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대부분의 각성자는 주선오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똑같이 목숨이 하나인 상황에서도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데 더구나 상대는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놈의 안위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모든 힘을 써서 놈을 제압할 터.
그런데 윤도아는 레버넌트에게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않고 놈을 제압했다.
물론 그녀의 능력이라면 그것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혹시 그게 윤도아가 지었던 표정과 뭔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싶어 주선오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런 주선오를 보며 이시결이 웃었다.
“뭐, 물론 윤도아 씨가 레버넌트를 보자마자 놈을 제압해버린 걸수도 있지만요.”
“…뭐?”
“주선오 씨가 자꾸 뭔가를 캐내려고 하는 것 같아서 저도 한 번 의심해본 것 뿐입니다.”
이시결의 가벼운 목소리에 주선오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건가?”
“장난이라뇨. 성심성의껏 주선오 씨의 질문에 대답해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시결이 서운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와 살짝 올라간 한쪽 입꼬리에 기분이 상한 주선오는 결국 이시결의 멱살을 잡아챘다.
“하하.”
이시결이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멱살을 잡은 주선오의 손목을 붙잡았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자꾸 이렇게 도발하시면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면 윤도아 씨 허락을 받아서 제대로 한 판 붙어보시겠습니까? 저는 꽤 흥미가 있습니다만.”
주선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시결은 여전히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었다.
그때 주선오의 후각에 익숙한 체향이 잡혔다.
흠칫 놀란 주선오가 옆을 돌아보았고 곧 아파트에서 나오고 있는 윤도아가 보였다.
주선오는 붙잡았던 이시결의 멱살을 놓았다. 그리고는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도아 누나한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쓸데없는 소리라.”
이시결이 구겨졌던 옷가지를 툭툭 쳐 펼치며 말했다.
“주선오 씨한테 멱살을 잡혔다는걸 일러바칠 정도로 속이 좁은 사람은 아닙니다.”
주선오가 목소리를 낮춘 채 윽박질렀다.
“그걸 얘기하는 게 아닌 건 그쪽도 알고 있을텐데.”
“글쎄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시결이 뻔뻔한 웃음을 띠었다.
주선오의 주먹에 다시 힘이 들어가려는 찰나.
“둘이 뭐해?”
윤도아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두꺼운 목도리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선오는 이시결을 한 번 쏘아보고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냥 잠깐 마주친 것 뿐입니다.”
양손을 까만 코트의 주머니에 넣은 윤도아가 이시결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넌 게이트 간다더니 안 가?”
“가는 길에 주선오 씨를 잠깐 마주쳐서요.”
주선오의 서늘한 시선이 쏟아지자 어깨를 으쓱인 이시결이 이어 말했다.
“그럼 전 이만 제 갈 길을 가도록 하죠.”
이시결은 주선오를 슥 훑어보더니 자리를 벗어났다.
주선오는 그런 이시결의 뒷모습을 쏘아보았다.
“무슨 일 있었어?”
윤도아가 주선오의 옆에 서며 물었다.
“…아뇨. 아닙니다, 아무것도.”
작게 한숨을 내쉰 주선오는 이시결에게서 시선을 뗀 후 윤도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평소와 다를 바 없어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니 안심이 되어 주선오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윤도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주선오를 올려다보았다.
“뭔데?”
주선오는 잠시 고개를 돌리고는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윤도아를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잠깐 걸을까요?”
* * *
주선오는 캡모자를 푹 눌러쓰고 평소에는 쓰지도 않는 도수없는 안경까지 쓴 상태였다.
하지만 그걸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지는 못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끈덕진 시선이 그를 따라붙었다.
함께 걷는 입장에서 그런 상황이 부담스럽고 짜증날 법도 했지만, 나라고 그것에 불평할 처지는 아니었다.
목도리를 코까지 끌어올려 얼굴을 반쯤 감춘 상태였지만 역시 알아볼 사람들은 알아보기 마련.
주변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던 우리의 계획은 몰려드는 인파에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받아갔다.
‘이래서 차가 없으면 움직이기 힘들다니까.’
우리는 간신히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그나마 인파가 분산되는 한강으로 향했다.
몇몇 사람들이 계속 우리를 미행하듯 쫓아왔지만 크게 신경쓰이는 선은 아니었다.
“후우.”
주선오가 한숨을 내쉬며 안경 안으로 손을 넣어 눈을 문질렀다.
“조금 걷고 싶어서 차를 안 가져왔는데 후회되네요.”
처음 만났을 때보다 상당히 지쳐보이는 표정이었다.
피식 웃은 나는 목도리를 내린 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쌉싸름한 액체가 목을 타고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주선오 역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내게 물었다.
“잘 쉬셨습니까?”
“뭐 그럭저럭.”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바로 잠들었고 오늘은 내내 도빈이와 벙커에 박혀있었다.
도빈이가 그림 리퍼의 낫에 익숙해지게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나야 1년동안 비전 마법의 염력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어느정도 공간 감각이 있었지만 도빈이는 달랐다.
도빈이는 지금까지 평범한 낫을 이용해 근거리 공격을 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근거리와 원거리 공격을 모두 할 수 있는 무기가 생겼으니.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
그림 리퍼의 낫은 잘못 다뤘다간 아군까지 다치게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무기였기에 그 사용법을 완벽하게 숙지해야했다.
주선오의 연락을 받고 나오기 전에도 도빈이에게 계속 연습을 하고 있으라고 해둔 상태였다.
“간이 시험은 어떠셨습니까?”
주선오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오늘 그가 나에게 만나자고 한 이유가 바로 저 질문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입에 대었던 커피잔을 내려 양손에 쥐었다.
“그냥. 인터뷰에서 말했던 그대로야. 생각보다 크게 어려운 것도 없었고.”
“괜찮으시면 얘기 좀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주선오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도 니엘과 이네스의 인터뷰는 보았을 것이다.
아까 이시결과 함께 있었던 것도 주선오가 그에게 간이 시험에 대해 물었기 때문일테고.
사실 다른 사람이 물었다면 설명해줄 마음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주선오는 달랐다.
어찌됐든 주선오는 랭킹 2위의 각성자. 여차하면 나를 대신해야할지도 모르는 위치였다.
물론 내 첫 회귀 전처럼 혼자서도 알아서 잘 하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나눌 수 있는 정보는 나누는 것이 좋았다.
나는 간략하게 간이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조용히 집중한 채 이야기를 들었다.
짤막한 이야기가 끝나자 주선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고생많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레버넌트가 파수꾼이라는 걸 어떻게 단번에 아셨습니까?”
감탄 섞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무언가 다른 것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의아함.
‘뭔가 알아챘나?’
쿵, 쿵!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뭔가 의심할만한 이야기를 했나 싶어 나는 빠르게 내가 했던 말을 되짚어보았다.
하지만 딱히 회귀를 의심할만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혹시 이시결이 뭔가 이야기를?’
하지만 이시결 역시 나의 회귀에 관한 것은 전혀 몰랐다.
주선오가 아무 이유없이 나에 대해 저런 의심을 품을 리는 없었다.
‘내 행동이 뭔가 이상했나?’
나도 모르게 행동이나 표정에서 그런 기미를 내비쳤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조심한다고해도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행동이나 표정은 매순간 의식하지 않고서야 힘든 일이니까.
확실한 것은 오늘은 간이 시험에 대한 생각들이 정리된 상태였다. 그렇기에 조금 전의 행동이나 표정때문에 저런 질문을 한 것은 아니리라.
나를 만난 진짜 목적이 저 의구심을 풀고자 함이라면, 그 계기는 아마 어제의 인터뷰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그때는 막 간이 시험을 마치고 나왔을 때라 착잡함에 휩싸여 있었다.
‘그때 내 표정이 조금 이상했을지도 모르겠어.’
그렇다면 납득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괜스레 찝찝한 기분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 주선오가 아차 싶었는지 빠르게 덧붙였다.
“기분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 같았으면 그런 생각은 못 했을 것 같아서 여쭤봤어요. 당연히 안내자였던 그림 리퍼를 풀어주기위해 레버넌트를 공격했겠죠. 거기에서 시간도 한참 썼을테고. 다치기도 많이 다쳤을지도 모릅니다.”
주선오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그런데 누나는 그렇지 않으셨잖아요. 아직도 제 판단이 미숙한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최대한 신중히 행동하기위해서 놈을 바로 붙잡은 것 뿐야. 레버넌트는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잡기 힘든 놈이니까. 일단 잡아두고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바로 붙잡은거거든.”
대충 둘러댄 말에 잠시 침묵한 주선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러더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나 역시 그를 돌아보았다.
“왜?”
잠시 나를 바라보던 주선오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왠지 조금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살짝 미소 짓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주선오 역시 앞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노을이 지는 한강변을 바라보며 잠시 커피를 마셨다.
주변의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소리와 강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소리, 잔잔하게 흐르는 물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잠시나마 평화로운 기분을 만끽하며 커피를 다 마신 후, 나는 주선오에게 물었다.
“선오야. 근데 너 혹시 스토킹 당해?”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주선오가 놀라며 나를 돌아보았다.
“…전 누나를 따라온거라고 생각했는데요.”
“…….”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강에 도착하기 전부터 우리를 쫓아오던 인파들은 대부분 돌아간 후였지만 딱 한 명.
아직까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우리 중 하나의 단순한 팬인지, 아니면 우리를 쫓아온 기자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중 무엇이든 우리의 앞에 직접 나서지 않고 저렇게 미행을 하는 것을 보면 뭔가 캥기는 게 있다는 뜻.
스토커이든지 아니면 악덕 기자이든지.
‘어쨌든 주선오를 쫓아온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후각으로 주변에 머물고 있던 그의 존재를 알아챈 주선오는 그가 나를 쫓아온 스토커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잠시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냥 두기는 찝찝하지?”
“네. 혹시나 누나를 쫓는거면 그냥 둘 순 없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용한데로 옮길까.”
“네.”
* * *
해가 지고 어스름이 지기 시작할 무렵.
한강변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윤도아와 주선오가 이동을 시작했다.
추운 날씨임에도 낮부터 둘을 쫓으며 눈을 떼지 않았던 한 여자 역시 둘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쫓기 더 쉽겠어.’
여자는 주변이 어두워짐과 함께 더욱 자신감을 찾았다.
그래서 조금 더 과감하게 둘을 쫓기 시작했다.
둘은 강변을 벗어나 근처의 주택가로 향했다.
‘어디를 가는 거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윤도아나 주선오의 집이 이 근처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리의 사무실이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둘의 이동 경로는 의아했다.
‘…설마…?’
어쩌면 둘 사이에 뭔가 있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으슥한 시간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저런 구석진 곳으로 향하는 것이 충분히 의심할 상황이었다.
‘이거 잘하면 크게 터트릴지도 모르겠는데.’
여자는 마스크 아래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는 골목 안쪽으로 사라진 둘을 따라 걸었다.
‘이 안인가?’
그리고 둘을 따라 조심스레 코너를 꺾는데.
막다른 골목에 주선오가 멈추어 서 있었다.
‘이크!’
여자가 들킬세라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든 채 조심스레 골목 안을 바라보았다.
‘…어?’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주선오 혼자 뿐.
함께 있던 윤도아는 어디론가 사라진 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어디로 갔지?’
톡톡.
그때 누군가 여자의 등을 두드렸다.
여자가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자.
“헉!”
그곳에는 윤도아가 서 있었다.
‘어, 언제…!’
놀란 여자가 비명을 삼키며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
하지만 그 뒤에는 어느새 주선오가 다가와 있었다.
윤도아는 입을 가렸던 목도리를 끌어내린 후 씩 웃어보였다.
“저희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