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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16화 (117/201)

제116화

윤도빈의 눈에는 주선오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곧장 내게 걸어온 윤도빈이 굳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답장 안 했네?”

안하려고 안 한 건 아니었지만 딱히 변명을 하기에도 조금 애매한 상황이었다.

내가 가만히 윤도빈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윤도빈이 고개를 돌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혀를 차더니 다시 한숨. 그리고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나도 가.”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안 돼.”

윤도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누나는 가도 되고 난 안 된다?”

“위험해.”

“하.”

윤도빈이 기가 찬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이내 울컥하며 외쳤다.

“고작 그런 이유로 안 된다고? 그럼 처음부터 게이트에 데려가지 말았어야지!”

윤도빈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리라.

하지만 주선오와 마찬가지로, 나는 혹시라도 겪게 될지도 모르는 도빈이의 죽음을 눈앞에서 볼 자신이 없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게이트랑은 다르게 시험이잖아, 이번에는. 잘못했다간 죽을 수도 있어.”

“그런 누나는 무슨 목숨이 여러 개라도 돼?”

윤도빈의 말에 뜨끔했지만, 나는 무표정을 유지했다.

도빈이의 얼굴에 이제 걱정이 서리기 시작했다.

“누나나 나나 다 같은 사람이야. 한 번 죽으면 끝이라고. 그런데 왜 굳이 혼자 그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건데. 인원이 많으면 더 나은 거 아냐? 제발 누나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좀 말라고….”

마지막에는 결국 말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저렇게까지 걱정을 하게 만들어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도빈이의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내게는 나밖에 알지 못하는 가호가 있었다.

아주 만약에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다시 살아날 수 있으니까 괜찮았다.

“괜찮아, 윤도빈. 누나 걱정은 안 해도 돼.”

그 이야기에 윤도빈이 다시 울컥했다.

“그걸 말이라고…! 후….”

눈을 감은 윤도빈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누나 실력 알잖아. 가뿐하게 통과하고 나올 거니까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잠시 걱정서린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윤도빈이 곧 터덜터덜 걸어 집을 나갔다.

쿵.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넘기며 시선을 돌렸다.

‘일단 도빈이는 대충 달랬는데….’

옆에는 여전히 주선오가 있었다.

나와 도빈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조용히 물러나 있던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너도 들었지? 네가 계속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난 내 실력을 의심하는 거라고 받아들일 거야.”

내 극단적인 말에 주선오가 조금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

하지만 금세 말을 멈춘 후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주선오는 불안한 듯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기를 반복했다.

“정 의심된다면 다시 확인이라도 해봐야겠어?”

주선오는 대답이 없었다.

이제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를 혼자 보내기에는 불안한 것 같았다.

“…….”

주선오는 한참을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답을 듣지 않는다면 주선오는 내가 시험에 입장을 한 후 뒤따라 들어올지도 몰랐다.

그러니 확실히 대답을 들어 둬야 했다.

“대답은?”

내 질문에 주선오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남겠습니다….”

이제야 원하던 대답이 나왔다.

나는 피식 웃고는 그에게 말했다.

“도빈이 좀 부탁할게.”

“…네. 알겠습니다.”

* * *

집 근처의 골목에서 윤도빈은 담배를 하나 입에 물었다.

필터를 잘근잘근 씹다가, 손에 들린 라이터의 휠을 달칵거렸다.

그러다가 한숨을 내쉬며 입에서 담배를 빼냈다.

그러기를 수 차례 반복하던 윤도빈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바닥을 내려다보던 윤도빈이 살짝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이시결이 서 있었다.

“…뭡니까.”

윤도빈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라이터 처음 써봅니까?”

이시결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더니 휠을 돌려 불을 붙였다.

칙!

그리고는 윤도빈에게 불이 켜진 라이터를 들어보였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윤도빈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시결을 바라보았다.

그는 윤도빈의 눈앞에서 라이터의 불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윤도빈이 울컥하며 말했다.

“…아니 무슨 내가 라이터도 못 켜서 이러는 줄…. 하…. 됐습니다.”

한숨을 내쉰 윤도빈이 이시결의 손을 쳐냈다.

탁!

툭, 투둑.

불이 꺼진 라이터가 바닥으로 떨어져 튕겨나갔다.

윤도빈은 물고 있던 담배를 입에서 빼어 담배갑에 넣었다.

필터가 잘근잘근 씹힌 담배 하나를 제외하면 막 뜯은 새 담배처럼 담배가 꽉 차 있었다.

“…흠.”

가만히 바닥에 떨어진 라이터를 바라보던 이시결이 장갑을 벗고는 거미줄을 뽑아 라이터를 주워들었다.

윤도빈은 담배갑을 주머니에 넣은 후 바닥을 내려다보며 괜히 바닥을 툭툭 차고 긁기 시작했다.

이시결이 주머니에서 자신의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

이시결이 길게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담배 연기를 그대로 받아버린 윤도빈이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이봐요. 예의도 없고 눈치도 없습니까? 담배를 피우려면 다른 데 가서 피던가.”

윤도빈의 말에 이시결이 담배를 입에서 빼내고는 말했다.

“아. 윤도빈 씨가 여기서 피우려고 하길래 괜찮은 줄 알았는데요.”

뻔뻔한 말에 다시 한숨을 내쉰 윤도빈이 담벼락에 기대었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리를 피해 몇 발짝 걸어가는데.

“뭐, 걱정할 것 없지 않습니까?”

이시결의 말에 윤도빈이 멈칫했다.

“어차피 윤도아 씨가 죽을 일은 없을 겁니다.”

윤도빈이 미간을 찡그린 채 그를 돌아보았다.

담배를 입에 문 이시결이 라이터를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사실 윤도아 씨가 통과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통과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된다면 윤도아 씨를 걱정할 게 아니라 사람들의 존망을 걱정해야죠.”

윤도빈이 울컥하며 말했다.

“남의 가족 일이라고 막말하나 본데, 그쪽 가족 일이라도 그렇게 나오겠습니까?”

이시결이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가족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의 대답에 말문이 막힌 윤도빈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발걸음을 떼었다.

“그래도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윤도아 씨가 죽게 두지는 않을 거니까요.”

윤도빈이 다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이시결에게 물었다.

“…혹시 같이 들어갑니까?”

“당연한 소리. 미리 따라갈 거라 이야기도 해뒀습니다만.”

순간 윤도빈은 서운함을 느꼈다.

‘나는 안 되고 저 사람은 된다고?’

물론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누나인 윤도아를 걱정하는 것처럼 윤도아도 동생인 자신을 걱정하기에 시험에 가는 것을 말린다는 것을.

반면 이시결은 아무런 접점이 없는 사이.

실력은 있지만 각성자를 죽인 전적이 있는 각성자였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데려갈 인력으로는 적당했다.

자신이었어도 누나인 윤도아 대신 이시결을 데려가는 것을 택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온갖 생각이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에 대한 믿음이 없나? 아니면 내 실력이 아직 부족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윤도빈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겨우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는 이시결을 바라보았다.

이시결이 윤도빈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쪽한테 이런 부탁 하는 거 정말 싫지만.”

윤도빈이 시선을 떨구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다가 다시 이시결을 보며 말했다.

“누나를 부탁해요.”

이시결의 한쪽 입꼬리가 위로 솟았다.

“그게 부탁하는 태도입니까? 조금 더 정중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윤도빈은 잠시 이시결을 쏘아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 * *

간이 시험 3일 전.

니엘이 나타났다.

컨벤션 이후로 처음 만나는 니엘의 전용 특성은 그동안 많이 성장해 있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불부림을 능숙하게 다루었고 몸놀림 또한 훨씬 날렵해져 있었다.

니엘이 6개월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것은 역시나 간이 시험 때문이었다.

“언니랑 같이 갈게요!”

나는 머리를 짚었다.

‘벌써 몇 명째야.’

이제 조금 짜증이 날 정도였다.

주선오와 윤도빈, 그리고 다른 몇몇 각성자들에게 몇 번이나 들어온 이야기였다.

몇몇은 예의상 그냥 한 번 던져본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진심이었다.

나는 그들을 설득해서 간이 시험을 포기하게 만드느라 며칠 동안 게이트도 가지 못하고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 단호한 거절에도 니엘은 도무지 포기를 하지 않았다.

니엘이 탁자를 쾅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시결을 가리키며 외쳤다.

“왜! 왜 안돼요! 저 음침한 놈은 따라간다면서요!”

“저야 그만큼의 실력이 되니까요.”

이시결이 니엘의 말을 받아쳤다. 아무래도 놈의 말에는 도발이 패시브로 달려있는 것 같았다.

니엘은 그런 도발에 전혀 면역이 없었다. 눈썹을 잔뜩 치켜뜬 니엘이 이시결을 쏘아보며 말했다.

“랭킹에도 없는 주제에 무슨 실력을 운운해요?”

“그런 랭킹은 그냥 숫자일 뿐이지요. 정 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이라도 해보시겠습니까?”

“뭐야?”

니엘이 부들부들 떨며 이시결을 쏘아보았다.

“둘 다 그만.”

머리가 아파올 것 같은 기분에 나는 둘의 말을 끊어냈다.

니엘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저도 갈 거예요. 언니가 아무리 말려도 이번에는 안 되겠어요. 개서노도 안 간다면서요! 그럼 당연히 저라도 가서 보필해야죠!”

결국 나는 니엘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방해나 안 했으면.’

4위 랭커인 조이 역시 한국에 들어왔다.

역시 내가 간이 시험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넘어온 것이었지만.

‘목적은 도빈이겠지.’

아마 도빈이가 간이 시험에 참여했다면 그녀 역시 함께 가겠다고 나섰을 터.

하지만 도빈이는 나 때문에 간이 시험에 가는 것을 포기한 상태였기에 조이 역시 시험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차라리 잘 됐어.’

조이는 계속해서 윤도빈의 옆에 붙어 있을 것이다.

그러지는 않겠지만 몰래 나를 따라 간이 시험에 입장하려 하더라도 조이가 그것을 막아줄 것이다.

그렇게 간이 시험에 참여하는 인원은 나와 이시결, 그리고 니엘로 정해졌다.

아니, 그런 줄 알았지만.

“5위 랭커 이네스가 조금 전에 입국했다고 하네요.”

김지석의 말에 나는 멈칫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이네스요?”

“네.”

김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치도 못한 등장이었다.

세계 랭킹 5위이자 프랑스의 랭킹 1위 각성자.

레이피어를 사용하는 검사이자 어쩌면 물의 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각성자였다.

“역시 간이 시험에 참여할 생각으로 온 것 같습니다만.”

김지석이 조금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는 지금껏 내가 나와 함께 시험을 치르겠다는 각성자들을 말리는 것을 대부분 보아온 상태였다.

그리고 니엘의 엄청난 고집에 내가 얼마나 피곤해하는지도 직접 목격을 했다.

그렇기에 또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 싶은 곤란함이 분명했다.

나는 이네스도 시험에 참여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물의 핵을 이미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다.

‘물의 핵이 있으면 죽을 위험은 적어.’

그것은 방어에 특화된 아이템이었다.

니엘이나 이시결, 심지어 나조차도 방어에 특화된 아이템은 갖고 있지 않았다.

물론 나야 방어 대신 회피를 하면 되지만 니엘이나 이시결은 아무래도 조금 불안한 면이 있었다.

만약 이네스가 물의 핵을 가졌다면 그녀에게 니엘의 보호를 맡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바로 이곳으로 온다고 했으니 한두 시간쯤 후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김지석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이네스를 데리고 갈지 말지를 판단하려면 그녀가 물의 핵을 갖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했다.

그리고 회귀 전 그녀의 성격상, 그녀는 내게 대련을 요청할 것이다.

아무리 랭킹 1위라고는 하지만 그녀는 직접 자신의 눈으로 내 실력을 보고 판단하려 할 터.

‘그때 확인하면 돼.’

두 시간 뒤.

이네스가 기관에 도착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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