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화
내 행동이 뜻밖이었는지 모두가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죽하면 이시결까지 저런 표정을 지었을까.
“흐하하, 재미있군. 농담은 그쯤하고 이제 건네주지 않겠나?”
그림 리퍼가 웃음을 터트리며 한 발 더 내게 다가섰다.
하지만 나는 낫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이걸 주면 네가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농담이 심하군, 자네. 내가 내 형체를 되찾게 해준 은인들한테 무슨 짓을 한다고 그러는겐가?”
그림 리퍼가 가느다란 손가락 뼈로 잘려나간 두개골 안 쪽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너 그림 리퍼잖아.”
그림 리퍼가 두개골을 긁적이던 뼈를 멈추었다.
그리고는 뻥 뚫린 한쪽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체를 간파당한 것 때문인지 놈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림 리퍼…. 역시 그렇군요.”
이시결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뒤이어 그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니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그림 리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그림 리퍼가 여기에 묶여있던 것도 참 이상하단 말야. 너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휘하에 있잖아? 저 놈들이 멋대로 너를 묶어두고 감시한거라면 크로노스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텐데.”
나는 파수꾼 넷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내 보이지 않는 손에 갇힌 레버넌트와 이시결의 마리오네트가 된 구울, 니엘과 손을 잡고 있는 밴시, 이네스에게 패배한 듀라한까지.
사실 그들이 그림 리퍼에게 이렇게까지 공격성을 드러내보인다는 것은 놈에게 부당한 일을 당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림 리퍼에게 당할 부당한 일이라면 목숨을 수확당하는 것 뿐일테고.
크로노스가 이런 파수꾼들을 그냥 두었다는 건 한 가지 이유밖에 추측할 수 없었다.
“네가 크로노스의 눈 밖에 난건가?”
그렇기에 크로노스도 그림 리퍼와 파수꾼들에게 관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림 리퍼가 머리에 닿아있던 팔을 슥 내렸다.
그리고는 나를 응시하며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시끄럽다. 별볼일 없는 인간 주제에 나에 대해 멋대로 추측하려들다니.”
저런 반응을 보니 내가 예측한 것이 어느정도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이상의 일은 알고싶지도 알 필요도 없었다.
어쨌든 나는 놈을 소멸시키고 이 게이트를 닫으면 그만.
“장난은 여기까지다. 내 낫을 내놓아라!”
그림 리퍼가 딱딱해진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쯧 혀를 차고는 말했다.
“몇 번을 말하게 해. 싫다니까.”
그러자 놈이 뼈를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는 이내.
“네 이놈! 어디까지 기어오를 수 있는지 두고 보자! 어서 그걸 내놓지 못할까! 네놈들의 목숨을 모두 수확해버릴 것이다!”
놈이 드디어 속내를 드러내며 내게 펄쩍 달려들었다.
나는 낫과 함께 놈을 피해 일행이 있는 쪽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동시에 레버넌트를 가두었던 보이지 않는 손을 없애자.
피융!
기다렸다는 듯 레버넌트가 그림 리퍼에게 돌진했다.
그것을 신호로 이시결 역시 구울에게 걸려있던 마리오네트 스킬을 풀었다.
“그어어!”
구울이 레버넌트를 따라 그림 리퍼에게 달려갔다.
뒤이어 니엘의 손을 놓은 밴시도 놈을 향해 날아 올랐다.
“앗, 밴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 위에 올라탄 듀라한이 부서진 랜스를 고쳐쥐었다.
“이놈들!”
분노한 그림 리퍼의 목소리가 공간에 가득 울려퍼졌다.
하지만 낫이 없는 그림 리퍼는 스켈레톤과 비슷한 정도의 몬스터였다.
구울이 그림 리퍼의 코앞에서 하얀 섬광을 내비치며 표범으로 변했다.
그 빛에 주춤한 그림 리퍼에게.
“아아아아아!”
밴시의 비명이 관통했다.
놈이 멈춰있는 사이, 레버넌트가 놈의 오른팔뼈를 물었고 구울은 왼다리뼈를 물었다.
그리고 그런 놈을 향해 듀라한이 돌진했다.
다그닥, 다그닥!
듀라한의 부서진 랜스가 정확하게 그림 리퍼의 허리뼈를 가격했다.
우득!
콰지직!
“이 버러지같은 놈들이!”
허리가 동강난 그림 리퍼가 버럭 소리쳤다.
레버넌트와 구울은 놈의 상체와 하체를 문 채 그 뼈들을 탈탈 털어 분리시키기 시작했다.
“놓지 못할까! 낫! 내 낫을 내놓아라!”
그림 리퍼의 외침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나는 빨리 놈을 정리하기위해 심연의 불꽃을 꺼내들었다.
“윤도아 씨.”
그때 내게 다가온 이시결이 나를 불렀다.
내가 그를 돌아보자 그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거, 정보를 볼 수 있습니까?”
이시결이 내 뒤에 떠 있는 그림 리퍼의 낫을 가리키며 물었다.
“정보?”
“여우 구슬로 말입니다.”
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왜?”
내가 설명을 요하는 눈빛으로 그를 보자 그가 이어 말했다.
“아이템 도감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림 리퍼의 낫이라는 아이템을요.”
서고지기에게도 듣긴 했었다.
그림 리퍼가 소멸하고 낫에 남아있는 사념이 사라진다면 보통의 낫이 된다고.
하지만 보통의 낫은 아이템으로써의 이용 가치가 전혀 없었다.
사실 그저 투박한 생김새의 낫이었다.
특출나게 좋아보이지도 않았고 평범한 모습의 낫.
하지만 이시결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더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미심쩍은 표정으로 낫을 살폈다.
‘정보 확인.’
[그림 리퍼의 낫]
여우 구슬로 볼 수 있는 정보는 그게 끝이었다.
“별 거 없는데.”
그러자 이시결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습니까? 아이템 도감에는 그게 EX급의 아이템이라고 써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멈칫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EX급?”
몇 번을 다시 살펴봐도 낫은 그저 그림 리퍼의 낫이라고 뜰 뿐이었다.
그 앞에는 어떠한 급도 붙어있지 않았다.
게다가 서고지기 또한 보통의 낫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서고지기의 말과 아이템 도감이 다른 것이라면 무언가 오류가 생긴 것일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라면 이걸 EX급의 아이템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가?’
“성능이 뭔데?”
아이템 도감이라면 분명 그림 리퍼의 낫에 대해 상세한 설명이 적혀있었을 것이다.
“공간을 가르는 낫입니다.”
공간을 가르는 것은 그림 리퍼의 능력이었다.
즉, 그림 리퍼와 낫이 함께 존재해야만 가능한 것.
이시결이 곧바로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 EX급의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는 특정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내 추측과 일치했다.
그냥 그림 리퍼를 소멸시킨다면 평범한 낫이 되지만 어떠한 조건을 만족한다면 EX급의 아이템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설레는 기분으로 그에게 물었다.
“어떤?”
“그림 리퍼를 소멸시키지않고 낫 안에 가두어야한다는 조건이요.”
“낫 안에 가둔다고?”
이시결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것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무언가 정보가 보이는지 여쭤본 겁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그림 리퍼를 바라보았다.
놈은 레버넌트와 구울에 의해 대부분 부서진 상태였다.
그리고 놈의 머리는 듀라한의 랜스에 끼워져있었다.
“이런 버러지들이! 당장 내 몸을 돌려놓지 못할까!”
그림 리퍼가 계속해서 화를 내고 있었지만 이미 놈의 몸은 해체된 상태.
심지어 듀라한의 말조차 그의 뼈를 밟고 지나다니고 있었다.
나는 일단 놈의 낫을 다른 사람이 사용했을 때에도 공간을 가를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았다.
보이지 않는 손을 만들어 그림 리퍼의 낫을 들어올린 후.
슥.
가볍게 낫을 휘두르자.
사악.
그림 리퍼의 낫이 가볍게 허공을 갈랐다.
딱히 변화는 없었지만 무언가 잘려나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놈! 내 낫을 가만두지 못할까! 너같은 놈이 함부로 휘두를 수 있는 게 아니다!”
듀라한의 랜스에 꽂힌 그림 리퍼의 두개골이 내게 버럭 외쳤다.
왠지 놈은 내가 낫을 휘두른 것에 꽤 당황한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낫을 들어올렸다.
조금 전에는 아무런 생각없이 낫을 휘둘렀기에 평범한 낫의 휘두름과 다를 바 없었다.
‘저번에 놈이 했던대로라면.’
나는 지난번 그림 리퍼가 했던대로 공간을 갈라보기로 했다.
혹시 모르니 목표는 우리와 멀리 떨어진 허공으로 정해두었다.
나는 그곳을 바라보며 낫을 크게 휘둘렀다.
사악!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가 휘두른 낫의 날 일부가 사라졌고 내가 목표로 했던 먼 쪽의 허공에 사라진 낫의 일부가 나타난 것.
‘그림 리퍼가 휘둘렀을 때와 같아!’
“오.”
이시결 역시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방금 뭐에요? 날이 왜 저기서 튀어나와요?”
“낫의 능력인건가요?”
니엘과 이네스 역시 신기한 듯 그림 리퍼의 낫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림 리퍼는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 그만 두지 못할까! 내 낫이다! 내 것이야! 함부로 사용하지 말란 말이다!”
놈의 목소리에 담긴 것은 낫을 빼앗겼다는 분노가 아니었다.
‘오히려 겁을 먹은 것 같은데?’
이시결도 그것을 느꼈는지 가만히 턱을 만지작거리며 그림 리퍼를 바라보았다.
나는 허공을 갈랐던 낫을 다시 뽑아내었다.
그러자 멀리 떨어져있던 낫의 날이 다시 낫으로 돌아와 붙듯 회복되었다.
놈이 낫에 집착을 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내가 낫을 휘두르자 놈은 분노가 아닌 두려움을 내비쳤다.
본인의 손에 들려있을 때와 남의 손에 들려있을 때의 차이점.
‘…그건…!’
순간 어떠한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베어내세요.”
동시에 이시결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역시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았다.
나는 그림 리퍼의 두개골을 보며 낫을 들어올렸다.
‘남의 손에 있음을 두려워 할 이유는 하나.’
“머, 멈춰라! 내 낫을 가만 두지 못할까!”
그림 리퍼가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나는 놈의 비명을 무시한 채 낫을 내리그었다.
사악!
본인이 낫을 들고 있으면서 본인을 해할 일은 없었다.
특히 그림 리퍼같은 경우, 놈들은 그 낫으로 목숨을 수확하는 것이 사명인 놈들.
그런데 그런 낫으로 자신의 목숨을 수확한다?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놈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리라.
‘본인도 낫에게 해를 입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놈을 낫에 가두는 방법일 터.
그림 리퍼의 머리 위에서 튀어나온 낫의 날이 가볍게 두개골을 그었다.
서걱!
놈의 두개골이 듀라한의 랜스와 함께 부드럽게 잘려나갔다.
“…끄…. 끄윽….”
바닥으로 떨어진 그림 리퍼의 두개골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레버넌트와 구울에게 들려있던 모든 뼈들도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그락, 달그락!
“으, 으아아아아악!”
동시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들고 있던 낫 역시 거세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낫을 놓칠세라 보이지 않는 손에 더욱 힘을 주어 낫을 붙잡았다.
우우우우웅!
거세게 진동하던 그림 리퍼의 뼈와 낫들이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촤르륵!
그림 리퍼의 모든 뼛조각들이 내게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
이시결이 빠르게 손에서 거미줄들을 뽑아내어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뼛조각들은 내 앞에 있던 낫으로 흡수될 뿐이었다.
촤라라락!
우웅!
그림 리퍼의 뼈를 흡수하는 낫이 끊임없이 진동했다.
“끄아아악, 이놈들! 용서하지 않겠다! 으아아악!”
마지막으로 비명을 지르며 날아온 놈의 두개골이 낫 안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우뚝.
낫의 진동이 멈추었다.
“…방금….”
멍하게 낫을 바라보던 니엘이 중얼거렸다.
“흡수가 된 건가요?”
잠시 눈을 깜빡이던 이네스가 뒤이어 물었다.
“그런 것 같군요.”
이시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림 리퍼를 흡수한 낫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이시결의 말대로 EX급의 아이템 그림 리퍼의 낫이 된 건지 확인하기 위해 여우 구슬로 낫의 정보를 살폈다.
‘정보 확인.’
[EX급 아이템 그림 리퍼의 낫]
[공간을 가르는 그림 리퍼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정말이었다.
놈을 낫에 가두었더니 EX급의 아이템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다시 확인을 위해 먼 허공을 향해 낫을 휘둘렀다.
사악!
역시 놈이 있을때와 마찬가지로 공간이 베어졌다.
“용서하지 않겠다!”
그때 어디선가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