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2화
나와 주선오의 뒤를 쫓던 사람은 한 여자였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챙겨 쓴 모습.
누가봐도 미행을 하려 마음 먹은 것 같은 수상한 차림새였다.
“아뇨.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는데요?”
여자가 뻔뻔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수상쩍은 모습과 미묘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스스로의 범행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것치고는 뭘 찍으시려던 것 같습니다만.”
주선오의 말에 여자가 황급히 카메라 모드가 켜져있던 핸드폰을 뒤로 숨겼다.
“윽….”
여자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지만 그곳은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이었다.
“사람이랑 대화를 할 때는 눈부터 마주쳐야죠.”
나는 염력을 이용해 여자의 모자를 툭 제끼고 선글라스와 마스크까지 모두 벗겨냈다.
“으악! 뭐, 뭐야!”
여자가 놀라며 허공으로 떠오르는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를 붙잡으려했지만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나는 빠르게 여자의 소지품들을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여자는 소지품들을 잡으려 허우적대다가 포기하고는 되려 나에게 화를 냈다.
“지금 지나가던 사람 붙들고 뭐 하시는거에요? 빨리 돌려주세요!”
“낮부터 따라왔던 거 다 알고 있습니다. 대체 뭐때문에 미행을 한 겁니까?”
“뭐, 뭐라고요?”
주선오가 여자를 추궁하는 사이 나는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익숙한 얼굴은 아니었다.
흔히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얼굴이지만 유독 코가 눈에 띄었다. 부자연스럽게 오똑한 것이 척봐도 수술을 받은 것 같았다.
그 코를 보자마자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혹시?’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여자에게 물었다.
“당신, 혹시 나 만난 적 있지 않아요?”
내 말에 여자와 주선오가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주선오가 의아한 듯 물었다.
“아는 사람입니까?”
“아는 건 아닌데, 짚이는 데가 있는 것 같아서.”
그러자 여자가 마른침을 삼키더니 자신의 코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 동작을 보자마자 나는 그 여자를 만났던 곳을 확신했다.
나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사이비!”
“네? 사이비라면….”
주선오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작년 초, 각성 기관의 기자 회견에 난입했고 우리 집에 무단 침입을 한 대가로 내가 직접 박살을 냈던 사이비 종교의 일원임이 분명했다.
그때 그곳에서 비수를 들고 내게 덤볐던 사이비 신도들 모두의 코를 뭉개주었다.
저 부자연스러운 코는 그 이후로 얻은 것이리라.
여자는 내 말에 발끈하며 외쳤다.
“사이비라뇨! 신로견교는 사이비가 아니라…, 헙.”
그러다가 자신의 입을 막으며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여자의 자폭에 나는 손뼉을 짝 마주치며 웃었다.
“아, 맞아. 그런 이름이었어.”
“…그거, 그때 정리된 것 아니었습니까?”
주선오가 한숨을 내쉬며 내게 물어왔다.
“그러게. 나도 그때 정리된 줄 알았는데. 하여튼 오랜만이네요. 그래서 나한테 무슨 볼 일이죠?”
나는 팔짱을 낀 채 웃으며 물었다.
“그냥 진짜 지나가던 길에 보이길래 따라온 거에요!”
여자가 황급히 변명을 했다.
하지만 도저히 통할만한 핑계가 아니었다.
“지나가다 봤으면 그냥 지나갈 것이지 왜 또 따라와요? 그때 코가 덜 아팠어요?”
내 빈정거림에 이어 주선오 역시 차가운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겉으로는 당당한 척 하고 있었지만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사라지고 신로견교는 해체된지 오래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나한테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하기위해 나를 쫓아왔다기에는….
‘너무 늦은 거 아냐?’
하지만 그것이 아니고서야 내 뒤를 미행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가만히 여자를 바라보다가 혹시나 싶어 여우 구슬로 여자의 정보를 살폈다.
여자의 이름은 신수연.
신의 가호를 받은 각성자였다.
신로견교의 신자일 당시에도 가호를 받았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가호의 옵션이 어느정도 수치가 쌓인걸로 보아 어떤 무리에 소속된 채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주변에 널린 정도의 수준.
‘정말 같잖네.’
피식 웃은 나는 그녀의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들을 돌려주었다.
“뭐, 이유야 모르겠지만 이번 한 번은 봐줄게요.”
“으앗!”
신수연이 자신에게 돌아온 자신의 소지품들을 황급히 받아들었다.
“대신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면, 알죠?”
나는 씩 웃으며 코를 톡톡 두드려보였다.
“이번에는 코로 안 끝날 수도 있어요.”
신수연은 빠르게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마저 챙겨 쓰며 말했다.
“뭐 어쩔건데요? 모르실텐데, 저한테 그렇게 함부로 손 못대실걸요?”
꽤 자신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다시 그녀의 특성 옵션을 살폈다.
‘자신있어 할만한 옵션은 아닌데.’
그녀의 자신감은 다른 곳에서 오는 것 같았다.
“아, 그래요? 왜요? 신로견교 교주보다 더 든든한 빽이라도 생기셨나봐?”
그러자 신수연이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
“맞아요! 지금 제가 있는 무리가 가장 전망이 좋고 잘 나가는 무리거든요.”
“아하.”
그런 무리라면 나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 사람, 너희 무리 단원이야?”
현 각성자의 무리 중 가장 전망 좋고 잘 나가는 개의 이빨 무리 단장인 주선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니라는데?”
나는 다시 신수연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신수연이 주먹을 불끈쥐며 말했다.
“고작 개의 이빨 무리와 비교를 하다뇨!”
그 말에 주선오의 표정이 급격히 싸늘해졌고, 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 더 분발해야겠다.”
그러자 주선오가 기가 차다는 한숨을 내쉬며 신수연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신수연이 흠칫놀라며 뒤로 물러나다 담벼락에 부딪혀버렸다.
나는 눈빛으로 신수연을 위협하는 주선오의 팔을 툭툭 쳤다.
“사람잡겠다, 야.”
그러자 주선오가 신수연에게서 눈을 떼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이 살짝 뾰루퉁해진것이 아무래도 내 앞에서 자신의 무리가 그런 취급을 당한 것이 꽤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나는 피식 웃고는 표정을 알 수 없는 신수연을 보았다.
사실 국내에서 개의 이빨 무리를 고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무리는 없었다. 해외에서도 당연했고 그 정도로 개의 이빨 무리는 굉장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대체 어떤 무리가 주선오의 무리를 따라갈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는지가 정말로 궁금했다.
물론 본인들의 생각뿐일 확률이 컸지만.
“개의 이빨 무리말고 그런 무리가 또 있었어요? 난 처음 듣는 얘긴데.”
“우리는 평범한 무리가 아니거든요! 우리는 유일하게 게이트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는 각성자들이에요!”
신수연의 말에 나는 다시 미간을 구겼다.
첫 번째 시험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회귀를 한 나조차도 모르는 게이트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다는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고 이전에 비슷한 추측을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외계인 침략설을 주장했던 땅의 지배자 무리 단장 심지원에게서.
나는 혹시나싶어 신수연에게 물었다.
“혹시 땅의 지배자 무리?”
하지만 신수연의 반응은 의외였다.
“뭐라고요? 그거야말로 정말 기분 나쁜 추측이군요! 어떻게 그런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하는 무리에 제가 소속되어있냐고 물어볼 수 있는거죠?”
아니면 아닌거지 신수연은 길길이 날뛰었다.
“그분들은 지구를 침략할 분들이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저희를 도우면 도왔지!”
그 외침에 나는 살짝 굳어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땅의 지배자 무리가 외계인 침략설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저 말.
나는 그녀가 소속된 무리를 추측할 수 있었다.
“…성위의 수하.”
외계인 숭배자의 무리였다.
외계인을 성위라고 표현했으며 자신들은 그들의 수하라고 주장하던 무리.
성위의 뜻을 받들어 모신다며 다른 각성자들을 배척하는 것을 정당화하던 놈들.
그리고 박성현. 그놈이 있던 무리였다.
내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름을 알아맞춰서 기쁜 모양인지 신수연이 한층 높아진 목소리로 외쳤다.
“저희는 성위의 힘을 얻어서 금방 성장할 거라고요. 그러니까 당신들따위 금방 꺾어버릴 수 있다고요!”
들어줄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나는 싸늘해진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나?”
주선오가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갑자기 굳어진 표정에 의아함을 느낀 것 같았다.
나는 애써 표정을 풀었다.
‘차라리 잘 됐어.’
신수연이 성위의 수하소속이라면 그녀를 통해서 현재 그쪽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특히 박성현에 대한 것을.
나는 한숨을 내쉬며 표정을 풀고는 다시 신수연을 향해 말했다.
“그래서 그쪽 무리 힘이 대단하다는 그 말인가요? 그렇게 자신있으면 대놓고 앞에 나타나지 왜 쪼잔하게 미행을 합니까?”
“그거야 당연히 적을 이기려면 적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신수연은 별다른 무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술술 이야기를 내뱉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나를 적이라고 표현했다.
성위의 수하들이 이미 나를 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거지.’
나는 살짝 입술을 뒤틀었다.
“그러니 당신을 뒤쫓을 수밖에요!”
그 말을 듣던 주선오는 어처구니가 없는 듯 허, 탄식을 내뱉었다.
“결국 미행했다는 걸 인정했네요. 게다가 저 말은 뒷조사까지 한다는 걸로 생각이 되는데요.”
주선오가 내게 살짝 몸을 기울인 채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수연을 향해 말했다.
“뭐, 그렇군요. 그래요, 그럼. 잘 해봐요.”
“…네?”
내 대답에 오히려 당황한건 신수연이었다.
“가자, 그만.”
나는 옆으로 물러나며 주선오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가로막혀있던 신수연의 도주로가 열렸다.
나는 길을 열어준 후 신수연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쪽 무리가 저를 적으로 인식했다는 건 잘 알았고. 그럼 저도 똑같이 당신들을 적으로 인식해도 공평한거죠? 아까 충고는 해뒀으니까, 조심해요.”
그리고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주선오 역시 그녀를 흘긋 바라보고는 바로 내 뒤를 쫓았다.
나는 천천히 골목을 벗어나며 탐지로 신수연의 행동을 살폈다.
신수연은 슬금슬금 골목을 벗어나더니 빠르게 우리의 반대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신수연에게 집중하며 암살자의 특성 스킬을 사용했다.
‘표식.’
사악.
신수연의 머리 위에 하얀 빛이 떠올랐다.
이시결에게 달아둔 것과 같은 스킬이었다.
이제 저 표식은 계속해서 그녀의 위치를 내게 알려줄 것이다.
“저대로 보내도 괜찮겠습니까?”
주선오가 조금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나는 그런 주선오를 보며 되물었다.
“내가 저런 조무래기들한테 당할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물론 아닙니다.”
주선오가 바로 대답했다.
“그래도 상대는 일단 무리인데….”
여전히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 상대가 될만한 각성자는 없었다.
주선오도 첫 번째 회귀 전의 그가 아닌 이상 지금은 사실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고, 그 외의 각성자들은 몇이 덤비더라도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냥 웃어보였다.
“괜찮아. 그렇게 따지면 나는 일단은 기관 소속이고.”
이제 기관과 계약한 1년이 지나긴 했지만 아직까지 기관 소속인 것은 맞았다.
“여차하면 너나 도빈이네 도움을 좀 받으면 되니까.”
주선오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그들이 이렇게 먼저 접근해준다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는 곧 주선오와 헤어져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면 일단 외계인 숭배 단체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외계인 침략을 주장하는 단체인 땅의 지배자 무리 단장 심지원에게도 연락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를 미행하는 사람까지 붙일 정도면 그쪽과는 지금 상당히 마찰이 있을 터.
그리고 내일은 계약 건 때문에 기관에 들러야 했다.
‘간 김에 박성현에 대한 정보가 있는지 찾아봐야겠어.’
* * *
“들켰다고?”
남자의 말에 조금 전까지 윤도아를 뒤쫓던 여자, 신수연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단장님. 하지만 그래도 별로 크게 신경쓰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물론 한 번만 더 눈에 띄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경고는 받았지만. 뭐, 말 뿐이겠죠. 저한테 계속 맡겨 주시면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어요!”
신수연의 빠른 말에 신수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성위의 수하 단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 알겠으니 일단 나가보게.”
“네, 네!”
신수연이 빠르게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다장은 다시 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때 방의 한 구석에서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모없습니다.”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구석진 곳을 바라보았다.
20대 초반의 서글서글한 인상의 젊은 남자가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단장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복수를 하려는 패기가 좋아서 받아줬더니 영 별로군.”
젊은 남자가 곧 벽에서 몸을 떼더니 단장의 앞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저건 명백한 실수입니다. 그리고 한 번 저지른 실수는 또 저지르지 말란 법이 없죠. 그걸 그냥두면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배울지도 모릅니다.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젊은 남자의 단호한 말에 단장이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자네 생각은 신수연을 그냥 둬서는 안된다는 건가?”
젊은 남자의 입꼬리가 삭 올라갔다.
“당연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처리해야해요.”
“흠…. 일단 생각을 좀….”
단장이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젊은 남자가 책상을 툭 짚으며 단장에게 살짝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단장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말했다.
“아뇨. 그건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주어진 일에 실패한다면 그에 대한 처벌이 주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그분들이 원하시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저희가 노여움을 살 수도 있습니다! 단장님께서는 생각하실 필요가 없어요. 그저 그분들의 말씀을 옮기는 제 말에 귀 기울여주시면 됩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강하지만 부드럽게 단장을 회유했다.
단장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자네는 신수연에게 내려야할 처벌이 뭐라고 생각하나.”
“그거야 당연히….”
젊은 남자가 여전히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죽음입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