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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17화 (118/201)

제117화

이네스는 바른 자세로 기관 응접실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런 이네스를 보고 있자니 굉장히 기분이 묘했다.

그녀는 회귀 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함께 있는 김지석과 니엘이 아니었다면, 첫 번째 시험을 치르기 전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대로네.’

무려 10년 가까이 시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이네스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았다.

딱 맞는 회색의 줄무늬 정장.

얼굴의 양옆으로 흘러내린 웨이브진 금색의 머리카락과 둥글게 말아올려 고정시킨 머리카락.

항상 그 모습을 유지하는 그녀에게서는 도도한 기품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와 다른 것은 딱 하나.

그녀의 전용 특성의 수치뿐일 것이다.

나는 이네스의 정보를 살폈다.

[이네스]

[벌새 신의 가호]

[왼쪽의 푸른 벌새]

[전용 특성 : 호버링 lv.3]

[전용 스탯 : 근력 43/동체시력 50/민첩 74/항력 56]

[전용 스킬 : 청금석창 lv.5/찌르기 lv.4]

[특성 스킬 : 고속 lv.4/체공 lv.3]

이네스는 벌새 신의 가호를 받은 각성자로 찌르기를 주로 사용하는 각성자였다.

그녀가 지나간 길에 남아있는 몬스터는 없었다.

온몸에 구멍이 나거나 두 동강이 난 채로, 혹은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죽음을 맞이했다.

그걸 가능하게 했던 것이 바로 찌르기 스킬이었다.

‘1초에 백여 번을 찔린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이네스가 휘두르는 레이피어의 움직임은 눈으로 쫓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런 속도로 적을 찌르다보니 레이피어가 부러지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무기를 잃더라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스킬 청금석창을 사용해 청금석으로 만들어진 창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에.

그래서 무기를 잃은 그녀에게 기세 좋게 달려든 몬스터들은 다른 놈들과 똑같이 벌집이 되는 최후를 맞이하곤 했었다.

내가 이네스의 정보를 살피는 사이, 그녀 역시 가느다란 눈매 안의 푸른 눈동자로 나를 살피고 있었다.

잠시 후, 이네스의 시선이 옆에 있던 주선오와 니엘에게 향했다.

둘을 살피던 이네스가 작은 입을 열었다.

“주선오 씨는 몰라도 니엘까지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 말에 니엘이 조금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이네스야말로 한국에는 왜 온 거예요?”

니엘의 질문에 이네스가 무감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도 윤도아 씨를 따라서 간이 시험에 참여할 생각이니까요.”

역시나.

김지석이 내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내가 무어라 대꾸를 하기도 전에 이네스가 이어 말했다.

“그런데 그 전에 일단 윤도아 씨의 실력을 직접 보고 싶습니다.”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그에 발끈한 니엘이 나서며 물었다.

“뭐야, 지금 도아 언니 실력을 의심하는 거예요?”

나를 두둔하고자 한 이야기였지만 사실 니엘이 할 말은 아니었다.

이네스는 간이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이라도 있었지만, 니엘이 처음 한국에 왔던 이유는 그저 순수하게 나와 주선오에 대한 호기심일 뿐이었으니까.

이네스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의심이 아닙니다. 확인을 하려는 것이죠. 명성은 자자하지만 제 눈으로 직접 윤도아 씨의 능력을 본 적은 없으니까요.”

“…그럼 도아 씨와 함께 게이트에 가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이번에는 김지석이 물었다.

이네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김지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굳이 게이트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지요. 저는 프랑스 각성자예요. 다른 나라의 게이트에 함부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 말에 니엘이 움찔하며 이네스를 쏘아보았다.

흥미로 한국에 와서 우리와 함께 게이트에 입장했던 니엘이었다.

어찌 보면 이네스의 말은 니엘을 저격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본인에게 그런 의사는 없었겠지만.

“…그러면 어떻게 보시겠다는 겁니까?”

이번에는 주선오가 물었다. 질문은 던졌지만 그는 왠지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네스가 주선오를 보며 대답했다.

“물론 직접 칼을 부딪혀보는 것보다 더 정확한 건 없죠.”

“…잠깐만요. 그건 안 됩니다. 간이 시험을 앞두고 그게 대체 무슨….”

김지석이 반대했지만 이네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당연히 시험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할 겁니다. 상대를 다치게 하는 일도 없을 거고요. 정말 단순하게 상대방의 실력을 파악하려는 것뿐이니까요. 그리고 전 윤도아 씨에게 직접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만.”

이네스의 눈이 다시 내게 향했다.

그러자 김지석과 니엘이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주선오 역시 나를 보았지만 불안함이 섞인 눈빛은 아니었다. 그저 내 대답이 어떨지에 흥미를 가진 것 같았다.

“좋아요.”

내 흔쾌한 대답에 김지석과 니엘의 눈이 동그래졌다.

“언니! 굳이 그렇게 힘 뺄 필요가 뭐가 있어요. 차라리 내가 할게요!”

니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는 이네스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도아 언니는 두고 나랑 붙어요, 이네스!”

이네스의 차가운 눈빛이 니엘에게 향했다.

“싫습니다.”

“뭐, 뭐? 왜요?”

“말했듯이 저는 윤도아 씨의 실력을 알고 싶은 거지 니엘의 실력을 알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리고 사람한테 그렇게 손가락질을 하는 건 무례한 행동입니다만.”

이네스의 말에 니엘이 슥 손가락을 접었다.

나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니엘에게 손을 들어보였다.

“니엘, 앉아.”

내 말에 니엘은 잔뜩 궁시렁거리며 팔짱을 낀 채 자리에 앉았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주선오가 조용히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네스의 말대로 서로의 능력을 파악하는 것뿐이니까. 저도 이네스에 대해서는 기사로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직접 실력을 봐야 간이 시험을 함께 할 수 있을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내 이야기에 김지석과 니엘, 주선오 모두 의아함을 품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모두를 거절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내가 이네스와 함께 간이 시험을 치르려는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이었다.

그중 가장 크게 충격을 받은 건 니엘이었다.

그녀가 시무룩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같이 가겠다고 했을 때는 엄청 거절했으면서….”

나는 조금 못마땅한 얼굴로 니엘을 바라보았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사실 니엘만 아니었어도 이네스를 데려갈 필요는 없었다.

살짝 한숨을 내쉰 나는 이네스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오느라 지치셨을 테니까, 대련은 내일 하는 걸로 하죠.”

이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옆에 고이 개켜놓았던 하얀 코트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좋습니다. 그럼 안내는 누구한테 부탁하면 되죠?”

“…아.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김지석이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게 살짝 고개를 꾸벅였다.

“그럼 모셔다 드리고 오겠습니다.”

김지석과 이네스가 응접실을 나가자 주선오가 물었다.

“혹시 괜찮으시면 내일 저도 그 자리에 있어도 되겠습니까?”

주선오 역시 새로 만난 랭커의 실력이 궁금한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신 너희 단련장 좀 빌려도 될까?”

아파트의 지하에 개인 단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벙커가 있었지만 그곳에 다른 사람을 들일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혹시라도 건물에 충격이 갈지도 모르니 그곳은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행히 주선오는 흔쾌히 수락했다.

“얼마든지요.”

“나도 구경 가도 돼요?”

니엘이 슬쩍 우리의 시선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며 물었다.

니엘은 나와 함께 간이 시험에 함께 참여하기로 한 상태였다.

그러면 어차피 이네스와도 합을 맞춰야 할 터. 미리 그녀의 능력을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래. 와.”

“네! 교진한테 연락해야겠다.”

니엘은 금세 밝아진 목소리로 신이 나서 핸드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 * *

다음날, 주선오의 차를 얻어 타고 도착한 개의 이빨 무리 단련장에는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기자들이네요.”

주선오가 탐탁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각성자나 일반 사람들도 몇몇 섞여있는 것 같았지만 대부분이 기자들이었다.

아무래도 나와 이네스의 대련 소식이 퍼진 모양이었다.

“어차피 안까지 들어오지는 못할 겁니다. 앞에서 통제하도록 해뒀으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선오가 주차를 하는 사이 나는 그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체육관이 손상되면 배상해줄게.”

물론 그렇게 강하게 서로를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단련장을 빌려 쓰는 입장에서 이야기는 해 둬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주선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하면 돼요. 어차피 조만간 단련장을 더 보강할 생각이긴 했습니다. 그나저나 기자들이 저렇게 몰려 있으니 들어가는 게 쉽지 않겠네요.”

그가 성가시다는 얼굴로 체육관의 앞에서 서성이는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쪽문도 마찬가지려나?”

“음. 정문보다는 수가 적긴 할 것 같네요. 그럼 그쪽으로 가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자를 눌러 썼다.

주선오 역시 뒷좌석에 던져두었던 모자를 집어 머리에 쓰고는 차에서 내리려는데.

체육관 앞에 있던 기자들이 갑작스레 한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그들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니 김지석과 함께 도착한 이네스가 보였다.

“왔네요.”

“잘됐다. 지금 빨리 가야겠네.”

우리는 그 틈을 이용해 차에서 내려 체육관의 쪽문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곳에는 기자들이 없었다. 정문에 나타난 이네스의 인터뷰를 하러 모두가 몰려간 모양이었다.

체육관 안에는 개의 이빨 무리 단원 몇몇과 대련을 참관하러 온 각성자들이 있었다.

“도아 언니!”

2층의 의자에 앉아있던 니엘이 내게 손을 크게 흔들어보였다.

그 옆에는 니엘 마크 담당인 신교진과 혹시 모를 부상에 대비해 이리나가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건너편 2층에는 윤도빈과 조이가 앉아 있었다.

잠깐 윤도빈과 눈이 마주쳤지만 녀석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직도 화나 있나 보네.’

그리고 둘과 조금 떨어진 곳에 조용히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시결이 있었다.

이시결 역시 간이 시험에 참가할 것이기에 이네스의 능력을 봐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부른 것이었다.

같이 오려 했지만 주선오가 절대 이시결을 자신의 차에 태우지 않을 것 같았기에 그는 따로 이곳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이시결이 살짝 내 쪽을 바라보더니 씩 웃어보이고는 다시 책을 들여다보았다.

끼익.

그때 체육관의 정문이 열리더니 시끌벅적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이네스, 윤도아 각성자와 대련하게 된 소감이 어떻습니까!”

“윤도아 각성자는 아직 안 온 건가요?”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이어졌지만 이네스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체육관으로 들어섰다.

이네스와 함께 들어온 김지석은 잔뜩 지친 얼굴로 손짓했다.

개의 이빨 무리 단원들이 정문을 닫자 시끄러운 기자들의 목소리가 훨씬 작아졌다.

“왔네요.”

주선오가 이네스를 보며 말했다.

그녀는 역시나 어제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회색의 줄무늬 정장에 까만 옥스퍼드화.

전투를 하기에는 상당히 불편해 보이는 복장이었지만 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는 체육관의 중앙에서 만났다.

“무기는 사용하지 않는 걸로 하겠습니다. 대신.”

주선오의 뒤에 있던 한 각성자가 고무로 만들어진 검과 짤막한 단검을 내밀었다.

“이걸 사용해주시면 됩니다.”

나는 고무 단검을, 이네스는 고무 검을 받아들었다.

“괜찮습니까?”

주선오의 물음에 가볍게 고무 검을 휘둘러본 이네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나 역시 고무 단검을 휙휙 돌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곧 주선오와 김지석, 그리고 우리에게 고무 검을 전해준 각성자가 정문 쪽으로 물러났다.

준비운동 따위는 필요 없었다.

나는 단검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적당히 하죠.”

이네스가 왼손은 뒷짐을 진 채, 오른손에 든 고무 검으로 내 단검을 가볍게 툭 쳤다.

이네스는 근접전으로 제압하기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아무리 고무로 만들어진 검이라고 해도 초당 수십 번 이상의 찌르기를 당한다면 온몸에 멍이 들 터.

나는 이네스와 인사를 나눈 즉시 뒤로 도약했다.

훅!

하지만 이네스는 내가 간격을 벌리도록 그냥 두지 않았다.

그녀 역시 나를 따라 움직였다.

몇 걸음 걷지 않은 것 같았지만 꼭 공포 영화 속의 귀신이 다가오는 것처럼, 이네스는 금세 내게 접근했다.

평소의 배 이상으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고속 스킬을 사용한 것이었다.

여전히 왼손은 뒷짐을 진 채 다가온 이네스가 내게 고무 검을 가볍게 찔러왔다.

‘평범해.’

첫 공격이라 그런지 찌르기 스킬을 사용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이네스의 뒤로 이동했다.

‘블링크.’

사삭!

이네스의 고무 검이 허공을 찔렀다.

나는 곧바로 이네스의 다리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네스가 가볍게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훅!

내 단검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지만 그녀는 다시 땅을 밟지 않았다.

‘체공 스킬.’

이네스는 허공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몸을 돌리며 고무 검을 휘둘렀다.

‘마나 방패.’

나는 내 옆에 마나 방패를 시전했다.

촤르륵!

빠르게 생성된 마나 방패가 이네스가 휘두른 고무 검을 막아냈다.

캉!

묵직한 충돌음이 들려왔지만 방패가 깨지지는 않았다.

나는 곧바로 이네스의 허리를 향해 고무 단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이네스는 체공 상태로 아무런 전조 없이 뒤로 물러나버렸다.

나는 허공을 스친 단검을 회수하며 이네스를 바라보았다.

‘호버링.’

그녀의 전용 특성인 호버링 덕분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뒤로 물러난 채 잠시 바닥으로 내려선 이네스가 이번에는 고무 검으로 나를 겨누며 고속으로 다가왔다.

이네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번에는 찌르기 스킬을 사용했을 거라는 강한 느낌에 나는 즉시 앞쪽에 마나 방패를 만들어냈다.

‘마나 방패.’

촤르륵!

이네스의 고무 검이 마나 방패에 닿는 순간.

카가가가강!

마나 방패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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