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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07화 (108/201)

제107화

안세인과 기관의 노력 덕분에 간이 시험의 예고로 혼란스러워하던 각성자들은 꽤 안정을 되찾았다.

반면 기관은 이전에 비해 훨씬 바빠졌다.

간이 시험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각성자들이 할 수 있는 시험에 대한 대비는 열심히 게이트를 도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각성자 개인이 해야 할 일.

기관과 기관의 연구소가 하고자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각성자들에게 시험에 대비한 새로운 방어구를 제공해주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켜야 했다.

그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날 시기가 맞아떨어져야 하니까.

방어구를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시간은 적어도 2주.

간이 시험 전까지 그것을 제작하려면 게이트 브레이크가 앞으로 2주 안에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브레이크가 일어날 게이트에서 나타날 몬스터도 중요했다.

기관 연구소장 박효진은 지난 게이트 브레이크를 떠올렸다.

‘놀 사체로 성과를 봤지만…. 두 번째처럼 반인반조 같은 몬스터가 나타난다면 사실 쓸모가 없어.’

사실 그런 조건에 맞는 게이트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하도록 만들어줄 수 있는 각성자가 딱 한 명 있었다.

박효진은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곧 일곱 살이 될 작은 아이가 곤히 잠들어있었다.

권재경의 딸인 권나라였다.

‘저 애가 아니었다면 이런 계획을 실행해볼 생각조차 못 했을 텐데.’

기관의 입장에서 나라의 존재는 굉장한 행운이었다.

하얀 사슴의 인도라는 가호를 받은 아이.

아이는 아직 어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미래를 볼 수 있었다.

“눈 좀 붙이셨습니까?”

조용히 차를 몰던 김지석이 작게 물었다.

“아, 네. 조금요.”

박효진은 백미러에서 시선을 돌려 내비게이션을 바라보았다.

목적지까지 30분 정도 남아 있었다.

“거의 다 왔네요.”

“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한숨을 내쉰 박효진이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이번 게이트는 좀 당첨이었으면 좋겠네요.”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은 논산의 한 드넓은 밭이었다.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킬 시간과 조건이 맞는 게이트를 찾기 위해 벌써 3일째 전국을 헤매고 있었다.

과정은 꽤 간단했다.

박효진이 먼저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날 위험성이 있는 게이트들을 조사한 후 그곳으로 이동.

그리고 게이트 앞에서 나라가 스킬을 사용하면 끝.

하지만 지금까지 돌아본 게이트들은 모두 조건에 맞지 않는 게이트들이었다.

‘여기마저 아니라면 이제 남은 곳은 한 군데.’

만약 그곳까지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각성자들을 위해 방어구를 만들어주겠다는 박효진의 계획은 무산되고 만다.

기관의 연구소장인 박효진은 각성자들이 얼마나 큰 위험을 마주하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을 돕고 싶었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얼마 없었다.

가호자가 아닌 그녀가 게이트에 들어가서 각성을 할 수도 없었고, 설사 가호자였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결국 그녀가 각성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조금이라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뿐.

‘도움이 되고 싶은데.’

박효진이 조금 우울해진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눈 쌓인 한적한 시골의 풍경이 펼쳐져있었다.

잠시 후, 그들의 앞에 게이트가 보였다.

눈 덮인 밭의 가운데에 떠 있는 검은색의 게이트.

왠지 흉악스러운 느낌에 박효진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곧 길가에 부드럽게 차를 세운 김지석이 뒤를 돌아보았다.

“권 선생님. 도착했습니다.”

권재경이 번쩍 눈을 뜨고는 안경을 고쳐 쓰며 주변을 살폈다.

“아…. 잠들었었군요. 죄송합니다.”

“아뇨, 죄송할 게 뭐 있어요.”

박효진이 벨트를 풀며 말했다.

“그럼 후딱 확인해볼까요?”

권재경은 잠들어있는 나라를 깨웠다.

“나라야. 옷 입자.”

“…으응….”

잠에서 깬 나라가 비몽사몽한 상태로 권재경이 입혀주는 외투를 입었다.

잠시 흐뭇한 표정으로 나라를 바라보던 박효진은 곧 정신을 차리고 차에서 내렸다.

날카로운 바람이 박효진을 훑고 지나갔다. 그녀는 몸을 움츠린 채 밭을 바라보았다.

김지석이 먼저 차에서 내려 게이트로 다가가고 있었다.

깔끔한 구두와 코트를 걸친 차림으로 하얀 밭을 걷는 것이 꽤 이질적으로 보였다.

박효진은 조심스레 눈을 밟으며 그를 따랐다.

게이트의 앞에 멈춰선 김지석은 양손을 앞으로 모아 쥔 채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S급 종합 보상 게이트군요.”

“네. 이런 시골 마을까지 게이트를 닫으러 오는 각성자는 얼마 없으니까요. 게다가 S급이라면.”

계속해서 불어오는 바람에 박효진은 몸을 더욱 움츠렸다.

김지석이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풀어 박효진에게 건넸다.

“이거라도 두르세요.”

“네? 아뇨, 괜찮아요. 사실 누가 보더라도 저보다 이사님이 더 약해 보이는걸요.”

박효진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요.”

김지석이 쓰게 웃으며 머플러를 거둬들였다.

그 쓴웃음에 박효진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안 그래도 김지석은 자신이 약한 각성자라는 것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박효진이 재빨리 이어 말했다.

“농담이에요. 괜히 그거 저한테 주셨다가 감기라도 걸리시면 제가 책임감을 느낄 것 같으니까 괜찮아요. 전 감기 잘 안 걸리거든요.”

그때 권재경과 나라가 둘에게 다가왔다.

김지석과 박효진이 게이트의 앞에서 물러났다.

“또 그거 하면 돼?”

나라가 손을 꼭 붙잡은 권재경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권재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나라야. 부탁할게.”

나라가 허리에 손을 얹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의 한숨에 박효진이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쪼그만 게 벌써 한숨이야?”

“나는 한숨 쉬면 안 돼요?”

나라가 박효진의 말에 살짝 입술을 비죽였다.

“…나라야.”

권재경이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나라를 나무랐다.

하지만 김지석과 박효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 맹랑한 것 좀 봐.”

박효진이 까르르 웃고는 나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 투덜거린 나라가 게이트를 보며 말했다.

“기억 현상.”

나라가 눈을 감았다.

박효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조용해진 아이를 바라보았다.

기억 현상은 아이가 최근 새롭게 얻은 스킬이었다.

그것은 예지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예지는 아이의 주변에서 하루 이내에 아이의 신변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을 미리 알 수 있는 스킬이었다.

반면 기억 현상은 주체가 아이가 아니었다.

‘기억 현상의 주체는 장소.’

그 장소를 기점으로 특정 사건의 시기를 읽어낼 수 있었다.

나라가 읽어낼 장소의 특정 사건은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 장소에서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시기가 있다면, 나라는 그것을 한 장의 인화된 사진 같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나라는 그것을 그대로 옮겨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보고 게이트 브레이크의 상황을 판별하면 돼.’

그것이 박효진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라는 기억 현상을 성공하지 못했다.

나라가 읽어낼 시점은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시점.

누군가 미래에 게이트를 클리어한다면 게이트 브레이크는 일어나지 않는다.

즉, 지금까지 돌아본 게이트는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는 게이트였다.

만약 이번에 나라가 기억 현상에 성공한다면.

‘이 게이트는 브레이크를 일으킨다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시기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라의 기억 현상은 한 장의 이미지만을 보여줄 뿐.

그것에 대해 친절히 풀어서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기억 현상을 해낼 수 있었으면….’

박효진이 간절히 바라며 나라를 바라보았다.

그때 아이가 번쩍 눈을 떴다.

“!”

초조하게 아이를 바라보던 세 사람이 흠칫했다.

나라의 맑은 눈망울이 권재경을 향했다.

“아빠.”

박효진이 침을 꿀꺽 삼키며 나라를 바라보았다.

나라가 이어 말했다.

“나 봤어.”

* * *

“요새 그 사람 안 보이네?”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던 윤도빈이 말했다.

집에 얹혀살고 있던 객식구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이시결?”

“응. 3일째 안 보이는데?”

컵 두 개를 들고 거실로 나온 윤도빈이 내 앞의 탁자에 컵 하나를 내려두었다.

“땡큐.”

나는 따끈한 커피잔을 집어들었다. 윤도빈이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그때 게이트에서 무슨 일 있었어?”

나는 피식 웃었다.

“뭐, 조금.”

그때 방에서 나온 우부가 바닥에 앉은 윤도빈에게 돌진했다.

“푸푸푸! 우부, 뛰어든다!”

“우왓, 잠깐!”

윤도빈이 급히 들고 있던 컵을 탁자에 내려두었다.

아슬아슬하게 우부가 윤도빈의 가슴팍을 들이받았다.

“컥!”

아무리 진짜 고양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물 슬라임인 우부는 꽤 묵직했다.

그런 우부에게 가슴을 맞은 윤도빈이 멀쩡할 리 없었다.

윤도빈은 가슴을 부여잡은 채 허리를 숙였다.

“…으, 아…. 우, 우부, 귀엽긴 한데…. 너무 아프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우부는 좋다고 웃으며 윤도빈의 다리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푸푸푸푸!”

윤도빈이 그런 우부를 끌어안자 우부가 도빈이의 얼굴에 머리를 부볐다.

“으, 귀여워…. 귀여운데 아파….”

그런 둘을 보고 피식 웃던 나는 문틈 사이에서 거실을 내다보고 있는 두 슬라임을 발견했다.

레부와 모부가 매섭게 뜬 눈으로 우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슴없이 애교를 부리는 우부가 눈꼴시린 모양이었다.

‘예전에 죽어라 덤빌 때는 언제고.’

이제는 서로 내 눈에 들기 위해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놈들이었다.

“…으….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아픔이 조금 진정됐는지 윤도빈이 다시 물었다.

“그냥 본인 힘이 부족하다는 걸 좀 느꼈거든. 그래서 그거 때문에 자존심이 좀 상한 모양이야.”

“…그래? 그 철면피 같은 사람도 자존심이 상하긴 하나보네.”

윤도빈이 조금 질렸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안 그래도 아침에 이시결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표식을 살펴보았다. 혹여나 3일이나 집을 비우고 다른 곳에 가서 사고를 치고 있나 싶었지만. 이시결은 열심히 게이트를 돌고 있을 뿐이었다.

‘잘됐지. 열심히 돌수록 더 쓸 만한 도구가 될 테니까.’

나는 흡족한 기분으로 커피를 마셨다.

“너네 단원들은 다 괜찮아?”

내 물음에 윤도빈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우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응. 잘 달랬지, 뭐. 관장님 말씀도 전했고. 다른 무리들도 다 진정된 것 같더라. 어제 선오 형네 잠깐 갔었는데.”

그때 탁자 위에 두었던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윤도빈이 말을 멈추고는 고개를 까닥였다.

나는 꼼작도 하지 않고 염력으로 핸드폰을 끌어당겼다.

“김 이사님?”

슬쩍 내 핸드폰의 액정을 들여다본 윤도빈이 물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화를 받았다.

“네. 이사님.”

[도아 씨. 지금 시간 괜찮으십니까?]

김지석의 목소리는 조금 다급했다.

“네.”

[그럼 지금 기관으로 좀 와주시겠어요? 급하게 의논드릴 일이 있어서요. 도빈 씨도 같이 계시면 같이 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핸드폰 너머로 김지석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윤도빈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알겠어요. 바로 가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왜?”

윤도빈이 우부를 내려두고는 나를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확실히 나뿐만 아니라 도빈이까지 부를 일이라면 뭔가 중요한 의논거리가 생긴 것 같았다.

“나도 모르지. 준비해. 바로 가게.”

윤도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 역시 방으로 가 대충 옷을 주워 입고는 외출 준비를 했다.

우리는 빠르게 기관으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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