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첫 번째 간이 시험의 게이트가 닫힌 후 이틀 째.
여전히 전 세계는 그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쏟아지는 윤도아의 기사들을 보던 김지석은 뿌듯함과 흐뭇함을 느꼈다.
김지석은 그녀가 자신과 같은 각성 기관에 소속이 되어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마냥 기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다.
“후….”
김지석은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3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아 씨가 올 때가 됐네.’
어느새 윤도아가 각성 기관과 계약을 맺은지 1년이 되었다.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위해 윤도아와 기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상태였다.
김지석은 빠르게 노트북을 챙겨 관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관장실로 가는 길의 엘레베이터 앞에서 윤도아를 만날 수 있었다.
“이사님.”
김지석을 발견한 윤도아가 가볍게 고개를 꾸벅여 인사했다.
간이 시험의 게이트에 입장했을 때 이후로 처음 보는 얼굴.
그렇게 오랜만에 보는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굉장히 반가운 기분에 김지석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도아 씨! 간이 시험 때 고생 많으셨습니다. 잘 쉬셨어요?”
“네. 덕분에요.”
윤도아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김지석은 윤도아와 함께 관장실로 향했다.
그가 관장실의 문을 두드리자.
“네, 들어와요.”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안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지석은 관장실의 문을 연 후 윤도아에게 손짓했다.
“먼저 들어가세요.”
윤도아가 고개를 꾸벅이고는 김지석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안세인이 업무용 책상에서 일어나며 둘을 맞이했다.
“어서와요, 도아 씨. 고생많았어요.”
응접용 소파로 걸어나온 안세인이 윤도아에게 자리를 권했다.
김지석은 안세인과 윤도아가 자리에 앉은 후, 윤도아의 맞은 편 소파에 앉았다.
“니엘이나 이네스의 말도 그렇고 다행히 간이 시험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던 모양이네요.”
안세인의 말에 윤도아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네. 다행이었죠.”
“다음번에는 저희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김지석의 말에 윤도아가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안세인의 눈짓에 고개를 끄덕인 김지석이 윤도아를 보며 말했다.
“도아 씨와 맺은 계약 기간은 1년이었고 서류상으로는 오늘이 마지막날입니다. 그래서 계약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 연락을 드린겁니다.”
윤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안세인과 윤도아와 함께 앉아있자니 그때가 떠올랐다.
‘벌써 1년이라니.’
1년 전 윤도아는 종로의 S급 게이트를 40분만에 클리어하고 기관에 왔다.
그동안 윤도아는 굉장히 많은 활동을 해왔다.
국내 및 외국의 게이트 브레이크를 막아내기도 했고 함께 각성자 컨벤션을 개최하기도 했으며 미등록 각성자들의 정리를 돕기도 했다.
게다가 이번 간이 시험 역시 윤도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수월하게 끝나지 않았을 터.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윤도아의 흔들림없는 눈빛은 변함이 없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띤 김지석이 말했다.
“저희 입장에서는 당연히 도아 씨가 계약을 연장해주셨으면 합니다.”
그의 말에 안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간이 시험도 성공적으로 클리어해줬고 그동안 도움을 받은게 한 두개가 아니라서.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만큼 계약금은 올라갈거에요.”
김지석은 윤도아의 표정을 살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이 나타나지 않았다.
생각에 잠긴 것 같은 침묵.
왠지 윤도아는 기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안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도아 씨한테는 거절할 권리가 있어요. 나도 그때처럼 강요하지는 못하겠고.”
“만약 거절하시더라도 지금 계신 집이나 벙커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거긴 기관과의 계약과 관계없이 도아 씨께 드린거니까요.”
사전에 안세인과 이야기를 했던 부분이었다.
윤도아는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1년 전 그때와 같은 긴장감에 김지석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처럼 필사적인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윤도아가 입을 열었다.
“계약은 1년으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예상은 했지만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확인 사살을 당한 기분에 김지석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안세인 역시 아쉬운 표정을 짓는 건 마찬가지였다.
“역시 그런가요.”
윤도아가 기관에 소속되는 건 오늘로 끝이라고 하더라도, 그녀가 게이트를 계속 닫는 한 기관과의 관계가 끊어질 일은 없었다.
어찌됐든 각성 기관은 각성자들의 중심.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일도 많을테고 아무리 윤도아가 세계 랭킹 1위의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하기 힘든 것들도 있으리라.
작년, 안세인에게 기관장을 넘기고 나간 주선오도 지금까지 기관을 드나들며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는 했었다.
안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혹시 무리를 만들건가요?”
그 점은 안세인과 김지석이 가장 걱정하던 부분이었다.
대놓고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만약 윤도아가 자신의 무리를 만든다면 국내 각성자들 사이에는 큰 파란이 일 것이 분명했다.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윤도아의 무리에 들어가고 싶어할테니까.
그렇게되면 이미 만들어져있던 무리들은 힘을 잃고 윤도아의 무리만이 남게될지도 모른다.
그럼 그 무리는 기관보다 더 큰 세력을 이룰테고 세계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미칠지도 몰랐다.
다행히 윤도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제 무리를 따로 만들지는 않을거에요.”
내심 안심한 김지석은 다시 물었다.
“그럼 혼자 활동하십니까?”
“네. 일단은 그럴 생각이에요.”
고개를 끄덕인 안세인이 윤도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래저래 도아 씨한테는 도움만 받은 것 같네요. 그동안 고생많았어요.”
“아닙니다.”
윤도아는 안세인의 손을 맞잡고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안세인과 악수를 마친 윤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요. 앞으로는 부담갖지 말고 편하게 와요.”
윤도아가 안세인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김지석은 윤도아와 함께 관장실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시나요?”
김지석이 윤도아와 함께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며 물었다.
“네. 그런데 그 전에 혹시 괜찮으면 각성자들 리스트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아, 물론이죠. 그럼 잠깐 이사실로 가시죠.”
김지석은 윤도아와 함께 자신의 업무실로 향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윤도아가 잠깐 업무용 책상 앞의 소파에 앉아있는 사이, 김지석은 빠르게 컴퓨터를 조작해 각성자 리스트를 열었다.
“됐습니다. 천천히 보고 계세요. 마실 걸 좀 가져오겠습니다.”
김지석은 윤도아가 편안히 리스트를 살필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었다.
* * *
나는 김지석의 자리에 앉아 빠르게 가호 및 각성자 리스트를 훑었다.
1년 사이 국내 각성자들은 수백으로 늘어나 있었다.
거기다 이제는 이곳에서 전세계의 가호자와 각성자 리스트까지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양은 굉장히 방대했지만, 다행히 각성자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져있었다.
‘일단 박성현.’
나는 각성자 리스트에서 박성현의 이름을 검색했다.
짧은 로딩 후 화면에 2명의 정보가 나타났다.
나는 조금 숨을 죽인 채 둘의 정보를 살폈다.
하지만 등록되어있는 사진을 보니 내가 찾고 있는 박성현은 아니었다.
‘역시 아직 가호를 받기 전이야.’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그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다는 뜻.
나는 다음으로 어제 나를 미행했던 신수연을 검색해보았다.
그녀의 이름은 각성자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다.
어제 여우 구슬로 봤던 정보와 같은 것을 확인한 나는 내심 안심했다.
사실 외계인 숭배자들이 기관의 시스템에 등록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조금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미등록은 아니었어.’
일단 찾아보고자했던 사람은 모두 확인했다.
나는 리스트를 닫은 후 다시 응접용 소파로 돌아가 앉았다.
잠시 후, 김지석이 커피를 들고 이사실로 돌아왔다.
그는 내 앞의 탁자에 커피를 내려두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살짝 고개를 꾸벅였다.
“확인은 다 하셨나요?”
김지석이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네. 각성자들 수가 많이 늘었네요.”
“그렇죠. 1년 전과 비교하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김지석이 함께 가져온 자신의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거기다 이제 이곳에서 전세계 각성자들을 확인할 수 있으니 더더욱 확실하게 느껴져요. 그동안 굉장히 많은 발전을 했다는 게 말입니다.”
김지석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현재 한국의 각성 기관은 세계 각성 기관의 중심이었다.
그가 주선오와 함께 처음 각성 기관을 만들 때 꿈꾸던 모습이리라.
나는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김지석의 정보를 한번 살펴보았다.
아직 미숙하긴 했지만 확실히 차근차근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자신을 지킬 힘은 부족했지만 이제 그의 곁에는 든든한 기관이 있었다.
안세인과 권재경의 경우, 내 회귀 전이었다면 이맘때 쯤 기관을 나가 각자 자신들의 무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기관에서 조율을 꽤 했기에 둘은 여전히 기관에 남아 있었다.
게다가 기관의 연구소 역시 김지석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박효진의 연구는 유용한 방어구들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이미 여러 각성자의 목숨을 구한 전적이 있다.
‘좋게 흘러가고 있어.’
하지만 이제 더욱 신중해야 할 상황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이제 미등록 각성자들은 많이 없는 거겠죠?”
내 물음에 김지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후로 그런 경우는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각성자 컨벤션을 기점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미등록 각성자들.
그들을 돕던 이시결을 비롯해 단장이었던 한지희, 그녀의 남편이자 부단장이었던 각성자 문기훈, 이중 스파이 역할을 했던 최은서.
그들 모두 정부와 기관에 불만을 품은 미등록 각성자들이었지만 내 개입으로 인해 그들을 빠르게 정리하고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문기훈은 아직까지 잠적해버린 미등록 각성자를 찾아 전국을 헤메이고 있었다.
“기관에서도 그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기 위해 파견 직원의 수를 더 늘려서 게이트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호자와 각성자들을 위한 지원을 대폭 늘렸기에 웬만하면 먼저 등록을 하는 추세에요.”
현재 기관에서는 지원금은 물론 박효진의 연구 결과물인 방어구와 기본적인 무기 아이템들을 대여해주기도 했다.
확실히 초반보다 체계가 잡힌 상황이었다.
그리고 기관의 통제 하에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는 작은 상점들도 생겨나고 있었다. 신규 각성자들에게는 더욱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에 따라 암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문제도 있긴 했지만 그걸 모두 통제하기는 힘들었다.
“다행이네요.”
“다 도아 씨 덕분입니다.”
김지석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진지하고도 따뜻한 시선에 괜스레 쑥스러워진 나는 남은 커피를 마저 비웠다.
하지만 김지석은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면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도아 씨 부탁이라면 그게 뭐든 들어드릴 수 있으니까요.”
“고맙습니다.”
나는 빈 잔을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볼게요.”
김지석이 나를 따라 일어서며 말했다.
“집으로 가시면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나는 주머니에서 오토바이 키를 꺼내보였다.
김지석이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는 가볍게 김지석의 손을 맞잡았다.
“이사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물론 앞으로도 뵐 일은 많겠지만요.”
“네. 필요한게 있으시면 부담없이 연락주세요.”
김지석과 인사를 나눈 나는 바로 기관을 나왔다.
‘이제 기관에 의무적으로 올 필요도 없어졌네.’
기관과 계약을 연장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크게 볼 일도 없는데 일부러 기관에 얼굴을 비추러 오는 것도 성가셨고 이제 기관도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기에 크게 내 제어가 필요한 상황은 없었다.
물론 앞으로 몇 번 더 그런 상황이 올 것이었지만 그럴때 내가 잠깐씩 개입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제 안세인과 김지석은 내 말을 따라 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박성현 때문이지.’
첫 회귀 전, 박성현은 그당시의 기관장이었던 김지석을 죽이며 전쟁을 시작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기관의 힘이 지금만큼 크지 않았고 그때 박성현과 정면으로 맞선것은 주선오였다.
주선오는 기관 소속이 아닌 무리의 단장.
어찌보면 그때는 무리와 무리의 충돌이었기에 그것이 전쟁으로 번지는데에 꽤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기관 소속인 내가 박성현과 싸움을 시작한다면.
그건 순식간에 전쟁으로 커질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 전쟁은 니엘이나 조이같은 세계 순위권 각성자들도 참여하면서 빠르게 전세계로 번질 것이다.
‘최대한 조용히 처리해야해.’
그래야 각성자들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아직 신수연에게서는 크게 유용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녀를 만난지 하루밖에 되지 않기도 했기에 당분간은 지켜봐야할 것 같았다.
지금은 일단 계속해서 힘을 키워나가야 했다.
김지석과 안세인에게 말했던대로 따로 무리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어딘가에 메인 상태로 휘하의 사람들을 책임져가면서 게이트를 닫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무리가 있다면 성위의 수하들의 목표가 되기도 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 혼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었다.
‘이럴 때 쓸만한 사람이 있지.’
그리고 그에게는 따로 부탁할 일도 있었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개의 이빨 사무실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