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해체되는 기분은 끔찍했다.
수만 개의 칼날이 동시에 나를 잘게 도려내는 것 같은 고통.
오만의 그리폰의 칼날에 찔린 첫 번째 죽음은 굉장히 양호한 편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쿵, 쿵, 쿵.
심장이 거세게 뛰고 있었다.
두 번째 회귀이자 두 번째로 죽음을 겪어보았지만, 여전히 죽음의 감각은 소름끼치도록 낯설었다.
물론 그 감각이 내 모든 목숨을 쓰더라도 익숙해질 것 같지는 않았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누워있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 방.’
각성 기관의 이사인 김지석이 단련장과 함께 얻어준 아파트의 내가 사용하는 방이었다.
머리맡에는 고양이 모습의 우부가 몸을 동그랗게 만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푸우우우…. 푸우우우….”
우부의 곤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을 듣고 있자니 두 번째 회귀를 했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내가 원했던 시간은 박효진의 시험 대비용 방어구의 공개가 있던 날.
간이 시험의 이틀 전이었다.
나는 침대 위에 있던 핸드폰을 염력으로 끌어당겼다.
박효진으로부터의 메시지가 도착해있었다.
[연구소장 박효진입니다. 간이 시험 대비용 방어구가 완성됐으니 3시에 연구소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때와 똑같은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다시 핸드폰을 내려두었다.
“고양이 신의 가호.”
내 말에 반응해서 텅 비어있던 벽면에 글자들이 스르륵 떠올랐다.
[고양이 신의 가호]
[고양이의 목숨은 9개]
[2개의 목숨이 차감되었습니다.]
[남은 목숨은 7개입니다.]
오만의 그리폰에게 죽어 처음 회귀를 한 이후로 맞은 두 번째 회귀였다.
나라의 예지를 들은 순간부터 어느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두 번째 죽음을 겪고 목숨이 차감됨을 보고 있자니.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방심했어.’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간이 시험을 통과했다는 안내글에 마음을 놓은 것이 문제였다.
게이트를 나올 때까지 긴장을 놓지 말았어야했다.
그때문에 니엘과 이네스는 일격에 목숨을 잃었고 이시결 역시 치명상을 입은 채 공간의 일그러짐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바닥을 흐르던 피의 웅덩이가 아직도 선명했다.
첫 번째 회귀 전, 각성자들의 죽음을 수없이 보아왔지만 아무래도 그건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그래서 나 또한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렸다.
‘함께 입장하는 걸 허락하지 말았어야 했나.’
니엘이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절대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니엘과 이네스가 간이 시험의 게이트 안에서 영문도 모르는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죄책감이 내 속에서 울렁거리기 시작했을 때.
“푸우우우….”
다시 우부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시 그런 우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머리맡의 탁자에 있던 심연의 불꽃을 염력으로 끌어당겨 귀에 가져다대었다.
타닥, 타닥.
레부의 불꽃이 타오르는 편안한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 어느정도 진정이 된 나는 심연의 불꽃을 넣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미 지난 일이야.’
지금은 후회와 자책보다는, 그것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때였다.
나는 아직 몸에 남아있는 것 같은 죽음의 감각을 씻어내기위해 일단 방을 나섰다.
“주인, 일어나셨네요.”
모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실을 돌아보니 모부가 이시결과 함께 소파에 앉아 있었다.
황금빛 모래인형을 보자 다시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시결은 평소와 다름없이 거실의 소파에 앉은 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번만큼은 이시결의 나를 죽게 두지 않겠다는 괴상한 집착에 고마워해야할 따름이었다.
이시결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니엘, 이네스와 다르지않게 영문을 모른 채 죽게 됐을 터.
그랬다면 지금처럼 대책을 세울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실 말씀이라도?”
이시결이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물었다.
“아냐.”
나는 즉시 고개를 돌리고 욕실로 이동했다.
뒤에서 그의 시선이 나를 쫓았지만 나는 애써 그 시선을 무시했다.
식은땀과 함께 모든 감정을 씻어낸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서고지기를 불렀다.
‘서고지기.’
<말씀하시지요.>
서고지기의 묵직한 저음이 울려왔다.
‘그림 리퍼에 대해서 얘기해줄 수 있어?’
<그림 리퍼, 말씀이십니까?>
서고지기가 되물었다.
‘그래. 설명해줄 수 없어?’
서고지기에게는 서고에 있는 모든 책들만큼 방대한 양의 지식이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제약이 있었고 그 제약에 걸리면 서고지기가 알고 있는 정보라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들을 수 없었다.
서고지기의 되물음에 그림 리퍼에 대한 이야기도 아직 내가 들을 수 없는 것인가 싶었지만.
<아뇨, 아닙니다. 설명해드릴 수 있습니다.>
다행히 그림 리퍼에 대한 제한은 없는 모양이었다.
서고지기가 곧바로 그림 리퍼에 대한 내용을 낭독했다.
<그림 리퍼. 목숨을 수확하는 사명을 가진 몬스터로 스켈레톤의 형태와 닮아있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부서져도 회복이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그림 리퍼가 시간의 신 크로노스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크로노스에게서 태어났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렇습니다. 크노로스가 자신의 낫을 벼리다가 흩뿌려진 쇳가루가 또 다른 낫이 되었고, 그 낫의 사념이 실체화된 것이 바로 그림 리퍼이지요.>
그제야 나는 왜 그림 리퍼가 아무리 부서져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렇기에 그림리퍼가 완벽하게 소멸하지 않는 한, 낫이 멀쩡하다면 아무리 부서져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간이 시험에서 그림 리퍼의 낫은 놈이 소멸했음에도 게이트와 함께 각성자들을 베어냈다.
나는 서고지기에게 물었다.
‘놈이 완벽하게 소멸한다면?’
<그림 리퍼가 완벽하게 소멸한다면 낫에는 잠시동안 그림 리퍼의 사념이 남게 됩니다. 그 사념이 사라지기 전까지, 낫은 사념의 의지에 의해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념이 사라진 이후에는 그저 보통의 낫으로 변하게 되지요.>
‘…그렇군.’
이 사실만 알고 있었어도 간이 시험의 게이트 안에서 놈의 낫에 당하는 일은 없었을텐데.
‘그럼 놈을 없애는 방법은?’
회귀 전처럼 일그러진 공간 안에 놈을 집어넣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지만 그건 너무 위험했다.
여차하면 우리까지 휘말릴 위험이 있으니.
그것보다 더 안전한 방법이 필요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꽃으로 태우거나 그림 리퍼가 있는 공간 자체를 없애는 것으로 그림 리퍼를 없앨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태우는 불꽃이라면.
사용해보지는 않았지만 심연의 불꽃이라면 그림 리퍼를 태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이상하군요.>
서고지기가 다시 의문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분명 그림 리퍼에 대한 항목은 조금 전까지만해도 주인에게 말씀드릴 수 없는 정보였습니다. 헌데 이상하게도 조금 전, 그 제한이 풀렸단 말이지요.>
‘제한이 풀렸다고?’
나는 서고지기의 말을 반복했다.
<그렇습니다.>
제한이 풀린 것이 조금 전이라면.
분명 그 원인은 나의 회귀일 것이다.
<주인의 무언가가 바뀌었군요.>
내 생각을 읽은듯한 서고지기의 말에 나는 괜히 무언가 꺼림칙해졌다. 그래서 곧바로 서고지기와의 대화를 끝냈다.
하지만 그덕에 그림 리퍼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서고지기가 나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보에 대한 범위에 대한 것도 추측할 수 있었다.
서고지기는 내가 알기에 이르다고 판단이 되는 정보는 제공할 수 없다고 했었다.
그 당시, 그 기준을 물었을 때는 말해줄 수 없다고 했지만 조금 전의 상황으로 보아 그 기준은 아마도 이것일 가능성이 컸다.
‘나의 인지와 내가 있는 시간.’
회귀 전 나는 첫 번째 시험을 겪었지만 서고지기는 첫 번째 시험에 대한 정보는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곳에서 오만의 그리폰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첫 번째 시험은 아직 먼 후에 일어날 일이었다.
간이 시험을 이틀 앞둔 지금.
간이 시험에서는 그림 리퍼가 등장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몰랐기에 그림 리퍼에 대한 항목의 열람이 불가능했었다.
하지만 조금 전의 내 회귀로 인해 정보 제공이 가능해졌다.
이 두 가지 상황으로 보아 내가 정보를 제공받고 싶은 대상에 대해 알고 있어야하며, 그 대상이 나타나는 시간대에 내가 있어야만 그 정보의 제공이 가능한 것 같았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면.
서고지기는 내가 회귀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을지도 모른다.
서고지기는 정보 제공의 제한 조건을 알고 있다. 그리고 조금전까지 막혀있던 정보가 갑작스럽게 제공이 가능해졌다.
그것으로 간이 시험에서 내가 그림 리퍼를 만났다는 것을 추측할 수도 있다.
‘별로 상관은 없지만.’
어차피 서고지기는 서고의 주인인 나와 밖에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서고지기가 다른 각성자에게 내가 회귀를 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탐지로 닫힌 문 앞을 보니 이시결이었다.
“윤도아 씨. 게이트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이시결의 말에 나는 방에 걸어둔 시계의 시간을 살폈다.
어느새 2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나는 문으로 다가가 문을 벌컥 열며 말했다.
“안 돼.”
내 말에 이시결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왜죠?”
“연구소에 가야해.”
나는 그때와 똑같이 게이트에 가려던 이시결을 붙잡았다.
“연구소요?”
이시결이 그닥 탐탁치않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를 무시한 채 도빈이의 방으로 향했다.
도빈이에게 기관의 연구소에 다녀온다고 말했지만 아직 나에게 화가 나있던 도빈이는 역시나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이시결의 깐족거림에 화가 난 도빈이가 방 안에서 무언가를 후려치는 것까지.
모든 것이 이전과 같게 흘러갔다.
그리고 도착한 기관의 연구소 앞에서.
“도아 언니!”
뒤에서 니엘의 목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번에는 니엘을 피하지 는 않았다.
대신 보이지 않는 손을 만들어 나를 끌어안으려는 니엘을 막아냈다.
“으악! 뭐야, 이거!”
보이지 않는 손에 막혀 내게 달려들지 못한 니엘이 잔뜩 투덜거렸다.
나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첫 번째 회귀 전에는 그저 도빈이를 죽인 원수의 심복일 뿐인 그녀였다. 그랬기에 내 손으로 직접 그녀를 죽였음에도 아무런 감각이 없었지만.
이번 회귀 전에 니엘이 죽는 것을 보았을 때는 꽤 충격이 컸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살아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나는 니엘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도아 언니?”
의외의 행동이었는지 니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니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마침 앞에서 이네스가 다가왔다.
이네스 역시 평소와 같은 멀끔한 정장차림의 모습이었다.
나는 안도하며 이네스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사실 둘을 입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상황이었지만.
‘그러려면 더 전으로 회귀했어야 했어.’
지금은 이미 둘에게 첫 번째 시험을 함께 가자는 이야기를 해둔 상태였다.
게다가 어차피 그림 리퍼를 잡으려면 최대한 파수꾼들과 함께 놈의 낫이 있는 곳으로 가야했다.
이번에는 간이 시험의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이들에게 몇가지 당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연구소 안으로 이동했다.
박효진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고, 방어구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의 효과에 대한 시연까지.
이시결이 다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이전과 똑같이 상황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다.
‘방어구의 효과는 입증해야하니까.’
파수꾼과의 전투에서 이네스가 다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이 웬디고의 방어구 덕분이었다.
이전과 같이 방어구의 테스트가 끝난 후, 우리는 박효진에게 방어구를 한 세트 씩 받아 연구소 밖으로 나왔다.
나는 니엘과 이네스에게 이틀 뒤에 보자는 말 대신 그들을 붙잡았다.
“잠깐 할 얘기가 있어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