 동강났다.
“푸!”
반으로 갈라져 무너져 내리는 레부의 모습을 본 우부가 화들짝 놀라며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쿄쿄쿄쿄.”
이제는 레부가 우부를 놀래키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고는 파들파들 떠는 우부를 바닥에 내려두었다.
반으로 쪼개진 레부 하나가 곧 팔찌의 형태로 압축되었다.
레부는 바닥에 떨어진 팔찌를 주워들더니 그것을 옆에 서있던 이시결에게 건넸다.
“받으시죠, 인간.”
이시결이 레부의 팔찌를 받아들었다.
“연락병인가요?”
“쿄, 그렇습니다.”
“푸, 레부 작아졌어! 주인, 레부 이상해!”
우부가 내 다리를 박박 긁으며 말했다.
“쿄쿄쿄쿄쿄….”
레부가 우부를 바라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우부는 아직 어려서 이런 것도 못 하지 않습니까? 쿄쿄쿄. 물 슬라임이면서 물도 잘 못 다루고. 주인에게 그닥 쓸모가 없겠습니다. 쿄쿄쿄쿄.”
그러더니 심연의 불꽃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놀림을 받고 혼자 남은 우부는 젤리를 파르르 세우며 말했다.
“푸! 아냐! 주인은 우부가 필요해! 맞지, 주인?”
나는 우부의 쓸데없는 이야기를 무시하고는 기관 사이트에서 본 쌍둥이 게이트의 위치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푸, 주인! 우부 버릴 거야?”
우부가 후다닥 뛰어 나를 쫓아왔다.
울멍울멍한 눈망울이 내게 향해 있었다.
나는 피식 웃고는 우부를 들어 어깨 위에 올렸다.
그러자 우부가 금세 갸르릉거렸다.
“푸푸푸푸.”
귀엽긴 했지만 슬슬 귀찮은 것이 우부를 넣어둘 아이템이 필요할 것 같았다.
심연의 불꽃이나 모래의 심장처럼 우부의 집이 될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는 레부의 팔찌를 손목에 차며 뒤를 따르던 이시결을 돌아보았다.
분명 이시결은 자신의 아이템 도감을 공유해준다고 했었다.
‘도움이 될 정보를 줄 수도.’
“물어볼 게 있는데.”
이시결의 눈이 내게 향했다.
“말씀하시죠.”
“모래의 심장처럼 물을 공급해줄 수 있는 아이템이 있어?”
“음.”
이시결이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있었습니다. 물의 핵이라는 아이템이에요.”
“물의 핵?”
나는 곧바로 최초의 책 서고지기를 불렀다.
‘서고지기.’
<네.>
‘물의 핵 설명.’
<허허. 물의 핵이라.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이군요. 물의 핵은 S급 아이템입니다. 슬라임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아이템이지요. 모든 것을 삼켜 물의 핵 속의 심해로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그게 물질이든 물질이 아니든 상관없이요. 다만 슬라임처럼 그것을 마음껏 꺼낼 수는 없습니다.>
‘물질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
<그렇습니다.>
서고지기의 설명에 나는 어떤 각성자가 떠올랐다.
회귀 전.
그런 식으로 모든 공격을 삼키던 각성자가 있었다.
세계 랭킹 3위의 자리를 지키던 각성자 이네스.
그녀는 레이피어를 사용하는 검사로 펜싱 금메달 리스트였다.
그리고 그녀는 레이피어를 휘둘러 물의 막을 만들어내 모든 공격을 흡수하곤 했다.
‘그게 특성과 관련된 것인줄 알았는데 아이템이었던 건가?’
<뭔가 알고 계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냐.’
물의 핵이 이네스가 사용하던 것이 맞다면 그것은 방어에 굉장히 특화된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이네스가 그것을 얻었다는 것은 그게 프랑스에서 열리는 게이트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것.
이네스는 현재 세계 랭킹 5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어쩌면 벌써 물의 핵은 이네스의 손에 들어갔을 수도 있었다.
나는 서고지기와의 연결을 끊고 이시결에게 물었다.
“그것 말고는 없어?”
“일단 기억나는 건 그것뿐입니다. 찾아보려면 다시 책을 살펴봐야 할 것 같군요. 여유가 될 때 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시결은 상당히 협조적이었다.
혹시나 마음이 바뀌어 아이템 도감을 공유하지 않을까 했던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삼십 분 정도를 걷자 앞에 보이는 출렁다리의 중앙쯤에 두 개의 게이트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두 개 모두 붉은 연기를 내뿜고 있는 스킬 보상 게이트였다.
“윤도아 씨는 여우 구슬을 가지고 계셨죠?”
게이트를 향해 걸어가던 중 이시결이 물었다.
“어차피 서로 협력해야 하는 쌍둥이 게이트인데 저한테도 정보를 좀 공유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시결이 제안했다.
‘어차피 이놈은 알고 있고.’
그의 말대로 협력해야 할 판에 굳이 미리 알 수 있는 정보를 숨길 필요는 없었다.
나는 기다란 출렁다리 위로 올라 중앙의 두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곧 두 개의 게이트 앞에 도착한 나는 여우 구슬로 게이트의 정보를 확인했다.
[S급 스킬 보상 게이트]
[오크들의 거점으로 통하는 스킬 보상 게이트입니다.]
[일정 시간 내에 거점 안의 오크들을 소탕하고 거점석을 정화하면 거점이 장악됩니다.]
[어딘가의 거점이 장악되면 다른 거점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2개의 거점을 모두 장악하면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이전 주선오와 신교진과 갔던 게이트와는 달리, 게이트의 내용까지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 게이트였다.
“오크들의 거점 장악 게이트야.”
내 옆에 선 채 팔짱을 낀 이시결이 중얼거렸다.
“오크라…. 거점 장악 방법은요?”
나는 게이트 위에 뜬 설명을 읽어주었다.
“일정 시간 내에 거점 안의 오크들을 소탕한 후 거점석을 정화하면 장악되는 시스템인 것 같네. 둘 다 거점을 장악해야 다음 거점으로 가는 길이 열리고. 거점은 총 2개.”
“그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가 중요하겠군요. 만약 시간 안에 거점석 정화를 못하면요?”
이시결의 질문에 나는 다음 설명을 읽었다. 그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패널티가 상당한데. 실패하면 주어졌던 시간의 수십 배 이상을 게이트 안에 남아있어야 하는 것 같아.”
“아하. 갇히게 되는 거군요. 역시 S급이라 패널티도 센 것 같습니다.”
이시결이 태평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나를 슥 돌아보며 말했다.
“물론 우리가 시간 안에 정화를 못할 리는 없겠죠.”
나 역시 그런 이시결을 흘끔 바라보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괜히 발목이나 잡지 마.”
“하하.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이따 뵙죠.”
내게 고개를 살짝 꾸벅여 보인 이시결은 한 게이트 안으로 바로 입장해버렸다.
그가 붉은 연기에 휩싸여 게이트 안으로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나 역시 다른 게이트에 바로 입장했다.
* * *
입장한 게이트의 안은 퀘퀘한 냄새가 가득한 막사 안이었다.
여기저기에 쓰잘데기없는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었고 그 위로 먼지가 한가득이었다.
나는 눈살을 찡그린 채 칼칼해진 목을 문질렀다.
“푸우? 여기 먼지 엄청나!”
우부가 주변을 살피며 크게 말했다.
“쉿. 조용히.”
내 작은 목소리에 우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검지 손가락을 입 앞에 대어 보였다. 그러자 우부가 양 앞발로 입을 가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푸. 우부 조용히!”
전혀 작은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부는 그 이후로는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심연의 불꽃을 꺼내 레부를 불러냈다.
“레부.”
레부가 눈치껏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연결.”
“쿄. 인간, 들립니까?”
<아아. 듣고 있습니다.>
레부를 통해 이시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상황은?”
<더러운 막사네요. 오크들 냄새가 진동을 하고요.>
조금 짜증이 난 목소리였다.
<일단 여길 먼저 벗어나야겠습니다.>
나는 이시결의 이야기를 들으며 탐지로 주변을 살폈다.
막사는 작았다. 바깥에는 평평한 평지 위에 수십 개의 다른 막사들이 세워져 있었다.
막사의 사이사이에는 우락부락한 모습의 오크들이 가득했다.
그냥 그대로 나갔다가는 분명 모든 오크의 시선을 한몸에 받을 터.
“밖에….”
내가 이시결에게 충고를 하려는 순간.
<아. 이런.>
이시결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켰네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