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21화 (122/201)

제121화

‘나에 대한 예지인가?’

생각이 듬과 동시에.

쿵, 쿵, 쿵.

심장이 세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나라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자 나라가 곧 울음을 터트리며 내게 안겨들었다.

나는 그런 나라를 안아 토닥이며 권재경을 바라보았다.

권재경 역시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왠지 회귀 전 공포의 늑대 무리의 단장이었을 때의 그가 생각났다.

“…일단 들어오세요.”

내 말에 권재경이 나를 따라 거실로 들어왔다.

나는 울다 잠이 든 나라를 소파 위에 눕혀두고는 권재경에게 물었다.

“예지를 사용한 게 맞지요?”

“네.”

“그 내용이 저와 연관이 있었나요?”

권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내용을 선뜻 물을 수가 없었다.

나라의 예지는 1순위가 사용자인 나라의 신변에 위협이 생기는 경우.

그리고 사용자의 신변에 문제가 없을 때에는 2순위로 나라의 분석 스탯 범위 내에 있는 다른 인물의 신변에 문제가 있는 상황을 예지해준다.

내가 말을 멈추자 권재경이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간이 시험이라는 게 아무래도 처음이다 보니 저도 그렇고 다들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도아 씨에 대한 걱정을요. 그때 지난번 강릉 게이트에서 나라의 도움을 받아서 위험한 상황을 피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아. 그때 저수지에서….”

강릉의 저수지에서 있었던 게이트 브레이크 당시, 권재경과 안세인을 포함한 몇몇의 각성자들은 나라의 예지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만약 그 예지가 없었다면 모두들 그때 게이트가 브레이크를 일으키며 넘친 저수지의 물에 휩쓸렸을 터.

권재경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어 말했다.

“맞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이번에도 도움이 될 예지가 있을까 싶어서 실례지만 이 근처에 와서 나라에게 예지를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나를 따라 시험을 치겠다는 다른 각성자들을 말리느라 바쁘지 않았다면, 나 역시 나라에게 예지를 써 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아뇨. 저 같아도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나라가 예지의 대상이 될 인물을 특정할 수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에 대한 예지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이 주변에 있던 사람 중 나에게만 위험이 생길 확률이 크다는 뜻이었다.

만약 게이트가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미래였다면 이렇게 특정지어 나에 대한 예지가 뜰 확률은 굉장히 낮았다.

그랬다면 주변 인물 중 아무나, 어쩌면 아파트 보안 요원인 권선일에 대한 예지가 떴을 수도 있다.

‘게다가 나라는 가지 말라고 말했어.’

그렇다는 것은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내 신변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다는 것.

나는 잠시 망설였다.

괜히 나라의 예지를 들어서 오히려 마음이 불안해질지도 몰랐다.

‘아냐, 그래도 듣는게 좋아.’

나는 살짝 감았던 눈을 뜨고는 권재경에게 물었다.

“어떤 예지였나요?”

내 물음에 권재경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도아 씨가 간이 시험에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나왔습니다.”

“…돌아오지 못한다….”

나는 권재경의 말을 되뇌었다.

‘회귀 전의 각성자들과 같아.’

그때도 간이 시험에 참여했던 각성자들은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상황을 맞이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내 상태로도 클리어할 수 없는 게이트가 간이 시험으로 나타난다면 아무도 깰 수 없는 게이트였다.

하지만 분명 회귀 전, 간이 시험의 게이트는 클리어됐었다.

‘클리어는 되지만 나오지 못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상황인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생각에 잠겨 있는 와중에 권재경이 이어 말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해 드려야 할 것 같아서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의 예지는 기억 현상과 비슷할 것이다.

역시 내 행동에 따라 결정된 미래가 보여지는 것.

어쨌든 나는 시험에 참여할 것이고 나는 시험의 게이트에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지.’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지워냈다.

“걱정 마세요.”

나는 권재경에게 말했다.

“아저씨 말대로 강릉 게이트 브레이크 때 나라 예지를 듣고 다들 피하셨잖아요. 저도 돌아오지 못할 상황이 생긴다는 걸 알았으니까 조심하면 돼요.”

안색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권재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알려드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권재경은 잠이 든 나라를 안아들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말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나는 그에게 살짝 웃어보였다.

“걱정마세요.”

나는 둘을 배웅한 후 집으로 들어와서는 도빈이의 방을 바라보았다.

‘도빈이가 없어서 다행이었어.’

만약 윤도빈이 있을 때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면 도빈이는 분명히 어떻게 해서든 나를 못가게 막았을 것이다.

그때 거실 쪽에서 이시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도아 씨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군요.”

벽에 기대어 선 이시결이 팔짱을 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너라고 뭐 다를까.”

“흠.”

이시결이 장갑을 낀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꽤 기대됩니다.”

의외의 말이었다.

그의 앞을 지나던 내가 멈칫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기대가 된다고?”

이시결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단한 세계 1위 랭커가 돌아올 수 없는 시험이라니.”

그가 입을 가렸다.

하지만 그 뒤로 활짝 웃고 있는 입을 모두 감출 수는 없었다.

‘왜 저렇게 즐거운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시결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안위보다 내 발을 묶는 것이 무엇인지였다.

나는 그를 한 번 흘겨보고는 방으로 향했다.

뒤에서 이시결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대체 어떤 놈들이 안에 있을지 궁금하군요.”

나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며 코웃음을 쳤다.

‘뭐가 나오든 평소보다 더 주의를 기울이면 돼.’

그렇게 생각했었다.

* * *

[첫 번째 간이 시험이 시작됩니다.]

2022년 12월 31일.

세상은 상당히 침체되어 있었다.

첫 번째 간이 시험을 맞이한 이유도 있었지만 하늘의 곳곳에 생겨난 게이트의 탓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게이트를 동시에 보고 있으니까 기분이 묘하네.’

김지석은 하늘의 게이트들을 둘러보았다.

물론 땅에도 여러 개의 게이트들이 존재했지만 다른 지형지물에 가려 한 번에 볼 수 있는 게이트의 갯수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에는 장애물이 없었다.

특히 김지석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어차피 하늘에 있는 게이트의 앞에 닿을 수는 없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게이트의 수만 해도 수십 개.

그것들은 모두 간이 시험의 게이트였다.

다른 평범한 게이트들과는 다르게 간이 시험의 게이트는 투명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 때문에 햇빛이 가려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일렁이는 투명한 게이트를 통과해 떨어지는 햇빛은 꼭 물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별로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네.”

게이트를 통과해 떨어지는 햇빛을 받으며 안세인이 말했다.

평소같으면 웃으며 농담처럼 말을 했을 안세인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굳은 얼굴.

직접 간이 시험의 게이트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긴장이 되는 건 똑같은 모양이었다.

“…그렇네요.”

안세인의 말에 수긍한 김지석은 그녀를 따라 머리 위의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또 한 가지, 다른 게이트와 다른 점이 있었다.

일반 게이트는 평소에는 연기에 뒤덮여 있다가 각성자가 그 앞에 섰을 때에 연기의 중앙이 열리며 물결의 막 위로 안내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간이 시험의 게이트는 이미 중앙이 열려 있었고, 그곳의 투명한 물결막 위에 안내문이 떠 있었다.

김지석은 다시 한 번 중앙의 투명 막 위에 적힌 안내문을 읽었다.

[간이 시험 게이트]

[게이트 안의 시간은 바깥의 시간과 동일하게 흐릅니다.]

[하지만 생체의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이것까지는 다른 게이트의 안내문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 밑으로 떠 있는 알 수 없는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15:49:37]

[15:49:36]

[15:49:35]

“앞으로 열다섯 시간….”

함께 게이트를 바라보던 주선오 역시 그것이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뭐가 열다섯 시간인걸까.”

김지석의 중얼거림에 팔짱을 낀 채 게이트를 바라보던 이네스가 말했다.

“입장 마감 시간 같은 걸까요.”

“입장 마감 시간이요…?”

김지석이 되묻자 이네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껏 없던 현상이라서 이것저것 생각해보는 것 뿐입니다.”

“하긴. 게이트가 열리는 시간이라고 볼 수는 없겠네요. 지금도 입장이 가능한 것 같으니까.”

안세인이 수긍했다.

“근데 왜 굳이 다른 게이트에는 없던 타임어택이 있냐인데. 게다가 저 타임어택이 끝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도 의아하네요.”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만….”

주선오가 말을 흐렸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김지석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시간 안에 아무도 입장하지 않는다면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건 아닐까요?”

모두의 시선이 김지석에게 꽂혔다.

“어쩌면 저 시간 자체가 게이트가 브레이크를 일으키기 전까지의 시간일지도 모르고요.”

미간을 구긴채 팔짱을 낀 안세인이 말했다.

“흠. 사실 그게 가장 신빙성 있긴 한 것 같네요. 뭐 타임어택이 끝났습니다, 하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는 않으니.”

김지석은 마른침을 삼켰다.

만약 본인의 예상대로 저 시간이 게이트 브레이크까지의 시간이라면.

시간 안에 게이트를 클리어해야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지 못한다면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게이트들을 통해서 몬스터들이 이곳에 나타나게 될 터였다.

‘끔찍하네.’

김지석이 눈살을 찌푸리는 사이, 옥상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신교진과 니엘이 들어섰다.

“와. 아래 기자들 장난 아닌데요?”

기자들의 옥상 출입을 막았기에 위쪽은 쾌적했지만 건물의 아래쪽은 난리도 아니었다.

“운이 좋아서 이 정도로 끝난 건지 아니면 도아 누나가 아니라서 별로 취재 열기가 없었던 건지 모르겠네.”

신교진이 투덜거렸다.

김지석과 안세인, 이네스가 올라올 때에도 취재진은 인터뷰를 하나라도 따기 위해 굉장한 열정을 보였다.

특히 직접 간이 시험 게이트에 입장하는 이네스의 심경을 묻는 질문들이 폭주했었다.

하지만 이네스는 가볍게 그들의 질문을 묵살했다.

게이트에 입장하지 않는 주선오도 기자들에게 시달린 건 마찬가지였는지, 옥상에 도착한 그 역시 상당히 지쳐 있는 상태였다.

“도아 언니는 아직이에요?”

옥상을 두리번거리던 니엘이 물었다.

“네. 아직 안 오셨습니다.”

“흐음.”

니엘은 잠시 입술을 비죽였다.

평소 같았으면 시끄럽게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니엘이었지만 오늘은 말수가 꽤 적었다.

아무래도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도아 언니는 언제 오려나.”

니엘이 난간에 기대어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그렇게 아래를 내려다보던 니엘이 잠시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게 뭐…, 으악!”

비명을 지른 니엘이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니엘의 비명에 놀란 모두가 경계를 하며 그쪽을 바라보자, 건물 난간의 바깥에서 무언가 불쑥 튀어올랐다.

놀라 뒤로 물러나던 김지석의 앞에 착지한 것은 이시결이었다.

“…무슨….”

반사적으로 칼을 발동시켰던 주선오가 기가 막히다는 듯 이시결을 바라보았다.

가볍게 옷을 털어낸 이시결이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왜 그러죠?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놀란 듯 앞섶을 부여잡은 니엘이 이시결에게 버럭 외쳤다.

“미, 미친 거 아냐? 왜 거기서 나타나요?”

“왜라뇨.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보다 이게 더 흥미로울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만.”

이시결이 손끝에서 하얀 거미줄들을 털어내며 대답했다.

그는 손에서 뽑아낸 거미줄을 이용해 건물을 타고 올라온 것이었다.

“이 높이를 기어 올라왔다고요?”

니엘이 기가 찬 듯 되물었다.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500미터가 넘는 고층건물의 옥상이었다.

신교진 역시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죽고 싶으면 평범하게 죽는 걸 추천하는데요. 여기서 떨어져 죽으면 그걸 목격한 사람들은 또 무슨 죄입니까?”

“별로 그럴 마음은 없습니다만, 고려하도록 하죠.”

이시결의 무감각한 대답에 신교진이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허탈한 웃음을 내뱉은 안세인이 그에게 물었다.

“도아 씨는요?”

이시결이 창백한 손에 장갑을 끼더니 앞을 가리켰다.

김지석은 이시결의 손을 따라 옥상의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옥상 문이 열리고 윤도빈과 조이, 그리고 모두가 기다리던 간이 시험의 마지막 입장자인 윤도아가 옥상에 들어섰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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