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30화 (131/201)

제130화

나는 문을 열어준 윤도빈에게 들고 있던 낫을 내밀었다.

“자, 선물.”

윤도빈은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나는 별다른 대답없이 들고 있던 낫을 윤도빈의 손에 쥐어주었다.

“…갑자기 왠 낫이야?”

얼결에 낫을 받아든 윤도빈이 내 뒤를 쫓으며 물었다.

“게이트에서 주웠어.”

“뭐?”

윤도빈이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뒤따라 들어온 이시결이 덧붙였다.

“거기에 제 지분도 있다는 건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탐탁치않았지만 그 말을 흘려넘겼다. 그가 말해준 아이템 도감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저런 아이템이 있는지도 몰랐을테니까.

윤도빈이 의아한 표정으로 이시결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입니까?”

되묻는 도빈이에게 이시결은 씩 웃어보이고는 외투를 벗었다.

“윤도아 씨에게 물어보십시오. 저는 좀 피곤해서 씻고 쉬어야겠습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버렸다.

윤도빈이 나를 바라보며 설명을 요하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나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였다.

‘누구 대신 설명해줄 사람 없나.’

작게 한숨을 내쉬고 설명을 하려는데.

벌컥!

반쯤 열려있던 방문을 비집고 우부가 튀어나왔다.

“푸우, 주인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손을 만들어 바닥을 박차고 내게 뛰어드는 우부를 막아냈다.

“푸웁!”

보이지 않는 손에 들이받은 우부가 물공처럼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쿵!

묵직한 울림이 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우부, 그렇게 갑자기 달려들지 말라고 했을텐데.”

하지만 우부가 내 말을 새겨들을 새도 없이 레부와 모부가 쪼르르 달려들었다.

“주인! 오셨습니까!”

“오셨군요, 주인.”

뒤이어 빠르게 몸을 일으킨 우부가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푸우, 주인! 주인이 우부 버린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휴, 그러게 말입니다. 갑자기 모래의 심장 속에서 억지로 끄집어내지길래 전 또 주인이 저한테 심통을 부리는건가 했다고요.”

“쿄, 간이 시험의 게이트에 저희가 입장하지 못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돌아오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쿄쿄쿄!”

슬라임들은 정신이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말을 쏟아냈다.

간이 시험의 게이트에 입장하지 못하고 떨어져나간 것은 녀석들에게도 놀랄만한 경험인 듯 했다.

하지만 영 시끄러웠다.

나는 입술 앞에 검지를 세우며 미간을 찌푸렸다.

“조용히.”

그러자 세 슬라임이 단번에 입을 다물더니 나란히 선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을 보자니 피식 웃음이 났다.

“푸푸푸.”

내가 웃자 우부가 또 좋다고 따라 웃었다.

그에 긴장을 푼듯한 레부가 윤도빈이 들고있는 낫을 바라보았다.

레부의 눈이 동그래졌다.

“쿄? 저건….”

레부가 후다닥 윤도빈에게 다가가더니 양손을 슥 내밀었다.

“쿄오, 도빈 님. 제가 그 낫을 잠시 봐도 되겠습니까?”

간절한 부탁에 윤도빈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낫을 건넸다.

그러자 레부가 감탄하며 낫을 어루만졌다.

“쿄, 이, 이건 그림 리퍼의 낫이 아닙니까!”

역시 전 아이템 보부상 레부는 그림 리퍼의 낫을 알아보았다.

“그림 리퍼의 낫?”

윤도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푸우? 그림 리퍼의 낫?”

우부가 도빈이의 말을 따라하며 레부의 발 밑을 맴돌았다.

하지만 레부는 둘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낫을 보며 감탄을 연발할 뿐이었다.

“쿄, 쿄오…. 주인 대체 이런걸 어디서….”

<이놈! 당장 그 더러운 손을 떼지 못할까!>

갑자기 들려온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레부의 젤리가 파르르 떨렸다.

“푸우!”

놀란건 우부도 마찬가지였다.

우부는 펄쩍 뛰어올라 윤도빈의 품에 안겼다.

“컥!”

거대한 물덩어리에 맞은 윤도빈은 목소리에 놀랄틈도 없이 가슴을 부여잡았다.

“쿄, 쿄오. 노, 놀랐습니다.”

레부가 그림 리퍼의 낫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뭐야? 낫이 말한거야?”

윤도빈이 찌푸린 얼굴로 가슴을 문지르며 물었다.

“맞아. 좀 시끄럽긴 한데 그래도 그냥저냥 쓸만하거든.”

<뭐, 뭣? 그냥저냥이라고? 이래뵈도 공간을 베어낼 수 있는 낫이다! 그냥저냥이 아니고 아주 유용하고 아주 귀한 몸이다!>

그림 리퍼가 그새 또 짧아진 말투로 외쳤다.

내가 슥 낫을 붙잡자 놈이 금세 말을 바꾸었다.

<아니, 귀한 능력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귀한만큼 좀 귀하게 여겨주십사하고 해본 말이었습니다. 흐하하하.>

나는 잠시 싸늘하게 낫을 바라보다가 혀를 차고는 손을 거두었다.

“공간을 베어내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윤도빈의 물음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레부를 돌아보았다.

녀석은 반짝이는 눈으로 그림 리퍼의 낫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됐다.’

나 대신 설명해줄 아이템 보부상이 이곳에 있었다.

나는 레부와 낫을 가리켰다.

“레부랑 이 낫이 알아서 설명해줄거야. 밑에 벙커 가서 연습 좀 해봐.”

“쿄, 쿄오…. EX급 아이템이라니…. 쿄오….”

레부는 내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 듯 그림 리퍼의 낫을 소중히 쓰다듬을 뿐이었다.

<자, 잠깐! 지금 저를 이 인간에게 넘기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림 리퍼가 당황하며 물었다.

“그래. 나보다는 쟤가 더 잘 써줄 수 있을 거야.”

능력 자체는 유용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암살에 특화된 나는 저렇게 큰 무기를 다루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반면 도빈이는 애초에 낫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간을 베는 그림 리퍼의 낫이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게이트를 깰 수 있을 터.

‘도빈이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난 안심이니까.’

나는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도빈이를 돌아보았다.

“참, 혹시라도 저게 까불면 부러트려버려.”

“어?”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러트리라니요!>

나는 그림 리퍼의 비명을 뒤로 하고 방의 문을 닫아버렸다.

바깥에서 시끌벅적한 목소리들이 들려왔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한 채 침대 위로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좀 살 것 같네.’

두 번째 회귀를 하고 나름 편안하게 간이 시험을 클리어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신경이 곤두서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렇게 푹신한 침대 위에 눕자니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긴 하지만.’

솔직히 화가 났다.

고작 이정도의 시험에서 목숨을 하나 잃었다는 것이.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목숨을 잃지 않고도 깰 수 있었을 텐데.

정식 시험이 몇 개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번에 목숨을 잃은 것은 타격이 클지도 몰랐다.

아무리 회귀를 했다고 해도 내가 각성 전에 있었던 일들을 모조리 알지는 못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 내 목숨을 위협할지는 모르겠지만.

‘첫 번째 시험 전까지는 더 이상 목숨을 잃어서는 안 돼.’

* * *

[첫 번째 간이 시험, 게이트가 열린지 10시간 만에 클리어]

[각성자들, 시험의 게이트에서 무사귀환 해]

[간이 시험 클리어의 주역은? 역시 윤도아 각성자]

[변함없는 랭킹 1위 각성자 윤도아, 한계란 존재하지 않는가]

2023년 1월 1일.

새해 첫 날,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것은 첫 번째 간이 시험의 클리어였다.

어느 매체든 간이 시험과 시험에 참여했던 각성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고 길거리에서도 온통 그 이야기 뿐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윤도아가 있었다.

함께 시험에 입장했던 니엘과 이네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간이 시험을 쉽게 클리어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윤도아의 공이라는 것.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주선오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인터뷰 때 보았던 윤도아의 미묘한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게이트 안에서 무언가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때 주선오의 후각에 몇 번 접해본 미약한 체향이 잡혔다.

순식간에 기분이 가라앉은 주선오가 서늘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어라. 주선오 씨 아닌가요?”

기분 나쁜 미소를 띠고 있는 이시결이었다.

평소의 주선오라면 절대 그의 인사에 대꾸하지 않았을 터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오히려 잘 만났다.’

주선오는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시결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주선오를 바라보았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주선오의 부름에 이시결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장갑을 낀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한테 하시는 말씀인가요?”

“지금 여기에 그쪽 말고 아무도 없어.”

주선오가 험악한 표정으로 이시결을 바라보았다.

이시결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주선오 씨가 저랑 대화를 하려고 한다는게 놀라울 다름이네요. 뭐, 좋습니다. 무슨 대화를 나누고 싶으십니까?”

빈정거림이 가득 담긴 말투.

주선오는 애써 화를 가라앉히며 물었다.

“간이 시험때 혹시 무슨 일 있었어?”

“간이 시험이요?”

“그래.”

이시결은 잠시 팔짱을 낀 채 주선오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있었던 일은 니엘이나 이네스가 인터뷰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저한테 따로 물어보시는 이유가?”

주선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시결의 말대로 이미 간이 시험에서 있었던 일 대부분은 니엘과 이네스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간이 시험에 나타난 메인 몬스터는 그림 리퍼.

놈의 뼛조각을 지키던 파수꾼들이 있었지만 안내자는 그림 리퍼였고, 놈이 안내자인 동시에 없애야 할 몬스터였던 것이다.

결국 모든 뼛조각들이 합쳐진 그림 리퍼는 쇠사슬에 묶인 자신의 낫을 풀어주기를 원했지만.

그 낫을 윤도아가 가로챘고 낫에 그림 리퍼를 가두자 간이 시험이 종료된 것.

‘완벽할 정도로 깔끔했어.’

그렇기에 윤도아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주선오를 빤히 바라보던 이시결이 말했다.

“그리고 그런걸 물어보려면 예의를 좀 갖춰야 하는 것 아닙니까?”

주선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그 표정에 이시결이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가느다랗게 휘어지는 두 눈을 보며 주선오는 심히 기분이 나빠졌다.

주선오가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곧 이시결이 손을 내리고는 다시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그러다가 한 대 치시겠습니다. 농담이니 주먹 좀 푸시지요. 궁금한 부분을 정확히 물어봐주시면 저도 최대한 아는 한도 내에서 대답해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주선오는 기가 찬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정말 상대하기 싫은 놈이었다.

그래도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얘기를 해야만 했다.

주선오는 까득 입술을 깨물고는 다시 이시결을 바라보았다.

“인터뷰에 없었던 부분들.”

“흠.”

이시결은 잠시 턱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럼 제 입장에서 겪었던 일들을 말씀드리면 되겠군요. 게이트에 입장했을 때 모두가 흩어졌다는 건 아시겠죠. 저는 구울을 만났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여러 동물의 모습으로 변신을 하고 섬광 마법을 쓰기도 하는 몬스터요.”

주선오가 알고 싶었던 윤도아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시결의 말을 끊지는 않았다.

니엘과 이네스의 인터뷰와는 또 다른 내용이었다.

간이 시험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내용.

아무리 상대하고 싶지 않는 사람이라도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두어서 손해가 될 일은 없었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들어둔다면 앞으로 게이트를 닫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해질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다행히 이시결은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지 않은 듯 했다.

“구울은 꽤 흥미로운 몬스터입니다. 같은 곳을 두 번 베어내면 다시 회복을 하는 이상한 놈이지요. 사실 그런 생명체를 만났는데 한 번에 죽이기에는 좀 아쉽지 않겠습니까?”

이시결이 씩 웃으며 물었다.

“그쪽같이 제정신이 아닌 사람한테는 그럴지도 모르겠군.”

주선오의 말에 이시결이 피식 웃었다.

“어쨌든 아까웠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놈과 좀 놀아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죠.”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이시결이 아쉽다는 듯 입술을 핥았다.

“윤도아 씨가 게이트에 입장하기 전에 했던 말 때문에요.”

이야기를 듣던 주선오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무슨?”

“간이 시험 게이트 안의 상황이 어떨지 모르니 최대한 신중하게 행동해달라는 부탁을 했었습니다.”

“신중하게?”

주선오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껏 윤도아와 함께 게이트를 여러번 입장해봤지만 입장 전 무언가 부탁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물론 이번의 게이트가 첫 번째 간이 시험의 게이트였기에 신중을 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조금 찜찜한데.’

“그래요. 그 이야기때문에 저는 구울을 죽이지도, 가지고 놀지도 못한 채 제 인형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시결이 양손을 들어올려 기다란 손가락을 까닥였다.

마치 인형극을 하는 것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래서?”

“쇠사슬에 묶여 있던 그림 리퍼의 다리 뼈의 안내에 따라 놈의 다른 뼈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어요. 거기서 먼저 도착해있던 윤도아 씨를 만났습니다. 그러고보니 윤도아 씨의 상대는 레버넌트였는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긴 했습니다.”

이시결이 손을 멈추더니 살짝 미간을 지푸리며 팔짱을 꼈다.

“이상한 점?”

주선오가 되물었지만 이시결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다가 대답은 하지 않고 주선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레버넌트에 대해서는 좀 아십니까?”

주선오는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

“아시는군요. 맞아요. 복수에 성공할 때까지 죽지 않는 몬스터지요. 그럼 레버넌트는 분명 그림 리퍼의 뼈를 풀어주려는 윤도아 씨를 적으로 인식했을테고 바로 공격에 들어갔을텐데 말이죠. 만약 주선오 씨가 그런 상황에서 놈을 제압한다고 하면 가장 쉬운 방법이 뭘까요?”

자꾸 질문을 던지는 의도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죽지 않는 놈이니 신중을 기할 것도 없었다.

“베어내서 움직임을 잠깐이라도 막은 후에 제압했겠지.”

“맞아요. 보통의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럼 그 과정에서 당연히 부상을 입겠죠. 레버넌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할 뿐 사람과 똑같이 피를 흘립니다.”

이시결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다크서클이 짙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데 그 레버넌트에게는 핏자국이 하나도 없었어요. 윤도아 씨와 전투를 벌였다면 분명 사지가 멀쩡했을리가 없습니다. 어딘가는 잘려나가거나 부러지거나 부상을 입었을테죠. 그런데 핏자국이 하나도 없었다?”

이시결이 가만히 주선오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상하지 않나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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